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21일 일요일

인도는 대국이 될 수 있는가?

브릭스(BRICS)국가중에서 러시아와 중국에 이어 이제 인도와 브라질을 주목해야 한다. 특히 인도는 오랜 역사와 인문학적 전통 그리고 330만평방킬로미터의 넓은 국토와 12억이 넘는 인구를 보유한 중견 강국이다. 인도는 넓은 인도양의 한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어서 해양국가로서도 유리한 지정학적 이점을 갖고 있다. 또한 인도는 핵보유국이다. 인도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핵전력을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역사적으로 인도는 무굴제국시기에 국력이 최절정기에 달했다. 특히 타지마할을 축조했던 17세기에는 인도가 세계 최대의 산업생산국이었다. 그러나 18세기 중반 우수한 무기를 앞세운 영국의 침략으로 인도는 200년동안 영국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치욕을 겪게 된다. 인도는 그후 200년동안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2차대전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뒤에도 인도는 파키스탄과의 분쟁, 무슬림, 힌두교, 시크교등 종교간 갈등, 계층간 갈등등으로 인해 사회적 안정을 이루기가 어려웠고 그로 인해 경제성장도 더딜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인도는 IT산업을 축으로 점차 세계경제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고 있다. 현재 인도의 1인당 GDP는 1500달러에 불과하다. 하지만 인도의 저력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향후 중국의 노동인건비가 상승할 경우 중국을 대체할 생산기지로 가장 유력하게 떠오르는 곳이 인도다. 또한 인도는 IT, 제약, 공학, 기초과학분야에서 탁월한 역량을 보유한 나라다. 얼마전 인도는 화성탐사로켓을 성공적으로 발사했으며 탐사선은 화성궤도에 무사히 진입했다. 인도는 미국,구소련,유럽연합에 이어 4번째로 화성탐사로켓 발사에 성공한 나라가 되었다. 인도는 중국처럼 매년 7%이상의 고속성장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인도는 양적인 성장보다는 질적인 벌전을 더욱 중시한다. 중국의 경우 고속성장과 무분별한 개발로 인하여 환경오염등 후유증 또한 심각하다. 반면 인도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하고 있다. 인도는 PPP기준으로는 이미 일본을 제치고 세계 4위의 경제국이 되었다. 앞으로도 인도는 중국에 필적할 경제대국이 될 가능성이 크다. 경제력의 성장과 함께 인도는 국제 정치 무대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인도는 전통적으로 평화주의를 견지하여 왔으며 패권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단, 타국의 정치적 간섭과 불평등한 관계에는 단호히 반대하는 입장을 취한다. 인도는 미국과도 평등한 관계를 원한다. 인도는 결코 미국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인도는 독립 이후 어느 블록에도 소속되지 비동맹 자주노선을 견지하고 있다. 안보에 관한여 인도는 어느 나라에도 의존하지 않는 자주국가 주권국가의 길을 걸을 전망이다. 21세기는 인도가 대국으로 도약하는 절호의 시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인도는 과거 무굴제국의 영광을 재현할 것이다.

2014년 12월 11일 목요일

CIA의 고문과 인권유린, 그리고 미국의 위선

미국의 중앙정보부(CIA)가 과거 조지 부시 정부 시절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분으로 잔혹한 고문과 인권유린을 자행한 사실이 미상원 보고서를 통해 공개되었다. 이 보고서는 CIA가 관타나모와 아프가니스탄 등지에서 피의자에 대해 물고문, 뒤주속에 가두기, 성고문등 온갖 잔인한 고문을 자행했음을 폭로하고 있다. 이것은 명백한 인권 유린이다. 스스로를 민주주의와 인권의 파수꾼임을 자처하는 미국이 이러한 인권유린을 자행한데 대해 국제사회는 분노하고 있다. 미국은 조지부시와 조지 테닛 전 CIA국장등 관련자들을 엄중하게 처벌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인권유린은 현재도 진행중이다.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이 된 후에도 미국은 예멘과 파키스탄에서 드론을 이용한 폭격으로 수많은 민간인 희생자를 발생시켰다. 또한 이라크, 시리아,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지금도 미국의 군사행동으로 무고한 민간인들이 죽어가고 있다. 그리고 CIA의 고문과 인권유린은 현재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 미국은 오직 자신의 헤게모니를 지키는데에만 관심이 있을 뿐 다른 나라 민중들의 인권 따위에는 관심도 없다. 마이클 브라운과 에릭 가너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미국은 자국내 흑인들에 대한 인권조차 존중하지 않고 있다. 비무장한 흑인 소년에게 여섯 발이나 총격을 가하여 사살한 백인 경찰에게 미국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그런데도, 미국은 다른 국가에 대해 인권 유린을 자행했다며 이중잣대를 가지고 협박하고 있다. CIA의 고문과 인권유린 보고서 그리고 퍼거슨 사건이 알려주는 것은 미국은 이제 더 이상 인권의 파수꾼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미국은 약자들의 인권을 짓밟는 인권파괴국이다. 미국이 다른나라의 인권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위선이며 국제사회의 비웃음만을 살 뿐이다.

