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29일 수요일
볼티모어 사태는 폭동이 아니다
미국 볼티모어에서 25세의 흑인청년 프레디 그레이가 경찰의 가혹 행위로 인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지난해 미주리주 퍼거슨에서 흑인청년 마이클브라운이 백인경찰에 의해 살해된 이후 또다시 흑인청년이 경찰의 폭력에 의해 희생된 것이다. 이에 대해 항의하는 시위가 볼티모어 전역에서 전개되고 있다. 항의시위가 격렬해지자 150대의 차량이 파괴되고 건물이 불타는등 피해가 발생했다. 일부상점에서는 약탈행위마저 벌어졌다. 경찰은 시위대중 200명을 체포했으며 시위진압과정에서 많은 부상자가 발생했다. 사태가 악화되자 메릴랜드 주정부는 주방위군 을 동원하고 볼티모어 시내에 통행금지령을 내렸다. 한국의 기득권 언론은 볼티모어 사태를 폭동으로 보도하고 있다. 하지만 볼티모어 시위는 단순한 폭동이 아니다. 볼티모어 시위는 지난해 퍼거슨에서 일어났던 민중봉기의 연장선상에 있다. 마이클브라운과 프레디그레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미국에서는 해마다 경찰의 폭력 행위에 의해 약 500명의 시민들이 죽어가고 있다. 그 중 상당수는 흑인등 소수민족들이다. 최근 일련의 흑인청년 살해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미국 경찰은 세계 최대의 폭력경찰이다. 미국의 경찰은 이미 소수 백인 기득권세력들의 사설 경호부대로 전락했다. 한국언론은 흑인들의 난동만 보도하고 미국경찰의 폭력행위와 인종차별에 대해서는 보도하지 않는다. 지난해 퍼거슨사태를 겪고도 미국의 백인 기득권세력들은 흑인과 소수민족에 대한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볼티모어 사태는 뿌리깊은 인종차별과 경찰의 폭력에 대한 미국 민중들의 저항이자 분노의 표출인 것이다.
2015년 4월 8일 수요일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와 그 의미
2013년 CIA와 NSA에서 컴퓨터 기술자로 일하던 에드워드 스노든은 이들 정보기관들이 민간인과 제3국에 대한 불법 감찰을 자행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그는 그 증거로 사찰 프로그램과 NSA의 기밀문서를 언론에 폭로했다. 스노든은 홍콩에서 이러한 사실을 폭로한 뒤 현재 러시아에 망명중이다. 스노든의 폭로 1년전에 줄리언 어산지는 위키리크스를 폭로하였다. 어산지는 현재 런던 주재 에쿠아도르 대사관에서 망명중이다. 스노든은 미국에서 특별사면이 되지 않는 한 미국땅을 영원히 밟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스노든과 어산지의 폭로는 미국과 서방의 내부균열을 암시하는 사건이다. 미국식 자유민주주의는 스노든과 어산지의 폭로로 그 정당성과 도덕성에 심각한 훼손을 입고 말았다. 1991년 구소련 붕괴이후 세계질서의 절대권력으로 군림해오던 미국은 2003년 이라크전의 실패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정치경제 헤게모니가 급격히 약화되고 있다. 우리는 한 인물이 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것을 종종 목격한다. 21세기에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는 광야의 외침과도 같은 역사적 사건이었다. 그것은 미국의 일극적 세계질서의 종말과 다극화 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것이었다. 스노든의 폭로는 자신의 양심에 의한 것이지만 그것은 역사의 변환을 알리는 계시와도 같은 사건이었다. 스노든의 폭로 이후 브릭스 국가들은 2014년 IMF에 대항하는 브릭스 개발은행을 설립하기로 합의했다. 또한 중국은 미국주도의 세계은행에 대항하는 아시아 인프라 개발은행의 설립을 주도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미국의 달러패권은 브릭스 국가들에 의해 잠식되고 있다. 