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23일 토요일

장가계(张家界) 여행

한국인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다는 장가계를 여행하기로 결정했다. 여행사를 통한 단체 관광으로 신청을 하였고, 3월 18일부터 4박 5일동안 장사-장가계를 돌아보는 여행 일정이었다. 인천공항에서 장사까지 중국 동방항공을 타고 이동한 다음 장사에서 1박후 이튿날 장가계로 버스를 타고 이동하였다. 이번 여행의 가이드도 역시 연변 출신의 조선족 남자로 할아버지의 고향이 경상도라고 한다. 장가계에는 조선족 가이드만 약 6백여명이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그 정도로 장가계는 한국인 관광객들에게 인기있는 여행지다. 이번 여행의 참가자는 모두 14명, 가이드와 운전기사 그리고 보조 가이드와 비디오 기사까지 모두 18명이다. 보조 가이드는 역시 조선족이고 비디오 기사와 운전기사는 장가계의 원주민인 토가족 출신이다.


장사의 호텔을 출발했을 때 비가 오는 궂은 날씨였으나 이내 날씨가 개이고 해가 나기 시작했다. 장사에서 장가계까지는 버스로 약 5시간 거리다. 장가계에 도착하자마자 점심 식사를 한 후 케이블카를 타고 천문산으로 올라갔다. 천문산 케이블카는 길이가 무려 7.5km로 이동시간만 30분이 넘는다. 게다가 웅장한 바위산과 낭떠러지위를 지나기 때문에 무척 스릴이 넘치고 아찔하다. 어찌나 무서운지 케이블카를 타고 내리는 사람중에는 구토를 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케이블카를 타고 천문산 꼭대기를 올라간 후 유리잔도와 귀곡잔도를 따라 걸었다. 유리잔도는 바닥을 유리(투명 플라스틱)으로 만들어 놓아 아래를 쳐다보면 낭떠러지가 보이게 만들어 진 것이다. 귀곡잔도는 바위협곡 가운데 만들어 놓은 길로 이 길을 따라 걷다보면 천문산의 신기하고 웅장산 산세와 아름다운 절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귀곡잔도를 따라 내려오면 천문산사라는 절이 있다. 당나라때 세워졌다는 천문산사에서 절과 주변 경치를 구경하였다.


케이블카를 타고 산 중턱으로 내려가서 이번에는 셔틀 버스를 타고 꾸불꾸불 고갯길을 따라 올라가서 천문동으로 갔다. 천문동은 엄청난 크기의 바위 구멍을 말한다. 이 구멍으로 경비행기 4대가 지나간 적도 있다고 한다. 천문동을 보면서 장가계의 매력과 웅장함에 다시한번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버스 승차장에서 가파른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천문동으로 갈 수 있다. 천문동의 반대편은 현재 한창 공사중이었다. 천문산 케이블과 귀곡잔도 그리고 천문동은 장가계의 하이라이트라고 볼 수 있다. 장가계는 카르스트 지형의 대표적인 예로 수억년에 걸친 침식작용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그야말로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세계적인 자연경관이다.

천문산을 구경한 후 산을 내려와 저녁 식사를 한 후 천문산쇼를 관람하였다. 천문산쇼는 장가계 여행의 또 다른 백미로 화려한 무대를 배경으로 중국의 전통과 현대적인 감각을 함께 느낄 수 있는 화려한 뮤지컬이다. 특이한 점은 무대가 산을 배경으로 야외에 설치되어 있다는 것이다. 베이징에서는 금면왕조 항저우에서는 송성가무쇼를 보았지만 천문호선쇼는 두 가무쇼와는 또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는 멋진 공연이다. 공연을 관람한 후 호텔로 돌아와 휴식을 취했다. 어제밤에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던지 호텔에 도착해서 씻자마자 바로 곯아 떨어졌다.

