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29일 일요일

동유럽여행-빈(1)

오전 11시 30분 호텔에서 체크아웃하고 브라티슬라바 중앙역으로 가서 빈행 열차를 탔다. 브라티슬라바와 빈은 열차로 1시간 거리에 불과하다. 열차는 승객이 무척 적었다. 기차가 빈 동역(Ostbahnhof)에 도착하자 플랫폼을 빠져나와 이틀 동안 묵을 민박집을 찾아가기 위해 약도를 펼쳤다. 빈은 생각보다 꽤 큰 도시였다. 물론 서울만큼 크지는 않지만 프라하나 브라티슬라바에 비하면 꽤 스케일이 큰 도시였다. 역 옆에는 큰 건물일 들어설 듯 대형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거리의 모습도 동유럽의 다른 도시들과는 달리 매우 현대적인 느낌이 들었다.



일단 민박집에 체크인을 한 후 서역으로 갔다.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관광지도를 하나 구한 후 지하철을 타고 Volkstheater역으로 갔다. 빈의 지하철도 프라하처럼 따로 검표를 하지 않는다. 지하철은 시설이 썩 좋은 것 같지는 않지만 파리의 지하철보다는 양호해 보였다. 지하철은 에어컨을 잘 틀어주지 않아서 약간 더웠다. 유럽과 서울의 지하철을 비교해보면 서울의 지하철이 넓고 시원하다.

폭스테아터 역에서 거리로 올라와 생각해보니 오늘은 월요일이다. 대부분의 박물관이나 갤러리가 휴관하는 날이다. 그래서 왕궁쪽으로 가려고 생각했는데 길을 잘못들었는지 번화가에 들어서고 말았다. 빈은 오래전에 왕궁과 구시가지 주변에 환형의 도로를 만들었는데 그것을 링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볼거리는 링 안 또는 링 둘레에 있다. 내가 걷고 있는 거리는 명동 거리보다 더 현대적이고 복잡한 거리였다. 아무리 걸어도 왕궁이 보이지 않자  거리명을 확인해보니 그곳은 케른트너 거리였다. 그리고 내가 있는 위치는 링 밖으로 서역쪽으로 왕궁과는 반대 방향을 걷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발걸음을 다시 돌려 링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케른트너 거리에는 바닥에 유명인사들의 손자국과 이름을 새겨넣은 동판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있었다. 그러나 아는 사람의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대략 10분쯤 걸으니 넓은 아스팔트 도로와 트램이 다니는 철로가 보였다. 바로 링이었다. 길을 건너자 넓은 광장과 커다란 문이 보였다. 그 문을 지나자 큰 정원이 보였다. 그곳은 마리아 테레지아 정원이다. 정원 한가운데에는 마리아 테레지아 동상이 위용을 뽐내며 우뚝 서 있다. 마리아 테레지아는 18세기 오스트리아 제국의 전성기 때 제국을 수십년간 통치했던 여황제다. 마리아 테레지아 동상을 본 순간 제국의 수도에 온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마리아 테레지아가 앉아 있는 기둥 주위로는 말탄 귀족들과 정치가들의 동상이 있다. 동상 주변으로는 잔디와 나무가 아주 예쁘게 꾸며져 있었다.


마리아 테레지아 정원을 사이에 두고 자연사 박물관과 미술사 박물관이 서로 마주 보고 있다.  미술사는 휴관이나 자연사는 월요일임에도 문을 연 것 같았다. 그래서 일단 자연사 박물관에 들어가보기로 했다. 자연사 박물관을 보고 놀란 것은 전시물때문이 아니라 건물 내부의 웅장하고 화려한 모습 때문이었다. 벽화와 조각상 그리고 화려한 인테리어를 보면서 비인이 한 때 중부 유럽을 지배했던 거대한 제국의 수도임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박물관 뿐만 아니라 비인의 모든 것이 크고 화려했다. 지금은 제국이 쪼개져서 작은 나라가 되었지만 화려했던 과거의 영광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자연사 박물관은 지질학이나 동식물관련 자료들을 전시하는 곳으로 사실 그다지 볼 만한 것은 없다.

박물관을 나와 왕궁을 구경했다. 빈 왕궁은 구왕궁과 신왕궁이 나뉘어 지는데 바로크 양식의 신왕궁이 더 크고 화려하다. 신왕궁은 가운데가 오목하게 들어간 구조로 왕궁 앞에는 넓은 광장이 있다. 광장에는 외젠 공작의 기마상이 서 있는데 늠름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구왕궁은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로 역시 화려하고 웅장하다. 구왕궁은 신왕궁과는 달리 사각형 구조로 중앙에는 광장이 있다.

왕궁은 빈의 하이라이트기 때문에 시간을 조금 많이 투자해야 한다. 워낙 넓은 데다 볼거리도 많기 때문이다. 다시 왕궁 앞 시민공원을 구경하고 이어서 왕궁의 출입문인 미하엘문을 구경했다. 미하엘문은 웅장했고 그 앞에 네개의 거대한 헤라클레스상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왕궁 뒷편의 정원으로 가서 모차르트 상을 구경했다. 약 두 시간에 걸쳐 왕궁을 훑어 보았는데 생각보다 크고 화려했다. 빈 왕궁을 제대로 보려면 적어도 하루는 잡아야 할 것 같다.

왕궁을 둘러본후 왕궁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국립 극장을 구경했다. 국립극장은 앤티크한 디자인과  현대적인 감각이 조화를 이루는 웅장한 건물이었다. 또한 국립극장은 2차 대전후 파괴된 도시를 재건할 때 빈 시민들이 가장 먼저 복구를 희망한 건물이라고 한다. 세계 최고의 빈 필하모니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하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국립극장을 구경하고 길거리에서 케밥과 콜라로 저녁을 떼운 후 케른트너 거리를 따라 성슈테판성당으로 갔다.

성슈테판 성당은 비투스성당처럼 두개의 첨탑이 있는 전형적인 고딕 양식의 성당이다. 가까이서 보면 그 크기에  놀랄 수 밖에 없는데 외부는 보수 공사중이었다. 광장을 사이에두고 성당과 마주보는 위치에는 초현대적인 건물이 있어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성당 내부는 공연장으로도 활용되고 있는 것 같다.

성당에서 조금 떨어진 거리에 얀커 시계가 있다. 프라하 천문 시계탑처럼 매시 정각마다 재미있는 인형퍼포먼스가 있다고 가이드북에 적혀 있었다. 그래서 찾아가 보았는데 수리중인지 인형 퍼포먼스는 볼 수 없었다. 저녁 8시 30분이 되자 아직 해가 지지는 않았지만 오늘의 일정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빈은 프라하나 브라티슬라바처럼 매우 더웠다. 무더운 날씨속에서 제국의 수도를 구경하느라 몸은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그래서  슈테판플라츠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민박집으로 돌아왔다.