2014년 11월 29일 토요일

퍼거슨(Ferguson) 민중항쟁의 의의

퍼거슨(Ferguson) 사태는 이제 민중항쟁으로 확산되고 있다. 한국이 세월호로 분열되었듯이 미국은 퍼거슨 사태로 분열되고 있다. 퍼거슨 민중항쟁은 유색인종과 피지배계층을 탄압하고 착취해온 백인기득권세력들에 대한 저항운동이다. 비무장 흑인청년 마이클 브라운(Michael Brown)을 사살한 백인경찰 대런 윌슨(Darren Wilson)에게 미법원은 불기소 결정을 내렸다. 이것은 미국이 백인우월주의의 나라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미국의 민중들은 격렬한 분노와 함께 항의시위를 펼치고 있다. 퍼거슨 시위는 전 미국으로 확산되었으며 미주리주에는 주 방위군이 투입되었다. 경찰과 방위군은 시위대에 최루가스를 살포하고 고무총탄을 발사하는 등 시위대의 의견을 듣기는 커녕 강경진압으로 일관하고 있다. 퍼거슨 시위로 미 전역에서 400여명이 체포되었다. 퍼거슨 총격 사건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미국사회에서 흑인과 유색인종에 대한 인종차별과 인권탄압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닌 구조적인 문제이다. 미국 최대의 소비일인 블랙 프라이데이를 맞아 미국의 민중들은 "No Justice, No Profit!"(정의가 없으면, 이윤도 없다!)을 외치며 소비거부 투쟁을 벌였다. 퍼거슨 시위에는 유색인종뿐만 아니라 많은 백인들도 참여하고 있다. 퍼거슨 민중항쟁은 인종차별에 대한 투쟁을 넘어 유색인종과 피지배계층을 탄압하고 착취해온 소수 백인기득권세력들에 대한 기층민중들의 저항운동이다. 퍼거슨 항쟁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며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다. 퍼거슨 시위를 발생시킨 근본원인이 흑인청년에 대한 단순한 총격사건이 아니라 미국사회의 근본적인 모순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퍼거슨 사태에서 보듯이 미국의 인종차별과 인권탄압은 어느 나라보다도 심각하다. 그런데도 미국은 자신들의 문제를 고치려고 하지는 않고 뻔뻔하게 다른 나라의 인권문제를 거론하고 있다. 이것은 미국의 가증스런 이중잣대에 불과하다. 마지막으로, 미국에 사는 170만 한인동포들도 퍼거슨 민중항쟁에 적극 참여해야 할 것이다. 백인우월주의와 인종차별주의의 희생자는 흑인 뿐만이 아니다. 한인들도 그동안 백인우월주의자들로부터 많은 차별과 불이익을 당해 왔다. 이제 미국의 한인들은 더이상 백인기득권세력들의 종노릇을 하며 굴종의 삶을 살아서는 안된다. 모든 유색인종들 그리고 기층민중들과 함께 퍼거슨 투쟁의 대열에 합류하여야 할 것이다.

2014년 11월 26일 수요일

퍼거슨(Ferguson)사태에 대한 단상

퍼거슨 시위가 격화되고 있다. 미국 법원이 비무장한 흑인청년을 사살한 백인경찰에게 불기소처분을 내린데 대해 항의하는 시위가 전 미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퍼거슨 사태는 단순히 백인경찰이 흑인청년을 총살한 사건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것은 미국의 뿌리깊은 인종차별과 인종간 갈등이 이 사건을 계기로 분출한 것이다. 오늘날의 미합중국은 사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땅이다. 미국의 지배계층인 앵글로색슨계 백인들은 아메리칸 원주민(인디언)들을 학살하고 그들의 땅을 빼앗았다. 또한, 아프리카에서 흑인노예들을 수입해와서 그들을 마구 부려먹고 착취했다. 과거 미국의 백인들은 인디언과 흑인들을 인간취급조차 하지 않았다. 노예제도가 폐지된 이후에도 흑인들은 여전히 차별의 멍에를 쓰고 하층민으로 천대를 받으며 살아왔다. 미국에서 인종차별을 받는 인종은 비단 흑인뿐만이 아니다. 백인들은 히스패닉과 아시아인들도 자신들보다 열등한 인종으로 차별대우를 한다. 미국인구의 1/3에 해당하는 유색인종(히스패닉 포함)들은 주로 저임금 노동이나 상업을 하며 백인들의 들러리로 살고 있다. 미국의 지배계급인 앵글로색슨계 백인들은 기독교적 선민사상을 갖고 있으며 유색인종을 야만적인 인종으로 보고 그들을 지배하는 것을 자신들의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인종적 우월주의와 타인종에 대한 편견은 나찌독일에 버금가는 것이다. 퍼거슨 사태는 이렇게 미국사회에 뿌리박힌 백인우월주의와 인종차별에 기인한 것이다. 또한 미국의 유색인종들은 대부분 저임금 노동을 하며 살기 때문에 백인들에 비해 상대적 빈곤감과 박탈감을 갖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문화적,경제적 이유로 인해 미국의 유색인종들 특히 흑인들은 백인들에 대해 뿌리깊은 적대감을 갖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백인들이 우월적 입장에서 흑인등 유색인종들을 멸시하고 차별대우하는 것이다. 이처럼 인종갈등이 위험수위에 도달했는데도 미국의 백인들은 여전히 인종차별주의를 버리지 않고 있다. 미국은 스스로를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의 나라라고 선전하고 있으나 흑인을 인간취급하지 않는 백인우월주의의 나라 이것이 바로 미국의 적나라한 실상이다.

