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31일 일요일

코비드의 배후세력들

코비드의 배후세력은 인터넷이 지배하는 사회를 꿈꾸는 빅테크 기업들과 오웰리안 전체주의 사회를 꿈꾸는 정치권력들이라는 사실이 점점 명확해지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이득을 보는 세력은 저 둘 뿐이다. 최근의 조사에 의하면 코로나 판데믹으로 인해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아마존과 애플 등 빅테크 기업들은 코로나 경기침체 와중에도 오히려 큰 폭의 수익상승을 기록했다. 반면 자영업자들과 저소득 근로자들은 생존의 위기에 처해 있다. 코로나로 인한 락다운으로 인해 아이러니하게도 부자들은 더욱 부자가 되었으며 가난한 사람들은 더욱 가난해진 것이다. 또한 바이러스의 확산을 차단하기 위한다는 명분으로 각국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락다운과 온갖 규제들은 바이러스의 확산방지효과보다 정치권력들의 감시와 통제만을 강화시켰을 뿐이다. 판데믹을 빌미로 정치권력들은 시민들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통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공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국민들로부터 세금을 더 많이 거두어들이고 그것을 통해 권력을 더욱 강화하려 할 것이다. 코로나 판데믹은 빅테크 기업들과 정치권력들의 부와 지배력을 강화시켜 주고 있다. 따라서 저들에게 코로나는 재앙이 아니고 오히려 축복인 셈이다. 저들은 '뉴노멀'이라는 말로 시민들에게 코로나로 인한 비정상적인 현재의 상황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하고 있다. 마스크를 강제하고 카페와 레스토랑을 문닫게 하고 온라인 거래나 교육을 하게 함으로써 시민들을 자신들의 헤게모니에 복종시키려 하는 것이다. 코로나 사태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자신들이 원하는 세상이 올 가능성은 높아지기 때문에 무슨 이유로라도 저들은 코로나 사태를 장기화하려 할 것이다. 그렇지만 코로나 사태가 몇년 또는 몇십년 지속된다고 해도 코비드 배후세력들이 꿈꾸는 인터넷이 지배하는 오웰리안 전체주의 사회는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인간의 본성과 자연에 거스르는 어떠한 시도도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021년 1월 28일 목요일

양적완화는 양극화만 심화시킨다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은 2021년 다보스 포럼에서 경기부양을 위한 양적완화는 이제 더 이상 효과가 없다고 말했다. 양적완화는 2,30년 전에나 통할 경제정책이라는 것이다. 부채와 재정지출 증가를 통한 경기부양은 자산가치 버블을 만들고 결국 양극화만 심화시킬 뿐이다. 세계 각국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경기침체에 대응하기 위하여 통화량을 증가시키는 양적완화 정책을 취하고 있다. 그로 인해 주가가 오르는 등 단기적인 효과가 있는 듯 보이지만 과연 실물경제에까지 효과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UN의 통계에 의하면 코로나 사태로 인해 직업을 잃은 사람들이 전세계적으로 무려 2억5천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빅테크 기업들과 글로벌 다국적 기업들은 매출과 이익이 증가했다. 정부의 경기부양 정책의 혜택이 가난한 사람들보다는 부유한 사람들에게 더 큰 혜택이 돌아가고 있다는 반증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금리인하로 인한 부채와 통화량의 증가는 결국 부동산 가격의 상승으로 이어져 빈익빈 부익부를 심화시켰다. 대기업들은 실적이 오르는 반면 거리의 자영업자들은 임대료조차 낼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불황에 직면해 있다. 양적완화는 인플레이션만 야기할 뿐 실물경제에는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며 가난한 사람들을 더욱 가난하게 만들 뿐이다. 양적완화에 의한 경기부양정책은 이제 구시대의 낡은 경제 패러다임이 되었으며, 더 이상 경기부양의 특효약이 아니다.