둘째날, 호텔에서 조식을 한 후 가이드의 인솔로 보봉호를 구경하였다. 보봉호는 반 인공, 반자연의 호수라고 하며 유람선을 타고 약 30분간 투어를 하였다. 장가계는 산도 아름답지만 계곡과 호수도 무척 아름답다. 보봉호 유람선 투어는 무척 재미있는 연출도 하고 있다. 배를 타고 호수에 들어갈 때는 움막에서 아가씨가 나와서 노래를 부르더니 나갈 때는 총각이 나와서 중국의 전통 노래를 멋들어지게 부르는 것이다. 보봉호 유람을 마치고 일행은 가이드의 인솔로 진주가게와 동인당약방을 들렀다. 중국 단체관광에서 쇼핑센터는 필수 코스다. 약간 짜증날 수도 있지만 쇼핑센터를 들르는 것도 단체여행의 재미라고도 할 수 있다.


점심 식사를 한 후 오후에는 천자산과 원가계를 구경하였다. 천자산은 역시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갔다. 2.5km 길이의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면서 신기한 기암절벽과 바위산들이 보였으나 고도가 높아질수록 안개가 짙게 끼어서 주변 경치를 더이상 볼수 없었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어필봉과 선녀바위등을 구경하였다. 다행히 안개가 서서히 걷혀서 천자산의 비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역시 깊은 낭떠러지와 신기한 기암괴석이 입에서 절로 감탄이 나오게 만들었다. 장가계 여행을 '와와' 여행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 이유는 사람들의 입에서 와,와 하는 감탄소리가 끊이질 않기 때문이다. 선녀바위 옆에는 중국 혁명의 영웅인 장가계 출신 하룡장군을 기리기 위한 하룡 공원이 있다. 하룡장군 동상은 마치 천자산의 바위산과 같은 컨셉으로 만들었는데 그 뜻을 영원히 기리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천자산을 구경한 후 셔틀버스를 타고 원가계를 구경하였다. 천자산과 원가계에는 천문산과는 색다른 느낌의 바위산과 절경들을 볼 수 있다. 이곳에는 길게 일자로 우뚝 솟은 바위산들이 계속해서 펼쳐져 있는 곳이다. 이곳은 바로 영화 아바타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바위산과 바위산 사이를 연결해주는 천하제일교에는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기 위해 자물쇠가 잔뜩 채워져 있었다. 도보로 원가계의 절경을 구경한 후 백룡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면서 또 한번 원가계의 비경을 감상하였다. 가이드의 추천으로 버스를 타지 않고 약 한 정거장 정도를 걸어내려가면서 주변 경치를 바라보니 원가계의 바위산들이 위에서 내려다 볼 때와는 또다른 느낌이 들었다. 저녁식사후에는 호텔에서 발마사지를 받았다. 마사지도 중국 단체여행의 필수코스다. 마사지사들은 모두 장가계의 토가족이었다. 하루종일 걷고 마사지까지 받았더니 이내 피로가 엄습해와서 방에 들어가자마자 잠이 들어버렸다.


셋째날, 아침 식사후에 원가계의 또다른 절경인 십리화랑을 구경하였다. 모노레일을 타고 가면서 십리화랑의 신기한 바위산들을 감상하였다. 특이하게도 각각의 바위산에는 이름이 붙여져 있다. 그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약초캐는 할아버지. 바위의 모양이 등에 망태기를 맨 할아버지를 연상시킨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모노레일의 종점에는 세자매 바위가 있다. 세개의 우뚝한 바위가 이어져 있는데 자세히 보면 세명이 아니라 여섯명이다. 세 자매가 각각 아이를 등에 없고 가슴에 안고 있고 마지막 자매는 임신을 한 모습이다. 저런 바위산에 각각 이름을 붙인 중국인들의 상상력과 센스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십리화랑을 구경한 후 라텍스 가게를 들렸다. 나는 라텍스 베개와 이불을 구입했다. 라텍스는 중국 하이난다오에서 나는 천연고무를 재료로 가공한 것으로 항균력이 매우 뛰어나고 오래 쓸 수 있다고 한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거위털 이불가게에 들렀다. 아주머니들이 이불을 구입하는데 여자들은 깍고 또 깍고 쇼핑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이후에 일행은 대협곡으로 갔다. 대협곡은 깊은 바위 절벽이 펼쳐진 곳이다. 이곳을 계단을 따라 내려오다가 아래쪽에는 미끄럼을 타고 내려올 수 있도록 썰매길이 만들어져 있었다. 썰매를 타고 내려 오는 것도 기분이 좋았다. 썰매를 탄 후에는 다시 긴 트레킹 코스가 펼쳐져 있는데 에머랄드빛 시내물과 어우러진 산세가 압권이었다. 대협곡의 마지막 코스는 목선 유람선을 타고 이동하였다. 일단의 싱가포르 관광객들을 볼 수 있었다.


