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26일 화요일

7주간의 북한산(北漢山) 종주

7주간의 일정으로 서울의 진산 북한산(北漢山)을 종주하였다. 종주라고해서 거창해 보이지만 일주일에 한번 북한산의 주요 능선을 산행한 것이다. 등산을 꽤나 좋아하는 편이지만 북한산은 자주 가보지 못했다. 지난 여름 동안 운동을 거의 하지 않아서인지 배는 계속 나오고 소화 불량 증상까지 생겼다. 그래서 살도 빼고 건강을 되찾기 위해서 북한산 산행을 결심했다.
첫째주는 우이동입구-도선사-하루재-백운산장-백운대의 왕복 산행을 선택했다. 일반인들에게 가장 많이 찾는 코스다. 어떤 이는 등산을 하는 이유가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는 묘미 때문이라고 한다. 산은 오를 때는 무척 힘들지만 산 정상에서 느끼는 성취감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백운대는 거대한 암봉으로 슬랩구간은 난간을 잡고 올라가야만 한다. 백운대에서는 도봉구와 노원구 일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산 위에서 도심의 경치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절로 무아지경이 된다.



둘째주는, 불광역-족두리봉-향로봉-비봉-사모바위-구기동 입구로 하산하는 코스를 선택했다. 족두리봉은 높지는 않지만 암릉구간이 꽤 가파르다. 향로봉과 비봉 정상은 위험구간으로 일반 등산객의 출입이 제한되어 있다. 위험구간은 굳이 오르지 않아도 된다. 산행의 목적은 반드시 정상에 오르는 것이 아니며 자신의 실력에 맞게 무리하지 않는 것이 좋다. 사모바위는 예전 벼슬아치들이 썼던 사모와 비슷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사모바위는 북한산에서 가장 조망이 뛰어난 곳으로 한폭의 동양화를 연상케하는 의상능선과 북한산의 주봉인 백운대 만경대 노적봉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셋째주는 산성입구-응봉능선-사모바위-승가봉-문수봉-대남문-구기동입구 코스를 선택했다. 산행은 항상 처음 언덕 오를 때가 어렵다. 그러나 능선에 접어들면 보행에 리듬이 생기고 주변 경치를 감상하면서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긴다. 응봉능선은 사모바위 도착하기 바로 전 슬랩구간이 약간 난이도가 있는 편이다. 사모바위에서 승가봉을 거쳐 문수봉으로 가는 코스에서는 청수동암문까지 오르는 고갯길이 상당히 힘든 편이다. 그래도 문수봉에서 바라본 보현봉의 모습은 그야말로 동양산수의 진수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훌륭한 경치를 자랑한다. 산행이 아무리 힘들어도 이렇게 멋진 경치를 보게 되면 그간의 고생이 단번에 사라진다. 


넷째주는 산성입구-의상봉-용출봉-용혈봉-증취봉-나월봉-나한봉-문수봉-대남문-구기동입구 코스를 선택했다. 의상봉능선이라고도 불리는 이 코스는 북한산의 여러 능선중에서도 가장 힘들고 난이도가 높은 코스다. 특히 의상봉을 오르는 슬랩구간이 매우 가파르다. 의상능선은 북한산의 여러 능선 중에서 가장 수려한 경치를 자랑한다. 특히 용출봉과 용혈봉등 우뚝 솟은 암봉들이 아름다운 경관을 만들고 있다. 의상봉을 넘어서 가사당 암문 아래에는 국녕사라는 절이 있는데 이 절에는 거대한 좌불이 있다. 나월봉은 역시 위험구간으로 일반 등산객의 출입이 제한되어 있어서 우회할 수 밖에 없었다. 



다섯째주는 산성입구-원효봉-백운동계곡-백운대 암문-백운대-백운산장-도선사-우이동입구 코스를 선택했다. 원효봉 정상에서 백운대 만경대 노적봉의 위풍당당한 모습을 보면 잔잔한 감동이 밀려온다. 북한산은 같은 봉우리라도 보는 각도에 따라서 느낌이 다르다. 원효봉능선은 원래 염초봉 백운대로 뻗어 있으나 염초봉은 위험구간이라 백운대 계곡쪽으로 하산하여 다시 올라가야 한다. 백운대 옆에는 거대한 암봉인 인수봉이 있는데 클라이머들이 열심히 암벽을 오르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인수봉 너머로 도봉산의 자운봉과 오봉능선이 장엄하게 펼쳐져 있다. 


