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12일 월요일

구채구(九寨沟) 황룡(黄龙)여행

8월 6일부터 10일까지 4박 5일 일정으로 성도-구채구-황룡을 여행하였다. 장가계,황산에 이어 세번째로 선택한 중국의 절경인 구채구는 해발 3000m의 고지대에 위치한 관광지로 호수의 경치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다. 이번에 함께한 일행은 나를 포함하여 모두 7명이다. 나를 제외한 동행객들은 모두 60세 전후의 같은 동네에 살며 나름 여유있게 사는 부부들로 보였다. 밤비행기로 성도(成都)에 도착하자 조선족 가이드가 피켓을 들고 나와 있었다. 조선족 가이드는 작은 체구에 쾌활하고 매우 붙임성이 좋아보이는 청년이었다. 호텔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1시가 넘었다. 새벽 5시에 황룡으로 출발하기로 되어 있어서 잠도 제대로 못자고 CCTV 드라마를 보며 시간을 때웠다. 새벽에는 천둥번개와 함께 폭우가 심하게 내렸다.

새벽 5시에 일행은 작은 버스를 타고 황룡으로 향했다. 성도에서 황룡까지는 약 6시간 30분을 달려야 한다. 황룡으로 가는 도중 2008년 대지진이 발생한 원촨 인근 지역을 지나갔다. 이곳은 최근에 폭우가 쏟아져 곳곳에 도로와 다리가 붕괴되어 있었고 지진으로 기반이 약한 상태라 산사태가 자주 발생하고 있었다. 황룡과 구채구는 해발 3000m 이상의 고지대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고산약과 산소통이 필요했다. 일행은 점심식사를 한 후 가이드가 구입해준 고산약을 먹고 모기약처럼 생긴 산소캔을 하나씩 챙겼다. 황룡으로 가기 위해서는 해발 4700m의 고개를 넘어가야 하는데 차를 타고 가서 그런지 고산반응은 그렇게 심하게 나타나지 않았다.

황룡에 도착하여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간후 도보로 하산하면서 주변 경치를 감상하였다. 새벽부터 내리는 비는 그치지 않고 계속 내리고 있었다. 일행은 모두 우의를 입고 산행을 하였다. 황룡에서 가장 높은 오채지의 해발 고도는 약 3600m이다. 이 정도 고지대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산증세를 보인다. 처음에는 다소 견딜만 하였으나 계속 걷다보니 뒷골이 울렁거리며 아프기 시작하면서 어지럼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고지대는 산소가 희박하여 외부 공기압이 낮기 때문이기 때문에 혈관이 팽창하여 혈액순환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특히 뇌에 혈액이 제대로 공급되지 못하기 때문에 자꾸만 하품이 나오고 머리가 어지럽다. 산소캔에 든 산소를 들이마셨으나 처음에는 효과가 있더니 나중에는 그마저도 효과가 없었다. 굵은비가 계속해서 내리는데다 고산증세로 인해 황룡 투어는 그야말로 고행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최대한 천천히 걸으면서 자주자주 쉬는 수 밖에 없었다.

황룡은 울창한 삼림과 에머랄드빛 호수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곳이었다. 비록 비가 오고 있었지만 물빛은 신비한 에머랄드빛을 띄고 있었다. 황룡의 오채지에서 케이블카 입구까지는 약 2시간을 걸어 내려가야 한다. 고지대에서 2시간 산행은  매우 힘들다. 더구나 비까지 맞아가며 하는 고산 산행은 아무리 하산길이라도 매우 힘들다.

