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31일 금요일

황산(黃山) 여행

장가계(張家界)를 다녀온 후 2달만에 다시 황산(黃山)을 찾았다. 한국 관광객들에게는 장가계가 더 많이 알려져 있지만 중국인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산은 바로 황산이다. 예전에는 황산에 가려면 상하이나 항저우를 거쳐서 갔지만 현재는 황산의 툰시 공항까지 전세기가 들어가기 때문에 황산만 구경하고자 한다면 굳이 항저우나 상하이를 경유할 필요가 없다. 4박 5일 일정으로 황산과 휘주를 둘러보는 패키지 여행단에 참가하였다. 가격이 저렴한 여행상품인 반면 쇼핑센터를 많이 들르기 때문에 매우 피곤한 것도 사실이다. 모두 13명이 참가한 이번 여행에서 함께한 분들은 대부분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이었다.

툰시 국제공항에 내리자 조선족 가이드가 맞이하였다. 가이드는 일행을 휘주 역사박물관으로 안내했다. 황산이 있는 지역의 옛 명칭은 휘주(徽洲)다. 황산을 관광지로 개발하면서 지역의 명칭을 황산시(黃山市)로 개칭하였다. 휘주는 산이 많은 곳으로 농사지을 땅이 부족한 곳이다. 때문에 예로부터 이 지역의 남자들은 공부를 잘 해서 관직으로 나아가든지 아니면 외지로 장사를 하러 가야만 했다. 그래서 휘주는 유명한 정치인이나 대상인(大商人)들을 많이 배출했다. 장쩌민주석이나 후진타오주석도 모두 휘주 출신이고 현재 중국 국무원 총리인 리커창(李克强)도 안휘성 출신이다. 상인으로는 청나라 말기의 거상인 호설암이 바로 휘주 출신이다. 한편 휘주로 시집온 여자들은 남편이 돈을 벌기 위해 외지로 나가면 홀로 독수공방해야만 했다. 때문에 휘주 여자들에게는 평생 절개를 지키는 것이 매우 중요한 덕목이었다. 반면 남편은 아내에 대한 의리를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었다. 휘주는 예부터 붓과 벼루등 문방사우로 유명한 고장이다. 공부를 잘 해야만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에 진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휘주의 집들은 대부분 까만색 지붕에 벽은 하얀색이다. 그것은 종이와 먹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만큼 물산이 풍부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 곳 사람들은 예로부터 공부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휘주 박물관을 구경하고 나서 '청대 옛거리' 라오지에(老街)로 향했다. 라오지에는 청나라때부터 존재했던 전통 시장거리인데 정부에서 이곳의 관광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최근에 재정비를 하였다고 한다. 라오지에는 베이징의 스차하이(十刹海)거리처럼 옛스런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거리다. 전통 공예품과 각종 기념품 가게들이 늘어서 있어서 휘주를 찾는 단체 관광객들은 반드시 들리는 코스다. 라오지에를 구경한 후 호텔에서 저녁 식사를 하였다. 우리가 묵은 호텔은 황산 시내에서 약간 떨어진 개발 특구에 위치하였다. 황산도 중국의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개발 붐이 일고 있다. 곳곳에 크레인이 올라가 있고 한창 건설중인 아파트와 빌딩들이 많았다. 이 곳도 3년만 지나면 크게 변해 있을 것 같다.