여섯째주는 우이동입구-백운대 암문-만경대와 노적봉능선-용암문-동장대-대동문-대성문-대남문-구기동입구 코스를 선택했다. 흔히 말하는 산성 주능선 코스에 해당한다. 이 코스의 하이라이트는 만경대와 노적봉사이의 암릉구간인데 난간이 설치되어 있지만 난이도가 높은 구간이다. 용암문에서 대남문까지는 능선을 따라 산성이 이어져 있고 산성을 따라서 그저 걷기만 하면 된다. 산성주능선에서는 북한산의 주봉인 백운대와 만경대,인수봉,노적봉을 한눈에 볼 수 있는데 북한산이 뿜어내는 신비오움과 기(氣)가 느껴졌다. 



 일곱번째 주는 정릉입구-칼바위능선-보국문-대성문-형제봉능선-국민대입구 코스를 선택했다. 칼바위능선의 암릉구간은 가파른 곳이 많고 난간이 설치되어 있지 않아서 조심스런 트레킹이 요구된다. 대성문에서 형제봉으로 이어지는 코스는 평이하지만 형제봉에서 바라본 북한산과 서울시내의 조망은 매우 뛰어나다. 보현봉은 문수봉에서 바라볼 때와는 사뭇 다른 장엄한 모습이다. 형제봉에서 바라본 평창동과 북악산 인왕산 그리고 북악 스카이웨이의 모습은 아파트가 즐비한 서울시내의 모습과는 또 다른 정취를 자아낸다.



 북한산은 높지는 않지만 매우 깊은 산이다. 봉우리와 능선이 많고 탐방로도 다양하다. 북한산의 가장 큰 매력은 수려한 경관이다. 백운대,만경대,인수봉,노적봉,보현봉등 암봉들의 아름다운 경치가 북한산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고령화 시대 등산이 대세라고 한다. 독일의 미래학자 마티아스 호르크스도 트레킹이 일반인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등산은 이제 웰빙을 넘어 힐링이다. 등산은 곧 치유다. 진정으로 치유를 원한다면 산으로 가라고 말하고 싶다. 

2013년 11월 3일 일요일

21세기 다극화 시대의 신국제질서

구소련 붕괴후 냉전체제가 종식되면서 한때 팍스아메리카나의 시대가 도래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하지만 불과 20년 만에 미국의 일극(一極)적 패권 시대는 막을 내리고 말았다. 이라크전과 미국 재정위기 그리고 중국과 러시아의 부상으로 국제질서는 다극화 시대로 재편되어 가고 있다. 다극화 시대 세계 정치경제의 주축을 이루는 초강대 국가는 미국,유럽연합,러시아,중국이 될 것이다.
1. 미국은 재정위기와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한 군사 대국이고 앞으로도 군사력의 우위를 통해 전세계에 걸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할 것이다.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미국은 앞으로 유럽지역에서는 나토,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는 일본,호주등 강력한 동맹관계를 축으로 중국과 러시아의 세력 확장을 견제할 것으로 예상된다. 단, 국가부채가 과도하고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의 감소로 미국의 위상은 계속해서 추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2. 유럽연합(EU)은 군사력에서는 미국의 영향력 아래에 놓여 있지만 미국에 버금가는 경제력과 산업기술 경쟁력을 바탕으로 경제 분야에서 상당한 지위를 누릴 것으로 보인다. 또한, NATO를 중심으로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확장하려 할 것이다. 유럽연합은 유로화의 성공적인 통합과 높은 산업경쟁력으로 인해 정치 경제 분야에서 상당한 지위를 이어갈 것이다. 하지만 미국과 마찬가지로 경제 성장이 정체되고 높은 실업율등 경제적 활력이 떨어지는 것이 유럽연합의 가장 큰 문제점이다.
3. 러시아는 석유와 천연가스등 엄청난 지하자원과 세계 최고의 군사기술을 바탕으로 유럽과 아시아에 걸친 대제국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 러시아는 경제력 측면에서는 서방에 비해 뒤지지만 미국에 버금가는 군사기술력과 핵 억제력을 보유하고 있다. 최근 벨라루스 카자흐스탄등 구소련 국가들과 유라시아 연합을 결성하여 구소련권 경제통합에 주력하고 있다. 또한 상하이협력기구를 통해서 유라시아대륙을 넘어 아시아태평양지역으로까지 정치적 영향력을 확장하려 하고 있다. 다만 넓은 국토에 비해 인구가 적고 경제적 위상이 낮은 점이 러시아의 최대 단점이다.
4. 중국은 개혁개방 이후 풍부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경제발전에 주력하여 미국 경제력의 절반을 넘어서는 경제대국이 되었다. 중국의 경제발전은 앞으로도 상당기간 지속될 전망이며 2030년에는 미국의 GDP를 추월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앞으로는 첨단 산업기술 수준과 군사력을 강화하여 경제강국을 넘어 패권국가로서 굴기하려 하고 있다. 다만, 중국의 부상을 우려하는 미국의 견제를 극복하는 것이 중국 굴기의 최대 과제가 되고 있다.
이들 초강대국들 외에도 인도와 브라질도 주목할 만하다. 인도는 브릭스(BRICS)국가의 일원으로 앞으로 높은 경제성장이 예상되며 과거 비동맹세력의 맹주로서 앞으로도 강대국의 지위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 단, 인도는 제조업기반이 취약하고 낙후된 사회경제 시스템으로 인해 단기간에 패권국가가 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브라질은 역시 브릭스(BRICS)국가의 일원으로 넓은 국토와 많은 인구를 보유한 성장 잠재력이 높은 국가다. 당장은 요원한 일이겠지만 브라질은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와 함께 EU에 버금가는 라틴아메리카 연합의 주도국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 세계 정치 경제 질서는 미국,유럽연합,러시아,중국이 주도하는 4극 체제의 다극화 시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2013년 10월 21일 월요일