버스에 올라탔을 때는 이미 바지와 신발이 비에 흠뻑 젖어 있었다. 그리고 몸이 으실으실 추워지면서 몸살기운마저 생기기 시작했다. 황룡에서 구채구까지는 버스로 약 2시간 30분을 가야 한다. 구채구의 호텔에 도착하자 몸살기운이 너무 심해서 저녁은 몇숟가락 뜨지도 못하고 준비해간 진통제를 먹고 잠을 청했다. 구채구의 호텔은 해발 1800m의 고지대에 위치해 있어서 일교차가 심하고 밤에는 몹시 추웠다. 더구나 전력 공급이 부족한 지역이라 룸에는 히터가 없고 침대에 전기장판이 깔려 있을 뿐이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자 머리는 여전히 아프고 식욕조차 없어서 아침도 제대로 먹을 수가 없었다. 다행히 구채구 입구에 도착하자 두통과 몸살증세는 좀 가라앉았다. 구채구는 케이블카가 없고 모든 곳을 버스로 이동한다. 어제와는 달리 구름한점 없는 맑은 날씨였다. 구채구(九寨溝)라는 이름은 아홉개의 장족(藏族) 마을이 있는 골짜기라는 뜻에서 지어진 이름이다. 장족은 티베트인들을 말한다. 지금도 구채구에는 약 천여명의 장족들이 아홉개의 마을에 흩어져 살고 있다. 그 중 세개 마을은 관광객에게 개방되어 있고 나머지 여섯개는 순차적으로 개방할 예정이라고 한다.



구채구의 계곡은 Y자 모양의 세갈래 계곡의 형태를 띄는데 각각 측사와구,일측구,수정구로 불리운다. 제일 먼저 측사와구에 있는 장해와 오채지를 구경하였다. 장해는 구채구에서 가장 높은 해발 3100m 지점에 위치해 있다. 측사와구의 경치도 볼만하지만 구채구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일측구라고 할 수 있다. 일측구에는 구채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수인 오화해와 진주탄폭포가 있다. 오화해는 맑은 하늘과 에머랄드빛 호수 그리고 전나무숲이 어우러진 신비롭고 아름다운 곳이다. 황산을 보지 않고 산을 논하지 말며, 구채구를 보지 않고 물을 논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그정도로 구채구는 계곡과 호수의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다.


하지만 호수와 폭포의 아름다움만이 구채구가 가진 매력의 전부는 아니다. 고지대의 맑은 공기와 하늘 그리고 무공해의 숲과 계곡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천연의 아름다움이 구채구의 참 매력이 아닐까라고 나는 생각한다. 구채구는 단풍이 드는 가을이 가장 멋지다고 한다. 하지만 생명력 넘치는 여름 풍경도 그에 못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구채구는 한화로 6만원이 넘는 매우 비싼 입장료를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채구는 중국 내국인 관광객들로 넘쳐났다. 중국 경제가 고속성장하면서 중산층이 늘고 그에 따라 소비가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여행객들도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구채구 관광을 마치고 저녁에는 호텔에서 장족 예술단의 가무쇼를 본 후에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구채구 황룡 관광을 마치고 다음날 아침 일찍 구채구 호텔을 출발하여 성도로 향했다. 성도로 가는 도중 일행은 가이드의 안내로 차마고도의 시발점인 강족(姜族) 마을 모투어촌을 둘러보았다. 강족은 중국의 55개 소수민족중 하나로 주로 양을 방목하면서 살았던 민족이었다. 역사적으로 차마고도를 처음으로 개척한 사람은 강족들이라고 한다. 지금은 관광지로 탈바꿈하였지만 이곳 주민들은 아직도 강족 특유의 전통 문화를 간직하며 살고 있었다. 이 마을의 주변은 온통 높은 산으로 둘러쌓여 있어서 매우 척박한 곳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매우 순박하고 자신들의 문화에 대해 높은 자긍심을 갖고 있었다.