2012년 7월 27일 금요일

동유럽 여행-브라티슬라바

아침 식사 후 민박집을 나섰다. 프라하 중앙역에서 9시 40분 출발 브라티슬라바행 열차를 탈 예정이다. 직행열차는 아니고 부다페스트로 가는 열차로 중간에 브라티슬라바를 경유한다. 이번 동유럽 여행지로 브라티슬라바를 넣은 이유는... 글쎄 딱히 이유가 있다기보다는 잘 알려지지 않은 동유럽의 도시를 한번 체험해보고 싶어서였다. 프라하는 워낙 유명한 도시고 볼 것도 많지만 상당히 번잡하다. 반면 브라티슬라바는 동유럽의 도시답게 고풍스러우면서도 상대적으로 덜 복잡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래서 브라티슬라바를 여행지에 포함시켰다. 브라티슬라바는 슬로바키아의 수도다. 원래 슬로바키아는 구소련 시절 체코슬로바키아로 체코와 하나의 나라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유화 이후에 급진적인 개혁을 선택한 체코와 결별하고 독립국가를 만든다. 슬로바키아는 상대적으로 덜 급진적인 개혁을 원했던 것이다. 아뭏든 프라하가 오늘날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변한 모습을 보면 슬로바키아가 오히려 현명한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기차가 브라티슬라바역에 정차했다. 선반위에 올려둔 배낭을 내려 어깨에 짊어지고 플랫폼을 내려와 역을 빠져나왔다. 그런데, 중앙역 치고는 브라티슬라바 역은 너무 초라했다. 마치 우리나라 지방도시의 오래된 기차역을 보는 것 같았다. 점심시간이 지난 시간이라 핫도그를 하나 사먹을까 생각하다가, 우선 내가 묵을 호텔부터 찾기로 했다. 호텔 프런트에서 체크인하고 방을 배정받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방에 짐을 풀었다. 호스텔과 민박에서만 숙박을 하다 처음으로 호텔을 이용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넓은 침대에 깨끗하게 세탁이 되어 있는 시트가 깔려있고, 방안의 인테리어도 깔금하다.

호텔 문을 나섰다. 오후 3시 가까이 되었는데도 아직 점심을 먹지 않았다. 그래서 호텔 주변의 샌드위치 가판대로 가보니 문을 닫았다. 너무 더운데다 거리에 사람들도 별로 없기 때문 인 것 같다. 할 수 없이 시내투어를 하다가 패스트푸드점을 발견하면 거기서 먹기로 했다. 점심이나 저녁은 햄버거나 샌드위치, 케밥으로 떼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양이 많기 때문에 오랜 시간을 버틸 수 있다. 호텔 앞에는 자동차가 다니는 대로가 있고 그 길을 따라 조금 내려가니 큰 성당이 하나 보인다. 바로 성 마틴 성당으로 브라티슬라바를 상징하는 성당이다. 유럽의 다른 성당과는 달리 첨탑이 하나로 정면에서 보면 마치 전투기가 수직으로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브라티슬라바의 거리에서는 그래피티를 아주 많이 볼 수 있다. 지하도라든가, 고가도로의 가장자리 같은 사각지대에서 주로 많이 볼 수 있는데 상당한 수준이다. 이 정도 수준이면  거의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브라티슬라바의 그래피티는 유럽 어느 도시의 것보다 훌륭하다.

대로를 따라 더 내려가면 도나우강이 보이고 대로는 곧바로 다리와 연결된다. 다리는 서울의 올림픽 대교와 비슷하게 다리 중간에 타워가 있는 현수교로 타워 위에는 비행 접시처럼 생긴 전망대가 있다. 그래서 별명이 UFO 다리다. 일단 지하도로 대로를 건너 구시가지 쪽으로 걸어갔다.

추밀(Cumil)이라는 재미있는 동상이 바닥에서 능글 맞게 웃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하수구에서 얼굴과 어깨만 내밀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지켜본다는 컨셉으로 만든 동상으로 어느 새  브라티슬라바의 명물이 되어 버렸다. 바로 옆에 있는 피자전문점에서 피자한조각과 콜라로 간단히 점심을 떼웠다. 다행히 유로화가 통용되고 있었고 음식값도 별로 비싸지 않았다. 길거리는 지나가는 행인들도 별로 보이지 않고 관광객들도 드물어서 한산했다. 하지만 사람이 많은 것보다 오히려 돌아다니며 구경하기에 더 좋다.

구시가지 광장에는 분수대와 동상이 있다. 광장중앙에서는 야외공연이 있을 예정인지 무대와 의자가 놓여 있다. 광장 옆에는 왕궁이 있는데, 폴란드나 체코의 왕궁보다 소박하면서도 앤티크한 멋이 풍겨진다. 구시가지 거리를 둘러본 후 국립박물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내일은 월요일이라 대부분의 박물관이나 갤러리가 휴관이다. 따라서, 박물관이나 갤러리는 오늘 보아야 한다. 박물관으로 가는 도중에 보이는 명소들도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잠시 멈춰 서서 감상했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푸른 교회다. 건물이 푸른색이어서 붙여진 이름인데   하늘색의 마치 동화에 나오는 예쁜 성같이 생긴 교회였다.

도나우 강변에 위치한 국립박물관에 도착하니 어느덧 5시가 되었다. 관람시간은 1시간정도 남았지만 충분히 여유있게 둘러 볼 수 있는 시간이다. 티켓을 구입해서 박물관 안으로 들어갔다. 박물관에는 3개의 전시관이 있었는데 1층 전시관에서는 슬로바키아의 옛 모습을 담은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다. 예전 흑백 사진들을 보니 슬로바키아도 예전에는 정말 못 살았던 것 같다. 마치 우리나라의 6,70년대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박물관에 다른 관람객은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다른 전시관으로 가보니 슬로바키아 사진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었다. 사진전을 둘러보고 나서 2층으로 올라가 회화를 구경했다.  전시된 작품들은 주로 20세기의 사실주의 작품들로 주로 슬로바키아의 도시와 농촌 풍경을 그린 것들이었다.

박물관을 나오니 시간이 6시 가까이 되었다. 가볍게 도나우 강변을 산책하는데 물이 떨어졌다. 그래서 강변에 있는 작은 레스토랑에 들어가서 물을 샀다. 날이 더워서 300ml 생수를 하루에 2병 이상은 마시는 것 같다. 그런데, 주의할 점은 유럽의 생수는 탄산이 들어간 것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물을 살 때 반드시 No Gas Water라고 말해야 탄산이 없는 물을 준다. 그냥 Water라고 말하면 탄산이 들어간 Gas Water를 줄 수도 있다. Gas Water는 단맛은 없지만 사이다 처럼 톡 쏘기 때문에 마시기가 무척 거북하다. 물을 산 후 다시 시내로 가기 위해 대로를 건너자 슬로바키아 국립 갤러리가 보였다. 입구에서 사람들이 많이 나오는 것을 보아 꽤 괜챦은 작품전이 열리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 6시가 다 되어 들어갈 수 없었다. 썰렁한 국립박물관 보다 차라리 갤러리를 보았어야 했다는 후회가 들었다. 대로를 따라 걸어 다시 구시가지 광장쪽으로 왔다.