이튿날 아침 일찍 식사한 후 일행은 황산으로 향했다. 호텔에서 황산까지는 버스로 약 1시간 20분 정도 걸린다. 황산은 해발 1864m의 산으로 중국의 10대 명승지로 꼽힌다. 1990년에는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황산은 또한 장가계와 함께 아바타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황산은 70년대 말 덩샤오핑이 이곳을 오른 후에 개발 지침을 내려 관광지로 대대적으로 개발되었다고 한다. 황산은 현재도 등산로와 모노레일 공사가 진행중이다. 일행은 운곡(雲谷)케이블카를 타고 광명정(光明頂)까지 올라갔다. 짙은 안개가 끼여 있어서 케이블카에서 주변 경치를 감상할 수는 없었다. 케이블카에서 내려서 광명정까지 약 200m를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광명정은 황산의 3만 7천 봉우리중 두번째로 높은 봉우리로 해발고도가 1860m다. 광명정에서도 안개 때문에 주변 경치를 감상할 수는 없어서 실망감이 찾아 들었다. 사실 황산은 일년중 개인 날이 약 70여일 정도 밖에 안 될 정도로 항상 비가 오거나 안개가 끼여 있는 산이다. 맑은 날 황산을 오른다는 것은 굉장히 운이 좋은 셈이다. 황산은 수줍음이 많은 산처럼 느껴졌다. 자신의 깊은 곳을 함부로 드러내기 싫어한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신비감이 크게 느껴지는 산이다. 황산의 웅장함을 감상하는 것은 고사하고 계단길을 오르내리느라 피곤함이 느껴졌다.


내려올 때는 케이블카를 타지 않고 도보로 6.5km를 걸어서 내려 왔다. 황산의 등산로는 모두 돌계단으로 만들어져 있다. 하지만 계단의 폭이 좁아 발을 디디기가 무척 힘들었다. 계단길을 내려가면서 막대기 양쪽에 무거운 짐을 어깨에 짊어지고 힘겹게 산을 오르는 인부들을 볼 수 있었다. 한 두 사람도 아니고 족히 이백명은 될 것 같은 인부들이 끊임없이 짐을 지고 계단길을 오르고 있었다. 모두 황산 중턱에 있는 호텔에 물건을 실어나르기 위한 것이었다. 야채와 고기등 먹을거리에서 가스통까지 짊어지고 올라가는 모습을 보면서 다소 측은한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저들에게는 그것이 소중한 일자리인 셈이다. 중국은 사람이 많은 나라다. 때문에 인건비가 매우 싸다. 오늘날 중국이 제조업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노동력이 풍부해서 인건비가 싸기 때문이었다. 물론 기구를 이용하여 물건을 올릴 수 도 있으나 그렇게 된다면 일자리가 줄어들게 된다. 때문에 정부에서는 저들의 일자리를 위해서 산에 운송장비를 설치하지 않고 인력으로 짐을 나르게 한다고 한다. 무거운 짐을 지고 산을 오르는 인부들도 어찌 보면 황산의 중요한 경치중의 하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하산길에 안개가 많이 걷혀서 여러 산봉우리들을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황산의 봉우리들은 장가계와는 또 다른 맛이 느껴졌다. 장가계의 봉우리들이 웅장하면서도 기묘하다는 느낌이 들었다면 황산의 봉우리들은 마치 한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오히려 구름과 안개가 낀 모습이 더욱 신비롭게 느껴졌다.


산을 내려와서 식사를 한 후에 시내로 돌아와서 마사지를 받았다. 한국에서 마사지는 상당히 퇴폐적인 이미지가 강하지만 중국에서 마사지 센터는 오픈되어 있는 곳에서 여러명이 함께 마사지를 받는 건전한 공간이다. 중국의 마사지는 매우 유명할 뿐만 아니라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중국에서 마사지는 마땅한 생계 수단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자리라고 할 수 있다.