일행은 저녁 늦게 성도에 도착하였다. 저녁 식사를 한 후에 관착항자 거리를 구경하였다. 관착항자 거리는 서울의 인사동과 비슷한 문화의 거리다. 일행은 카페에 들러 맥주와 차를 마셨다. 그런데 음료수와 차값이 서울과 별반 다르지 않을 정도로 비쌌다. 중국의 일인당 GDP가 한국의 1/4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매우 비싼 편이다. 그런데도 카페에는 관광객들로 만원이었다. 요즘 중국인들이 돈이 많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여행 마지막날은 무후사와 금리거리를 둘러보았다. 성도는 쓰촨성의 성도로 인구가 천만이 넘는 대도시다. 중국의 다른 대도시와 마찬가지로 아파트와 고층 빌딩이 즐비하고 곳곳에 건설용 크레인을 볼 수 있다. 중국의 고도성장과 그에 따른 도시화가 앞으로 적어도 10년 이상 지속된다고 볼 때 이러한 광경은 계속해서 보게 될 것이다. 무후사는 삼국지의 제갈공명을 기리기 위해서 지은 사당으로 안에는 유비의 묘가 있다. 무후사는 성도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다. 무후사 바로 옆에는 삼국시대 당시의 거리를 재현해 놓은 금리거리가 있다. 금리거리는 베이징의 왕부정 거리처럼 간식을 파는 가게와 기념품가게 그리고 찻집등이 즐비한 관광의 거리다.

이로써 4박 5일 성도-구채구 여행을 마치게 되었다. 고지대를 여행하면서 많이 힘들었지만 아름다운 산수와 신비하고 이색적인 경치를 마음껏 감상할 수 있어서 오랜 기억에 남을 만한 여행이었다. 여행의 참맛은 아름다운 자연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순박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이번 여행은 그 두가지를 어느정도 충족시켜 주었다.

2013년 7월 27일 토요일

정전 60주년, 6.25 전쟁의 의미

올해는 6.25 정전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6.25전쟁은 미국이 개입한 전쟁중 승리하지 못한 최초의 전쟁으로 기록된다. 또한 6.25 전쟁은 근대 이후 아시아 국가가 서양 제국주의 국가와의 전쟁에서 사실상 승리한 최초의 전쟁이다. 6.25전쟁 이후 1954년 베트남은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프랑스에게 승리한후 완전한 독립을 쟁취하였다. 6.25전쟁에 참전했던 중국은 19세기에서 20세기에 걸친 제국주의 시대에 서양과 일본 제국주의 세력들의 침략으로 100년동안 굴욕의 세월을 보냈었다. 1,2차 세계 대전이 제국주의 세력들간의 패권전쟁이었다면 6.25전쟁은 제국주의 세력과 반제국주의 세력간의 전쟁이었다. 왜냐하면 6.25전쟁은 2차대전 쇠락해진 영국의 뒤를 이은 미국과 아편전쟁 이후 백년동안 반제국주의 투쟁을 해온 중국과의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6.25 전쟁을 단순히 이데올로기적 관점에서만 보는 것은 옳지 않다. 2차 대전 이후 제국주의 세력들은 자유민주주의로 포장만 바꾸었을 뿐 제국주의적 본질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일본 제국주의 세력들이 물러간 이후에 그 뒤를 이어 한반도의 남쪽은 미군이 점령하였다. 지배세력이 일본에서 미국으로 바뀌었을 뿐 식민지적 종속성을 극복하지 못한채 한국은 불완전한 독립을 이루었다. 6.25전쟁 정전 60주년이 지났지만 한국이 미국에 대한 식민지적 종속관계를 청산하지 못한다면 한반도의 통일은 요원한 일이 될 것이다.