구시가지에는 추밀 외에도 재미있는 동상들이 더 있다. 건물뒤에 숨어 몰래 사진을 찍는 모습의 파파라치 동상도 있고, 나폴레옹모자를 쓰고 벤치에 팔을 괴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모습의 동상도 있다. 그리고, 보초를 서고 있는 초병의 동상도 볼 수 있다. 브라티슬라바는 프라하만큼이나 엉뚱하고 재미있는 곳이다. 구시가지 광장에서 조금 더 가면 좁은 골목이 보이고 골목 끝에 미하엘문이 보인다. 바로크 양식의 탑처럼 생긴 문인데, 프라하의 화약탑처럼 예전에는 망루의 역할과 함께 출입을 통제하던 문이었던 것 같다.

미하엘문을 지나 대로로 나오면 넓은 광장과 함께 교회가 보인다.  일요일이라서 저녁 예배가 진행중이었다. 찬송가를 부르는 사제의 목소리가 하도 낭랑해서 안에 잠깐 들어가 보았다. 교회 안의 사람들은 모두 진지하게 예배를 보고 있었다. 자칫 예배를 방해할 것 같아서 얼마 앉아 있지 못하고 나왔다. 저녁은 케밥과 콜라를 사서 광장 벤치에 앉아서 먹었다. 해가 뉘엿뉘엿 기우는 시간인데 저 멀리 브라티슬라바 성이 보인다. 오늘은 시간이 별로 없으니 성은 내일 보기로 했다.

다시 구시가지 쪽으로 와보니 광장에서는 어느덧 축제같은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무대위에서는 전통복장의 여가수들과 밴드가 노래를 연주하고 있었다. 아랍이나 터키 노래 같기도 하고 슬라브 전통민요같기도 한 약간 동양적인 정서가 베어있는 노래였다. 한 할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나 어깨춤을 추고 있었다. 밴드가 또 다른 노래를 연주하자 이번에는 흰색 셔츠와 청바지 차림의 50대로 보이는 두 아저씨가 무대 앞으로 나오더니 서로 어깨동무를 하며 박자에 맞춰 춤을 추는데, 슬로바키아 전통 무용인 것 같았다. 동작이 절도가 있으면서도 경쾌하고 재미있는 춤이었다. 무대앞에는 여러명이 나와 두 아저씨의 춤을 어설프게 흉내 내고 있었다. 구경하는 사람들은 박자에 맞춰 박수를 치며 흥을 돋 구고 있다.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운 동네 축제의 모습이었다. 도심 한가운데의 광장에서 남녀노소 모두가 한 데 어울려 즐길수 있는 축제가 열린다는 사실이 한편으로는 부러웠다. 슬로바키아 사람들은 소박하면서도 전통을 존중하고 함께 어울려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다.

훈훈한 마을 축제를 뒤로하고 UFO 다리가 있는 강변쪽으로 왔다. UFO다리는 차도 아래로 인도가 있는데 다리를 건너 가 보기로 했다. 다리를 걸을 때 차가 지날 때마다 덜컹하는 진동이 느껴졌다. 다리를 건너 강건너편의 강변으로 내려오니 노천 카페가 보이고 그 아래로 작은 산책로가 강을 따라 이어져 있었다. 산책로에서 강 건너편으로 브라티슬라바성이 보였다. 나는 태어나서 저렇게 예쁜 성을 본 적이 없다. 강 건너에서 바라본 브라티슬라바 성과 그 주의위 풍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마침 접이식 의자가 놓여 있길때 거기에 앉아서 브라티슬라바성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웨이트리스가 오더니 맥주를 주문하겠냐고 묻는다. 접이식 의자는 노천 카페의 의자였던 것이다. 그래서 카페로 가서 하이네켄 맥주 500ml 1컵을 사서 접이식 의자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경치를 감상하였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성에 불이 들어오자 점점 더 멋진 풍경이 되었다. 하루의 더위를 날려주는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브라티슬라바성의 멋진 야경을 감상하니 더 이상 부러울 게 없었다. 맥주를 한잔 더 시켜 마시고 흠뻑 취할 정도로 야경을 감상한 후 밤 9시 30분이 되어서야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다리를 건너 호텔로 돌아갔다. 호텔로 가는 도중 본 성마틴 성당도 야경으로 보니 색다른 매력이 있었다.

아침 7시 30분쯤 식사를 하기 위해 호텔 레스토랑으로 내려갔다. 호텔의 아침 식사는 부페식이지만 호스텔보다 훨씬 푸짐하고, 요리도 다양하다. 나는 주로 빵, 버터,치즈, 고기 슬라이스, 햄과 계란 후라이를 한 접시에 담아와 우유와 함께 먹은 후 후식으로 과일과 요구르트 그리고 커피를 마신다. 수박과 멜론이 먹음직스러워 두,세쪽씩 접시에 담아서 먹었다. 유럽은 농산물이 무척 풍부해서 과일이나 식료품 가격이 우리나라에 비해 싼 편이다.

아침을 먹고 8시쯤 호텔을 나섰다. 호텔의 체크아웃 시간은 12시다. 오전에 브라타슬라바성을  구경하고 11시쯤 체크 아웃해서 빈행 열차를 탈 예정이다. 성은 호텔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아침 산책하는 기분으로 언덕을 걸어 올라갔다. 브라티슬라바성은 프라하성처럼 웅장하지는 않지만 기품이 있고 수려하다. 그리고 네개의 첨탑이 있는 흰색의 탑은 아주 독특하다. 베토벤은 브라티슬라바에서 월광 소나타를 작곡했다고 한다. 월광이라는 이름은 후대의 평론가가 호수에 비친 달빛을 연상시킨다하여 붙인 이름이다. 사실 주변에는 달빛을 감상할 만한 고요한 호수도 없다. 나는 베토벤이 브라티슬라바성을 보고 월광소나타를 작곡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고요하면서도 아름답고 그러면서도 힘차고 당당한 모습이 마치 월광소나타의 1,2,3악장을 그대로 닮은 것 같다.

성안으로 들어가보니 정원은 공사 중이었다. 흰색탑은 가운데에 광장이 있는 사각형의 건물이다. 그리고 탑 앞의 광장에는 기마상이 우뚝 서 있다. 성의 전망대에서는 도나우강과 UFO다리가 보이고 강건너 시가지의 모습도 보인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브라티슬라바는 녹지와 숲이 풍부하다. 강건너에 있는 신시가지는 구시가지와는 또 다른 모습으로, 현대식 건물들과 고층빌딩, 그리고 아파트들도 보인다. 브라티슬라바는 전통만을 고집하는 도시는 아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함께 공존하는 도시다. 과거의 구시가지, 현재의 신시가지 그리고 그 둘을 하나로 연결시켜주는 독특한 모양의  UFO다리가 브라티슬라바의 미래를 상징하는 것 같다. 브라티슬라바는 보면 볼수록 멋진 도시다.

성안에는 중국인 단체관광객들이 아침일찍 구경을 왔고 서양인 관광객들도 드문드문 보일 뿐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성벽 둘레는 산책하기에 아주 좋다. 나무와 잔디 조각상과 벤치가 있어서 한가하게 산책을 즐길 수 있는 공원 같은 분위기였다. 또한 산책로에서는 고풍스러우면서도 소박한 구시가지를 내려다 볼 수 있다. 천천히 걸으면서 주변 경치도 감상하고 벤치에 앉아서 오래간만에 느긋한 휴식의 시간을 가졌다. 산책로에는 개를 끌로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과 벤치에 앉아서 쉬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브라티슬라바는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분명 매력적인 곳이다. 프라하처럼 지나친 상업주의를 추구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인간미가 넘치는 곳이다. 이곳은 돈보다 더 가치 있는 인간미와 여유가 흐르고 있다.