2014년 11월 15일 토요일

중국의 신실크로드(New SilkRoad) 건설의 의의

중국은 21세기 신실크로드  건설을 주장하면서 실크로드 경제권의 인프라에 4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실크로드는 2천년 전부터 중국과 서역을 잇는 무역로로 이용되어왔다. 육상 실크로드는 중국의 서안에서 시작하여 돈황,우르무치,사마르칸드,테헤란을 거쳐 다마스쿠스와 이스탄불까지 이어진다. 하지만 실크로드는 돈황과 다마스쿠스를 잇는 사막길에 국한되지 않는다. 실크로드는 넓은 의미에서 동양과 서양을 잇는 모든 교통로를 의미한다. 그리고, 상하이에서 시직하여 싱가포르,인도의 코친을 거쳐 페르시아만과 아프리카까지 연결되는 해상실크로도 있다. 중국의 신실크로드 건설 계획은 단지 옛 비단길을 부활한다는 의미를 넘어 유라시아대륙을 관통하는 거대한 경제권을 만들겠다는 야망이 담겨 있다. 실크로드 경제권은 유라시아 동맹(러시아,벨라루스,카자흐스탄), 중국, 인도등 유라시아 3대 경제권과 중동의 이슬람 지역을 아우르는 초거대 경제권이다. 15세기 대탐험시대 이후 20세기까지는 바다를 지배한 세력이 세계를 지배하였다. 육상교통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해상운송이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물자를 수송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때문에 일찌기 선박항해기술이 발달한 나라들이 해상무역을 주도했고 그들이 결국 세계의 패자가 되었다. 포르투갈,스페인,네덜란드,영국 그리고 미국이 바로 그들이다. 하지만 21세기는 우주항공시대로 이제 화물을 제외한 사람의 장거리 수송은 비행기가 담당한다. 그리고, 열차와 자동차등 육상 운송수단의 발전으로 과거에 비해 육상교역이 훨씬 수월해졌다. 최근에는 파이프라인의 설치로 유조선이 담당하던 원유와 천연가스의 운송마저 이제 육상이 담당하는 추세이다. 또한, 달탐사와 우주정거장을 건설하는 우주개발 시대에는 해양국가보다는 육상국가가 훨씬 유리하다. 14세기까지는 바다의 시대가 아닌 초원의 시대였고 실크로드를 장악하는 세력이 세상을 지배했다. 당나라와 몽고제국이 바로 그들이다. 중국은 신실크로드를 건설하여 유라시아 대륙의 경제와 무역을 주도함으로써 과거 대당제국과 몽고제국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갖고 있다. 21세기 초원의 시대가 다시 부활했다.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실크로드를 장악하는 세력이 세상을 지배할 것이다.

