마천동 산성 입구에서 서문까지는 매우 가파른 산길이다. 남한산성이 있는 청량산을 멀리서 보면 마치 병풍처럼 펼쳐져 있어 그 자체가 거대한 성벽임을 알게 된다. 서문은 우익문이라고도 불린다. 서문 전망대에서는 송파구 일대가 훤히 보인다.
서문에서 성벽을 따라 걸어 내려가면 북문이 나온다. 북문의 편액에는 전승문이라고 적혀 있다. 남한산성은 네개의 대문과 함께 곳곳에 암문이 있는데, 이곳은 군사와 보급품이 드나드는 일종의 비밀 통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북문에서 다시 성곽을 따라 걷다보면 남문이 나온다. 남문은 '지화문'이라고도 불린다. 남문은 남한산성의 정문 역할을 하는 문이다. 남문에서 조금 더 걸으면 수어장대가 나온다. 수어장대는 남한산성을 대표하는 건물이다. 수어장대에서 조금 더 가면 서문이 나온다. 이로써 3시간에 걸친 남한 산성 종주가 끝났다. 남한산성 성곽길은 특별히 어려운 코스가 없다. 성곽도 매우 깔끔하게 복원되어 있고 등산로도 잘 정비되어 있어 하루 산행코스로는 아주 적당하다.
끝으로, 병자호란의 역사적 의의를 되새겨 보고자 한다. 병자호란 당신 인조임금은 남한산성으로 피신하여 농성을 하려 하였다. 하지만 청나라 군사는 남한산성의 산세가 험할 뿐만 아니라 한겨울이라 급전을 피하고 성을 포위한채 보급로를 차단하고 지구전을 폈다. 결국 인조임금은 한겨울의 추위로 고생하다가 식량이 바닥나자 더는 버티지 못하고 성을 내려와 청태정에게 이마에서 피가 날 정도로 절을 한 뒤 굴욕적인 항복을 하였다. 하지만 남한산성은 청나라 군사도 쉽게 함락하지 못할 정도로 견고한 요새였다. 그러나, 아무리 훌륭한 요새를 갖고 있어도 임금과 장수들이 그것을 지켜낼 능력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청나라 군사는 압록강을 건너 한양으로 진격하는 동안 한번도 조선군의 저지를 받은 적이 없었다고 한다. 결국 병자호란의 패배는 당시 지배층의 무능과 부패가 그 원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