대협곡 투어를 마치고 일행은 마지막 쇼핑센터인 찻집으로 향했다. 찻집에서 나는 보이차 한세트를 구입했다. 보이차는 운남에서 나는 발효차로 성인병과 지방제거에 아주 좋다고 한다. 저녁 식사후에 일행은 장가계의 인사동으로 불리는 서부거리의 야경을 구경하였다. 그곳의 광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흥겹게 에어로빅을 추고 있었다. 중국여행을 하다보면 이렇게 단체로 태극권이나 에어로빅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서부거리를 구경한 후 호텔로 돌아와 휴식을 취했다.

넷째날, 장가계 여행 마지막 날이다. 오전에는 황룡동굴을 구경하였다. 황룡동굴은 엄청난 스케일의 동굴로 그 안에는 수많은 종유석과 석순을 볼 수 있다. 동굴 내부에는 또한 넗은 호수가 있어서 보트를 타고 가며 동굴 주변을 감상하였다. 장가계와 원가계가 지상세계의 웅장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라면 황룡동굴은 지하세계의 웅장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황룡동굴 주변에 펼쳐진 노랗게 물든 유채꽃 풍경도 놓칠 수 없는 풍경이었다. 황룡동굴을 끝으로 장가계 여행이 모두 끝났다. 장가계는 죽기 전에 한 번은 꼭 봐야할 천하제일의 절경이다. 동굴 여행을 마치고 일행은 점심 식사를 한 후에 농산물 센터에 들렀다. 농산물 센터에는 연변 참께를 파는데 중국에서 파는 참께는 값이 저렴하고 방부제 처리가 되어 있지 않아서 나이드신 분들이 많이 찾는다.

장가계에서 장사까지 약 5시간동안 버스로 이동하였다. 장사에서 들른 곳은 열사공원과 장사 임시정부청사 두 군데였다. 열사 공원은 중국 혁명을 위해 희생한 사람들을 기리기 위해서 만들어진 공원으로 장사의 명소로 알려져 있다. 또한 장사에는 상해와 마찬가지로 임시정부 청사가 아직 남아 있다. 현재 이곳은 김구선생의 동상이 모셔져 있고 장사에서 한국 독립운동 활동의 역사를 배울 수 있는 기념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장사 임시정부청사 구경을 마치고 부페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한 후에 마사지 센터에서 전신마사지를 받았다.

장사는 인구 약 700만의 중국 남중부의 중심 도시다. 이곳은 장가계와는 달리 제조업도 발달된 곳이다. 이곳의 대표적인 기업은 삼일중공업으로 이 회사의 회장은 중국 최대 갑부로 불린다고 한다.  현재 장사는 중앙정부에서 중부권 대개발의 중심도시로 키우기 위해 몇년후에는 인접도시들과 통합하여 중국 최대의 직할시가 된다고 한다. 장사의 중심가는 북경이나 상해와 마찬가지로 높은 빌딩들로 발전된 모습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빌딩들이 세워지고 있다. 장사와 장가계가 있는 호남성은 중국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수많은 인물들을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마오쩌둥 주석,류샤오치,주룽지 총리등이 호남성 출신이라고 한다. 중국인들에게는 장가계보다는 마오쩌둥 주석의 고향인 소산이 더 인기있는 여행지라고 한다.