2021년 1월 14일 목요일

한국의 어두운 미래

2020년 한국의 GDP가 세계 10위라고 한다. 문재인정권은 이에 대해서 국민들이 자긍심을 가져도 좋다고 말한다. 하지만 코로나 상황에서도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크게 떨어지지 않은 이유는 정부지출 증가 때문이었다. 정부가 빚내서 하는 경제성장에 불과한 것이다. 정부 빚은 고수란히 국민들의 세금이기 때문에 국민과 미래세대가 느끼는 부담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한국은 이미 내리막길로 접어 들었다. 국가부채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고 재벌과 공무원을 제외한 대다수 국민들의 삶은 궁핍해지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을 좀먹는 양대축은 공공부문과 재벌이다. 이 두 부문이 기형적으로 비대해져서 한국의 경제와 사회구조를 왜곡시키고 민생을 침몰시키고 있다. 통계와 지표상으로 보이는 한국의 경제규모는 공공부문과 재벌에 집중되어 있어서 실제로는 과장된 것이다. 부와 권력이 양 부문에 과도하게 집중된 결과 민간은 축소될 대로 축소되고 자영업과 중소상공인들은 아사상태에 직면하고 있다. 공공부문과 재벌을 축소시키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앞으로 회생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고령화의 수렁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더욱 암담하게 만들고 있다. 작년 최초로 한국의 인구가 감소했다. 부동산가격 폭등과 세금의 증가로 청년층이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면서 신생아가 줄어든 것이다. 출산율 감소는 그만큼 국민들이 먹고 살기 힘들다는 뜻이다. 그리고 노인인구의 증가로 복지지출이 증가하고, 노동인구의 감소로 인해 경제의 활력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한국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또다른 요인은 정치와 국민성에 있다. 현재 대한민국은 정부와 민간 모두 부패했다고 할 수 있다. 정치는 국민들의 이익을 대변하기 보다는 이제 기득권의 이익을 대변하는 도구로 전락해버렸다. 정치가 대변하는 기득권이란 바로 공공부문과 재벌이다. 하지만 정치가 바로서려면 국민들이 각성해야 하지만 한국의 국민성은 선진국 수준이라고 할 수 없다. 오히려 이기주의의 팽배와 남을 배려하지 않는 천박한 국민성으로 인해 한국사회는 더욱 병들어가고 있다. 한국에서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 아니라 기득권을 더욱 공고히 하는 수단으로 전락했다. 선거로 대한민국을 바꿀 수 있는 기회는 2017년 대선이 마지막이었다. 만약 당시 안철수가 문재인을 꺽고 대통령이 되었다면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중도정당이 집권하게 되고 대한민국은 그나마 변화의 희망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늦었다. 기득권에 포획된 정치가 한국을 변화시킬 가능성은 희박하다. 정치가 국민의 삶을 개선하지 못하는 이상 다수의 국민들에게 투표행위 자체가 점점 의미없는 행위가 되어가고 있다.

2020년 12월 23일 수요일

안철수 서울시장 출마에 대한 단상

안철수가 서울시장 출마 선언을 했다. 하지만 나는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 문재인정권의 실정에 대한 심판여론이 확산되고 있지만 서울시장 선거는 그다지 호락호락하지 않다. 안철수가 서울시장에 당선되기 어렵다고 보는 이유는 세가지가 있다. 첫째, 안철수는 세력이 없다. 한국의 정치는 결국 세대결인데 안철수는 적극지지층이 보수 진보층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둘째, 보수세력들은 그가 서울시장에 당선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2018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보수층은 안철수가 아닌 김문수를 선택했다. 문재인정권 심판을 위해서는 보수층의 지지를 받아야 하지만 이번에도 그들은 관성에 의해 자신들의 후보를 찍을 것이며 안철수를 찍지는 않을 것이다. 셋째, 서울시민들이 의식수준과 변화에 대한 열망이 높지 않다. 지난 2018년 선거에서 서울시민들은 박원순을 선택했고, 이번 재보궐선거를 야기했다. 이는 서울시민들의 정치의식과 변화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낮은지를 나타내는 것이다. 서울시장은 결국 서울시민들이 선택하는 것이다. 그들이 박원순같은 인물을 뽑았다는 것은 결국 유권자들의 수준이 박원순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말해 준다. 안철수는 한국사회의 기득권세력들에게는 여전히 '아웃사이더'다. 정치계뿐만 아니라 주류 언론과 재벌들에게도 안철수는 변종으로 인식되며 경계의 대상이다. 주류 언론들은 그를 흥행몰이의 수단으로 생각할 뿐 띄워줄 생각은 없다. 한국사회의 부를 독점하고 있는 재벌들도 안철수에 대해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다. 안철수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득권세력들은 페이스 메이커로 그를 써먹을 수는 있어도 권력을 가진 안철수를 경계하고 있다. 이번 보궐선거도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가 완주를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서울시장에 당선가능성은 그다지 높아 보이지 않는다.