마사지를 마친 후에 쇼핑센터를 한 곳 들렀다. 쇼핑센터 관광은 중국여행의 필수코스라고 할 수 있다. 주로 찻집,라텍스,진주,한약방등을 들리는데 쇼핑센터 들르는 것이 이제는 그다지 낮설지 않다. 이들 쇼핑센터는 대부분 대부분 조선족들이 운영을 하며 점원들도 대부분 조선족들이다. 어떤 이들은 조선족들이 판매하는 물건이 가짜거나 사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으나 사실 그렇지는 않다. 물론 관광객들을 속이는 경우도 없지는 않겠지만 극히 일부분의 얘기다. 이들도 한족들에게서 물건을 사 와서 한국 관광객들에게 물건을 판매하는 소매상들일 뿐이다. 물건은 대부분 흥정이 가능하지만 지나치게 값을 깍으려는 관광객들을 보면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다. 흥정은 적당한 선에서 끝내는 것이 좋다. 어느 물건이든 품질은 가격에 비례한다. 중국 관광에서 쇼핑센터를 제대로 활용하는 방법은 라텍스든 차든 자신이 꼭 필요한 물건을 적당한 흥정을 통해 구입하는 것이다. 지나친 흥정으로 서로 인상을 쓰는 것은 즐거운 여행 분위기를 해치기 때문에 별로 좋지 않다.


저녁은 한국 식당에서 삼겹살로 먹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연변 조선족이 운영하는 식당이다. 연변 조선족이 운영하는 식당의 한식은 맵고 짠 한식과 기름기가 많은 중식이 섞인 일종의 퓨전음식 같다. 식당 종업원들이나 마사지사들은 대부분 마땅한 생계 수단이 없는 한족들이다. 이들은 서투른 한국말 몇 마디만 배워서 식당이나 마사지샵에서 일을 한다. 한국 관광객들 특히 나이든 사람들 중에는 이들을 함부로 대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서비스가 불만이라며 심하게 불평을 한다든지 욕을 하는 경우도 있고 조롱섞인 농담을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저열한 모습들을 보여준다면 그것은 한국관광객들의 품위만 떨어뜨릴 뿐이다. 최근 중국에서는 혐한류(嫌韓流)의 역풍이 심심치 않게 불고 있다고 한다. 중국의 부상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한국 관광객들의 천박한 행태도 큰 몫을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다음날은 정감촌(呈坎村)과 잠구민택(潛口民宅)을 방문하였다. 정감촌은 18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휘주에서 가장 오래된 고촌이라고 한다. 하지만 현재 남아있는 건물들은 모두 명,청대의 것들이다. 정감촌은 현재도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로 아름다운 연못과 휘주의 옛 건축양식들을 볼 수 있는 곳이다. 특이한 점은 이 곳의 집들은 아래층에는 창문이 없고 2층과 3층에  조그만 창이 나 있다는 것이다. 옛 휘주의 여성들은 절개를 소중히 여겼으며 외관 남자들을 함부로 집에 들이지 않았다. 바깥에서 사람이 문을 두드리면 조그만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고 아는 사람인지 확인한 후에 문을 열어 주었다고 한다. 이곳의 집들은 모두 1층에는 방이 없고 손님을 맞이하는 거실이 있는데 거실에는 탁자를 사이에 두고 의자가 두개 놓여져 있다. 현재 중국의 지도자들이 외국의 사절들을 맞이할 때 탁자를 사이에 두고 의자에 나란히 앉아 좌담을 나누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손님을 맞이하는 중국의 전통적인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특이한 점은 이미 명청대에 2,3층의 목조 가옥을 지었다는 것이다. 한옥과는 달리 온돌난방을 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당시 중국은 건축기술이 상당히 발달했던 것으로 보인다. 잠구민택도 정감촌과 마찬가지로 옛 휘주의 농민들이 거주하던 가옥들이 있는 곳이지만 현재는 사람이 살고 있지 않다.



점심식사를 마친 후에 원래는 온천욕을 하기로 했으나 어르신들의 반대로 그냥 호텔에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황산은 온천이 좋기로도 유명한 곳이다. 아마도 어르신들은 이곳 온천이 우리나라의 사우나같은 곳인줄 알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곳 온천은 노천 개방온천으로 수영복을 입고 들어가는 곳이다. 하릴 없이 호텔에서 어제 식당앞에서 산 망고를 까 먹으며 TV를 보면서 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었다. 어제와는 달리 해가 강하게 내리쬐는 날씨라 돌아다니기도 힘들고 호텔 주변은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라 달리 구경할 만한 곳도 없었다.