우리 일행은 장사공항에서 가이드와 악수를 나눈 후 헤어졌다. 수많은 옵션과 쇼핑센터에서 많은 물품을 구매해준 덕에 가이드도 몹시 흡족한 모습이었다. 2020년이 되면 중국의 경제규모가 미국을 추월한다고 한다. 중국의 부상은 이제 미래의 일이 아닌 현실이 되고 있다. 미국의 쇠락과 중국의 부상이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라고 한다면 우리의 눈이 서쪽을 향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과거에는 미국과 일본으로 유학가는 학생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중국으로 더 많이 유학을 간다. 그 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역량 규모면에서 중국은 미국과 일본을 합친 것보다 더 크다. 아직도 중국을 짝퉁의 나라 가짜가 판치는 나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러한 생각들을 제고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사용하는 가전제품과 의류등 우리의 실생활과 밀접한 제품들은 거의 대부분 중국에서 만들어진 것들이기 때문이다. 중국을 경계하고 멀리하기 보다는 부상하는 중국과 협력을 강화하여 공동 번영의 길을 찾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2013년 1월 31일 목요일

상하이(上海) 항저우(杭洲) 여행

1월 24일부터 27일까지 나흘동안 상하이-항저우를 여행하였다. 베이징이 중국의 정치와 문화의 수도라면 상하이는 경제와 금융의 수도라고 할 수 있다. 상하이 푸둥 공항에 내리자 조선족 가이드가 맞이해 주었다. 가이드는 연변 출신으로 우리말이 다소 서툴렀다. 함께한 일행은 모두 삼십명 정도로 여행기간동안 대형 버스로 이동하였다. 저녁식사후에 상하이 서커스단의 서커스를 관람하였다. 베이징 서커스단의 공연에 비해 다소 미흡한 느낌도 들었지만 그래도 원형 케이지 안에서 5대의 오토바이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돌아가는 모습은 압권이었다. 이튿날은 버스로 3시간 가량 이동하여 항저우로 갔다.

항저우는 옛부터 지상의 낙원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아마도 이곳이 송나라때 중국에서 가장 큰 도시였고 물자가 풍부해서 지어진 별명인 것 같다. 또한 항저우는 미인들이 많은 도시라고 한다. 예전의 미인들은 건강하고 피부가 좋고 아이를 잘 낳는 여자를 말하였다. 요즘의 기준처럼 얼짱에 빼빼마른 여자들이 아니라 토실토실하고 건강한 여자들이 미인들이었다. 항저우는 예로부터 농산물이 풍부하고 물이 좋으니 당연히 여성들의 영양상태가 좋았을 것이고 그래서 미인들도 많았던 것이다. 어쨌든 항저우는 상하이나 베이징보다 더욱 중국적인 도시다. 항저우에서 오산 성황각을 본 후에 유람선을 타고 서호를 구경하였다. 서호는 송대의 시인 소동파가 배를 타고 시를 읊조렸다는 호수로 베이징 이화원에 있는 쿤밍호의 모델이 된 호수이기도 하다. 서태후가 이 호수를 본 후에 베이징에 똑같은 호수를 만들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서호를 본 후에 마사지 센터로 이동하여 발마사지를 받았다. 저녁식사로 동파육을 먹은 후에 송성가무쇼를 관람하였다. 송성가무쇼는 베이징 여행때 보았던 금면왕조와 마찬가지로 화려하고 현란한 무대 연출과 가무를 볼 수 있는 공연이다. 요즘은 이런 가무쇼가 트렌드로 정착되어서 중국의 유명 여행지에서는 어느곳이나 이런 쇼를 볼 수 있다. 내 생각으로는 서양의 오페라나 뮤지컬보다 훨씬 더 다이내믹하고 재미있는 것 같다.