군사적으로도 미국은 러시아와 경쟁하고 있지만 이제 군사기술과 핵전력에서 결코 러시아에 앞선다고 말 할 수 없다. 또한 미국은 재래식 전력에서조차 중국에 급격히 추격당하고 있다. 스노든의 폭로가 있은 지 1년 후인 2014년은 다극화 시대의 원년으로 기록될 것이다. 에드워드 스노든은 현재 망명생활이라는 고난을 겪고 있지만 그것은 예언자의 숙명과도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스노든과 어산지의 폭로는 미국과 서방의 내부균열을 암시하는 사건이다. 미국식 자유민주주의는 스노든과 어산지의 폭로로 그 정당성과 도덕성에 심각한 훼손을 입고 말았다. 1991년 구소련 붕괴이후 세계질서의 절대권력으로 군림해오던 미국은 2003년 이라크전의 실패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정치경제 헤게모니가 급격히 약화되고 있다. 우리는 한 인물이 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것을 종종 목격한다. 21세기에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는 광야의 외침과도 같은 역사적 사건이었다. 그것은 미국의 일극적 세계질서의 종말과 다극화 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것이었다. 스노든의 폭로는 자신의 양심에 의한 것이지만 그것은 역사의 변환을 알리는 계시와도 같은 사건이었다. 스노든의 폭로 이후 브릭스 국가들은 2014년 IMF에 대항하는 브릭스 개발은행을 설립하기로 합의했다. 또한 중국은 미국주도의 세계은행에 대항하는 아시아 인프라 개발은행의 설립을 주도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미국의 달러패권은 브릭스 국가들에 의해 잠식되고 있다. 군사적으로도 미국은 러시아와 경쟁하고 있지만 이제 군사기술과 핵전력에서 결코 러시아에 앞선다고 말 할 수 없다. 또한 미국은 재래식 전력에서조차 중국에 급격히 추격당하고 있다. 스노든의 폭로가 있은 지 1년 후인 2014년은 다극화 시대의 원년으로 기록될 것이다. 에드워드 스노든은 현재 망명생활이라는 고난을 겪고 있지만 그것은 예언자의 숙명과도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2015년 3월 19일 목요일
베트남 하노이 하롱베이 여행
3월 15일부터 3박 5일 일정으로 베트남 하노이와 하롱베이를 여행하였다. 이번 여행은 패키지여행을 선택했고 일정을 함께한 여행동료들은 나를 포함해서 모두 9명이었다. 하노이 노이바이 공항에 내리자 한국인 가이드가 우리를 맞이하였다. 우리는 시내에서 마사지를 받은 뒤 저녁식사를 한 후 칼리다스72층 전망대를 구경하였다. 전망대를 구경한 후 우리 일행은 하노이 시내의 호텔에 투숙하였다.
이튿날 우리는 관광버스를 타고 하노이를 떠나 하롱베이로 향했다. 하롱베이로 가는 도중 옌뜨산에 들렀다. 옌뜨는 베트남 불교의 성지로 인구의 85%가 불교도인 베트남 사람들에게는 일생에 한번은 꼭 가 봐야 할 산이라고 한다. 옌뜨산의 성지인 사리탑까지는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는데 사당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불공을 드리며 기도를 하고 있었다. 겨울이 춥지 않아서인지 옌뜨산은 사계절 푸른 산으로도 유명하다.
옌뜨를 떠나 우리는 하롱베이에 도착했다. 하롱베이는 베트남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이다. 하롱베이는 약 2천여개의 섬들이 바다위에 솟아있는 곳이다. 마치 중국의 계림과 비슷한 풍경이지만 바다위에 형성되어 있다는 점이 다르다. 뿐만 아니라 하롱베이는 파도가 없어서 마치 호수처럼 물결이 잔잔하다. 호텔에서 하루를 투숙한 후 우리일행은 유람선을 타고 하롱베이의 비경을 구경하였다.
유람선이 들어갈 수 없는 곳은 사공이 노젓는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노 젓는 배를 타고 하롱베이의 절경을 감상하는 것도 매우 이색적인 체험이다 . 그리고 하롱베이에는 모터보트의 출입만 허용되는 구간도 있는데 그곳은 모터보트를 타고 구경할 수 밖에 없다.