2013년 6월 7일 금요일

중국 위협론과 동아시아의 신국제질서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는 구한말과 비슷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1895~1905 사이 10년 동안 한반도 정세는 극심한 변화를 겪었다. 그 기간 동안 조선의 동맹국은 중국-러시아-일본으로 바뀌었고 결국 한반도는 일본 제국주의 세력에 의해 강점되고 말았다. 1876년 개항 이후 한반도는 자주권을 상실한 채 외세의 패권 대결의 장으로 전락하였다. 중국은 높은 경제성장을 배경으로 군사력을 계속해서 증강하고 있으며 주변국들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려 하고 있다. 중국은 1840년 아편 전쟁 이후 150년동안의 굴욕의 역사를 갖고 있다. 이제 중국은 과거의 굴욕을 씻고 중화민족의 완전한 부활을 목표로 하고 있다. 때문에 탈냉전 이후 초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해온 미국과의 패권 경쟁이 불가피해 졌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 포위 전략'을 들고 나왔다. 미국은 군사력의 60%를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 배치하겠다고 하면서 노골적으로 중국을 견제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재정위기에 직면한 미국 경제가 부활하지 않는다면 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은 예전같지 않을 것이다. 60년동안 한미동맹관계 속에서 번영을 누려온 한국으로서는 중국의 부상이 매우 두렵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 한국의 보수세력들과 일본의 우익세력들 사이에는 '중국 위협론'이 매우 넓게 퍼져 있다. 중국의 부상이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훼손할 것이며 이로 인해 자신들의 이익이 위협받을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중국의 부상과 이를 저지하려는 미국간의 패권다툼은 앞으로도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다.

2013년 5월 31일 금요일

황산(黃山) 여행

장가계(張家界)를 다녀온 후 2달만에 다시 황산(黃山)을 찾았다. 한국 관광객들에게는 장가계가 더 많이 알려져 있지만 중국인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산은 바로 황산이다. 예전에는 황산에 가려면 상하이나 항저우를 거쳐서 갔지만 현재는 황산의 툰시 공항까지 전세기가 들어가기 때문에 황산만 구경하고자 한다면 굳이 항저우나 상하이를 경유할 필요가 없다. 4박 5일 일정으로 황산과 휘주를 둘러보는 패키지 여행단에 참가하였다. 가격이 저렴한 여행상품인 반면 쇼핑센터를 많이 들르기 때문에 매우 피곤한 것도 사실이다. 모두 13명이 참가한 이번 여행에서 함께한 분들은 대부분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이었다.

툰시 국제공항에 내리자 조선족 가이드가 맞이하였다. 가이드는 일행을 휘주 역사박물관으로 안내했다. 황산이 있는 지역의 옛 명칭은 휘주(徽洲)다. 황산을 관광지로 개발하면서 지역의 명칭을 황산시(黃山市)로 개칭하였다. 휘주는 산이 많은 곳으로 농사지을 땅이 부족한 곳이다. 때문에 예로부터 이 지역의 남자들은 공부를 잘 해서 관직으로 나아가든지 아니면 외지로 장사를 하러 가야만 했다. 그래서 휘주는 유명한 정치인이나 대상인(大商人)들을 많이 배출했다. 장쩌민주석이나 후진타오주석도 모두 휘주 출신이고 현재 중국 국무원 총리인 리커창(李克强)도 안휘성 출신이다. 상인으로는 청나라 말기의 거상인 호설암이 바로 휘주 출신이다. 한편 휘주로 시집온 여자들은 남편이 돈을 벌기 위해 외지로 나가면 홀로 독수공방해야만 했다. 때문에 휘주 여자들에게는 평생 절개를 지키는 것이 매우 중요한 덕목이었다. 반면 남편은 아내에 대한 의리를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었다. 휘주는 예부터 붓과 벼루등 문방사우로 유명한 고장이다. 공부를 잘 해야만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에 진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휘주의 집들은 대부분 까만색 지붕에 벽은 하얀색이다. 그것은 종이와 먹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만큼 물산이 풍부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 곳 사람들은 예로부터 공부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휘주 박물관을 구경하고 나서 '청대 옛거리' 라오지에(老街)로 향했다. 라오지에는 청나라때부터 존재했던 전통 시장거리인데 정부에서 이곳의 관광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최근에 재정비를 하였다고 한다. 라오지에는 베이징의 스차하이(十刹海)거리처럼 옛스런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거리다. 전통 공예품과 각종 기념품 가게들이 늘어서 있어서 휘주를 찾는 단체 관광객들은 반드시 들리는 코스다. 라오지에를 구경한 후 호텔에서 저녁 식사를 하였다. 우리가 묵은 호텔은 황산 시내에서 약간 떨어진 개발 특구에 위치하였다. 황산도 중국의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개발 붐이 일고 있다. 곳곳에 크레인이 올라가 있고 한창 건설중인 아파트와 빌딩들이 많았다. 이 곳도 3년만 지나면 크게 변해 있을 것 같다.