3일째는 버스를 타고 상하이의 주쟈자오로 이동하였다. 주쟈자오는 동방의 베니스라고 불리는 곳이다. 주쟈자오는 베니스처럼 좁은 수로에 배가 다니고 골목길에는 중국 전통 가옥과 기념품 가게들이 늘어서 있는 관광지다. 주쟈자오를 구경하고 나서 푸둥으로 이동하여 상하이의 상징인 둥팡밍주 타워를 구경하였다. 해발 260m에 있는 둥팡밍주 전망대에 올라가 보니 아시아의 금융 중심지 푸둥의 스카이라인이 한눈에 보였다. 110층짜리 상하이 최고층 빌딩인 월드 파이낸스 센터와 진마오다샤 빌딩이 보이고, 그 옆으로는 새롭게 초고층 빌딩이 올라가고 있었다. 둥팡밍주 전망대에서 재미있는 것은 바닥을 투명유리로 만들어 아래를 바라볼 수 있게 만든 점이다. 아래가 내려다 보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벌벌 떨면서 투명유리위로 올라간다. 하지만 아래를 쳐다보지 않으면 아무 상관 없다.


둥팡밍주에는 또한 상하이 역사 박물관이 있다. 약 150년의 역사를 갔고 있는 상하이의 개항과 근대화의 역사를 볼 수 있는 곳이다. 둥팡밍주 투어를 마치고 상하이 옛거리 위위안을 구경하였다. 마치 영화의 셋트처럼 중국의 옛거리를 복원해 놓은 거리인데 위위안은 서울의 명동처럼 상하이의 대표적인 쇼핑가다. 그곳에서 파는 음식들의 물가를 비교해보니 대략 서울의 2/3나 3/4 정도의 물가 수준인 것 같았다. 그만큼 상하이는 물가가 비싼 곳이다. 가이드로부터 들은 바로는 상하이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가 평당 2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그 정도면 서울 강남 아파트보다 비싸다고 할 수 있다. 그 만큼 상하이로 돈이 몰린다는 얘기다. 위위안을 구경하고 나서 유람선을 타고 황푸강을 따라 상하이의 야경을 구경하였다. 상하이는 야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둥팡밍주가 있는 푸둥은 물론 반대편 와이탄의 야경도 무척 아름답다.


마지막날은 대한민국 임시청사를 들렸다. 이곳은 역사적인 명소이므로 상하이에 오면 반드시 들러야 하는 곳이다. 임시정부청사 바로 옆으로는 카페거리인 신톈디가 있다. 신톈디 옆 공원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나이든 사람들이 태극권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음악에 맞춰 느리게 동작을 하는데 꽤 운동이 될 것 같았다. 신톈디를 구경한 후 마지막으로 서울의 인사동 거리와 비슷한 타이캉루를 구경하는 것으로 상하이 여행을 마무리 하였다.



베이징에 비해 상하이는 좀 더 자본주의적인 도시다. 고층아파트도 베이징에 비해 많을 뿐만 아니라 도시 전체적인 분위기가 개방적이다. 오늘날 상하이는 중국에서 가장 부유한 곳이다.

상하이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뭐니뭐니해도 푸둥이다. 20년전만 해도 허허벌판이던 곳에 초고층 빌딩이 들어서고 아시아의 금융중심지가 되었다. 정말 기적같은 일이고 상전벽해라는 말이 꼭 들어맞는 곳이다. 둥팡밍주와 그 주변의 빌딩들을 보면 상하이의 무한한 잠재력과 저력을 느낄 수 있다. 푸둥뿐만 아니라 다른 지구에도 현재 고층빌딩들이 계속해서 들어서고 있다. 상하이가 세계의 자본을 빨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푸둥을 보면서 야심차게 국제비즈니스 도시로 만들고자 했던 인천의 송도와 청라지구가 떠오른다. 그런데 그것은 애당초 무모한 계획이었다. 상하이가 금융허브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주변에 엄청난 제조업 기반이 있었기 때문이다.