2014년 11월 11일 화요일

러시아와 중국, 신유라시아 제국의 등장

러시아와 중국은 APEC총회에서 동시베리아 파이프라인에 이어 서시베리아 라인(알타이 라인)을 통한 가스공급협정을 체결했다. 서시베리아 라인으로 제공되는 가스는 사실상 러시아가 유럽에 공급하던 가스이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서방의 대러시아 경제 제재가 본격화되면서 러시아의 대유럽 가스공급도 감소하고 있다. 대신 러시아는 유럽을 대체할 새로운 가스공급처로 중국을 선택했다. 이번 가스공급협정의 체결로 중국은 유럽을 제치고 러시아의 최대 가스공급처가 되었다. 물론 가스대금은 달러가 아닌 위안화나 루블로 결제한다. 최근 러시아와 중국은 에너지분야뿐만 아니라 경제,군사,인문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교류를 확대하고 있다. 2020년까지 양국은 교역량을 두배이상 증가시킬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가 이처럼 긴밀해진 이유는 우크라이나 사태 때문이다. 소치올림픽 시기를 이용해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반정부 세력을 동원해 야누코비치 정권을 전복하고 키에프에 친서방 정부를 수립했다. 러시아는 이것을 미국이 개입한 불법 쿠데타로 간주하고 있다. 18세기 이후 러시아의 일원이었으며 러시아인이 인구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우크라이나를 대다수 러시아인들은 러시아의 일부로 생각할 뿐 독립국가로조차 인정하지 않는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집착을 보인 이유는 러시아의 부활을 막기 위해서다. 미국의 전략가인 브레진스키는 만약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에서 떼어낸다면 러시아는 제국으로 부활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쨌든, 러시아와 중국의 접근은 우크라이나 사태의 필연적 결과일 수 밖에 없다. 또한 최근 홍콩의 반중국시위가 서방의 개입으로 인해 중국을 자극하면서, 중-러의 전략적 접근에 더욱 우호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미국의 우크라이나 정변유도는 러시아와 중국의 지정학적 반미연대를 강화시킴으로써 오히려 득보다는 실이 클 것으로 보인다. 러-중 양 대국은 국제무대에서도 발빠르게 반미전선을 구축해가고 있다. 러시아는 브릭스등 신흥국가들과의 경제협력을 강화함으로써 서방주도의 세계 경제질서에 타격을 가하려 하고 있다. 중국은 21세기 신실크로로드건설을 제창하면서 동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 국가들과의 교류를 강화하려 하고 있다. 러시아의 브릭스 강화 움직임이나 중국의 신실크로드 건설은 모두 서방의 경제헤게모니에 위협이 되는 것이다. 반면 미국은 TPP를 통해 중국, 러시아를 견제하려 하고 있으나 TPP는 태동단계에서 난관에 봉착하여 성사 여부가 불투명한 상태이다. 미국이 개입한 우크라이나 정변으로 서방과 러시아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으며, 러-중 동맹은 점점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의 유라시아 2각동맹(인도까지 포함하면 3각동맹)은 미국과 서방에 큰 위협이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미국의 세계지배 야욕이 우크라이나 사태를 초래했고 그 반작용으로 러-중 동맹이라는 신유라시아 제국을 등장시켰다. 신유라시아 제국은 과거 유라시아 대륙을 휩쓸었던 몽고제국의 부활을 의미하며 이는 미국과 유럽에게는 끔찍한 악몽이 될 것이다.

2014년 11월 9일 일요일

미국과 변방의 적(敵)들

작금의 국제정세에서 한가지 중요한 흐름을 읽어낼 수 있다. 그것은 미국을 축으로하는 서방(West)과 비서방(Non-West)또는 변방(Rest)세력간의 대결구도이다. 미국과 유럽은 2008년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정치 경제적 지위가 계속해서 하락하고 있다. 반면 중국,러시아,브라질,인도등 브릭스(BRICS)국가들의 정치적 경제적 위상은 상승하고 있다. 세계 경제의 중심축은 서방에서 브릭스등 비서방국가들로 이동하고 있다. IMF는 올해 중국의 GDP가 PPP기준으로 미국을 추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가 지속된다면 미국의 달러화도 기축통화의 지위를 잃어버릴 것이다. 미국의 정치경제적 위상이 하락하면서 1991년 냉전 종식 이후 미국중심의 일극적(unipolar) 세계질서가 다극적(multipolar) 질서로 재편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역사적 추세를 뒤집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미국은 자신의 패권적 지위를 위협하는 국가들을 적(敵)으로 간주하고 이들을 약화시키려 하고 있다. 미국이 적으로 생각하는 나라들은 러시아,중국,인도,브라질,이란이다. 구소련을 계승한 러시아는 미국패권의 최대 위협이 되고 있다. 냉전종식 이후 미국은 동유럽과 발틱3국을 NATO와 EU에 편입시켰으며 최근에는 구소련의 일원이었던 우크라이나와 몰도바,조지아마저 서방에 편입시키려 하고 있다. 미국은 NATO를 러시아의 국경까지 확장시킴으로써 러시아에 심각한 군사적 위협을 가하고 있다. NATO의 끊임없는 세력확장은 결국 러시아와 중국을 축으로 하는 상하이 협력기구(SCO)를 탄생시켰다.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서방과 러시아는 돌이킬 수 없는 대치상황으로 치닫고 있으며, 신냉전 시대의 도래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의 경제적 헤게모니와 달러패권을 위협하는 적들은 신흥경제대국인 중국과 인도, 브라질이다. 미국은 신흥 경제대국들의 환율가치를 떨어뜨리고 경제위기를 유발함으로써 이들 국가들의 경제적 부상을 막으려 하고 있다. 미국이 경계하는 또하나의 적은 끊임없이 핵보유국의 지위에 오르려는 이란이다. 만약 이란이 핵을 보유한다면 중동지역에서 미국의 위상은 크게 흔들리게 된다. 때문에 미국과 유럽은 어떻게든 이란의 핵보유를 막으려 하고 있다. 이란과 시리아 헤즈볼라 하마스로 이어지는 이슬람 세력은 여전히 미국의 최대 적이다. 현재 세계에는 미국의 정치경제적 헤게모니를 위협하는 5개의 적대 세력이 존재한다. 그 5개의 세력이란 러시아를 축으로 하는 범슬라브세력, 중국을 축으로하는 동아시아세력, 브라질을 축으로하는 라틴아메리카세력, 인도를 축으로하는 제3세력, 이란을 축으로하는 이슬람세력이다. 냉전종식이후 미국은 코소보,아프가니스탄,이라크,리비아에서 일방적인 무력개입을 통해 자신의 세력을 확장해 왔다. 하지만 미국의 일방주의와 예외주의는 많은 적들을 만들었고 그럼으로써 미국은 자신의 패권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쇠락해가는 미국은 자신의 패권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결국 적들과의 대립을 선택했다. 오바마 집권 이후 미국은 중국,러시아,인도,브라질,이란등 변방국가들과의 대립과 갈등을 더욱 격화시키고 있다. 미국은 자신의 적들과 그 주변국가들에 끊임없 색깔혁명과 정권교체를 기도하고 있으며 환율과 유가조작등을 통해 적대국들의 경제를 붕괴시키려 하고 있다. 미국을 축으로하는 서방과 비서방국가간의 대립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냉전종식 이후 20년동안 미국이 누렸던 예외적 일방주의는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미국이 다극적 질서를 거부하고 적들에 대한 공세를 강화할 수록 미국과 서방은 오히려 변방의 적들에 둘러싸여 고립의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2014년 10월 24일 금요일