시내로 나와 저녁을 먹은 후에 '휘운가무쇼'를 보았다. 중국 여행의 백미는 뭐니뭐니해도 가무쇼가 아닐까 싶다. 중국의 가무쇼는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배경으로 화려한 춤과 음악이 어우러진 중국특색의 뮤지컬이다. 휘운가무쇼는 상하이 기업이 투자한 가무쇼로 유명한 장이모 감독이 연출 지도를 일부 했다고 한다. 역시 예상대로 화려하고 볼 만한 쇼였다. 특히 선녀가 하늘에서 꽃을 뿌리는 장면은 다른 지역의 가무쇼에서는 볼 수 없는 매우 독창적인 연출이라고 생각한다. 휘운가무쇼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휘주의 역사와 문화다. 극중에는 어머니가 아직 어린 아들을 매몰차게 외지로 내보내는 장면이 나온다. 아들이 외지에서 장사를 하여 성공하여 집에 돌아와 보니 어머니는 이미 늙었고 미처 효도를 해드리지도 못하고 돌아가는 모습만 지켜보는 애닲은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이처럼 외지로 나간 휘주의 상인들은 중국의 상권을 장악하면서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또한 경극의 기원도 바로 휘주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경극은 휘주의 상인들이 개발한 연극인데 경성(京城)의 황제에게까지 소문이 퍼져서 이들은 황제앞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다. 황제는 이들의 공연을 매우 즐겁게 감상하였고 이들을 경성에 상주하게 하면서 공연을 하게 하였다. 때문에 경극(京劇)이라는 말이 이 때부터 탄생하게 되었으나 사실 경극의 기원은 휘주인 셈이다.

다음날 아침 6시쯤 전화벨이 울렸다. 가이드의 목소리가 들렸다. 날씨가 괜챦으니 다른 팀에 합류하여 황산을 다시 구경할 의향이 있는지 물어보는 것이었다. 나는 흔쾌히 가겠다고 답했고 부랴부랴 아침식사를 한 후에 호텔 로비로 나왔다. 가이드에게 케이블카와 차량비등을 지불하고 어제 온 여행객들과 함께 다시 황산을 오르기로 했다. 천하의 명산인 황산을 언제 다시 올지도 알 수 없고 첫 날 황산을 제대로 본 것도 아니기 때문에 크게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더욱이 날씨도 매우 맑고 좋았다. 다른 팀의 가이드는 태평케이블카를 타고 반대편으로 올라가는 코스를 택했다. 태평케이블카는 100명이 탈 수 있는 큰 케이블카로 다행히 날씨가 좋아서 주변으로 황산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상쪽으로 다가가자 다시 안개가 끼기 시작하였다. 케이블카에서 내리자 안개는 더욱 짙어졌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맑고 쾌청한 날씨가 짙은 구름과 안개가 끼면서 흐려졌다. 황산의 날씨는 참으로 종잡을 수가 없다. 가이드는 구름이 더 끼기 전에 빨리 보아야 한다며 서둘렀고 일행은 가이드를 따라서 서해 대협곡을 구경하였다.




다행히 구름 사이사이로 황산의 비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확실히 장가계와는 다른 경치였다. 마치 신선이 살 것 같은 깊이있고 그윽한 경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장가계를 다시 찾는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지만 황산을 다시 찾는 사람들은 많다고 한다. 항상 구름과 안개로 덮여 있기 때문에 제대로 감상하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황산만의 독특한 매력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실 이런 깊이있는 경치는 어느 곳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황산의 또다른 매력은 바로 등산로가 아닐까 생각 한다. 자연의 경치야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수 있게 한 것은 바로 인간이다. 사람이 다니기 힘든 협곡에 등산로를 설치한 인간의 힘도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7.5km의 장가계 케이블카도 대단했지만 황산의 등산로도 인간이 만든 위대한 예술작품이 아닐까 생각한다.