상하이의 질주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다. 적어도 아시아에서는 경쟁 상대가 없어 보인다. 지금도 곳곳에 고층아파트들이 건설중이고 고가도로등 기반시설들도 잘 조성되어 있다. 그러나 상하이의 단점은 유럽의 도시들에 비해 녹지나 공원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앞으로 이 점은 보완해야 할 것이다. 푸둥 공항에서 3박4일동안 인솔해준 가이드와 악수를 나누었다. 댜오위다오(조어도)문제 때문에 요즘 중국에서 반일감정은 매우 심하다. 여행중에 일본인 관광객들을 거의 볼 수 없었다. 요즘 중국에서는 일본말을 썼다가는 맞아죽는 분위기다. 하지만 아직까지 한국에 대해서는 중국내에서 상당히 우호적인 분위기다. 덕분에 가이드처럼 중국에 살고 있는 연변 조선족들의 위상도 올라갔으면 하는 바램이다.

2012년 12월 3일 월요일

한국은 삼성,현대,LG 공화국인가

외국에 나가보면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상당히 긍정적이다. 삼성,현대,LG등 수출기업들이 글로벌 경쟁에서 연일 승승장구하고 있고 한류의 영향으로 유럽과 미국에서는 한국하면 역동적이고 모범적인 자본주의 국가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유럽의 호스텔에서 만난 한 이슬람계 프랑스 청년은 한국이라는 나라는 잘 몰라도 삼성,현대,LG라는 말을 하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최고라고 말했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나도 한국 기업들이 해외에서 인정받는데 대해 기분이 좋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삼성,현대,LG가 해외에서 잘나간다고 해서 한국이 모범적인 자본주의 국가라고 말 할 수 있을까. 원래 남의 떡이 커 보인다고 유럽과 미국은 지금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고 있어서 상대적으로 한국이 잘나가는 나라라고 착각할 수 있다. 그러나, 삼성,현대,LG의 성공 이면에는 양극화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또한 삼성,현대,LG가 한국 경제력의 50퍼센트를 장악하고 있는 경제력 편중 현상도 결코 좋은 것이 아니다. 한국 수출 대기업들의 성공 배경에는 종업원들의 과도한 업무스트레스와 하청기업 및 비정규직들에 대한 착취가 있음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생계형 자영업자들의 몰락, 세계 최장근로시간,청년실업 증가,자살률 1위, 출산율 꼴찌,가계부채 급증, 고령화등 한국사회의 문제가 심각한데도 수출재벌만 잘 되면 정말 한국경제가 살아날 수 있을까. 수출재벌들이 거둔 엄청난 이익은 대부분 주식 지분의 50~60퍼센트를 장악하고 있는 외국인 투자자들과 대주주에게 돌아간다. 때문에 삼성,현대,LG가 해외에서 승승장구할 때 대다수 한국인들은 낙수 효과는 커녕 삶이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조중동등 보수언론에서 삼성,현대,LG의 해외시장에서의 선전만이 부각되는 모습이 마치 화장빨로 자신의 추함을 감추려는 추녀의 모습과 비슷하다. 하지만 특정재벌에 편중된 경제구조가 얼마나 오래 지속할 수 있을까. 삼성,현대,LG가 지금은 분전하고 있지만 중국등 신흥국의 추격으로 경쟁력을 상실한다면 한국경제는 어떻게 되겠는가. 경제력이 특정 재벌에 편중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2012년 11월 20일 화요일

베이징(北京) 여행


11월 16일부터 19일까지 3박 4일 일정으로 베이징 여행을 하였다. 이번 여행은 여행사의  패키지 상품을 이용하였다. 패키지는 자유 여행에 비해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없고 쇼핑 센터를 들리는 등 여러 단점이 있지만 저렴한 비용으로 편리하게 여행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베이징 셔우투 공항에 내리자 가이드가 맞이해 주었다. 가이드는 30대 초반의 조선족 남자로 중국어가 매우 유창했다. 우리 일행은 나를 포함해서 모두 14명이었다. 가이드는 버스 안에서 마이크로 중국에 대해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해 주었다. 중국에서 1년 정도 생활한 사람들은 중국을 완전히 이해했다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중국에서 10년 정도 생활한 사람들조차 중국은 이해하기 어려운 나라라고 말을 한다. 그 정도로 중국은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면이 존재하는 나라다.