서방의 대 러시아 경제제재(Sanction)에 대한 단상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서방과 러시아의 대립이 격화되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친유럽 대 친러시아 세력으로 분열되면서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에서는 정부군과 민간무장세력간의 전투가 계속되고 있다. 러시아는 이미 크림반도를 합병하였다. 미국등 서방은 우크라이나 사태에 러시아가 개입하였다며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 조치를 취하고 있다. 이에 대해 러시아도 보복조치를 취하면서 우크라이나 사태는 서방과 러시아간 신냉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미국등 서방의 대러시아 경제제재의 목적은 러시아 경제에 타격을 입히고 러시아를 국제사회에서 고립시키기 위한 것이다. 미국은 경제제재 조치 외에 천연가스와 원유의 생산량을 늘려 국제유가를 떨어뜨림으로서 에너지수출 의존도가 큰 러시아경제에 타격을 입히려 하고 있다. 또한 루블화에 대한 평가절하를 시도함으로써 러시아의 대외신인도에 타격을 입히고 러시아에 새로운 금융위기를 유발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경제제재 효과는 미미할 것이다.
러시아는 11시간대에 걸치는 광대한 영토에 풍부한 지하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러시아는 에너지, 광물자원, 농산물등 거의 모든 자원을 자급자족할 수 있는 나라다. 또한 러시아는 중공업과 군수산업 그리고 우주항공분야에서 높은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러시아는 미국과 동등한 핵전력을 보유하고 있다. 러시아는 무역을 하지 않고도 경제를 운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어느나라의 침략에 대해서도 독자적으로 영토방위가 가능한 나라다.
러시아는 현재 경제가 살아나고 있고 사회가 안정되어 있다. 또한 푸틴이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하고 있고 국민들의 반서방 정서도 강하다. 때문에 경제제재로 러시아 내부사회가 동요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결론적으로, 미국등 서방의 경제제재는 러시아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서방과 러시아의 대립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혹자는 이것을 냉전의 부활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서방과 러시아의 대립은 21세기 세계질서의 새로운 재편과정을 의미한다. 이미 러시아는 세계질서의 한 축으로 부활하고 있다.

2014년 10월 20일 월요일

러시아 여행-상트뻬쩨르부르그(Санкт Петербург)

모스크바에서 비행기로 상트뻬쩨르부르그 풀코바공항으로 이동한후 버스를 타고 마스꼽스카야 역까지 간후 지하철(미뜨로)를 타고 호텔이 있는 시내로 갔다. 상트뻬쩨르부르그의 미뜨로도 모스크바와 마찬가지로 문화와 예술의 공간이지만 에스컬레이터는 모스크바보다 훨씬 깊어 보였다. 상트뻬쩨르부르그 미뜨로의 1회 이용 요금은 28루블이며 모스크바와 마찬가지로 환승과 거리에 상관없이 모든 구간에 동일하게 적용된다.

다음날 아침 식사후 미뜨로를 타고 레닌광장으로 갔다. 상트뻬쩨르부르그는 문화와 예술의 도시이자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이 발발한 혁명의 도시이기도 하다. 핀란드역 옆에 있는 레닌광장은 역사적인 장소다. 1917년 4월 핀란드 헬싱키에서 기차를 타고 상트뻬쩨르부르그의 핀란드역에 도착한 레닌은 이곳에서 사회주의혁명을 주장하며 연설을 하였다. 레닌광장에는 레닌의 동상이 있는데 네바강 건너편을 향해 손을 펼친 레닌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다시 미뜨로를 타고 녭스키대로(Невский проспект)로 갔다. 녭스키 대로는 상트뻬쩨르부르그의 중심대로다. 러시아 혁명당시 볼셰비키 군대는 녭스키 대로를 따라서 겨울궁전을 공격함으로써 혁명을 승리로 이끌었다. 녭스키쁘라스뻭트역에서 해군성방향으로 조금 걸어가면 까잔성당(까잔스키 싸보르,Казанский собор)이 나온다. 까잔성당은 가운데 돔을 중심으로 양 옆으로 거대한 기둥들이 늘어서 있는 독특한 양식의 사원이다. 까잔성당 앞에는 1812년 나폴레옹군을 무찌른 꾸투조프장군의 동상이 서 있다. 까잔 성당 맞은편에는 유명한 돔끄니기(Дом книги) 서점이 있다.