▶브라티슬라바 여행 사진들

2012년 7월 26일 목요일

동유럽 여행-프라하 야경 투어


숙소에 와보니 나와 비슷한 연배의 남자가 열심히 태블릿PC를 하는 모습이 보인다. 직장을 그만두고 나서 다음 직장 때까지 휴직 기간 중 한달간 일정으로 유럽을 여행 중이라는 H씨. 나와 같은 싱글이고 동년배라 편하게 얘기할 수 있다. 또한명의 젊은 친구가 보이는데, 말수는 별로 없지만 인상은 착하게 생겼다. 조금 지나자 민박집 사장님이 들어와서 야경투어에 나설 사람들을 모아 민박집을 나섰다. 나를 포함하여 5명이 사장님과 투어에 나섰다. 일행은 약 10분 정도 걸어서 바츨라프 광장에 도착했다.

바츨라프 광장 기마상앞에서 3명이 일행에 합류하였다. 스카이다이브를 하러 갔던 J군과 K군, 그리고 K군이 여행중에 만났다는 여대생. 일행은 다시 무스텍 광장쪽으로 내려갔다. 사람들이 많은 번화가인 무스텍광장도 예전에는 도랑이 있고 다리가 놓여있었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장님은 구시가지 광장이 아니라 관광객들이 잘 가지 않는 골목길로 일행을 인솔했다. 구시가지 광장은 사람들에게 너무 잘 알려져 있어서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하지만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는 곳을 보여주겠다고 하신다.

사장님을 따라 걷다보니, 건물 지붕에 있는 막대기에 대롱 대롱 메달려  있는 사람의 조각상이 보인다. 막대기에 매달린 인물은 프로이트이라고 한다. 조각가의 메시지는 프로이트가 정신의학분야에서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인물이지만 그도 별수 없이 대롱 대롱 버티면서 인생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인간이라는 것이다.

조금 더 걷다 보니 모차르트가 돈지오반니를 초연한 에스타테츠 극장이 보인다. 극장 옆에는 유령의 동상이 보이는데 오페라의 초연을 기념하기 위해 모차르트에게 헌정된 것이라고 한다. 이 유령 동상은 모차르트의 고향 잘츠부르크에도 똑같은 것이 있는데, 프라하의 것이 진품이라고 한다.  잘츠부르크에 가면 똑같은 동상을 꼭 확인해보고 싶었다. 프라하의 거리는 스토리가 넘쳐 난다.   관광객들이 많은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사장님의 유창한 프라하 이야기를 정신없이 듣는 사이 시간은 어느덧 8시 반이 되었다. 사장님은 하벨 시장을 지나 자신이 자주 가신다는 레스토랑으로 일행을 인솔했다. 하벨 시장은 프라하의 재래시장으로 밤 8시가 넘자 상인들이 물건들과 함께 썰물처럼 빠져나가 진열대만 쓸쓸하게 남아 있었다.

일행이 들어간 레스토랑은 체코의 다양한 요리와 함게 직접 빚은 맥주를 맛 볼 수 있다. 투어 도중 퇴사후 유럽 여행 중이라는 30세 여성이 합류해서 일행은 총 10명이 되었다. 사장님이 인원수에 맞게 요리를 주문하고 맥주는 일인당 3잔씩 마시기로 했다. 목이 말랐던 터라 목에서 꼴깍꼴깍 넘어가는 생맥주 맛은 천상의 맛이라고 해야 할까. 그리고 맥주와 함께 나온 감자튀김 맛도 훌륭했다. 레스토랑에서 직접 튀긴 감자로 패스트푸드점의 프렌치 프라이와는 차원이 달랐다. 유럽에서는 보통 맥주를 마실 때 안주 없이 그냥 마신다. 하지만 우리는 맥주를 마실 때 하다못해 과자라도 먹어야 하기 때문에 감자튀김을 같이 시킨 것이다. 안주와 함께 맥주를 마신다는 사실을 종업원에게 이해시키는데 무척 힘들었다고 사장님은 한다. 체코맥주는 우리나라처럼 탄산을 넣지 않아서 톡쏘는 맛이 없다. 그리고 굉장히 진하고 깊은 맛이 느껴진다. 우리가 알고 있는 버드와이저 맥주의 원산지는 사실 체코다. 공산국가 시절 부드바르 맥주공장의 직원 몇명이 제조법을 가지고 미국으로 건너가서 버드와이저 맥주를 만들었다. 상표도 부드바르의 영어식 표기인 버드와이저를 그대로 사용했다. 자유화 이후에 부드바르사에서 버드와이저에 상표권 침해 소송을 냈고 부드바르사가 승소하였다. 이후 양사는 버드와이저 맥주의 원료를 부드바르사가 공급하고 또한 버드와이저맥주에 부드바르를 함께 표기하는 것으로 합의를 보아 상표권 분쟁은 일단락 되었다. 체코는 예전부터 맥주 제조법이 발달했고 체코 맥주하면 유럽에서도 알아준다. 맥주맛도 일품이지만 고기도 맛있다. 특히 구워서 나온 립이 굉장히 맛있는데, 맥주와는 환상의 궁합을 이루고 있었다. 물론 소시지와 샐러드도 일품이다.

10명의 한국인이 체코 레스토랑에서 웃고 떠들며 함께 식사를 하니 마치 서울의 외국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는 것 같다. 2시간 동안 맛있는 체코 요리와 맥주를 마시며 모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10시 30분쯤 레스토랑을 나와 일행은 사장님의 인솔로 카를교로 갔다. 카를교에서 사장님의 유창한 설명이 또 이어진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프라하는 총알 한방 맞지 않고 무사할 수 있었다. 처참히 파괴되었던 바르샤바와 달리 프라하는 전쟁의 상흔을 찾을 수가 없다. 그 이유는 전쟁 전 히틀러에게 나라 전체를 갖다 바쳤기 때문이다. 같은 슬라브민족인데도 체코인들과 폴란드인들은 이렇게 달랐다. 물론 체코인들이 나라를 바친 이유는 전쟁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만약 그들이 나라를 포기하지 않았다면 프라하는 바르샤바처럼 잿더미가 되었을 것이다. 2차대전 당시 히틀러는 프라하에 오랫동안 머물렀는데, 프라하의 매력에 반해서 부하들에게 프라하는 절대 포격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을 정도라고 한다.

블타바 강변에서 바라본 카를교와 프라하성의 야경은 압권이다. 프라하는 낮도 아름답고 밤은 더 아름답다. 일행은 야경에 취해서 사진 찍기 바쁘다. 스메타나 동상이 있는 카페를 지나 일행은 카를교로 갔다. 카를교에는 소원을 비는 동상이 있다. 바로 다섯개의 별이 있는 후광을 갖고 있는 얀 네포무크 신부의 동상이다. 소원을 비는 방법은 십자가에 손을 얹고 소원을 생각한 다음 얀 네포무크 신부 동상 아래에 있는 동판을 만지면 된다.