베이징 이화원 인공호수 앞에서
가이드의 이야기 중 가슴에 와 닿는 것은 중국에 대한 한국인들의 오해에 관한 부분이었다. 우리는 중국에 대한 이미지가 별로 좋지 않다. 장기매매라든지 중국산은 품질이 떨어진다든지 하는 중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대부분 언론에 의해 과대 포장된 것이다. 긍정적인 것은 말하지 않고 부정적인 것만 크게 과장하는 언론의 속성 때문에 우리는 중국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붓에 물을 묻혀 바닥에 글씨를 쓰는 노인
베이징은 부동산 거품이 매우 심하다고 한다. 가이드의 말을 직접 옮겨 적는다면 믿기지는 않지만 평당 1억원 그러니까 20평짜리 아파트가 20억에 달하는 것도 있다는 것이다. 일인당 국민소득이 잘해야 한국의 2분의 1 수준인 베이징의 아파트가격이 강남 아파트보다 더 비싸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았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베이징 거리는 고층 건물들의 천국이었다. 베이징의 인구는 2천3백만이고 지금 경제가 한창 좋을 때이다. 소득 수준이 점점 올라가면서  쾌적한 주거에 대한 욕구가 증가하여 아파트 가격 거품이 일고 있는 것 같다. 마치 우리나라의 20년전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차도에는 자동차들이 많았다. 부동산과 마찬가지로 자동차도 한국보다 더 비싸다고 한다. 베이징은 멕시코시티 다음으로 교통정체가 심한 도시라고 한다. 도로는 넓고 잘 형성되어 있으나 늘어나는 자동차를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 이다. 그래서 중국 정부도 최근에는 일정 조건을 만족하는 사람들에게만 자동차를 구입할 수 있는 허가를 내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부동산과 자동차를 제외한 생활 물가는 한국보다 매우 저렴한 편이다.
만리장성을 오르는 사람들

첫날은 798 예술의 거리, 수족관, 베이징 수도박물관을 구경하고 서커스를 관람하였다. 서커스단의 공연은 볼만 했다. 저녁에는 베이징의 쇼핑가인 왕부정 거리를 구경하였다. 둘째날은 이화원과 만리장성을 구경하였다. 이화원의 인공호수는 듣던대로 엄청나게 넓었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간 만리장성은 그야말로 명불허전의 장관이었다. 만리장성을 구경하고 나서 전신 마사지를 받았다. 셋째날은 천안문 광장과 자금성을 구경하였다. 그리고 인력거를 타고 베이징의 전통 주택가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서울의 인사동과 비슷한 십찰해 거리를 구경하였다. 마지막으로 금면왕조를 관람하였다. 금면왕조는 베이징 올림픽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뮤지컬로 장대하고 화려한 무대 퍼포먼스가 일품이었다. 하지만 라텍스가게,진주가게,찻집,한의원등에 들려 꽤 많은 시간을 낭비한 것은 패키지의 단점이라고 할 수 있다.
만리장성에서

가이드는 중국에서 태어났지만 러시아에서 공부를 했고 유창한 중국어를 구사하며 중국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나는 중국이 최근에 고성장을 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가이드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중국은 한국사람 2명이 할 일을 열명,스무명이 달라붙어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값싼 노동력을 투입해서 쉽게 생산성을 증가시킬 수 있기  때문에 중국경제가 최근까지 고성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부러운 것은 중국의 복지 제도였다. 중국은 60세까지 정년이 보장될 뿐만 아니라 퇴직이후에도 평생 월급의 70퍼센트 수준인 연금을 받는다고 한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 정리 해고를 일삼고 노후 복지가 최악인 한국과는 대비되는 부분이다. 복지제도가 잘 되어 있다보니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한다. 누가 국가 주석이 되든 자신들의 삶에 큰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다민족 국가인 중국에서 서양식 자유민주주의를 실시한다면 중국은 큰 혼란에 빠질 것이라고 한다.