일본의 무모한 군국주의 부활 기도

요즘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극우파인 아베가 집권하면서 헌법개정과 집단자위권 확보등 더욱 노골적으로 군사대국화를 추진하고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 움직임은 중국의 부상 때문이다. 미국의 오바마 정부는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기 위해서 아시아 회귀(Pivot to Asia)전략을 천명하였다. 이것은 아시아의 동맹국들과 함께 중국을 군사적으로 포위하는 소위 '대중국 봉쇄정책'이다.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 회귀 즉 대중국 봉쇄전략의 핵심 파트너는 일본이다. 일본의 군사대국화 움직임의 배후에는 미국이 있다. 미국은 최근 재정적자 증가로 군사비 지출을 유지하는데 막대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국의 부상으로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군비를 오히려 증강시켜야 하는 미국으로서는 딜레마에 처하게 되었다. 동아시아 지역의 헤게모니를 유지하기 위해 군비를 낮출 수 없는 미국으로서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결국 일본의 군비 증강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이라크전에서 막대한 전비를 낭비한 미국은 이제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시리아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미국은 이제 시리아조차 공격하지 못할 정도로 그 힘이 약화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란은 아예 군사대응을 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중동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 지역에서도 미국의 영향력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국제정치의 권력구도는 미국의 일극(unipolar)패권 시대에서 다극화(multipolar)시대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다극화 시대의 핵심축을 이루는 국가는 새롭게 부상하는 러시아,중국,인도,브라질이 될 것이다. 재정적자에 허덕이는 미국과 경기침체에 시달리는 일본의 협력관계는 궁극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 일본은 20년 넘는 장기불황과 고령화로 인해 국세가 점점 기울어가고 있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엄청난 재정적자에 시달리는 일본이 만약 군비 증강에 국가의 부를 쏟아붓는다면 그것은 몰락을 더욱 가속화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 움직임은 결코 옳은 선택이 아니다. 군사력 증강으로 중국에 대항한다는 생각은 망상에 불과하다. 일본은 결코 중국의 적수가 될 수 없다. 일본은 과거 파시스트 국가 시절 아시아 국가들을 침략하여 아시아 민중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일본의 최상의 선택은 과거 침략사를 반성하고 동아시아 국가로 복귀하는 것이다. 만약 일본이 군국주의 부활의 길을 계속 걷는다면 큰 댓가를 치를 것이다.

2013년 10월 15일 화요일

중국 계림 여행


10월11일부터 4박5일 일정으로 중국의 계림(꾸이린 桂林)과 양삭(양수오 阳朔)을 여행하였다. 桂林은 예로부터 '桂林山水甲天下'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산수의 경치가 뛰어난 곳이다. 중국의 자연경관중 으뜸인 장가계-황산-구채구를 여행한 터라 계림은 더더욱 가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인천공항에서 중국국제항공(에어차이나) 비행기를 타고 항저우(杭洲)를 경유하여 중국국내선 비행기로 계림에 들어갔다. 일행은 나를 포함해서 모두 15명이고 그 중 12명은 가족들이다. 비행기는 저녁 늦게 계림공항에 도착하였다. 공항에는 조선족 가이드가 미리 대기해둔 셔틀버스와 함께 마중나와 있었다. 일행은 저녁 식사 후 호텔에 짐을 풀었다. 계림은 중국에서도 가장 남쪽 지방인 광시(广西)성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10월 중순인데도 한 낮의 기온이 34도까지 올라갈 정도로 전형적인 아열대성 기후지대에 속한다.