카를교를 건넌 후 사장님은 프라하에 홍수가 났을 때 수위를 표시해 둔 곳으로 일행을 안내했다. 몇십년전 프라하에 기록적인 홍수가 발생했을 때 그때의 수위을 벽에 표시해둔 곳이었다. 그런데 몇년전 프라하에 또 한번의 대홍수가 발생했을 때는 지난번의 수위를 넘어서고 말았다. 그 때의 수위는 사람키보다 훨씬 높았다. 그래서 그 수위도 함께 벽에 표시해 놓았는데, 이런 것 마저도 이야기가 되고 관광 자원이 된다는 것이 놀라웠다. 역시 프라하다.  일행은 카프카 박물관을 구경한 후 다리를 건너 구시가지 광장으로 갔다. 시계탑 앞에서 사장님은 시계탑의 유래와 인형들의 퍼포먼스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사장님의 해박한 지식과 수백년 전에 이렇게 멋진 시계탑을 만든 체코인들의 장인 정신에 모두 감탄했다. 이렇게 설명을 들어가면서 명소를 둘러보니 그냥 스쳐 지나며 보았던 것들을 새로운 의미를 갖고 다시 보게 된다.  자정 무렵인데도 구시가지 광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야경을 보러나온 관광객뿐만 아니라, 술마시고 오바이트 하는 사람들도 있다. 밤이면 이곳도 환락가로 변한다. 야경투어는 이것으로 끝났지만 아직 볼거리가 하나 더 남아 있었다. 바로 스트립바다. 사장님은   일행을 바츨라프 광장 옆에 있는 스트립바로 안내했다.
해외에서 스트립바는 처음 가본다. 야한 생각보다는 대체 어떤 곳인지 궁금했다. 이것도 일종의 문화 체험이라고 생각했다. 바 입구에는 엄청난 체격의 험상궂은 남자가 앉아 있어서 이곳이 유흥가라는 것을 실감나게 했다. 일인당 300크로네를 선불로 지불하고 쿠폰을 받은 뒤 입장했다. 입장료 쿠폰에는 500ml 맥주 5잔이 포함되어 있다. 웨이트리스가 테이블을 오가며 맥주를 가져오고 다 마신 잔은 가져간 후 다시 잔을 채워 가져오곤 했다. 다 마신 잔은 쿠폰에 정확히 체크를 한다. 스트립걸들은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데, 디스크 자키가 음악을 틀어주고 춤이 끝나면 댄서의 이름을 불러준다. 맥주는 3잔 정도 마시자 더 마시지 못할 만큼 배가 불렀다. 쿠폰에 있는 5잔을 다 마시는 것은 사실 어렵기 때문에 남은 잔은 결국 바의 수입이 된다. 이것도 교묘한 상술이다. 새벽 2시 가까이 까지 쇼를 보다가 우리 일행은 바를 나왔다. 숙소로 돌아와 간단히 샤워하고 침대에 눕자 시간은 어느덧 2시 반을 넘었다. 내일은 아침에 브라티슬라바로 이동해야 한다.

동유럽 여행-프라하(2)


프라하 투어 이틀째, 오늘은 프라하성과 말라스트라나지구를 구경하기로 했다. 민박집의 아침은 한식뷔페로 접시에 밥과 반찬을 떠서 국과 함께 먹는데 꽤 먹을만했다. 오늘 저녁은 민박집 사장님의 인솔로 프라하 야경 투어가 있는 날이다. 저녁 7시에 민박집을 출발해서 도보로 구시가지 광장과 카를교등을 둘러보면서 중간에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를 하는 것이다.

아침을 먹고 지하철역으로 가서 프라하성이 있는 흐라드챠니역까지 싱글 티켓을 끊었다. 오늘은 프라하성 주변을 둘러보므로 교통편을 많이 이용할 일이 없다. 그리고 프라하성 주변은 도보로 충분히 커버할 수 있는 지역이다. 우선 수퍼마켓에서 샌드위치와 음료수를 샀다. 어차피 프라하성 주변에는 수퍼마켓이나 햄버거가게도 없을 테고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자니 혼자 들어가기도 뻘쭘하고 관광지라 무척 비쌀 것 같았다. 그래서 샌드위치를 사서 점심때 먹을 생각으로 들고 갔는데, 가방안에 들어가지 않아서 손에 들고 다니기가 여간 귀챦지 않았다. 숄더백은 가이드북과 카메라 그리고 물에다 우산까지 넣으면 가방이 불룩해진다. 그래서 가이드북은 손에 들고 다닌다. 숄더백의 내용물을 줄이기 위해 음료수는 빨리 마셔버리고 샌드위치와 가이드북을 손에 들고 투어에 나섰다.

체코어로 성을 흐라드라고 한다. 흐라드차니역에서 올라와 트램이 지나는 철로를 건너 위쪽으로 쭉 걸어가면 왕궁정원이 있고 좀 더 걸어가면 멋진 제복을 입은 근위병들이 서 있는 정문이 나타난다. 왕궁 정원은 잔디와 화단을 아름답게 꾸며놓은 곳이다. 정문을 지나면 왕궁건물과 성 비투스 성당이 나온다. 세계 최대 규모라는 프라하성은 현재 대통령 관저로 이용되고 있다. 그래서 근위병들이 지키고 있는 것이다.