우리가 탄 유람선에는 여러개의 테이블이 놓여 있고 노래방 기기도 갖추어져 있었다. 이곳에서 뱃놀이를 하다가 절로 흥이 나면 노래도 부를 수 있다. 유람선 안에서 우리는 하롱베이의 어부들이 갓 잡은 싱싱한 다금바리 활어회와 돔회등을 아주 푸짐하게 먹었다. 다금바리는 한국에서는 아주 귀한 물고기로 알려져 있다. 뿐만아니라 바다가재,새우,게,조개등 싱싱한 해산물요리가 풍부하게 나오다 보니 소주 한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맛있는 해산물에 술까지 곁드리니 배를타고 신선놀음을 했다는 이태백이 부럽지 않았다.
회를 먹은후에 우리는 승솟동굴을 구경했다. 승솟동굴은 종유석과 석주가 더 이상 자라지 않는 죽은 동굴이라고 한다. 동굴안에는 갓가지 기묘한 석주가 있다. 하지만 동굴밖의 풍경은 동굴안의 기묘함보다 더욱 운치있고 멋있어 보였다.
이번에는 모터보트를 타고 하롱베이의 비경을 감상하였다. 하롱베이에는 갖가지 형상의 바위들이 있는데 자연이 만들어낸 오묘한 조화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터보트를 타고 일행은 티톱섬에 갔다. 티톱섬 정상에는 하롱베이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티톱은 소련의 우주비행사인 게르만 티토프(Tiptov)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우주여행을 최초로 한 사람은 유리 가가린으로 가가린은 약 1시간 50분동안 우주에서 지구를 한바퀴 돌았다. 하지만 몇달 후에 티토프는 무려 25시간 동안 대기권 밖에서 지구를 17바퀴나 돌았다. 소련의 영웅이 된 티토프가 베트남을 방문했을 때 그는 이 섬의 아름다움과 주변경치에 매우 반했다고 한다. 그래서, 호치민 주석은 이 섬을 티토프에게 헌정한다는 의미로 섬의 이름을 티톱이라고 지었다. 티톱 전망대에서 바라본 고요하고도 신비로운 경치는 가히 하롱베이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하롱베이의 아름다운 풍경에 취해서인지 우리일행은 구경을 마치고 선착장으로 돌아오는 도중 노래 한 곡씩 불렀다. 우리일행은 저녁에 수상인형극쇼를 관람한 후 야시장 투어를 끝으로 하롱베이에서의 일정을 모두 마쳤다.
호텔에서 일박을 한 후 우리는 버스를 타고 다시 하노이로 이동했다. 하노이는 베트남의 수도로 베트남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다. 하노이에는 지하철이 없고, 버스도 그리 많지 않다. 대중교통이 활성화 되지 않아서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두 모터싸이클을 타고 다닌다. 그런데, 모터싸이클을 타려면 반드시 헬멧을 착용해야만 한다. 출퇴근시간에 헬멧을 착용한 모터싸이클족들이 도로를 가득 메운 모습은 하노이에서만 볼 수 있는 이색적인 풍경이다. 우리 일행은 스트리트카를 타고 호안키엠호수와 36구거리 일대를 구경하였다.
하노이는 또한 베트남 사회주의혁명의 아버지이자 평생을 베트남의 독립과 통일을 위해 헌신했던 호치민 주석의 도시이기도 한다. 하노이 시내 중심부에 있는 바딘광장은 매우 역사적인 장소이다. 1945년 9월 2일 이곳 바딘광장에서 호치민 주석은 베트남 민주 공화국을 수립하고 독립을 선포하였다. 바딘광장에는 호치민 주석의 시신을 안치한 호치민 영묘가 있는데 호주석의 시신은 현재 방부처리되어 영구보존하고 있다. 호치민 주석의 영묘는 마치 모스크바 붉은광장의 레닌묘와 비슷한 구조로 되어 있다. 호치민 영묘 바로 옆에는 호치민 유적지가 있는데 이곳에는 호주석이 살아생전에 생활했던 집과 집무실등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호치민 유적지 옆에는 천년의 역사를 가진 한기둥사원이 있다.