다음날 아침 일행은 계림 시내에 위치한 용호(榕湖)공원을 찾았다. 용호공원에는 약 1000년을 살아온 대용수(大榕樹)나무가 있다. 계림은 물이 많은 곳이라 도심 공원에는 대부분 호수가 있고 호수 둘레로 산책로를 만들어 놓았다. 중국의 공원은 어디를 가더라도 중년 여성들이 단체로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추거나 태극권을 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리고 공원 바닥에 큰 붓으로 글씨를 쓰는 할아버지도 볼 수 있었다. 이처럼 큰 붓으로 길바닥에 글씨를 쓰는 것은 중국 노인들에게 인기 있는 취미생활이라고 한다.

용호공원에서 나와 다음으로 향한 곳은 첩채산(디에차이샨 疊彩山)이다. 계림에는 산이 많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그 산들이 주 봉우리가 있고 능선이 있는 그런 산이 아니라 모두 평지에서 삐죽삐죽 솟아난 산들이라는 점이다. 그 봉우리들을 모두 합치면 3만 6천개가 된다고 한다. 첩채산은 그 중 하나의 봉우리로 화려한 비단을 겹겹이 쌓아 놓은 것과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첩채산 정상에 올라가면 계림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시내 건물 사이 사이로 작은 산들이 솟아 있는 모습이 매우 독특하다. 계림 시내 한복판으로는 이강(리쟝 漓江)이 흐른다. 그런데 산과 강이 현대식 건물들과도 매우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점심을 먹고 일행은 이강(리쟝 漓江)유람을 하였다. 이강유람은 계림여행의 하이라이트다.  산과 강이 어우러진 계림의 진면목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유람선을 타고 바라본 계림의 산수는 확실히 장가계나 황산과는 또다른 특색이 있다. 어떤 이는 장가계(張家界)의 경치를 남성에 계림의 산수를 여성에 비유한다. 확실히 계림의 산수는 스케일이 크고 웅장한 장가계에 비해 우아하고 다소곳한 면이 있다. 계림은 산의 곡선도 무척 부드럽고 단아하다. 계림 산수의 특징은 네가지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그것은 산청(山靑), 수수(水秀), 동기(洞奇), 석미(石美)다. 산이 푸르고 아름다우며 강과 호수의 경치가 빼어나고 기묘한 동굴이 많고 아름다운 돌들이 많다는 뜻이다. 계림은 그 자체가 한폭의 동양화다. 이는 수백만년동안 자연이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에 더욱 신비롭고 아름다운 것이리라.


이강유람을 마치고 일행은 관암동굴을 구경했다. 계림에는 동굴이 매우 많다. 관암동굴은 장가계의 황룡동굴처럼 매우 스케일이 크고 아름다운 동굴이다. 동굴 안에는 온갖 형태의 종유석과 석순들이 있다. 동굴 안에는 호수도 있는데 보트를 타고 둘러볼 정도로 매우 크다. 관암동굴에는 또한 모노레일이 설치되어 있다. 일행은 모노레일을 타고 동굴 밖으로 빠져 나왔다.



저녁 식사후에는 '산수간쇼'라는 춤과 서커스가 어우러진 공연을 보았다. 산수간쇼의 하이라이트는 원형케이지 안에서 다섯대의 오토바이가 빙빙 도는 오토바이묘기였다. 한순간의 실수도 허락하지 않는 아찔한 공연인데 한치의 오차도 없이 묘기를 보여주는 다섯명의 연기자에게 아낌없는 박수가 쏟아졌다. 쇼를 보고 간단히 발마사지를 한 후에 계림여행 첫째날 일정을 모두 마쳤다.

이튿날, 조식 후에 우산공원, 복파산, 정강왕성을 차례로 구경하였다. 우산공원은 아름다운 정원과 호수가 있는 시민들의 휴식공간이다. 계림은 어디를 가도 산과 호수가 많기 때문에 공원이 많다. 복파산은 계림의 산봉우리중 하나로서 한나라의 복파장군 마원을 기리기 위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마원은 베트남과의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운 장수라고 한다. 복파산 정상에 올라가면 역시 계림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산의 바위 암벽 곳곳에는 여러 불상 조각들도 볼 수 있었다. 계림은 산과 물이 아름다운 곳이라고 하지만 보면 볼수록 현대식 거리와도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계림은 자연과 사람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곳이라는 느낌이 든다. 정강왕성은 명나라 태조 주원장의 후손이 정강왕에 백봉되었을 때 지은 왕성이다. 정강왕성은 궁성과 정원 그리고 인공호수가 아름답게 조성된 곳이다.