서해대협곡을 본 후에 일행과 함께 가이드의 권유로 경치가 빼어나다는 동해 대협곡 코스로 걸었다. 하지만 보슬비가 어느새 굵어지면서 폭우가 내리기 시작했다. 산 정상의 휴게소에서  산 우비를 입었지만 비가 너무 많이 쏟아져서 신발이 다 젖었다. 시신봉(始信峰)에 올라가기는 했지만 주변 경치는 볼 수 없었다. 비를 맞으며 동해 대협곡 길을 걸어 운곡삭도 입구로 와서 케이블카를 타고 하산하였다.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없다고 하지만 황산의 날씨는 더욱 알 수 없다. 하지만 천변만화하는 황산의 날씨도 황산의 비경중의 일부가 아닐까 생각한다. 산을 내려와서 식사를 한 후 쇼핑센터를 들른 후에 삽겹살로 마지막 저녁 식사를 하였다. 궂은 날씨 때문에 약간 섭섭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황산에 올라가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 올라가는 것보다 두번 올라가는 것이 그래도 기억에 오래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날은 산월풍정촌(山越風情村)을 들렸다. 산월족은 중국의 55개 소수민족중의 하나로 현재 미얀마 사람들과 같은 종족이라고 한다. 원래는 평지에 살던 사람들이었으나 한족에 밀려 산속에 들어가서 살았다고 한다. 이들은 산속에서 나무로 된 집에서 살면서 원초적인 생활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곳은 더 이상 사람은 살지 않으며 관광지로 조성해 놓고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산월족들의 생활모습을 보여주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산월족들의 토속적인 공연과 묘기도 보여주며 북소리와 노래에 맞춰 관광객들의 손을 잡고 춤을 추기도 한다.

4박5일간의 황산 여행이 모두 끝났다. 패키지 여행 관광치고는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황산 뿐만 아니라 중국의 유명한 정치가와 상인들을 배출한 휘주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할 수 있어서 의미있는 여행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왠지 섭섭한 느낌도 든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명산중의 명산 황산을 중점적으로 보려 했지만 천변만화하는 날씨 때문에 제대로 황산을 감상하지 못했던 때문도 있고 아무것도 안하고 보낸 시간이 꽤 많아서 그다지 알 찬 여행이었다고는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고 호텔에서 TV로 중국방송을 보면서 중국문화를 간접적으로 체험한 것도 좋은 경험이었다.

황산여행 사진모음

2013년 3월 23일 토요일

장가계(张家界) 여행

한국인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다는 장가계를 여행하기로 결정했다. 여행사를 통한 단체 관광으로 신청을 하였고, 3월 18일부터 4박 5일동안 장사-장가계를 돌아보는 여행 일정이었다. 인천공항에서 장사까지 중국 동방항공을 타고 이동한 다음 장사에서 1박후 이튿날 장가계로 버스를 타고 이동하였다. 이번 여행의 가이드도 역시 연변 출신의 조선족 남자로 할아버지의 고향이 경상도라고 한다. 장가계에는 조선족 가이드만 약 6백여명이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그 정도로 장가계는 한국인 관광객들에게 인기있는 여행지다. 이번 여행의 참가자는 모두 14명, 가이드와 운전기사 그리고 보조 가이드와 비디오 기사까지 모두 18명이다. 보조 가이드는 역시 조선족이고 비디오 기사와 운전기사는 장가계의 원주민인 토가족 출신이다.