왕궁앞 광장에는 큰 분수가 있고 세계 각지에서 온 수많은 관광객들을 볼 수 있다. 왕궁은 르네상스양식의 단정한 건물로 일부는 현재 국립 갤러리로 이용되고 있다. 왕궁 광장에서 옆문으로 들어가면 드디어 프라하 성의 하이라이트인 성 비투스 성당이 나온다. 가까이서 본 비투스 성당은 그 크기에 압도되고 만다. 약 천년에 걸쳐 지어졌다고 하는 이 성은 20세기 초가 되어서야 완공되었다고 한다. 천년에 걸쳐 지은 건물이라서 그런지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지난번 여행때는 왕궁광장까지 들어와서는 비투스 성당을 가까이서 보지 못했다. 이번에 가까이서 보니 대단하다는 말밖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크기도 크기려니와 외벽 곳곳에 새겨진 아름다운 문양들과 조각상들이 비투스 성당의 신비감을 더해주고 있었다. 비투스 성당의 우뚝 솟은 2개의 첨탑은 블타바 강변에서도 보이는데, 가까이서 보니 그 위용이 실로 대단했다. 성당의 내부는 일반인들에게 공개되고 있는데, 관광객들을 따라 줄을 서서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그런데, 내부도 일정부분까지만 무료고 더 안쪽으로 들어가려면 입장료를 내야 한다. 하지만 무료입장영역을 보는 것만으로도 내부의 모습을 감상하기에는 충분했다. 정교한 스테인드 글래스도 볼 수 있고, 무엇보다도 엄청나게 높은 천장을 보면서 다시 한번 비투스 성당의 위용에 감탄하였다. 성당을 나와 주변을 둘러보면서 여러 각도에서 비투스 성당을 감상해보았다. 어느 한 곳 소홀히 만든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것이야말로 체코 예술의 완결판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비투스 성당을 등지고 광장 맞은편에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이 보인다. 그 성당을 옆으로 끼고 내려가면 황금소로가 나온다. 카프카가 머물면서 집필을 했다는 집이 있는 거리다. 황금소로를 구경하기 위해서는 입장료를 내야 한다. 그런데, 입장료 간판을 보니 한국어가 보였다. 중국어, 일본어와 함께 “황금 소로"라고 분명히 한글로 써 있다. 프라하성은 이렇게 곳곳에 입장료를 받는 곳이 많다. 그러나, 굳이 입장료를 내면서까지 들어가서 구경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성밖으로 나와서 발트슈테인궁전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정오가 가까이되자 배가 출출하던 참에 공원 벤치에 앉아 아침에 사온 샌드위치를 먹었다. 그동안 손에 들고 다니느라 사실 애물단지였다. 점심을 먹고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다시 걸었다. 발트슈테인 궁전은 가이드북에는 정원이 아름다운 명소로 나와 있는데, 주변에는 관광객들도 없었고 명소다운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지도상에는 분명 이 위치가 맞는데... 어쩔 수 없이 발트슈테인 궁전은 포기하고 이번에는 말라스트라나 지구에 있는 존레논 조각상을 찾아보았다. 그런데,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지도상에 있는 위치 거리 이름까지 정확히 찾았으나 그곳에는 존레논 조각상도 관광객들도 없었다. 프라하의 명소라면 분명 관광객들이 몰려 있을 텐데 말이다. 발트슈테인 궁전과 존 레논 조각상 나와는 인연이 없는 모양이었다.

더운 날씨에 한참동안 걸었더니 지친다. 그래서 스타벅스에 들어가서 에어컨 바람도 쐬고 커피도 마실 겸 해서 들어갔다. 그런데 더운 날씨에 뜨거운 커피를 괜히 마셨나 싶기도 하다. 스타벅스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는데 한국 학생들이 몇몇 보인다. 프라하에는 한국인 관광객들이 꽨 많다.

커피점을 나와 성미쿨라세 성당을 본 후 네루도바 거리를 따라서 스트라호프 수도원 쪽으로 올라갔다. 말라스트라나에 있는 성미쿨라세 성당은 구시가지 광장의 것과 이름도 같고 바로크 양식으로 보양도 비슷하다. 그런데, 보수 공사중인지 겉면이 커다란 덮개로 덮여 있었다. 네루도바 거리를 따라 올라가면 드넓은 녹지가 있는 언덕이 보이고 언덕 위에는 영화 아마데우스의 촬영 장소로 유명한 스트라호프 수도원이 있다. 그런데, 뙤약볕 아래에서 걷느라 이미 몸은 지칠대로 지쳐 있었다. 그래서 수도원 정원의 그늘에 오랫동안 앉아서 수도원 경치를 감상하였다. 관광객은 별로 없지만 평온한 수도원의 분위기가 좋았다. 매시간 정각 그리고 15분 간격으로 종소리가 들렸다. 소변이 마려워 WC라고 적힌 팻말을 따라 화장실에 가보니 유료였다. 화장실 사용료는 대략 우리나라돈으로 500원정도 된다. 유럽은 우리나라처럼 공공 화장실이 없다. 길거리에 있는 화장실은 대부분 돈을 내고 사용하는 유료화장실이다. 화장실은 무료라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는 동양인들은 화장실을 이용하는데 돈을 낸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것이 유럽의 문화이기 때문에 이방인이 이에 대해 왈가왈부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스트라호프 수도원에서 쉬었더니 한결 몸이 가벼워진다. 이번에는 로레타 성당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스트라호프 수도원과 큰 거리를 사이에 두고 있는 로레타 성당은 바로크 양식의 아담한 수도원으로 조용한 분위기로 인해 사색을 즐기기에는 더없이 좋은 곳으로 보였다. 그런데 쉴 수 있는 그늘이 별로 없다는 점이 다소 흠이다. 더운 날씨에 더위를 느끼지 않기 위해서는 그늘에서 쉬던가 아니면 걷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로레타 성당을 빠져나와 프라하성 북문 광장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아까 올라왔던 길과 반대방향이므로 이번에는 내리막길이다.

프라하성은 정문이 여러곳 있는데, 스트라호프 수도원에서 내려오는 길에 보이는 북문이 가장 유명하다. 선글라스를 쓴 근위병이 부동 자세로 서 있고 많은 관광객들이 북문을 통해 성 안팎으로 출입하는 모습이 보인다. 북문 광장은 전망이 좋은 곳으로 이곳에서는 말라스트라나 지구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연붉은색의 삼각 지붕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을 보면 프라하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된다.

북문을 통해 다시 왕궁으로 갔다. 이번에는 프라하 국립갤러리를 관람하였다. 국립갤러리는 르네상스와 바로크시대 서유럽 화가들의 명화가 주로 전시되어 있다. 갤러리에는 티치아노, 틴토레토같은 르네상스시대 화가들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프라하성도 다 둘러 보았다. 이제 왕궁정원쪽으로 돌아서 카를교를 건너 숙소로 돌아갈 생각이다. 왕궁정원을 지나고 나면 큰 공원이 보인다. 공원에서는 저멀리 카를교의 아름다운 모습이 보인다. 그런데 길을 잘못 들어서 그만 공원을 한바퀴 돌고 말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다른 길로 내려갔더니 아스팔트 도로가 있는 길을 따라 한참을 돌아서 겨우 발트슈테인 궁전이 있는 위치까지 왔다. 그리고 여기서 또 한참을 걸어서야 카를교의 말라스트라나 교탑이 보였다. 프라하의  구시가지와 신시가지의 도로는 우리가 흔히 보는 아스팔트 도로가 아니라 네모난 벽돌들이 간극을 갖고 모자이크처럼 박혀있는 벽돌길 이다. 이곳에서 사람도 걸어다니고, 자동차와 트램도 다닌다. 자동차의 입장에서는 아스팔트보다는 불편하겠지만 보행자의 입장에서는 훨씬 좋다. 프라하 뿐만 아니라 유럽 대부분 도시의 중심가는 다 이런 벽돌길이다.

점심을 먹은지 오래되어서 약간 허기가 졌다. 더구나 더위에 지친 상태라 빨리 숙소로 가서 휴식을 취한 후에 야경투어에 나서야 겠다고 생각했다.