이튿날 아침 일찍 식사한 후 일행은 황산으로 향했다. 호텔에서 황산까지는 버스로 약 1시간 20분 정도 걸린다. 황산은 해발 1864m의 산으로 중국의 10대 명승지로 꼽힌다. 1990년에는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황산은 또한 장가계와 함께 아바타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황산은 70년대 말 덩샤오핑이 이곳을 오른 후에 개발 지침을 내려 관광지로 대대적으로 개발되었다고 한다. 황산은 현재도 등산로와 모노레일 공사가 진행중이다. 일행은 운곡(雲谷)케이블카를 타고 광명정(光明頂)까지 올라갔다. 짙은 안개가 끼여 있어서 케이블카에서 주변 경치를 감상할 수는 없었다. 케이블카에서 내려서 광명정까지 약 200m를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광명정은 황산의 3만 7천 봉우리중 두번째로 높은 봉우리로 해발고도가 1860m다. 광명정에서도 안개 때문에 주변 경치를 감상할 수는 없어서 실망감이 찾아 들었다. 사실 황산은 일년중 개인 날이 약 70여일 정도 밖에 안 될 정도로 항상 비가 오거나 안개가 끼여 있는 산이다. 맑은 날 황산을 오른다는 것은 굉장히 운이 좋은 셈이다. 황산은 수줍음이 많은 산처럼 느껴졌다. 자신의 깊은 곳을 함부로 드러내기 싫어한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신비감이 크게 느껴지는 산이다. 황산의 웅장함을 감상하는 것은 고사하고 계단길을 오르내리느라 피곤함이 느껴졌다.


내려올 때는 케이블카를 타지 않고 도보로 6.5km를 걸어서 내려 왔다. 황산의 등산로는 모두 돌계단으로 만들어져 있다. 하지만 계단의 폭이 좁아 발을 디디기가 무척 힘들었다. 계단길을 내려가면서 막대기 양쪽에 무거운 짐을 어깨에 짊어지고 힘겹게 산을 오르는 인부들을 볼 수 있었다. 한 두 사람도 아니고 족히 이백명은 될 것 같은 인부들이 끊임없이 짐을 지고 계단길을 오르고 있었다. 모두 황산 중턱에 있는 호텔에 물건을 실어나르기 위한 것이었다. 야채와 고기등 먹을거리에서 가스통까지 짊어지고 올라가는 모습을 보면서 다소 측은한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저들에게는 그것이 소중한 일자리인 셈이다. 중국은 사람이 많은 나라다. 때문에 인건비가 매우 싸다. 오늘날 중국이 제조업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노동력이 풍부해서 인건비가 싸기 때문이었다. 물론 기구를 이용하여 물건을 올릴 수 도 있으나 그렇게 된다면 일자리가 줄어들게 된다. 때문에 정부에서는 저들의 일자리를 위해서 산에 운송장비를 설치하지 않고 인력으로 짐을 나르게 한다고 한다. 무거운 짐을 지고 산을 오르는 인부들도 어찌 보면 황산의 중요한 경치중의 하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하산길에 안개가 많이 걷혀서 여러 산봉우리들을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황산의 봉우리들은 장가계와는 또 다른 맛이 느껴졌다. 장가계의 봉우리들이 웅장하면서도 기묘하다는 느낌이 들었다면 황산의 봉우리들은 마치 한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오히려 구름과 안개가 낀 모습이 더욱 신비롭게 느껴졌다.