장사의 호텔을 출발했을 때 비가 오는 궂은 날씨였으나 이내 날씨가 개이고 해가 나기 시작했다. 장사에서 장가계까지는 버스로 약 5시간 거리다. 장가계에 도착하자마자 점심 식사를 한 후 케이블카를 타고 천문산으로 올라갔다. 천문산 케이블카는 길이가 무려 7.5km로 이동시간만 30분이 넘는다. 게다가 웅장한 바위산과 낭떠러지위를 지나기 때문에 무척 스릴이 넘치고 아찔하다. 어찌나 무서운지 케이블카를 타고 내리는 사람중에는 구토를 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케이블카를 타고 천문산 꼭대기를 올라간 후 유리잔도와 귀곡잔도를 따라 걸었다. 유리잔도는 바닥을 유리(투명 플라스틱)으로 만들어 놓아 아래를 쳐다보면 낭떠러지가 보이게 만들어 진 것이다. 귀곡잔도는 바위협곡 가운데 만들어 놓은 길로 이 길을 따라 걷다보면 천문산의 신기하고 웅장산 산세와 아름다운 절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귀곡잔도를 따라 내려오면 천문산사라는 절이 있다. 당나라때 세워졌다는 천문산사에서 절과 주변 경치를 구경하였다.


케이블카를 타고 산 중턱으로 내려가서 이번에는 셔틀 버스를 타고 꾸불꾸불 고갯길을 따라 올라가서 천문동으로 갔다. 천문동은 엄청난 크기의 바위 구멍을 말한다. 이 구멍으로 경비행기 4대가 지나간 적도 있다고 한다. 천문동을 보면서 장가계의 매력과 웅장함에 다시한번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버스 승차장에서 가파른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천문동으로 갈 수 있다. 천문동의 반대편은 현재 한창 공사중이었다. 천문산 케이블과 귀곡잔도 그리고 천문동은 장가계의 하이라이트라고 볼 수 있다. 장가계는 카르스트 지형의 대표적인 예로 수억년에 걸친 침식작용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그야말로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세계적인 자연경관이다.

천문산을 구경한 후 산을 내려와 저녁 식사를 한 후 천문산쇼를 관람하였다. 천문산쇼는 장가계 여행의 또 다른 백미로 화려한 무대를 배경으로 중국의 전통과 현대적인 감각을 함께 느낄 수 있는 화려한 뮤지컬이다. 특이한 점은 무대가 산을 배경으로 야외에 설치되어 있다는 것이다. 베이징에서는 금면왕조 항저우에서는 송성가무쇼를 보았지만 천문호선쇼는 두 가무쇼와는 또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는 멋진 공연이다. 공연을 관람한 후 호텔로 돌아와 휴식을 취했다. 어제밤에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던지 호텔에 도착해서 씻자마자 바로 곯아 떨어졌다.

둘째날, 호텔에서 조식을 한 후 가이드의 인솔로 보봉호를 구경하였다. 보봉호는 반 인공, 반자연의 호수라고 하며 유람선을 타고 약 30분간 투어를 하였다. 장가계는 산도 아름답지만 계곡과 호수도 무척 아름답다. 보봉호 유람선 투어는 무척 재미있는 연출도 하고 있다. 배를 타고 호수에 들어갈 때는 움막에서 아가씨가 나와서 노래를 부르더니 나갈 때는 총각이 나와서 중국의 전통 노래를 멋들어지게 부르는 것이다. 보봉호 유람을 마치고 일행은 가이드의 인솔로 진주가게와 동인당약방을 들렀다. 중국 단체관광에서 쇼핑센터는 필수 코스다. 약간 짜증날 수도 있지만 쇼핑센터를 들르는 것도 단체여행의 재미라고도 할 수 있다.