계림 시내의 도로 풍경을 보면 오토바이 탄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오토바이는 계림 뿐만 아니라 중국 대부분 도시에서 시민들의 주요 이동수단이다. 예전에는 자전거를 많이 이용하였으나 이제 자전거는 거리에서 거의 사라졌고 오토바이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중국 서민들이 가장 애용하는 교통수단이 되었다. 오토바이에 아이를 앞에 태우고 가는 주부들의 모습도 많이 볼 수 있다.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우리가 중국에서 흔히 보는 이륜차는 오토바이가 아니다. 그것은 충전식 전기 자전거다. 오토바이는 휘발유로 가지만 충전식 자전거는 전기를 동력으로 간다. 또한 오토바이는 엄격히 헬멧을 착용하도록 하고 있으나 이륜차는 헬멧을 쓰지 않아도 된다. 또한 충전 비용도 매우 저렴하여 한달에 우리돈 8천원 정도가 든다고 한다. 중국의 도로는 길 양편으로 이륜차 전용도로가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편리하게 이륜차를 이용하고 있다.

점심식사후에 양삭(양수오 阳朔)로 갔다. 양수오는 계림에서 남쪽으로 70km쯤 떨어진 곳에 위치한 곳으로 배낭여행자들의 천국이라고 불린다. 양수오로 가는 길에 '세외도원'이라는 곳을 들렸다. 세외도원은 호수를 보트로 유람하면서 아름다운 산수와 좡족,동족,묘족등 광시성에 거주하는 소수민족들의 문화를 감상하는 일종의 테마파크다. 도화원기를 지은 도연명이 무릉도원이라고 말했던 곳이 바로 여기라는 해설판의 설명이 보인다. 그래서인지 보트가 동굴을 통과하자 꽃이 흐드러지게 핀 복숭아나무가 있었다. 일행은 양수오에서 발마사지를 받은 후에 호텔에서 저녁을 먹었다. 중국여행에서 마사지는 필수코스이지만 양수오에서 받았던 발마사지는 정말 오장육부가 편안해질 정도로 시원했다.

저녁식사후 '인상유삼저(印象刘三姐)'라는 공연을 보았다. '인상유삼저'는 중국 영화의 거장 장이모 감독이 연출한 것으로 유명한 공연이다. 이 공연은 계림의 산수를 배경으로 계림의 전통문화와 현대적 가무를 접목시킨 가무쇼로 630명의 인원이 출연하는 매우 스케일이 큰 공연이다. 또한 이강과 산을 배경으로 야외에 무대가 펼쳐져 있는 점이 특이하다. 또 한가지 주목할 점은 이 공연에 등장하는 노젓는 사공과 노래하는 아이들은 모두 이곳 주민들이라는 점이다. 공연장에는 4천석의 좌석이 있지만 거의 매일 만석이 될 정도로 인기 있는 공연이다. 유씨집안 셋째 딸이라는 뜻의 '유삼저'는 60년대 TV 드라마로 방영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얻은 작품인데 이것을 현대적으로 각색한 것이다. '인상유삼저'는 거장 장이모 감독의 무대연출이 돋보이는 예술성이 매우 뛰어난 작품이다. 중국은 어느곳을 가도 이처럼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접목한 훌륭한 가무쇼를 볼 수 있고 대부분의 공연이 성공을 거두고 있다. 항저우에 가면 '송성가무쇼'를 볼 수 있는데 13년동안 5500만명이 관람을 하였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서울이나 제주도에 '아리랑'을 주제로 스케일이 큰 공연을 만들려고 했지만 실패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관람인구가 적기 때문에 투자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양수오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 다음날 아침 다시 계림으로 돌아와서 천산공원과 요산을 구경했다. 천산(穿山)은 산중턱에 큰 동굴이 앞뒤로 뻥 뚫려 있는 기이한 산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계림의 산은 이처럼 동굴이 매우 많다. 그래서 아름다운 동굴이 계림산수의 또하나의 특색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구경한 요산은 계림의 3만 6천봉 가운데 가장 높은 산으로 정상까지는 리프트를 타고 올라갔다. 요산은 900m 남짓한 그다지 높지 않은 산이지만 리프트를 타고 올라갈때는 상당히 아찔하다. 요산 정상에서 바라본 계림의 산 봉우리들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 가운데 마치 부처님이 누워 있는 모습 즉 와불의 형상을 한 봉우리들의 모습이 매우 독특했다. 해설판에는 현존하는 와불 가운데 가장 큰 것이라고 써 있었다.