까잔성당에서 녭스키 대로를 따라 계속 걸으면 해군성건물이 나온다. 뾰족한 금빛 첨탑이 인상적인 해군성건물 옆에는 제까브리스토프 광장이 있고 광장 중앙에는 뾰트르대제의 기마상이 있다. 상트뻬쩨르부르그는 1703년 뾰트르대제에 의해 건설되었고 볼세비키혁명이전까지 약 2백년동안 러시아의 수도였다. 상트뻬쩨르부르그로 천도함으로써 러시아는 유럽과의 교류를 활발히 할 수 있었고 그로인해 대제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다. 뾰트르대제의 기마상 뒤편으로는 상트뻬쩨르부르그의 또하나의 상징인 이삭성당(이삭끼옙스키 싸보르, Исаакиевскнй собор)이 보인다.

이삭성당을 구경한 후 에르미따쥐(Эрмитаж)가 있는 궁전광장으로 향했다. 에르미따쥐는 예까쩨리나2세에 의해 지어진 궁전으로 보통 겨울궁전이라고 불린다. 겨울궁전 앞에 있는 넓은 광장이 궁전광장(드보르짜야 쁠로샤지)이다. 궁전광장 한복판에는 알렉산드로프스키 기둥이 있다. 겨울궁전을 마주보고 있는 건물이 참모본부 건물이다. 참모본부 건물 중앙에는 대형 개선아치가 있다. 겨울궁전과 궁전광장은 1905년과 1917년 혁명등 역사적인 사건의 주무대가 된 장소이다. 1905년 궁전광장에서는 피의 일요일 사건이 있었고 1917년 10월혁명 당시 적군은 궁전광장을 가로질러 겨울궁전을 점령함으로써 마침내 혁며을 승리로 이끌었다.

에르미따쥐는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에르미따쥐 박물관은 영국박물관, 루브르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박물관으로 불린다. 에르미따쥐의 내부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화려하고 웅장했다. 에르미따쥐에는 현대이전 유럽화가들의 작품들이 주로 전시되어 있다. 작품들을 하나하나 음미하면서 감상한다면 하루가 걸려도 다 보지 못할 정도로 전시된 작품들이 매우 많다. 이밖에도 에르미따쥐에는 고대이집트시대의 유물등 동서양의 역사유물과 러시아의 옛 문화예술품들도 전시하고 있다.

에르미따쥐를 관람한 후 궁전다리를 건너 바실리섬 일대를 구경했다. 바실리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라스트랄 기둥이다. 바실리섬에는 증권거래소 건물과, 쿤스트카메르,국립상트뻬쩨르부르그대학,과학아카데미등이 있다. 또한 네바강 너머로 뻬트로빠블롭스키 요새(Петропавловская крепость)도 보인다.

상트뻬쩨르부르그는 운하의 도시다. 궁전광장에서 녭스키 대로를 따라 걷다보면 마이까 운하, 그리바예도바운하, 판딴까 운하를 볼 수 있다. 이 운하들과 고풍스런 건물들이 조화를 이룬 풍경은 그 자체가 그림이라 할 만하다. 상트뻬쩨르부르그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도시다. 그래서 어느 거리를 걸어도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까잔성당 반대편으로 그리바예도바 운하쪽을 바라보면 피의사원을 볼 수 있다. 상트뻬쩨르부르그의 운하를 감상한 후 알렉산드라녭스키 사원과 블라지미르스카야 사원을 구경한 후 호텔로 돌아왔다.

다음날, 아침 식사후 녭스키 쁘라스뻭트 옆에 있는 아스트로프광장으로 갔다. 아스트로프 광장에는 예까쩨리나 2세의 동상이 있다. 동상을 구경한 후 러시아박물관(루스끼 무제이)이 있는 예술광장(쁠로샤지 이스꾸스트프)으로 향했다. 예술광장에는 뿌시킨의 동상이 있다. 러시아박물관에는 근현대 러시아화가들의 작품들이 주로 전시되어 있다. 특히 일리야 레핀같은 천재화가의 작품들과 현대 러시아 미술의 수작들이 전시되어 있어서 에르미따쥐와 함께 상트뻬쩨르부르그에서는 꼭 보아야 할 박물관이다.

러시아박물관 관람후 궁전다리를 건너 뻬트로빠블롭스키요새를 구경하기 위해 자야치섬으로 향했다. 빼트로빠블롭스키요새는 상트뻬쩨르부르그를 방어하기 위해 지은 요새로 뻬트로빠블롭스키사원의 황금빛 첨탑이 매우 인상적이다. 뻬트로빠블롭스키요새는 내부관람은 무료이나 성벽위로 올라가서 구경하려면 입장료를 내야 한다. 강건너에서 바라본 뻬트로빠블롭스키 요새의 모습은 마치 한폭의 그림 같다.