천안문 광장에서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중국은 가사일을 대부분 남자가 한다는 것이다. 육아와 요리,빨래,청소등 기본적인 가사일을 모두 남편이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여자들이 결코 호강한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중국의 여성들은 대부분 직장에서 일을 한다. 우리나라 여성들보다 사회참여율이 높다. 그리고 우리나라처럼 남자들이 직장에서 밤늦게 야근하며 혹사당하지도 않는다.  대부분 부부가 함께 직장생활을 하고 일찍 퇴근하기 때문에 출산을 하는 여자를 대신해 가사일을 남편이 하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중국남자들은 한국남자들처럼 병역의 의무도 없다.
자금성 태화전 앞에서

베이징 십찰해 거리
중국에는 흑호구라는 것이 있다. 가이드로부터 처음 들은 말이다. 중국은 인구가 워낙 많아서 산아제한 정책을 쓰고 있다. 한 가정당 아이는 한 명만 낳을 수 있다. 그 이상 낳을 경우 꽤 높은 세금을 내야 한다. 그런데 중국은 남아 선호 사상이 남아 있어서 아들을 낳을 때까지 자식을 낳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그런데 호구에는 자식들 중 가장 똑똑한 아이를 올리고 다른 자식들은 호구에서 제외한다. 이렇게 호구에서 제외된 사람들을 흑호구라고 부른다. 흑호구는 교육이나 사회활동에서 많은 제약이 따르기 때문에 정상적인 사회활동을 하기 어렵다. 그래서 중국 정부는 흑호구들이 평생 먹고 살 수 있도록 이들에게 서커스나 마사지등의 기술을 가르치고 있다. 이번 여행에서 현란한 묘기를 보여준 서커스단원들과 마사지샵에서 마사지를 해준 사람들은 흑호구들이다.


공원에서 사교댄스를 추는 베이징 시민들
가이드는 조선족에 대해서 언급했다. 조선족이라는 말은 상당히 어감이 좋지 않다. 중국인도, 이북사람도 한국사람도 아닌 정체성이 모호한 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족은 백년전만 해도 같은 땅에서 살던 같은 한민족이다. 일제 강점기때 독립운동이나 경제사정등의 이유로 만주로 이동한 사람들이 현재 중국의 조선족이다. 가이드는 조선족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져줄 것을 당부했다. 그리고 조선족 친척이 있는 경우에는 꼭 초청장을 보내주라는 당부까지 하였다. 한국에는 많은 조선족들이 들어와 있다. 한국남자와 결혼한 조선족 여인이 많아서 현재 조선족 남자들은 결혼을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조선족 여인과 한국남자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한국 국적을 부여하기 때문에 조선족 여인들이 결혼을 통한 이주를 최근에 많이 하고 있다.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을 이끌고 다니는 가이드들은 모두 조선족들이다.
호텔룸에서 바라본 베이징 아파트 단지의 모습
3박4일 동안 베이징을 둘러보았다. 장대한 스케일의 고궁과 우후죽순처럼 솟은 빌딩들이 베이징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북경의 오리고기는 역시 맛이 일품이었고, 왕부정 거리에서 맛본 전갈 꼬치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될 것 같다. 한국에서는 백만원을 줘도 보기 힘든 ‘금면왕조’ 공연과 아슬아슬한 베이징 서커스단의 공연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여행을 함께 했던  분들과 마지막 밤 맥주를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던 것도 좋은 추억이 될 것 같다. 역동적으로 발전하는 중국의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조만간 베이징을 다시 한번 찾게 될 것 같다. 그 때는 중국어를 좀 더 익혀서 자유 여행에 도전해 볼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