요산을 끝으로 계림 투어를 모두 마쳤다. 10월 중순인데도 30도를 웃도는 아열대의 날씨 속에서 천하제일의 산수라는 계림의 경치를 감상하였다. 계림은 우아하고 정적이며 동양적인 풍취가 물씬 느껴지는 곳이다.

2013년 9월 4일 수요일

한반도의 무력 통일이 불가능한 이유

북핵(北核)을 둘러싼 위기가 일촉즉발의 전쟁 직전까지 가는 상황이 거의 매년 반복되다시피 하고 있다. 남북 모두 전쟁 불사를 외치지만 막상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는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할 경우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한반도의 사정은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처럼 단순하지 않다. 60년전에 벌어진 6.25 전쟁에서 한,미 연합군은 압록강까지 진격하여 무력통일 일보직전까지 같다. 하지만 중국군의 개입으로 38선 근처에 휴전선을 긋고서야 전쟁이 종결되었다. 6.25전쟁 당시 미국은 중국에 대한 핵공격을 검토한 바 있다. 하지만 세계대전으로 확전을 우려한 미국은 중국에 대한 핵공격을 포기하였다. 미국이 북핵을 빌미로 항공모함과 최첨단 전투기를 동원하여 북을 공격한다면 중국과 러시아가 반드시 개입하게 되어 있다. 만약 미국이 북한을 점령하여 그들의 위성국가로 만들거나 남한에 흡수통일시킨다면 중국과 러시아는 국경선을 맞대고 미국과 직접 대치하게 된다. 때문에 중국과 러시아는 북조선의 붕괴를 원치 않는다. 한반도는 중국과 러시아등 대륙세력과 미국과 일본등 해양세력의 완충지대 역할을 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한반도가 미국의 세력권에 편입되거나 힘의균형이 붕괴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한반도에 전쟁이 발발할 경우 그것은 재래전이 아닌 핵전쟁이 될 것이고 미국과 중국,러시아는 핵으로 남북을 상호파괴시킴으로써 전쟁을 종결 시킬 것이다. 현재로서는 한반도에서 무력으로 통일을 이루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2013년 8월 12일 월요일

구채구(九寨沟) 황룡(黄龙)여행

8월 6일부터 10일까지 4박 5일 일정으로 성도-구채구-황룡을 여행하였다. 장가계,황산에 이어 세번째로 선택한 중국의 절경인 구채구는 해발 3000m의 고지대에 위치한 관광지로 호수의 경치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다. 이번에 함께한 일행은 나를 포함하여 모두 7명이다. 나를 제외한 동행객들은 모두 60세 전후의 같은 동네에 살며 나름 여유있게 사는 부부들로 보였다. 밤비행기로 성도(成都)에 도착하자 조선족 가이드가 피켓을 들고 나와 있었다. 조선족 가이드는 작은 체구에 쾌활하고 매우 붙임성이 좋아보이는 청년이었다. 호텔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1시가 넘었다. 새벽 5시에 황룡으로 출발하기로 되어 있어서 잠도 제대로 못자고 CCTV 드라마를 보며 시간을 때웠다. 새벽에는 천둥번개와 함께 폭우가 심하게 내렸다.

새벽 5시에 일행은 작은 버스를 타고 황룡으로 향했다. 성도에서 황룡까지는 약 6시간 30분을 달려야 한다. 황룡으로 가는 도중 2008년 대지진이 발생한 원촨 인근 지역을 지나갔다. 이곳은 최근에 폭우가 쏟아져 곳곳에 도로와 다리가 붕괴되어 있었고 지진으로 기반이 약한 상태라 산사태가 자주 발생하고 있었다. 황룡과 구채구는 해발 3000m 이상의 고지대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고산약과 산소통이 필요했다. 일행은 점심식사를 한 후 가이드가 구입해준 고산약을 먹고 모기약처럼 생긴 산소캔을 하나씩 챙겼다. 황룡으로 가기 위해서는 해발 4700m의 고개를 넘어가야 하는데 차를 타고 가서 그런지 고산반응은 그렇게 심하게 나타나지 않았다.