뻬트로빠블롭스키요새를 관람한 후 뜨로이츠키 다리를 건너 마르소보광장과 여름정원(례뜨니 삿드)을 구경했다. 상트뻬쩨르부르그에는 문화유산뿐만 아니라 산책하기 좋은 공원들도 많다. 상트뻬쩨르부르그에서는 운하주변이나 공원에서 개를 끌고 산책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레뜨니 삿드는 아름다운 분수와 조각상이 있는 시민들의 휴식공간이다.

상트뻬쩨르부르그는 야경도 아주 훌륭하다. 까잔성당의 야경도 수려하며 특히 궁전다리에서 에르미따쥐와 뻬트로빠블롭스키요새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절로 시적감흥이 흘러나온다.

다음날, 아침 미뜨로를 타고 센나야 광장으로 갔다. 상트뻬쩨르부르그는 도스또옙스키의 소설 죄와벌의 주무대가 된 도시다. 소설에서는 특히 센나야 광장이 자주 나온다. 하지만 현재의 센나야 광장은 문학과는 거리가 먼 가게들이 즐비한 거리로 변해 있다. 센나야 광장에서 그리바예도바운하를 따라 것다보면 마린스키 극장이 있는 찌아뜨랄나야 광장이 나온다. 마린스키 극장앞에는 러시아의 작곡가 글린카와 림스키코르사코프의 동상이 서 있다.

마린스키극장을 둘러본후 이상석당으로 향했다. 이삭성당은 현재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성당 내부를 구경하기 위해서는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한다. 이삭 성당 내부는 정말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웅장하고 화려하다. 상트뻬쩨르부르그에 왔으면 적어도 이삭성당 내부는 꼭 구경해보기를 권한다. 이삭성당의 돔으로 올라가려면 역시 입장료를 내야 하는데 돔에서는 상트뻬쩨르부르그의 경치가 한눈에 들어온다.


상트뻬쩨르부르그에서 마지막으로 스몰니사원과 회관을 구경하였다. 스몰니사원은 하얀빛의 외관이 매우 인상적인 사원이다. 스몰니 사원옆에 있는 스몰니 회관은 러시아혁명당시 볼셰비키의 사령부가 있던 곳이다. 레닌은 스몰니 회관에 머물면서 혁명을 지휘하였다. 스몰니 회관에는 레닌의 동상이 있고, 회관앞 광장에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동상이 있다. 스몰니회관을 끝으로 5일간의 러시아 여행이 모두 끝났다. 5일동안 모스크바와 상트뻬쩨르부르그를 제대로 보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나름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러시아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인식의 폭을 넓힐 수 있었던 것이 이번 여행의 가장 큰 소득이었다.

러시아 여행-모스크바(Москва)

10월 14일부터 20일까지 5박7일 일정으로 러시아 모스크바와 상트뻬쩨르부르그를 여행하였다. 이번 여행의 항공편은 모두 러시아 아에로플로트(Aерофлот)항공을 이용하였다. 아에로플로트 항공은 좌석도 편하고 기내서비스도 훌륭한 편이다. 모스크바 셰르메치에보 국제공항에 내려 아에로익스프레스(Aероэкспрес)를 타고 벨라루스카야역까지 이동한후 지하철(미뜨로)를 타고 호텔이 있는 빠벨레츠까야 역까지 이동하였다. 모스크바의 미뜨로는 상당히 인상적이다. 개찰구를 지나자마자 바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플랫폼으로 내려가는데 에스컬레이터의 깊이가 족히 150미터는 되어 보였다. 그리고 플랫폼도 수많은 조각과 그림등으로 꾸며저 있어서 모스크바의 미뜨로는 시민들에게 또하나의 문화공간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지하철에서는 책을 읽거나 전자책을 보는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모스크바 미뜨로의 요금은 거리와 환승에 상관없이 40루블이다. 모스크바의 지하철은 이용자가 상당히 많지만 열차가 1~2분 간격으로 운행되어서인지 객차안이 그렇게 붐비지는 않는다.




다음날 아침식사후 발쇼이 극장이 있는 찌아뜨랄나야 광장으로 갔다. 고전주의 양식의 발쇼이 극장은 생각보다 훨씬 더 웅장했다. 볼쇼이극장이 있는 찌아뜨랄나야 광장 옆에는 혁명광장(쁠로샤지 리발류찌)이 있고 광장 중앙에는 마르크스의 석상이 있다. 혁명광장 바로 옆에는 마네쥐나야광장이 있는데 광장 중앙에는 제2차대전(대조국전쟁) 승리의 주역인 주코프장군의 동상이 서 있다.