▶프라하 여행 사진들

2012년 7월 24일 화요일

동유럽 여행-프라하(1)

아침 8시 프라하 중앙역에 도착하자마자 환전소에서 환전을 했다. 라커를 이용하든 일일교통권을 구매하든 체코 크로네화가 필요했기 때문에 80유로 정도를 환전했다. 배가 고파서 버거킹에서 햄버거 세트로 일단 아침을 해결한 후, 1층 라커룸에 배낭을 보관했다. 민박이든 호스텔이든 체크인 시간은 보통 오후 2시 이후이므로 배낭을 라커에 보관하고 시내투어를 한 후 숙소로 갈 계획이었다. 교통권은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1일권으로 1매  구입했다. 단기간 투어인 경우 하루에 여러곳을 돌아 보게 되므로 일회권보다는 1일권을 끊는 것이 돈이나 시간을 절약하는 길이다. 어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피곤한 상태이므로 수퍼마켓에서 레드불을 하나 사서 마셨다. 레드불은 여행중에 갑자기 피로해지거나 몸살기운이 났을 때  마시면 효과적이다. 지난 서유럽 여행때 로마시내 투어를 하다가 갑자기 기운이 떨어지면서 감기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점심으로 피자와 레드불을 먹었는데, 다시 힘이 솟기 시작했다. 그 때 나는 레드불의 효과를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 이후로 나는 여행시 체력이 저하될 때를 대비해 항상 레드불을 지니고 다녔다. 지난 서유럽 여행때처럼 크게 무리하지 않기로 했으므로 레드불을 가방에 넣어서 다니지는 않겠지만, 야간열차를 이용한 후이므로 과감히 한 캔 들이켰다.

지하철을 타고 바츨라프 광장이 있는 무제움 역으로 갔다. 사실 중앙역과 바츨라프 광장은 한 정거장 거리기 때문에 그냥 걸어가도 된다. 폴란드와 달리 프라하는 아침부터 날씨가 더웠다. 바츨라프 광장으로 나오니 드디어 프라하에 온 기분이 난다. 광장을 따라 내려와 우측길로 접어들었다. 처음으로 찾아간 곳은 화약탑과 시민회관. 두 곳은 프라하의 명소임에도 지난 여행 때 보지 못했다. 화약탑은 카를교의 교탑과 비슷하다. 탑 하단부에는 큰 문이 있어서 망루 역할과 동시에 출입을 통제하던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프라하의 중세 건축물들은 언제 보아도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폴란드에서는 발견하기 힘든 독창성이 프라하 구시가지 곳곳에 넘쳐 흐른다. 화약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시민회관이 있다. 중세 건물들이 즐비한 프라하에서 그냥 무심히 지나칠 수도 있는 건물이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다른 건물들과는 디자인이 다르다. 이 건물은 20세기 초 아르누보 예술가인 무하가 디자인한 것으로  아르누보 건축의 걸작으로 꼽힌다. 지붕은 둥근 아치형이고 창문도 큼직하다. 그리고, 베이지색의 색상이 매우 산뜻해 보인다. 중세도시 프라하는 고딕이나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구시가지에서는 로마네스크 양식부터 아르누보까지 약 1000년에 걸친 건축의 역사를 모두 볼 수 있다. 프라하는 전통을 존중하고 잘 보존하지만 또한 전통에만 집착하지도 않는다. 물 흐르듯이새롭고 다양한 것들을 포용하는 열린 마음이 프라하가 갖고 있는 또하나의 매력이다. 프라하에는 독창성과 자유분방함 그리고 열린마음이 느껴진다.

구시가지 광장과 카를교를 보기위해 화약탑 문을 지나서 계속 걸어갔다. 프라하의 모습을 가장 함축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곳이 바로 구시가지 광장이다. 우선 가이드북에 적혀있는 건물들을 꼼꼼히 찾아 보기로 했다. 그런데, 이곳도 유로2012 팬존이 설치되어 있는데, 후원사가 바로 현대자동차였다. 큼지막한 현대로고와 함께 얀후스 동상 바로 앞부터 틴성당 입구까지 팬존이 설치되어 있어서 구시가지 광장의 탁트인 전경을 볼 수 없었다. 실망감이 밀려왔다. 축구도 좋지만 이런 역사적인 장소까지 상업적으로 이용한다는 사실에 약간 화가 치밀기도 했다. 프라하도 이제 더이상 중세의 신비만을 간직하고 있는 있는 도시는 아니다. 거리 곳곳에는 외국기업들의 광고가 어지럽게 보이고, 가뜩이나 관광객들도 많은데 보행공간까지 노천카페가 점령해버려 인파에 밀려 걷는 것이 짜증날 정도로 상업주의가 판을 치고 있다. 상업주의로 변질된 구시가지 광장의 모습을 보면서 프라하를 다시 찾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

2개의 첨탑이 우뚝 솟은 전형적인 고딕양식의 틴성당도 건물 옆까지 다가가서 자세히 보았다. 틴성당은 붉은 벽돌로 지은 폴란드의 성당과는 달리 사암 벽돌로 지은 성당이다. 멀리서 보았을때는 몰랐는데, 가까이서 보니 크기와 높이에 압도되고 만다. 구시가지 광장 한 쪽에는 바로크 양식의 성미쿨라세 성당이 있는데 내부에까지 들어가 보았다. 서양의 성당은 내부가 화려하기 때문에 겉모습만 보는 것은 좀 아쉽다. 내부에는 벽화와 성화, 성상들이 화려하게 자리잡고 있고 고딕양식의 성당에는 스테인드 글래스까지 볼 수 있다. 그밖에 광장 주변에 아인슈타인이 찾아왔다는 카페에는 벽에 그의 얼굴상이 새겨져 있다. 건물모서리에 종모양의 조각이 보이는 익살스런 건물도 보이고 화려한 로코코 양식의 건물도 보인다. 구시가지 광장과 그 주변 거리는 매우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다. 좁은 골목마다 작은 광장마다 저마다 나름의 이야기가 있다. 그러고 보면 프라하는 스토리의 도시다. 천년의 역사가 있는 만큼 셀수 없이 많은 사연과 이야기가 거리마다 숨어 있다. 또한 거리에는 익살과 유머를 끊임없이 발견할 수 있는데, 이로 인해 거리를 걷는 것이 즐겁다. 프라하를 한마디로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여행자의 입장에서 굳이 평한다면 신비로우면서 즐거운 도시라고 말하고 싶다.

광장 한쪽에는 시계탑이 보인다. 시계탑은 구시가지 광장에서 가장 인기있는 볼거리다. 매시 정각마다 시계탑 아래에는 관광객들이 몰려드는데, 그 이유는 정각마다 시계에서 인형들의 퍼포먼스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한번도 퍼포먼스를 본 적이 없다. 오늘은 시계탑에 올라가서 구시가지를 조망해볼 생각이다. 시계탑은 엘리베이터와 계단 모두 이용이 가능하다. 티켓을 구입한 후 일단 나선형 계단으로 걸어서 올라갔는데 높이가 꽤 되었다. 시계탑 전망대에서 바라본 구시가지의 풍경은 생각보다 훨씬 멋지다. 위에서 내려다 본 틴성당의 모습은 올려다 보았을 때와는 또 다른 매력이 느껴지고, 붉은색의 지붕들이 모여있는 구시가지의 아기자기한 풍경도 아름답다. 지난 여행 때 페트르진 전망대에서 시가지를 내려다 보았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시계탑은 입장료가 아깝지 않은 꼭 한번 올라가볼 필요가 있는 곳이다.