황룡에 도착하여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간후 도보로 하산하면서 주변 경치를 감상하였다. 새벽부터 내리는 비는 그치지 않고 계속 내리고 있었다. 일행은 모두 우의를 입고 산행을 하였다. 황룡에서 가장 높은 오채지의 해발 고도는 약 3600m이다. 이 정도 고지대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산증세를 보인다. 처음에는 다소 견딜만 하였으나 계속 걷다보니 뒷골이 울렁거리며 아프기 시작하면서 어지럼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고지대는 산소가 희박하여 외부 공기압이 낮기 때문이기 때문에 혈관이 팽창하여 혈액순환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특히 뇌에 혈액이 제대로 공급되지 못하기 때문에 자꾸만 하품이 나오고 머리가 어지럽다. 산소캔에 든 산소를 들이마셨으나 처음에는 효과가 있더니 나중에는 그마저도 효과가 없었다. 굵은비가 계속해서 내리는데다 고산증세로 인해 황룡 투어는 그야말로 고행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최대한 천천히 걸으면서 자주자주 쉬는 수 밖에 없었다.

황룡은 울창한 삼림과 에머랄드빛 호수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곳이었다. 비록 비가 오고 있었지만 물빛은 신비한 에머랄드빛을 띄고 있었다. 황룡의 오채지에서 케이블카 입구까지는 약 2시간을 걸어 내려가야 한다. 고지대에서 2시간 산행은  매우 힘들다. 더구나 비까지 맞아가며 하는 고산 산행은 아무리 하산길이라도 매우 힘들다.

버스에 올라탔을 때는 이미 바지와 신발이 비에 흠뻑 젖어 있었다. 그리고 몸이 으실으실 추워지면서 몸살기운마저 생기기 시작했다. 황룡에서 구채구까지는 버스로 약 2시간 30분을 가야 한다. 구채구의 호텔에 도착하자 몸살기운이 너무 심해서 저녁은 몇숟가락 뜨지도 못하고 준비해간 진통제를 먹고 잠을 청했다. 구채구의 호텔은 해발 1800m의 고지대에 위치해 있어서 일교차가 심하고 밤에는 몹시 추웠다. 더구나 전력 공급이 부족한 지역이라 룸에는 히터가 없고 침대에 전기장판이 깔려 있을 뿐이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자 머리는 여전히 아프고 식욕조차 없어서 아침도 제대로 먹을 수가 없었다. 다행히 구채구 입구에 도착하자 두통과 몸살증세는 좀 가라앉았다. 구채구는 케이블카가 없고 모든 곳을 버스로 이동한다. 어제와는 달리 구름한점 없는 맑은 날씨였다. 구채구(九寨溝)라는 이름은 아홉개의 장족(藏族) 마을이 있는 골짜기라는 뜻에서 지어진 이름이다. 장족은 티베트인들을 말한다. 지금도 구채구에는 약 천여명의 장족들이 아홉개의 마을에 흩어져 살고 있다. 그 중 세개 마을은 관광객에게 개방되어 있고 나머지 여섯개는 순차적으로 개방할 예정이라고 한다.



구채구의 계곡은 Y자 모양의 세갈래 계곡의 형태를 띄는데 각각 측사와구,일측구,수정구로 불리운다. 제일 먼저 측사와구에 있는 장해와 오채지를 구경하였다. 장해는 구채구에서 가장 높은 해발 3100m 지점에 위치해 있다. 측사와구의 경치도 볼만하지만 구채구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일측구라고 할 수 있다. 일측구에는 구채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수인 오화해와 진주탄폭포가 있다. 오화해는 맑은 하늘과 에머랄드빛 호수 그리고 전나무숲이 어우러진 신비롭고 아름다운 곳이다. 황산을 보지 않고 산을 논하지 말며, 구채구를 보지 않고 물을 논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그정도로 구채구는 계곡과 호수의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다.


