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3일 목요일

중국 내몽골 여행

6월 28일부터 7월2일까지 4박5일 일정으로 중국 내몽골을 여행하였다. 이번에도 여행사의 패키지상품으로 갔고, 전 일정을 중국인(조선족) 가이드가 안내하였다. 이번에 간 곳은 중국 내몽고자치구(内蒙古自治区)의 오르도스(어얼둬쓰,鄂尔多斯)로 중국 내몽골의 광활한 사막과 초원을 체험할 수 있었다. 밤비행기로 오르도스 공항에 도착하자, 조선족 가이드가 우리를 맞이하였다. 우리는 가이드의 안내로 시내 호텔에서 1박을 하였다. 다음날, 우리 일행은 인컨타라사막(银肯塔拉沙漠)으로 향했다. 인컨타라 사막에서 우리는 오프로드 지프차 등 각종 사막 액티비티를 하였다. 이후에 우리는 사막 크리스탈 호텔에서 1박을 하였다. 사막 크리스탈 호텔은 사막위에 지어진 캡슐형 호텔로 외벽이 유리로 되어있어 사막의 풍광과 일몰 등을 감상할 수 있었다. 우리는 밤 9시 쯤 사막캠프파이어 공연을 본 후에 취침에 들었다. 한여름 오르도스의 사막은 낮에는 매우 덥고, 밤에는 매우 선선해서 일교차가 매우 컸다. 다음날, 우리는 오르도스초원(鄂尔多斯草原)으로 향했다. 오르도스초원은 오르도스의 대초원을 배경으로 한 관광지로, 중국 현지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 곳이다. 초원에 도착한 후 우리는 오르도스 전통혼례식 공연을 보면서 점심식사를 하였다. 점심식사 후에 우리는 꼬마열차를 타고 초원마을로 가서 초원썰매와 활쏘기 등 초원액티비티를 하였다. 이후에 우리는 작은 공연장에서 초원서커스를 관람하였다. 서커스를 구경한 후 우리는 꼬마열차를 타고 관광지 입구로 돌아와 초원마상쇼를 관람하였다. 초원마상쇼는 오르도스 지역의 역사를 소재로 한 마상공연으로 기수들의 현란한 승마술이 압권이었다. 마상쇼를 관람한 후 우리는 저녁식사를 하고 현대식게르에 짐을 풀었다. 현대식게르는 몽골족의 전통가옥인 게르를 현대식으로 개조한 것으로 샤워실과 화장실이 있는 깔끔한 천막식 호텔이었다. 우리는 초원의 일몰을 감상하고, 캠프파이어 공연을 구경한 후 게르에서 하루를 묵었다. 다음날, 우리는 칭기즈칸릉으로 향했다. 칭기즈칸릉은 무덤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기념관으로 중국의 소수민족 우대정책의 일환으로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칭기즈칸이 어디에서 죽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칭기즈칸릉은 중국의 소수민족인 몽골족을 위해 지은 것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몽골의 역사를 자신들의 것으로 편입하려는 중국의 역사공정의 일환이 아닌지 의심스럽기도 했다. 칭기즈칸릉을 관람한 후 일행은 오르도스 문화원에 있는 영화세트장을 구경하였다. 이후에 우리는 저녁식사를 하고, 오르도스 분수쇼를 관람하였다. 오르도스 분수쇼는 음악과 함께 펼쳐지는 장쾌한 분수쇼로 분수의 물줄기가 엄청나게 높고 매우 화려했다. 분수쇼를 구경한 후 우리는 호텔에서 1박을 하였다. 다음날, 우리는 오르도스 불교문화원을 구경하였다. 오르도스 불교문화원은 몽골의 전통불교인 라마교의 양식과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불교문화원을 구경한 후 우리는 내몽골에서의 마지막 일정으로 오르도스 박물관을 찾았다. 독특한 외관의 오르도스 박물관은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오르도스 지역의 각종 유물들을 전시한 곳이다. 오르도스 박물관 관람을 끝으로 내몽골에서의 모든 일정이 끝났다. 중국 내몽골은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초원과 평야가 펼쳐진 모습이 장관이었다. 지평선이 보이는 끝없는 대초원은 몽환적이면서도 아름다운 대자연의 파노라마였다. 뿐만 아니라 공기도 좋아서 밤에는 별을 볼 수도 있다. 중국은 땅이 넓어서 지역마다 풍광과 특색이 달라 관광자원이 풍부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내몽골은 장가계나 구채구 등의 명승지들과는 또다른 특색이 있어서 중국의 색다른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는 추천할만한 곳이다. 내몽골은 원래는 몽골족의 땅이었으나 지금은 한족이 훨씬 더 많이 살고 있다. 오르도스 시내의 풍경도 중국의 다른 도시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고, 호텔과 식당의 음식들도 대부분 중국음식이었다. 또한, 몽골어는 거의 사용되지 않고 대부분 중국어가 통용되고 있어서 몽골느낌은 사실상 없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진짜 몽골을 구경하려면 내몽골이 아니라 몽골을 여행해야 할 듯 싶다.