베트남은 2천년동안 중국의 영향을 받았고 근대 이후에는 약 70년동안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었다. 때문에 베트남에는 중국과 유럽 그리고 베트남의 전통 문화가 공존하고 있었다. 베트남은 한국과도 인연이 많은 나라이다.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은 수많은 베트남 민간인들에 대해 학살, 강간 등 야만적인 전쟁범죄들을 저질렀다. 베트남 전쟁은 한국 현대사의 씻을 수 없는 수치로 남아 있다. 미국은 베트남전 당시 네이팜탄, 고엽제등 비인도적인 대량살상무기를 마구 퍼부으며 베트남을 파괴하려 했다. 또한 수많은 무고한 민간인들을 학살하였다. 현재도 베트남에는 약 200만명 이상의 고엽제 환자들이 고통받고 있다. 프랑스에 이어 이 지역의 헤게모니를 장악하려는 미제국주의의 희생양이 바로 베트남이었다. 하지만 베트남 민중들은 결국 승리했고 미국의 침략자들을 물리치고 통일을 이루어 냈다. 베트남은 포스트 차이나로 불릴 정도로 현재 경제 전망이 매우 밝다. 젊고 값싼 노동력이 풍부하기 때문에 요즘은 베트남에 공장을 짓기 위해 많은 기업들이 베트남으로 투자를 한다고 한다. 베트남이 가야 할 길은 아직 멀지만 앞으로 10년 또는 20년 후면 베트남은 현재의 중국처럼 번영하는 나라가 될 것이다. 3박 5일간의 베트남 여행기간동안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베트남 음식과 과일을 배부르게 먹고 왔다. 이번 여행을 함께 한 여행벗들과 가이드에게 감사를 드린다.
2015년 3월 1일 일요일
넴초프 살해사건에 대한 단상
러시아의 야당인사인 보리스 넴초프가 크레믈 대통령궁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괴한의 총격에 의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나는 이번 사태에 미국등 서방세력이 직간접적으로 개입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넴초프는 퇴락한 정치인으로 푸틴의 정적도 아니고 유력한 야당인사도 아니다. 푸틴은 넴초프를 제거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만약 푸틴이 진짜 넴초프를 제거하려고 마음먹었다면 교통사고나 항공기 사고를 가장하여 충분히 정치적 부담없이 제거하였을 것이다. 아니면 부패혐의를 뒤집어 씌우거나 범죄에 연루시켜 감옥에 집어넣는 방법도 있다. 현재 푸틴의 지지율은 85%에 이르고, 넴초프를 지지하는 러시아인은 불과 5%에 불과하다. 넴초프는 러시아의 몇몇 친미성향의 야당인물중 한명이다. 미국은 러시아의 내부불안을 야기하고 정권교체를 기도하기 위해 친미반체제인사들을 배후에서 지원해오고 있다. 넴초프는 그들중 한명이다. 하지만 넴초프의 극단적인 친미 반정부적 성향때문에 대부분의 러시아인들은 그를 매우 싫어한다. 대중적 지지기반이 거의 없는 넴초프는 푸틴에 위협적인 인물도 아니고 그가 괴한의 총격에 사망하였다고 해서 그를 동정할 러시아인들도 별로 없다. 따라서 이번 살해사건의 동기는 매우 도발적인 동기에 의해 의도적으로 기획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넴초프의 총격살해는 명백하게 러시아의 정정불안을 야기하고 나아가 쿠데타를 일으켜 푸틴을 무너뜨리기 위하여 기획된 것이다. 그 배후에는 현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러시아를 붕괴시키려는 미국이 있다. 넴초프 살해 사건은 러시아를 흔들기 위해 기획된 것이라는 것을 대부분의 러시아인들은 알고 있으며 배후에 미국이 개입했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미국은 넴초프를 희생양으로 러시아에 쿠데타를 일으키려 한다는 사실을 러시아인들은 잘 알고 있다. 따라서, 미국은 넴초프 살해를 통해 어떠한 정치적 목적도 달성하지 못할 것이다.
2015년 2월 18일 수요일
미국은 대테러 전쟁국인가, 혼란의 주범인가?