하지만 호수와 폭포의 아름다움만이 구채구가 가진 매력의 전부는 아니다. 고지대의 맑은 공기와 하늘 그리고 무공해의 숲과 계곡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천연의 아름다움이 구채구의 참 매력이 아닐까라고 나는 생각한다. 구채구는 단풍이 드는 가을이 가장 멋지다고 한다. 하지만 생명력 넘치는 여름 풍경도 그에 못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구채구는 한화로 6만원이 넘는 매우 비싼 입장료를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채구는 중국 내국인 관광객들로 넘쳐났다. 중국 경제가 고속성장하면서 중산층이 늘고 그에 따라 소비가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여행객들도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구채구 관광을 마치고 저녁에는 호텔에서 장족 예술단의 가무쇼를 본 후에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구채구 황룡 관광을 마치고 다음날 아침 일찍 구채구 호텔을 출발하여 성도로 향했다. 성도로 가는 도중 일행은 가이드의 안내로 차마고도의 시발점인 강족(姜族) 마을 모투어촌을 둘러보았다. 강족은 중국의 55개 소수민족중 하나로 주로 양을 방목하면서 살았던 민족이었다. 역사적으로 차마고도를 처음으로 개척한 사람은 강족들이라고 한다. 지금은 관광지로 탈바꿈하였지만 이곳 주민들은 아직도 강족 특유의 전통 문화를 간직하며 살고 있었다. 이 마을의 주변은 온통 높은 산으로 둘러쌓여 있어서 매우 척박한 곳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매우 순박하고 자신들의 문화에 대해 높은 자긍심을 갖고 있었다.


일행은 저녁 늦게 성도에 도착하였다. 저녁 식사를 한 후에 관착항자 거리를 구경하였다. 관착항자 거리는 서울의 인사동과 비슷한 문화의 거리다. 일행은 카페에 들러 맥주와 차를 마셨다. 그런데 음료수와 차값이 서울과 별반 다르지 않을 정도로 비쌌다. 중국의 일인당 GDP가 한국의 1/4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매우 비싼 편이다. 그런데도 카페에는 관광객들로 만원이었다. 요즘 중국인들이 돈이 많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여행 마지막날은 무후사와 금리거리를 둘러보았다. 성도는 쓰촨성의 성도로 인구가 천만이 넘는 대도시다. 중국의 다른 대도시와 마찬가지로 아파트와 고층 빌딩이 즐비하고 곳곳에 건설용 크레인을 볼 수 있다. 중국의 고도성장과 그에 따른 도시화가 앞으로 적어도 10년 이상 지속된다고 볼 때 이러한 광경은 계속해서 보게 될 것이다. 무후사는 삼국지의 제갈공명을 기리기 위해서 지은 사당으로 안에는 유비의 묘가 있다. 무후사는 성도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다. 무후사 바로 옆에는 삼국시대 당시의 거리를 재현해 놓은 금리거리가 있다. 금리거리는 베이징의 왕부정 거리처럼 간식을 파는 가게와 기념품가게 그리고 찻집등이 즐비한 관광의 거리다.

이로써 4박 5일 성도-구채구 여행을 마치게 되었다. 고지대를 여행하면서 많이 힘들었지만 아름다운 산수와 신비하고 이색적인 경치를 마음껏 감상할 수 있어서 오랜 기억에 남을 만한 여행이었다. 여행의 참맛은 아름다운 자연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순박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이번 여행은 그 두가지를 어느정도 충족시켜 주었다.

2013년 7월 27일 토요일

정전 60주년, 6.25 전쟁의 의미

올해는 6.25 정전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6.25전쟁은 미국이 개입한 전쟁중 승리하지 못한 최초의 전쟁으로 기록된다. 또한 6.25 전쟁은 근대 이후 아시아 국가가 서양 제국주의 국가와의 전쟁에서 사실상 승리한 최초의 전쟁이다. 6.25전쟁 이후 1954년 베트남은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프랑스에게 승리한후 완전한 독립을 쟁취하였다. 6.25전쟁에 참전했던 중국은 19세기에서 20세기에 걸친 제국주의 시대에 서양과 일본 제국주의 세력들의 침략으로 100년동안 굴욕의 세월을 보냈었다. 1,2차 세계 대전이 제국주의 세력들간의 패권전쟁이었다면 6.25전쟁은 제국주의 세력과 반제국주의 세력간의 전쟁이었다. 왜냐하면 6.25전쟁은 2차대전 쇠락해진 영국의 뒤를 이은 미국과 아편전쟁 이후 백년동안 반제국주의 투쟁을 해온 중국과의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6.25 전쟁을 단순히 이데올로기적 관점에서만 보는 것은 옳지 않다. 2차 대전 이후 제국주의 세력들은 자유민주주의로 포장만 바꾸었을 뿐 제국주의적 본질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일본 제국주의 세력들이 물러간 이후에 그 뒤를 이어 한반도의 남쪽은 미군이 점령하였다. 지배세력이 일본에서 미국으로 바뀌었을 뿐 식민지적 종속성을 극복하지 못한채 한국은 불완전한 독립을 이루었다. 6.25전쟁 정전 60주년이 지났지만 한국이 미국에 대한 식민지적 종속관계를 청산하지 못한다면 한반도의 통일은 요원한 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