구시가지 광장에서 블타바강을 바라보고 오른쪽으로 가면 유대인지구가 나온다. 지난번 여행때 가보지 않은 곳이라 한번 돌아 보고 싶었다. 크라쿠프의 카지미에슈만큼 낡지는 않았지만 프라하의 유대인 지구 요제포프 또한 프라하의 다른 거리에 비해 아주 검소하고 소박하다. 다양한 양식의 시나고그들이 있고 관광객들도 아주 많다. 하지만 카지미에슈에 비하면 그다지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유대인지구에서 블타바 강쪽으로 나와 왼편으로 걷다보면 체코필하모니의 근거지인 루돌피눔이 보이고 그곳에서 구시가지쪽으로 거리 하나를 마주보고 공예박물관이 있다. 더위도 피할겸 공예박물관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박물관에는 체코의 유리공예품들을 전시하는 기획전이 열리고 있었다. 이곳에서 체코인들의 손기술과 장인정신, 보헤미안의 예술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정교하고 화려한 그리고 예술적인 크리스탈 가공기술은 정말 대단해 보였다. 체코는 수공예산업과 정밀공업이 예로부터 발달했다고 한다. 그래서 구소련 시절 공산권에서 사용하는 권총 같은 정밀 제품들은 대부분 체코에서 생산했다고 한다. 그만큼 손기술이 뛰어난 민족인 것이다.

공예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오른쪽으로 좀더 걸어 카를교로 갔다. 카를교의 교탑이 우뚝 서있는 모습이 보이고 그 오른편으로는 카를 대제의 동상도 보인다. 정오가 가까이되자 날은 점점 더 더워지고 햇살은 뜨겁다. 그 때문인지 카를교 위의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카를교에서는 블타바강 건너편의 프라하성이 보인다. 오늘은 구시가지만 보고 프라하성은 내일 구경할 예정이다. 카를교위를 천천히 산책하면서 성상들을 구경하고 사진도 찍고 블타바 강변의 경치도 감상하였다. 카를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라고 하는데 역시 명불허전이다. 그런데 너무 덥다. 다리위에는 흥겹게 공연하는 악사들이 보이고 기념품과 그림을 파는 사람들은 파라솔을 하나씩 세워놓고 햇볕을 피하고 있었다. 다리를 건너자 좌측계단으로 내려가 캄파섬으로 갔다. 캄파섬은 작은 운하를 끼고 강변에 붙어있는 곳으로 섬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 곳이다. 캄파섬은 잔디와 나무가 많은 공원지역이다. 그곳에서는  잔디에 누워 망중한을 즐기는 사람들과 가족끼리 또는 연인들끼리 피크닉을 나온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캄파섬의 건물벽에는 그래피티도 많이 볼 수 있는데, 그다지 수준작들로는 보이지 않는다. 나무 그늘에 벤치가 있어 그곳에 앉아 햇살을 피하며 블타바 강의 경치를 바라보았다. 이곳은 구시가지와 같은 번잡함이 없어서 휴식을 취하기에는 괜챦은 곳이다. 캄파섬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카를교 쪽으로 갔다. 이번에는 반대로 구시가지 방향으로 걸었다.

카를교를 구경한 후 춤추는 건물을 보기 위해 구시가지 광장을 지나 무스텍역으로 내려갔다. 춤추는 건물은 가이드북에서 본 재미있는 건물로, 마치 한쌍의 남녀가 왈츠를 추는 것 같은 모습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프라하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일일이 표를 검사하지 않는다. 일일권의 경우 검표기에 개시 시간을 찍으면 24시간 이내에 트램, 버스,지하철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검표를 하지 않는다고해서 무임승차를 해 본 적은 없다. 검표는 하지 않지만 사복 경찰이 수시로 표검사를 하기 때문에 한 번 걸리면 운임의 수십배를 물어야 한다. 블타바 강변에 있는 춤추는 건물은 프라하의 전반적인 정서인 유머에 아주 잘 부합한다. 현대적인 감각에 엉뚱한 발상, 이런 건물은 프라하가 아니면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강쪽을 바라보니  한강 공원처럼 강 양옆에 제방이 있고 공터가 있었다. 그래서 계단을 통해 내려가서 다리 밑의 그늘로 햇빛을 피해 들어갔다. 강에서는 한무리의 백조떼가 이쪽을 향해 오고 있었다. 그런데 백조들은 사람을 겁내지 않는지, 내 쪽으로 점점 더 다가온다. 우아한 자태의 백조는 프라하에 잘 어울리는 새라는 생각이 든다. 백조 한마리가 내 앞에서 한참 머물다가 먹을 것을 주지 않아서인지 다시 저 멀리로 사라진다.

다시 구시가지 쪽으로 와서 이번에는 프라하 큐비즘 박물관을 찾았다. 큐비즘은 20세기 초 태동한 미술사조로 프라하에서 꽃을 피웠다고 한다. 큐비즘 박물관은 20세기 체코 큐비즘 예술가들의 작품을 한 곳에 모아 전시한 곳이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 3층에 걸친 전시실을 모두 둘러보았다. 큐비즘은 그림뿐만 아니라 조각이나 건축에까지 영향을 미쳤는데, 그러고 보니 프라하 거리의 건물들은 큐비즘의 영향을 받은 것들이 많다. 그러나, 박물관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사실 프라하는 도시 자체가 박물관이다. 건물 하나하나 제대로 음미한다면 사실 박물관을 구경하는 것보다 다 낳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대미술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한 번 들어가 볼 만한 곳이다.

첫째날 프라하 투어를 모두 마쳤다. 욕심을 내서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곳까지 구석구석 둘러보았다. 더운 날씨에 고생은 되었지만 그만큼 성취감도 컸다. 프라하에 대해서 더 많이 알게 되었고, 더 가깝게 다가간 느낌이었다. 중앙역으로 가서 라커에서 배낭을 찾은 후 약도를 보면서 프라하의 묵을 숙소를 찾아갔다. 프라하에서 묵을 숙소는 한인 민박집으로 바츨라프 광장에서 500m쯤 걸어가면 있다. 민박집의 침대는 호스텔과 달리 1층침대였고, 함께 묵을 룸메이트는 한명밖에는 없었다. 그곳의 사장님은 40대 중반의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를 쓰는 분으로 성격이 매우 쾌활해 보였다. 같은 방에 투숙하는 룸메이트 J군은 대학교 4학년생으로 취업을 앞두고 유럽여행중이라고 한다. 동유럽을 여행중인데, 여행코스가 나와  비슷했다. 샤워를 하고 일찍 잠을 청하려고 하는데, 9시가 넘었는데도 매우 더워 잠을 자기 어려울 것 같았다. 더욱이 창문을 열어놓아 도로에서 들리는 차소리가 아주 시끄러웠다. 그래서 호프집에서 맥주한잔 어떻겠냐고 룸메이트에게 제안했더니 오케이란다. J군과 호프집에서 맥주를 마신 후 자정이 가까운 시각에 민박집에 돌아왔다. 날씨는 약간 서늘해져서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룸에는 어느새 또 한명이 젊은이가 들어와 짐을 풀고 있었다. 이 친구는 K군으로 J군과 동갑인 취업 준비생이었다. 한국에서 일도 취직도 제대로 풀리지 않아 기분전환도 할 겸 유럽 여행을 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