점심 식사를 한 후 오후에는 천자산과 원가계를 구경하였다. 천자산은 역시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갔다. 2.5km 길이의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면서 신기한 기암절벽과 바위산들이 보였으나 고도가 높아질수록 안개가 짙게 끼어서 주변 경치를 더이상 볼수 없었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어필봉과 선녀바위등을 구경하였다. 다행히 안개가 서서히 걷혀서 천자산의 비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역시 깊은 낭떠러지와 신기한 기암괴석이 입에서 절로 감탄이 나오게 만들었다. 장가계 여행을 '와와' 여행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 이유는 사람들의 입에서 와,와 하는 감탄소리가 끊이질 않기 때문이다. 선녀바위 옆에는 중국 혁명의 영웅인 장가계 출신 하룡장군을 기리기 위한 하룡 공원이 있다. 하룡장군 동상은 마치 천자산의 바위산과 같은 컨셉으로 만들었는데 그 뜻을 영원히 기리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천자산을 구경한 후 셔틀버스를 타고 원가계를 구경하였다. 천자산과 원가계에는 천문산과는 색다른 느낌의 바위산과 절경들을 볼 수 있다. 이곳에는 길게 일자로 우뚝 솟은 바위산들이 계속해서 펼쳐져 있는 곳이다. 이곳은 바로 영화 아바타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바위산과 바위산 사이를 연결해주는 천하제일교에는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기 위해 자물쇠가 잔뜩 채워져 있었다. 도보로 원가계의 절경을 구경한 후 백룡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면서 또 한번 원가계의 비경을 감상하였다. 가이드의 추천으로 버스를 타지 않고 약 한 정거장 정도를 걸어내려가면서 주변 경치를 바라보니 원가계의 바위산들이 위에서 내려다 볼 때와는 또다른 느낌이 들었다. 저녁식사후에는 호텔에서 발마사지를 받았다. 마사지도 중국 단체여행의 필수코스다. 마사지사들은 모두 장가계의 토가족이었다. 하루종일 걷고 마사지까지 받았더니 이내 피로가 엄습해와서 방에 들어가자마자 잠이 들어버렸다.


셋째날, 아침 식사후에 원가계의 또다른 절경인 십리화랑을 구경하였다. 모노레일을 타고 가면서 십리화랑의 신기한 바위산들을 감상하였다. 특이하게도 각각의 바위산에는 이름이 붙여져 있다. 그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약초캐는 할아버지. 바위의 모양이 등에 망태기를 맨 할아버지를 연상시킨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모노레일의 종점에는 세자매 바위가 있다. 세개의 우뚝한 바위가 이어져 있는데 자세히 보면 세명이 아니라 여섯명이다. 세 자매가 각각 아이를 등에 없고 가슴에 안고 있고 마지막 자매는 임신을 한 모습이다. 저런 바위산에 각각 이름을 붙인 중국인들의 상상력과 센스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십리화랑을 구경한 후 라텍스 가게를 들렸다. 나는 라텍스 베개와 이불을 구입했다. 라텍스는 중국 하이난다오에서 나는 천연고무를 재료로 가공한 것으로 항균력이 매우 뛰어나고 오래 쓸 수 있다고 한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거위털 이불가게에 들렀다. 아주머니들이 이불을 구입하는데 여자들은 깍고 또 깍고 쇼핑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이후에 일행은 대협곡으로 갔다. 대협곡은 깊은 바위 절벽이 펼쳐진 곳이다. 이곳을 계단을 따라 내려오다가 아래쪽에는 미끄럼을 타고 내려올 수 있도록 썰매길이 만들어져 있었다. 썰매를 타고 내려 오는 것도 기분이 좋았다. 썰매를 탄 후에는 다시 긴 트레킹 코스가 펼쳐져 있는데 에머랄드빛 시내물과 어우러진 산세가 압권이었다. 대협곡의 마지막 코스는 목선 유람선을 타고 이동하였다. 일단의 싱가포르 관광객들을 볼 수 있었다.


대협곡 투어를 마치고 일행은 마지막 쇼핑센터인 찻집으로 향했다. 찻집에서 나는 보이차 한세트를 구입했다. 보이차는 운남에서 나는 발효차로 성인병과 지방제거에 아주 좋다고 한다. 저녁 식사후에 일행은 장가계의 인사동으로 불리는 서부거리의 야경을 구경하였다. 그곳의 광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흥겹게 에어로빅을 추고 있었다. 중국여행을 하다보면 이렇게 단체로 태극권이나 에어로빅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서부거리를 구경한 후 호텔로 돌아와 휴식을 취했다.