산을 내려와서 식사를 한 후에 시내로 돌아와서 마사지를 받았다. 한국에서 마사지는 상당히 퇴폐적인 이미지가 강하지만 중국에서 마사지 센터는 오픈되어 있는 곳에서 여러명이 함께 마사지를 받는 건전한 공간이다. 중국의 마사지는 매우 유명할 뿐만 아니라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중국에서 마사지는 마땅한 생계 수단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자리라고 할 수 있다.


마사지를 마친 후에 쇼핑센터를 한 곳 들렀다. 쇼핑센터 관광은 중국여행의 필수코스라고 할 수 있다. 주로 찻집,라텍스,진주,한약방등을 들리는데 쇼핑센터 들르는 것이 이제는 그다지 낮설지 않다. 이들 쇼핑센터는 대부분 대부분 조선족들이 운영을 하며 점원들도 대부분 조선족들이다. 어떤 이들은 조선족들이 판매하는 물건이 가짜거나 사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으나 사실 그렇지는 않다. 물론 관광객들을 속이는 경우도 없지는 않겠지만 극히 일부분의 얘기다. 이들도 한족들에게서 물건을 사 와서 한국 관광객들에게 물건을 판매하는 소매상들일 뿐이다. 물건은 대부분 흥정이 가능하지만 지나치게 값을 깍으려는 관광객들을 보면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다. 흥정은 적당한 선에서 끝내는 것이 좋다. 어느 물건이든 품질은 가격에 비례한다. 중국 관광에서 쇼핑센터를 제대로 활용하는 방법은 라텍스든 차든 자신이 꼭 필요한 물건을 적당한 흥정을 통해 구입하는 것이다. 지나친 흥정으로 서로 인상을 쓰는 것은 즐거운 여행 분위기를 해치기 때문에 별로 좋지 않다.


저녁은 한국 식당에서 삼겹살로 먹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연변 조선족이 운영하는 식당이다. 연변 조선족이 운영하는 식당의 한식은 맵고 짠 한식과 기름기가 많은 중식이 섞인 일종의 퓨전음식 같다. 식당 종업원들이나 마사지사들은 대부분 마땅한 생계 수단이 없는 한족들이다. 이들은 서투른 한국말 몇 마디만 배워서 식당이나 마사지샵에서 일을 한다. 한국 관광객들 특히 나이든 사람들 중에는 이들을 함부로 대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서비스가 불만이라며 심하게 불평을 한다든지 욕을 하는 경우도 있고 조롱섞인 농담을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저열한 모습들을 보여준다면 그것은 한국관광객들의 품위만 떨어뜨릴 뿐이다. 최근 중국에서는 혐한류(嫌韓流)의 역풍이 심심치 않게 불고 있다고 한다. 중국의 부상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한국 관광객들의 천박한 행태도 큰 몫을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다음날은 정감촌(呈坎村)과 잠구민택(潛口民宅)을 방문하였다. 정감촌은 18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휘주에서 가장 오래된 고촌이라고 한다. 하지만 현재 남아있는 건물들은 모두 명,청대의 것들이다. 정감촌은 현재도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로 아름다운 연못과 휘주의 옛 건축양식들을 볼 수 있는 곳이다. 특이한 점은 이 곳의 집들은 아래층에는 창문이 없고 2층과 3층에  조그만 창이 나 있다는 것이다. 옛 휘주의 여성들은 절개를 소중히 여겼으며 외관 남자들을 함부로 집에 들이지 않았다. 바깥에서 사람이 문을 두드리면 조그만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고 아는 사람인지 확인한 후에 문을 열어 주었다고 한다. 이곳의 집들은 모두 1층에는 방이 없고 손님을 맞이하는 거실이 있는데 거실에는 탁자를 사이에 두고 의자가 두개 놓여져 있다. 현재 중국의 지도자들이 외국의 사절들을 맞이할 때 탁자를 사이에 두고 의자에 나란히 앉아 좌담을 나누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손님을 맞이하는 중국의 전통적인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특이한 점은 이미 명청대에 2,3층의 목조 가옥을 지었다는 것이다. 한옥과는 달리 온돌난방을 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당시 중국은 건축기술이 상당히 발달했던 것으로 보인다. 잠구민택도 정감촌과 마찬가지로 옛 휘주의 농민들이 거주하던 가옥들이 있는 곳이지만 현재는 사람이 살고 있지 않다.