2025년 5월 30일 금요일

후쿠오카 아소 오이타 3박4일 여행

5월 26일부터 29일까지 3박4일 일정으로 일본 규슈를 여행하였다. 여행지역은 후쿠오카와 구마모토 그리고 오이타였다. 이번 여행도 여행사의 패키지상품으로 갔고, 전 일정을 한국인 가이드가 동행하였다. 오후 늦게 후쿠오카 공항에 도착한 후, 우리 일행은 가이드의 안내로 후쿠오카의 쇼핑몰인 라라포트로 향했다. 라라포트 앞에는 대형 건담 모형이 있는데, 마치 후쿠오카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쇼핑몰 3층 푸드코트에서 자유식으로 저녁식사를 한 후 후쿠오카 힐튼호텔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이튿날 우리는 우키하로 가서 이나리 신사를 구경하였다. 이나리 신사는 오르막길에 놓여있는 수십개의 도리이가 인상적이었다. 이후에 우리는 히타로 이동하여 상점거리인 마메다마치와 쿤쵸 술 저장고를 구경하였다. 히타 마메다마치는 일본의 옛스런 거리의 정취를 느낄수 있는 곳으로, 우리는 이곳에서 냉소바로 점심을 먹었다. 이후에 우리는 구마모토로 이동하여 구로카와 온천마을을 구경하였다. 구로카와 온천마을은 두번째 방문하는 것인데, 예전에 비해 여행객이 많지 않아서 한적한 느낌이었다. 온천마을을 구경한 후 우리 일행은 아소산 쿠사센리 전망대로 향했다. 아소산은 현재도 분화가 진행중인 활화산으로, 쿠사센리 전망대에서 바라본 아소산의 모습은 한폭의 그림과도 같았다. 푸른 초원과 우뚝솟은 활화산이 만들어낸 아소산의 전경은 자연의 경이로움을 새삼 느끼게 해주었다. 아소산 투어를 마치고 우리 일행은 온천 호텔에서 숙박을 하였다. 우리는 호텔 식당에서 대게뷔페로 푸짐하게 저녁식사를 한 후, 온천욕을 하면서 여행의 피로를 풀었다. 다음날, 우리는 아소신사를 구경한 후 유후인으로 이동하여 유후인 민예촌거리와 긴린코 호수를 구경하였다. 7년전 이곳을 방문했을 때에 비해 유후인 민예촌 거리는 좀 더 관광지화된 느낌이었고, 현지인보다는 한국인, 중국인 등 외국인 관광객들로 붐볐다. 유후인을 구경한 후 우리는 벳푸로 이동하였다. 우리 일행은 쥬몬지바루 전망대에서 벳푸시내와 바다의 경치를 감상하였다. 이후에 우리는 유노하나 유황재배지와 가마도지옥을 구경한 후 온천호텔에 투숙하였다. 벳푸는 온천으로 유명한 휴양지로 도시 곳곳에서 온천의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우리는 호텔에서 온천욕도 하고 저녁식사도 하면서 휴식을 취했다. 다음날 우리 일행은 후쿠오카로 이동하여 면세점에서 쇼핑을 한 후 다자이후 텐만구를 구경하였다. 다자이후 텐만구는 학문의 신을 모시는 신사로 연못이 있는 아름다운 정원과 다리가 인상적이었다. 신사 앞 거리는 기념품가게와 음식점들이 늘어선 상점거리로 많은 관광객들로 인산인해였다. 다자이후 텐만구 관람을 끝으로 이번여행의 모든 일정이 끝났다. 일본은 6년만에 방문하는 것이었다. 특히 규슈는 7년전 방문했을 때도 가성비 좋은 온천 호텔과 맛있는 음식으로 만족도가 매우 높았다. 이번에도 훌륭한 온천호텔에서 2박을 하면서 온천욕도 실컷 하고 낫또 등 일본음식도 마음껏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다만 아쉬운 점은 가이드가 건강식품에 대한 홍보를 과도하게 한다는 것과 관광지에서의 물가가 비싸다는 것이었다. 일본은 작년에 약 3천7백만명의 외국인 관광객이 찾아올 정도로 관광산업이 활기를 띄고 있다. 특히 일본을 찾는 한국인 관광객이 9백만명에 육박할 정도로 일본은 한국인에게 매우 인기있는 여행지다. 일본은 가성비 좋은 온천 호텔이 많을 뿐만 아니라, 음식이 우리 입맛에 맞고, 어디를 가든 거리가 깨끗하고 화장실이 청결하다는 것이 장점이다. 일본은 중국과 동남아시아에 비해 웅장한 경관이나 볼거리는 그리 많지 않지만, 소박하면서도 깔끔한 거리와 정갈한 음식 그리고 호텔의 친절한 서비스가 일품이다. 이번 여행을 통해서 자신들의 전통을 지키면서도 평범함의 소중함을 잃지 않으려는 것이 일본만의 매력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2025년 5월 13일 화요일