넷째날, 장가계 여행 마지막 날이다. 오전에는 황룡동굴을 구경하였다. 황룡동굴은 엄청난 스케일의 동굴로 그 안에는 수많은 종유석과 석순을 볼 수 있다. 동굴 내부에는 또한 넗은 호수가 있어서 보트를 타고 가며 동굴 주변을 감상하였다. 장가계와 원가계가 지상세계의 웅장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라면 황룡동굴은 지하세계의 웅장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황룡동굴 주변에 펼쳐진 노랗게 물든 유채꽃 풍경도 놓칠 수 없는 풍경이었다. 황룡동굴을 끝으로 장가계 여행이 모두 끝났다. 장가계는 죽기 전에 한 번은 꼭 봐야할 천하제일의 절경이다. 동굴 여행을 마치고 일행은 점심 식사를 한 후에 농산물 센터에 들렀다. 농산물 센터에는 연변 참께를 파는데 중국에서 파는 참께는 값이 저렴하고 방부제 처리가 되어 있지 않아서 나이드신 분들이 많이 찾는다.

장가계에서 장사까지 약 5시간동안 버스로 이동하였다. 장사에서 들른 곳은 열사공원과 장사 임시정부청사 두 군데였다. 열사 공원은 중국 혁명을 위해 희생한 사람들을 기리기 위해서 만들어진 공원으로 장사의 명소로 알려져 있다. 또한 장사에는 상해와 마찬가지로 임시정부 청사가 아직 남아 있다. 현재 이곳은 김구선생의 동상이 모셔져 있고 장사에서 한국 독립운동 활동의 역사를 배울 수 있는 기념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장사 임시정부청사 구경을 마치고 부페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한 후에 마사지 센터에서 전신마사지를 받았다.

장사는 인구 약 700만의 중국 남중부의 중심 도시다. 이곳은 장가계와는 달리 제조업도 발달된 곳이다. 이곳의 대표적인 기업은 삼일중공업으로 이 회사의 회장은 중국 최대 갑부로 불린다고 한다.  현재 장사는 중앙정부에서 중부권 대개발의 중심도시로 키우기 위해 몇년후에는 인접도시들과 통합하여 중국 최대의 직할시가 된다고 한다. 장사의 중심가는 북경이나 상해와 마찬가지로 높은 빌딩들로 발전된 모습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빌딩들이 세워지고 있다. 장사와 장가계가 있는 호남성은 중국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수많은 인물들을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마오쩌둥 주석,류샤오치,주룽지 총리등이 호남성 출신이라고 한다. 중국인들에게는 장가계보다는 마오쩌둥 주석의 고향인 소산이 더 인기있는 여행지라고 한다.

우리 일행은 장사공항에서 가이드와 악수를 나눈 후 헤어졌다. 수많은 옵션과 쇼핑센터에서 많은 물품을 구매해준 덕에 가이드도 몹시 흡족한 모습이었다. 2020년이 되면 중국의 경제규모가 미국을 추월한다고 한다. 중국의 부상은 이제 미래의 일이 아닌 현실이 되고 있다. 미국의 쇠락과 중국의 부상이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라고 한다면 우리의 눈이 서쪽을 향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과거에는 미국과 일본으로 유학가는 학생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중국으로 더 많이 유학을 간다. 그 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역량 규모면에서 중국은 미국과 일본을 합친 것보다 더 크다. 아직도 중국을 짝퉁의 나라 가짜가 판치는 나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러한 생각들을 제고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사용하는 가전제품과 의류등 우리의 실생활과 밀접한 제품들은 거의 대부분 중국에서 만들어진 것들이기 때문이다. 중국을 경계하고 멀리하기 보다는 부상하는 중국과 협력을 강화하여 공동 번영의 길을 찾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