점심식사를 마친 후에 원래는 온천욕을 하기로 했으나 어르신들의 반대로 그냥 호텔에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황산은 온천이 좋기로도 유명한 곳이다. 아마도 어르신들은 이곳 온천이 우리나라의 사우나같은 곳인줄 알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곳 온천은 노천 개방온천으로 수영복을 입고 들어가는 곳이다. 하릴 없이 호텔에서 어제 식당앞에서 산 망고를 까 먹으며 TV를 보면서 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었다. 어제와는 달리 해가 강하게 내리쬐는 날씨라 돌아다니기도 힘들고 호텔 주변은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라 달리 구경할 만한 곳도 없었다.

시내로 나와 저녁을 먹은 후에 '휘운가무쇼'를 보았다. 중국 여행의 백미는 뭐니뭐니해도 가무쇼가 아닐까 싶다. 중국의 가무쇼는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배경으로 화려한 춤과 음악이 어우러진 중국특색의 뮤지컬이다. 휘운가무쇼는 상하이 기업이 투자한 가무쇼로 유명한 장이모 감독이 연출 지도를 일부 했다고 한다. 역시 예상대로 화려하고 볼 만한 쇼였다. 특히 선녀가 하늘에서 꽃을 뿌리는 장면은 다른 지역의 가무쇼에서는 볼 수 없는 매우 독창적인 연출이라고 생각한다. 휘운가무쇼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휘주의 역사와 문화다. 극중에는 어머니가 아직 어린 아들을 매몰차게 외지로 내보내는 장면이 나온다. 아들이 외지에서 장사를 하여 성공하여 집에 돌아와 보니 어머니는 이미 늙었고 미처 효도를 해드리지도 못하고 돌아가는 모습만 지켜보는 애닲은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이처럼 외지로 나간 휘주의 상인들은 중국의 상권을 장악하면서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또한 경극의 기원도 바로 휘주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경극은 휘주의 상인들이 개발한 연극인데 경성(京城)의 황제에게까지 소문이 퍼져서 이들은 황제앞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다. 황제는 이들의 공연을 매우 즐겁게 감상하였고 이들을 경성에 상주하게 하면서 공연을 하게 하였다. 때문에 경극(京劇)이라는 말이 이 때부터 탄생하게 되었으나 사실 경극의 기원은 휘주인 셈이다.

다음날 아침 6시쯤 전화벨이 울렸다. 가이드의 목소리가 들렸다. 날씨가 괜챦으니 다른 팀에 합류하여 황산을 다시 구경할 의향이 있는지 물어보는 것이었다. 나는 흔쾌히 가겠다고 답했고 부랴부랴 아침식사를 한 후에 호텔 로비로 나왔다. 가이드에게 케이블카와 차량비등을 지불하고 어제 온 여행객들과 함께 다시 황산을 오르기로 했다. 천하의 명산인 황산을 언제 다시 올지도 알 수 없고 첫 날 황산을 제대로 본 것도 아니기 때문에 크게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더욱이 날씨도 매우 맑고 좋았다. 다른 팀의 가이드는 태평케이블카를 타고 반대편으로 올라가는 코스를 택했다. 태평케이블카는 100명이 탈 수 있는 큰 케이블카로 다행히 날씨가 좋아서 주변으로 황산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상쪽으로 다가가자 다시 안개가 끼기 시작하였다. 케이블카에서 내리자 안개는 더욱 짙어졌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맑고 쾌청한 날씨가 짙은 구름과 안개가 끼면서 흐려졌다. 황산의 날씨는 참으로 종잡을 수가 없다. 가이드는 구름이 더 끼기 전에 빨리 보아야 한다며 서둘렀고 일행은 가이드를 따라서 서해 대협곡을 구경하였다.