중동지역의 이라크,아프가니스탄,시리아,리비아가 현재 내전상태에 있다. 이라크와 시리아에는 이슬람무장단체인 IS(이슬람국가)가 광포한 모습으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고, 리비아에는 2개의 정부가 존재하는 가운데 무장세력들의 테러가 빈발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정부군과 탈레반 반군과의 내전이 끊임없이 펼쳐지고 있다. 이들 나라들의 공통점은 모두 미국이 군사적으로 개입하였다는 것이다. 이라크는 있지도 않은 대량살상무기(WMD)를 빌미로 침략하였고, 아프가니스탄은 알카에다와 그 지원세력인 탈레반정권을 붕괴시키다는 명목으로 침략하였다. 하지만 이라크에서 미국은 10년동안 천조원이 넘는 전비를 사용했지만 이라크에 평화는 고사하고 IS라는 과격 이슬람 무장단체를 탄생시킨채 퇴각하고 말았다. IS는 미국의 잘못된 이라크 침략의 결과물이다. 오바마는 IS와의 전쟁을 선포하였지만 미국은 IS를 격퇴할 힘도 의지도 없어 보인다. 아프가니스탄은 또 어떤가. 2001년 미국은 가공할 첨단무기로 아프가니스탄을 폭격하고 알카에다와 탈레반정권을 궤멸시켰다고 공언하였지만 탈레반과 알카에다는 여전히 아프가니스탄에서 기세를 떨치고 있다. NATO와 정부군이 화력이 앞선다고 해도 험난한 산악지대에서 게릴라전을 펼치는 탈레반을 완전히 소탕하기는 불가능하다.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으로 미국이 군사적으로 개입한 나라들은 모두 분열되었고 이들 지역에서 테러에 대한 공포는 더욱 증가하였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은 전지구적으로 테러와의 전쟁을 펼쳤다. 그러나, 테러와의 전쟁은 결국 더 큰 혼란들을 야기하고 말았다. 이러한 혼란들이 미국이 의도적으로 원했든 아니면 불가항력이었든 간에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에서 실패하고 말았다. 미국이 군사적으로 개입한 나라들에서 테러세력들이 더욱 세력을 확장하는 현실을 보면서 미국은 과연 대테러 전쟁국인지 아니면 혼란의 주범인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은 독재자 사담후세인을 제거하고 이라크에 민주주의를 확산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끊임없이 펼쳐지는 민간인들에 대한 테러를 보면서 그들의 주장은 위선적인 거짓으로 판명되고 말았다. 이슬람 지하드 운동은 잡초와 같아서 밟을수록 생명력이 강해진다. 미국은 어떠한 무기를 사용해도 그들을 굴복시키지 못한다. 이라크,시리아,아프간,리비아에서의 혼란은 힘으로 무슬림들을 제압하려는 미국의 오만함이 자초한 것이다.
2015년 2월 5일 목요일
부채로 몰락하는 서구와 브릭스(BRICS)의 부상
현재 한국의 총부채는 4500조원 수준이다. 가계부채와 공공부채(정부+공기업)는 1000조원이 넘고 기업부채(기업+자영업)는 2400조원에 이른다. 총부채가 GDP의 3배를 넘어섰다. 세계최고의 경제대국인 미국의 공공부채는 17조 달러, 총부채는 무려 60조(약 6경원?) 달러에 이른다. 미국의 총부채 비율 또한 GDP의 3배를 훌쩍 넘어섰다. 미국뿐만 아니라 일본과 유럽등대부분의 서구 선진국들의 총부채 비율도 거의 GDP의 3배 수준에 이른다. 이제 성장이냐 분배냐이 논의는 지엽적인 문제가 되었다. 근본적인 문제는 바로 부채다. 미국, 유럽, 일본등 서구 선진국 경제는 높은 부채와 버블로 인해 만성적인 저성장과 고실업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은 금융위기 이후 양적완화를 통해 지속적으로 달러화를 찍어내고 있으나 양적완화도 이제 한계에 봉착했다. 경기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 발행한 부채가 이제 경제의 발목을 잡는 원인이 되고 있다. 부채에 대한 과중한 부담으로 인해 소비자들의 소비여력이 줄어들고 이것이 내수침체로 이어지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또다시 부채를 남발하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부채의 부담은 가진자들 보다는 경제적 약자들에게 더 많이 돌아가며 이로 인해 부자와 빈자간의 양극화는 더욱 심화된다. 부채는 미래자원을 앞당겨 사용하는 것이다. 천연자원이 풍부한 미국은 셰일오일의 개발등으로 어느 정도 부채의 부담을 완화할 수 있다. 그러나, 셰일오일은 원유보다 높은 채굴 비용이 들고 여러가지 환경오염을 수반하기 때문에 거시적으로 실익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어쨌든 미국은 풍부한 천연자원을 보유하고 있어서 부채로 인한 리스크를 경감할 수 있다. 