중국 대련 2박3일 여행

5월 11일부터 13일까지 2박3일 일정으로 중국 대련(大连)을 여행하였다. 이번 여행도 여행사의 패키지 상품으로 갔고, 전 일정을 중국인 현지 가이드가 동행하였다. 대련은 랴오닝성 랴오둥반도 끝자락에 위치한 도시로 우리에게는 여순감옥으로 많이 알려진 도시다. 대련은 러시아 제국이 삼국간섭으로 획득한 도시로 러일전쟁 이전까지 러시아의 항구로 개발되었다. 러일전쟁 이후 대련은 일본의 조차지가 되었고, 일본의 만주침략의 거점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대련은 소련이 관리하다가 이후에 중국에 반환되었다. 인천에서 대련까지 비행시간은 약 1시간으로 제주도 가는 시간과 비슷했다. 대련공항에 도착하자 체구가 큰 조선족 가이드가 우리를 맞이하였다. 우리 일행은 가이드의 안내로 여순감옥과 관동법원을 구경하였다. 여순감옥은 안중근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후 수감되었던 곳이고, 관동법원은 안의사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었던 곳이다. 구한말 독립운동의 역사적 현장을 실제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이후에 우리는 금석탄으로 가서 금석만항거리를 구경하였다. 금석만항거리는 일본풍의 가옥들이 늘어선 관광거리로 야경이 운치있었다. 이후에 우리는 호텔에서 1박을 하였다. 다음날, 우리는 대련으로 가서 동방수성을 구경하였다. 동방수성은 대련의 대표적인 명소로 베네치아처럼 바닷물을 끌어들여 만든 운하에 곤돌라가 다니는 유럽풍 거리다. 대련이 한 때 러시아의 지배를 받아서인지 동방수성뿐만 아니라 시내 곳곳에는 유럽풍의 건물들이 많았다. 동방수성을 관람한 후 우리는 서안로 먹자거리를 구경하였다. 서안로 먹자거리는 대련의 중심가 쇼핑몰 지하에 위치한 먹자골목으로 다양한 중국의 길거리 음식을 맛 볼 수 있다. 나는 이곳에서 취두부와 오징어구이를 먹었다. 이후에 우리는 점심을 먹고 옛 전차 탑승체험을 하였다. 19세기 전차를 타고 달려보니 근대 도시 대련의 역사와 낭만을 느낄 수 있었다. 이후에 우리는 마사지를 받았는데, 매우 센 지압강도의 마사지를 받고 나니 온몸이 개운하고 피로가 풀리는 느낌이었다. 이후에 우리는 쇼핑센터를 들른 후에 성해광장을 구경하였다. 성해광장 앞에는 드넓은 바다가 펼쳐져 있고, 성해만대교가 바다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성해광장은 대련의 또 하나의 명소로 많은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주변경치를 감상하고 있었다. 저녁식사 후에 우리는 성해광장에서 펼쳐지는 야경쇼를 관람하였다. 성해만대교와 주변 건물에서 뿜어내는 레이저 불빛들이 10여분간 장관을 이루었다. 야경쇼를 관람한 후 우리는 헝리호텔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헝리호텔은 67층 높이의 초고층 빌딩에 있는 호텔로, 식당이 67층 꼭대기에 위치한 매우 이색적인 호텔이었다. 다음날 우리는 연화산전망대를 구경하였다. 