2020년 11월 13일 금요일

중국몽과 다극화시대

우리가 중국몽을 거부해야 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21세기 중국은 몽골제국 이후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황인종 국가가 되려 하고 있다. 같은 황인종인 한국인으로서 중국의 부상은 한편으로는 매우 자랑스런 일이다. 중국의 부상은 대항해시대 이후 서구중심의 세계가 재편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중국이 세계경제를 지배하는 것은 모든 아시아인들에게 바람직한 것이다. 중국이 공산당 일당독재 국가이기는 하지만 중국의 경제적 번영이 정치적 이슈로 폄하되어서는 안된다. 14억 인구의 중국이 이룩한 경제적 성과는 놀라운 것이다. 한국은 이제 미국중심주의에서 벗어나 번영하는 중국과 함께 번영하는 유라시아의 시대에 동참해야 한다. 한미동맹은 고작 70년이지만 한중동맹관계는 2천년이 넘는다. 지난 2천년동안 중국과 한반도는 우호관계를 유지해왔고 한국인들의 조상은 중국과 유라시아대륙에서 건너온 사람들이다. 서구의 백인들보다 중국인들에게 문화적 인종적 친근감을 느낀다. 반면 산업혁명 이후 세계질서를 주도해온 서구의 백인들은 오만하다. 그들은 중국의 부상에 당황해하고 있다. 세계의 중심이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다시 유라시아 대륙으로 이동하고 있다. 한국은 부상하는 중국의 등에 올라타고 경제적으로 번영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중국은 아시아의 용이다. 중국의 실크로드 프로젝트에 동참하고 중국어를 배워라. 미국은 쇠퇴하고 있다. 세계는 다극화시대로 가고 있다.

2020년 11월 7일 토요일

4차산업혁명은 허구다

4차산업혁명 담론은 이제 중단되어야 한다. 4차산업혁명은 존재하지 않는 신기루다. 빅데이터는 빅브라더화가 되고 AI는 바둑정도에만 쓰이고 있다. 5G기술은 개인에 대한 감시와 통제기능만을 강화할 뿐 무선통신 기술의 발달은 이제 무의미하다. 코로나 바이러스 방역을 빌미로 권력과 디지털 빅테크들이 결탁하여 개인의 자유와 기본권마저 침해하고 있는 현실이다. QR코드와 안면인식 기술등 이제 디지털 기술은 빅브라더의 감시를 위한 도구가 되어가고 있다. 4차산업혁명은 실리콘밸리의 디지털 빅테크 업체들이 자신들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만든 허구적 담론에 불과하다. 디지털기술은 인간의 행복과는 무관하다. 스마트폰은 대중들을 지하철에서 핸드폰이나 보고 게임이나 하는 바보들로 만들었다.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SNS도 이제 그저 낙서장 정도나 정치인들의 글에 댓글을 다는 정도로만 쓰이고 있다. 스마트폰은 이제 휴대용 카메라 정도외에는 큰 효용을 찾을 수가 없다. 그린뉴딜, 4차산업혁명 모두 투기자본들이 만들어낸 허황된 담론들이다. 친환경 기술이나 디지털 기술은 인간의 삶을 변화시킬 근본적인 기술들이 아니다. 그저 보조적이고 실험적인 도구들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삶의 본질적 변화를 가져온 혁신은 20세기 초에 이미 끝났다.

2020년 10월 20일 화요일

코로나 암흑기와 K-방역의 어두운 단면

코로나 바이러스의 전세계 확산이 시작된지 8개월이 지난 지금 코로나 블루를 넘어서 코로나 암흑기에 진입했다. 경기도에서는 '마스크는 내친구' 같은 미친 구호가 등장하는가 하면 서울의 한 쇼핑센터에서는 '마스크 쓰고 즐겁게 쇼핑하세요'라는 이상한 문구가 적혀 있다. 마스크 쓰고 즐겁게 쇼핑이 가능한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스크를 쓰고 즐거운 쇼핑을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일상생활도 불가능하다. 한국의 언론과 미디어에서는 K-방역을 성공시킨 물건이 마스크라고 떠들어 대지만 정작 마스크가 바이러스 차단과 확산 방지에 효과가 있는지 확실한 증거는 없다. 단지 마스크를 쓰면 바이러스의 확산이 덜 될 거라는 막연한 추측과 기대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마스크가 감염학적으로 바이러스 차단 효과가 있는지의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마스크는 사회학적으로 불신과 단절의 상징이 되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확산 초기에는 공포감을 주었지만 이제는 서로에 대한 불신과 좌절 그리고 무기력감만 남았다. 바이러스 자체보다 이러한 좌절과 무기력이 한국사회를 침몰시키고 있다. 계속되는 락다운과 마스크 착용 강제 그리고 QR코드와 방명록등 K-방역의 어두운 단면은 자영업과 소상공인의 몰락뿐만 아니라 이웃간의 불신과 스트레스를 초래했다. 마스크를 쓴 얼굴에서는 더 이상 신뢰와 미소는 발견할 수 없다. 불신의 눈초리만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