하지만 유럽과 일본등 자원빈국들은 부채의 부담을 고스란히 국민들이 떠 안을 수 밖에 없다. 이들 국가의 기득권세력들은 부채로 인한 스트레스를 높은 실업율과 과중한 세금등의 형식으로 민중들에게 떠넘기고 있다. 신자유주의 즉 후기자본주의는 부채와 버블로 인해 몰락할 수 밖에 없다. 냉전 종식 이후 세계 정치 경제의 헤게모니를 장악했던 미국은 천문학적인 부채로 인해 경제적 리더십을 상실해 가고 있다. 화폐를 남발하여 경제를 부양하는 미국식 신자유주의는 실패했으며 미국과 유럽등 서구선진국들은 이제 몰락의 운명에 처해 있다. 쇠퇴하는 서구를 대신하여 BRICS(중국, 러시아, 인도, 브라질,남아프리카)등 신흥 경제강국들이 세계 경제를 주도할 것이다. 이들 국가들은 부채가 많을 뿐만 아니라 풍부한 지하자원과 노동력을 보유하고 있다. 브릭스의 부상은 서구가 지배하던 문명사회가 이제 비서구화된 세상으로 향해가고 있음을 의미하다.
2015년 2월 4일 수요일
악화되는 우크라이나 사태와 미국의 실패
미국 대통령 오바마는 미국이 우크라이나의 유로마이단 쿠데타에 개입하였으며 정권교체에 재정지원을 했다는 사실을 시인했다. 손바닥으로는 하늘을 가릴 수 없는 법이다. 어쨌든 미국은 우크라이나를 얻었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우크라이나 사태는 미국의 당초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군은 돈바스지역에서의 최근 공방전에서 도네츠크와 루간스크 공화국 군대에 패배하여 최전방 전선에서 퇴각했다. 만약 휴전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우크라이나 내전은 동남부지역을 넘어 우크라이나 전역으로 확산될 수도 있다. 우크라이나 내전의 희생자가 이미 5천명을 넘어섰고 부상자만 만명을 넘어섰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어 사용인구가 30%에 육박하며 친러시아 성향의 주민들은 전체인구의 과반을 넘는다. 도네츠크뿐만 아니라 쿠데타정권이 장악하고 있는 키에프와 서부지역도 언제 갈등의 불길이 점화될지 알 수 없다. 미국의 당초 목적은 우크라이나의 정권교체를 통해 우크라이나를 EU와 NATO에 가입시키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가 NATO의 회원국이 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러시아는 결코 우크라이나가 NATO에 가입하는 것을 용인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NATO에 편입시키려고 한다면 미국은 러시아와의 핵전쟁을 불사해야만 한다. 하지만 미국은 러시아와의 핵전쟁에서 결코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미사일방어망과 전략 미사일(ICBM)등 핵 전력에서 러시아는 미국에 앞서 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직접적인 군사개입을 회피하는 이유도 러시아와의 핵전쟁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대신 미국은 끊임없는 경제제재와 미디어전을 통해 러시아의 정권교체를 획책하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도 물밑에서 치밀하고 조용하게 미국의 전략과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응하고 있다. 미국이 러시아와의 핵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면 미국은 결국 우크라이나에서 물러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은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냉전에서의 승리로 착각하고 NATO의 세력을 러시아 국경까지 확장했다. 뿐만 아니라 구소련의 붕괴를 역사의 종말이라는 서구의 승리로 오해함으로써 시대착오적이고 오만한 서구중심주의적 역사관을 드러냈다. 2008년 금융위기를 시점으로 서구중심적 세계는 오히려 쇠퇴하고 있으며 미국의 세계적인 영향력도 점점 감소하고 있다. 그 결과 구소련 붕괴이후 미국중심의 일극적(Unipolar)세계질서가 다극적(Multipolar)질서로 재편되고 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를 결코 자신들의 영향권에 편입시킬 수 없다. 그것은 곧 핵전쟁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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