연화산 전망대는 대련일대를 조망할 수 있는 조망명소로 전망대에서는 대련 시내뿐만 아니라 여순까지도 보였다. 이후에 우리는 인근 동물원의 대관람차를 타고 주변 경치를 감상하였다. 이것으로 대련에서의 모든 일정이 끝났다. 대련은 상하이나 칭다오처럼 유럽풍의 근대식 건물들이 많은 곳으로, 색다른 중국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또한 이번 여행은 여순감옥 등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역사가 깃든 유적지도 볼 수 있어서 의미있었다. 그러나 불쾌한 경험도 하였다. 대련공항 입국시 나는 강제로 검역검사를 받았다. 공항직원이 손짓으로 검역실로 들어가라고 하기에 들어갔더니 여러명의 사람들이 검사를 받고 있었다. 검역원이 막대기로 입속을 찔러 뭔가 검체를 채취하는 것 같았다. 검역실에서 무작위로 입국하는 승객들을 대상으로 이러한 검사를 하는 듯한데, 매우 황당한 경험이었다. 지금까지 해외여행을 다니면서 이렇게 강제로 검역검사를 받은 적은 없었다. 왜 이런 검사를 하는지 어떠한 설명도 없었고, 매우 불쾌했다. 그리고 중국은 공공화장실뿐만 아니라 심지어 공항 화장실도 좌변기가 아닌 재래식 변기였다. 호텔을 제외하면 쪼그려 앉아 용변을 보는 화장실이 대부분으로 이용하기도 불편할 뿐만 아니라 냄새도 심했다. 중국은 수십층짜리 초고층 빌딩들은 그렇게 많이 지으면서 화장실같은 생활편의시설은 왜 개선을 못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또한, 중국 공산당의 인터넷 통제도 여전해서, 해외 인터넷 사이트는 대부분 접속할 수 없었다. 중국은 가깝고 가성비좋은 호텔과 맛있는 먹거리들이 많아 한국인들에게는 여전히 인기있는 여행지다. 하지만 공산당의 과도한 통제와 낡은 화장실 문화는 중국여행의 매력을 반감시키는 요소다. 최근 중국도 인구가 감소하고 있고, 내수침체 등으로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중국 공산당은 고층빌딩과 아파트들을 무분별하게 건설하고는, 이것이 중국의 발전하는 모습이고 자신들의 치적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그러나 아파트 등 부동산 가격의 상승은 중국 서민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고, 이로 인해 청년층이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추세라고 한다. 중국에서 잘 사는 사람들은 공산당 고위 간부들과, 공산당과 결탁한 소수의 재벌들 뿐이다. 중국의 경제발전도 이미 성장세가 둔화되었고, 대다수 인민들이 경제성장의 혜택을 누리기도 전에 중국은 중진국 문턱에서 정체될 위기에 놓여 있다. 한편 중국 공산당의 지나친 쇄국주의와 중국제일주의는 미국 등 서구권은 물론이고 주변국들로부터 비판과 견제를 받고 있다. 만약 중국이 현재와 같은 과도한 통제와 폐쇄적인 시스템을 고집한다면 중국몽은 일장춘몽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