다행히 구름 사이사이로 황산의 비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확실히 장가계와는 다른 경치였다. 마치 신선이 살 것 같은 깊이있고 그윽한 경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장가계를 다시 찾는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지만 황산을 다시 찾는 사람들은 많다고 한다. 항상 구름과 안개로 덮여 있기 때문에 제대로 감상하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황산만의 독특한 매력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실 이런 깊이있는 경치는 어느 곳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황산의 또다른 매력은 바로 등산로가 아닐까 생각 한다. 자연의 경치야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수 있게 한 것은 바로 인간이다. 사람이 다니기 힘든 협곡에 등산로를 설치한 인간의 힘도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7.5km의 장가계 케이블카도 대단했지만 황산의 등산로도 인간이 만든 위대한 예술작품이 아닐까 생각한다.


서해대협곡을 본 후에 일행과 함께 가이드의 권유로 경치가 빼어나다는 동해 대협곡 코스로 걸었다. 하지만 보슬비가 어느새 굵어지면서 폭우가 내리기 시작했다. 산 정상의 휴게소에서  산 우비를 입었지만 비가 너무 많이 쏟아져서 신발이 다 젖었다. 시신봉(始信峰)에 올라가기는 했지만 주변 경치는 볼 수 없었다. 비를 맞으며 동해 대협곡 길을 걸어 운곡삭도 입구로 와서 케이블카를 타고 하산하였다.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없다고 하지만 황산의 날씨는 더욱 알 수 없다. 하지만 천변만화하는 황산의 날씨도 황산의 비경중의 일부가 아닐까 생각한다. 산을 내려와서 식사를 한 후 쇼핑센터를 들른 후에 삽겹살로 마지막 저녁 식사를 하였다. 궂은 날씨 때문에 약간 섭섭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황산에 올라가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 올라가는 것보다 두번 올라가는 것이 그래도 기억에 오래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날은 산월풍정촌(山越風情村)을 들렸다. 산월족은 중국의 55개 소수민족중의 하나로 현재 미얀마 사람들과 같은 종족이라고 한다. 원래는 평지에 살던 사람들이었으나 한족에 밀려 산속에 들어가서 살았다고 한다. 이들은 산속에서 나무로 된 집에서 살면서 원초적인 생활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곳은 더 이상 사람은 살지 않으며 관광지로 조성해 놓고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산월족들의 생활모습을 보여주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산월족들의 토속적인 공연과 묘기도 보여주며 북소리와 노래에 맞춰 관광객들의 손을 잡고 춤을 추기도 한다.

4박5일간의 황산 여행이 모두 끝났다. 패키지 여행 관광치고는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황산 뿐만 아니라 중국의 유명한 정치가와 상인들을 배출한 휘주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할 수 있어서 의미있는 여행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왠지 섭섭한 느낌도 든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명산중의 명산 황산을 중점적으로 보려 했지만 천변만화하는 날씨 때문에 제대로 황산을 감상하지 못했던 때문도 있고 아무것도 안하고 보낸 시간이 꽤 많아서 그다지 알 찬 여행이었다고는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고 호텔에서 TV로 중국방송을 보면서 중국문화를 간접적으로 체험한 것도 좋은 경험이었다.

황산여행 사진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