마네쥐나야광장과 붉은광장 사이에는 붉은색의 화려한 건물이 보이는데 이것은 러시아 역사박물관이다. 러시아 박물관을 지나자 붉은광장(끄라스나야 쁠로샤지 Красная площадь)과 끄레믈(Кремль)이 나타났다. 붉은광장의 한복판에는 레닌의 묘가 있는데 레닌의 사후에 그의 시신은 방부처리되어 이곳에 안치되어 있다. 해마다 승전기념일인 5월 9일에 대규모 군사퍼레이드가 펼쳐지는 붉은광장에 직접 와보니 감회가 새롭다. 붉은광장을 사이에 두고 역사박물관과 마주보고 있는 건물이 바로 화려한 꾸뽈로 유명한 바실리 성당이다. 바실리 성당 앞에는 폴란드와의 전쟁에서 모스크바를 지켜낸 전쟁영웅 미닌과 빠좌르스키의 동상이 있다.

 

과거 소비에트 시절뿐만 아니라 현재도 끄레믈은 러시아 정치권력의 중심부다. 그래서인지 붉은 광장과 끄레믈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차가운 권위와 위압감이 느껴진다. 끄레믈 성벽을 마주보고 있는 건물이 국영백화점 굼(ГУМ)이다. 화려한 쇼핑센터와 카페 레스토랑이 있는 굼은 모스크바 시민들의 쇼핑공간이지 휴식처다. 마네쥐나야 광장 옆에는 알렉산드로프스키 공원이 있다. 공원 안에는 2차대전 당시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무명용사의 묘지가 있다. 모스크바의 10월 중순 날씨는 한국의 11월 중순 정도에 해당하는 차가운 한기가 느껴진다.

알렉산드로프스키 공원에서 차도를 건너면 러시아 국립도서관(레닌 도서관)이 있다. 러시아 국립도서관은 건물규모도 클 뿐만 아니라 엄청난 양의 장서를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도서관 광장에는 도스또옙스키의 동상이 있다. 국립도서관 옆에는 구 모스크바 대학건물이 보인다.계속해서 발혼카 거리로 가다보면 황금색 꾸뽈이 인상적인 구세주 그리스도 성당이 보인다. 성당 광장에는 알렉산드르2세의 동상이 있는데, 알렉산드르 2세는 바로 농노해방을 선언한 제정 러시아의 황다. 성당과 차도를 마주보고 뿌시킨 박물관이 있다.


끄레믈 주변을 관람 후 아르바뜨(Aрбат) 거리로 갔다. 아르바뜨 거리는 젊음과 문화의 거리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비가 오고 날씨가 추워서인지 거리는 한산했다. 아르바뜨 거리는 서울의 인사동 거리와 비슷한 분위기의 거리다. 아르바뜨 거리를 나오면 러시아 외무성 건물이 보인다. 스탈린 양식의 이 거대한 건축물은 마치 모스크바를 상징하는 듯 엄청난 위압감과 함께 초강대국인 러시아의 국가적 위상이 느낄 수 있다.

아르바뜨 거리를 구경한 후 참새언덕(바랴뵤비 고리)으로 향했다. 산이라기 보다는 얕은 언덕인 바라뵤비 고리는 현재 모스크바 시민들의 휴식과 산책공간이다. 바라뵤비 고리에는 유명한 모스크바 국립대학교(엠게우,МГУ)가 있다. 엠게우도 외무성건물과 마찬가지로 스탈린 양식으로 지은 웅장한 건물이 일품인데 마치 전투기를 거꾸로 세워놓은 것 같은 재미있는 건물이다.

바라뵤비 고리 투어를 마치고 끄레믈 내부를 관람했다. 끄레믈 내부는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한다. 끄레믈에는 대통령집무실이 있기 때문에 대통령궁방향으로는 경찰이 관람객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관람객들에게 개방된 곳은 끄레믈 내부의 사원군들인데 이중에는 우스펜스키 사원, 아르한겔스크 사원, 이반뇌제의 종루등이 있다. 모두 러시아 전통양식의 아름다운 사원들이다.


이번에는 뜨베르스카야 거리를 걸었다. 고전적 건물들이 늘어서 있는 뜨베르스카야 거리는 백화점과 은행이 밀집한 쇼핑과 상업의 거리다. 아호뜨니 랏드에서 시작해서 뜨베르스카야 거리를 걷다보면 뿌시킨스카야 광장이 나오는데 광장에는 러시아들이 가장 사랑한다는 시인 뿌시킨의 동상이 있다. 뜨베르스카야 거리를 구경한 후 미뜨로를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이번 여행에서 숙박은 3성급 호텔을 이용하였는데 방의 시설도 양호했고 아침식사등 서비스도 훌륭한 편이었다.

다음날 아침 식사후 고리끼 공원으로 향했다. 고리끼 공원은 모스크바 중심가에 있는 시민들의 휴식과 산책 공간이다. 고리끼 공원옆에는 현대적인 양식의 뜨레챠꼬프 미술관이 있다. 고리끼 공원에서 모스크바 강을 따라 걷다보면 끄레믈이 보인다. 붉은광장에서 바라보았을 때에 비해 강건너에서 바라본 끄레믈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강을 배경으로 해서인지 끄레믈의 모습은 훨씬 평화롭고 온화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끄레믈 구경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와 짐을 챙긴후 상트뻬쩨르부르그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