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23일 수요일

안철수 서울시장 출마에 대한 단상

안철수가 서울시장 출마 선언을 했다. 하지만 나는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 문재인정권의 실정에 대한 심판여론이 확산되고 있지만 서울시장 선거는 그다지 호락호락하지 않다. 안철수가 서울시장에 당선되기 어렵다고 보는 이유는 세가지가 있다. 첫째, 안철수는 세력이 없다. 한국의 정치는 결국 세대결인데 안철수는 적극지지층이 보수 진보층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둘째, 보수세력들은 그가 서울시장에 당선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2018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보수층은 안철수가 아닌 김문수를 선택했다. 문재인정권 심판을 위해서는 보수층의 지지를 받아야 하지만 이번에도 그들은 관성에 의해 자신들의 후보를 찍을 것이며 안철수를 찍지는 않을 것이다. 셋째, 서울시민들이 의식수준과 변화에 대한 열망이 높지 않다. 지난 2018년 선거에서 서울시민들은 박원순을 선택했고, 이번 재보궐선거를 야기했다. 이는 서울시민들의 정치의식과 변화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낮은지를 나타내는 것이다. 서울시장은 결국 서울시민들이 선택하는 것이다. 그들이 박원순같은 인물을 뽑았다는 것은 결국 유권자들의 수준이 박원순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말해 준다. 안철수는 한국사회의 기득권세력들에게는 여전히 '아웃사이더'다. 정치계뿐만 아니라 주류 언론과 재벌들에게도 안철수는 변종으로 인식되며 경계의 대상이다. 주류 언론들은 그를 흥행몰이의 수단으로 생각할 뿐 띄워줄 생각은 없다. 한국사회의 부를 독점하고 있는 재벌들도 안철수에 대해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다. 안철수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득권세력들은 페이스 메이커로 그를 써먹을 수는 있어도 권력을 가진 안철수를 경계하고 있다. 이번 보궐선거도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가 완주를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서울시장에 당선가능성은 그다지 높아 보이지 않는다.

2020년 11월 13일 금요일

중국몽과 다극화시대

우리가 중국몽을 거부해야 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21세기 중국은 몽골제국 이후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황인종 국가가 되려 하고 있다. 같은 황인종인 한국인으로서 중국의 부상은 한편으로는 매우 자랑스런 일이다. 중국의 부상은 대항해시대 이후 서구중심의 세계가 재편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중국이 세계경제를 지배하는 것은 모든 아시아인들에게 바람직한 것이다. 중국이 공산당 일당독재 국가이기는 하지만 중국의 경제적 번영이 정치적 이슈로 폄하되어서는 안된다. 14억 인구의 중국이 이룩한 경제적 성과는 놀라운 것이다. 한국은 이제 미국중심주의에서 벗어나 번영하는 중국과 함께 번영하는 유라시아의 시대에 동참해야 한다. 한미동맹은 고작 70년이지만 한중동맹관계는 2천년이 넘는다. 지난 2천년동안 중국과 한반도는 우호관계를 유지해왔고 한국인들의 조상은 중국과 유라시아대륙에서 건너온 사람들이다. 서구의 백인들보다 중국인들에게 문화적 인종적 친근감을 느낀다. 반면 산업혁명 이후 세계질서를 주도해온 서구의 백인들은 오만하다. 그들은 중국의 부상에 당황해하고 있다. 세계의 중심이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다시 유라시아 대륙으로 이동하고 있다. 한국은 부상하는 중국의 등에 올라타고 경제적으로 번영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중국은 아시아의 용이다. 중국의 실크로드 프로젝트에 동참하고 중국어를 배워라. 미국은 쇠퇴하고 있다. 세계는 다극화시대로 가고 있다.

2020년 11월 7일 토요일

4차산업혁명은 허구다

4차산업혁명 담론은 이제 중단되어야 한다. 4차산업혁명은 존재하지 않는 신기루다. 빅데이터는 빅브라더화가 되고 AI는 바둑정도에만 쓰이고 있다. 5G기술은 개인에 대한 감시와 통제기능만을 강화할 뿐 무선통신 기술의 발달은 이제 무의미하다. 코로나 바이러스 방역을 빌미로 권력과 디지털 빅테크들이 결탁하여 개인의 자유와 기본권마저 침해하고 있는 현실이다. QR코드와 안면인식 기술등 이제 디지털 기술은 빅브라더의 감시를 위한 도구가 되어가고 있다. 4차산업혁명은 실리콘밸리의 디지털 빅테크 업체들이 자신들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만든 허구적 담론에 불과하다. 디지털기술은 인간의 행복과는 무관하다. 스마트폰은 대중들을 지하철에서 핸드폰이나 보고 게임이나 하는 바보들로 만들었다.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SNS도 이제 그저 낙서장 정도나 정치인들의 글에 댓글을 다는 정도로만 쓰이고 있다. 스마트폰은 이제 휴대용 카메라 정도외에는 큰 효용을 찾을 수가 없다. 그린뉴딜, 4차산업혁명 모두 투기자본들이 만들어낸 허황된 담론들이다. 친환경 기술이나 디지털 기술은 인간의 삶을 변화시킬 근본적인 기술들이 아니다. 그저 보조적이고 실험적인 도구들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삶의 본질적 변화를 가져온 혁신은 20세기 초에 이미 끝났다.

2020년 10월 20일 화요일

코로나 암흑기와 K-방역의 어두운 단면

코로나 바이러스의 전세계 확산이 시작된지 8개월이 지난 지금 코로나 블루를 넘어서 코로나 암흑기에 진입했다. 경기도에서는 '마스크는 내친구' 같은 미친 구호가 등장하는가 하면 서울의 한 쇼핑센터에서는 '마스크 쓰고 즐겁게 쇼핑하세요'라는 이상한 문구가 적혀 있다. 마스크 쓰고 즐겁게 쇼핑이 가능한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스크를 쓰고 즐거운 쇼핑을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일상생활도 불가능하다. 한국의 언론과 미디어에서는 K-방역을 성공시킨 물건이 마스크라고 떠들어 대지만 정작 마스크가 바이러스 차단과 확산 방지에 효과가 있는지 확실한 증거는 없다. 단지 마스크를 쓰면 바이러스의 확산이 덜 될 거라는 막연한 추측과 기대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마스크가 감염학적으로 바이러스 차단 효과가 있는지의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마스크는 사회학적으로 불신과 단절의 상징이 되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확산 초기에는 공포감을 주었지만 이제는 서로에 대한 불신과 좌절 그리고 무기력감만 남았다. 바이러스 자체보다 이러한 좌절과 무기력이 한국사회를 침몰시키고 있다. 계속되는 락다운과 마스크 착용 강제 그리고 QR코드와 방명록등 K-방역의 어두운 단면은 자영업과 소상공인의 몰락뿐만 아니라 이웃간의 불신과 스트레스를 초래했다. 마스크를 쓴 얼굴에서는 더 이상 신뢰와 미소는 발견할 수 없다. 불신의 눈초리만 있을 뿐이다.

2020년 9월 11일 금요일

코로나 바이러스의 배후세력들

코로나 바이러스의 판데믹 선언 이후 6개월이 지났다. 바이러스를 퇴치한다는 명분으로 전세계적으로 봉쇄조치와 마스크사용강제 등 행정초치들이 행해져왔다. 하지만 바이러스의 확산세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고 추가적인 락다운과 규제조치들이 시행되고 있다. 이같은 봉쇄조치와 규제에 반대하는 시위들이 유럽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어떤 이들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음모론까지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음모론까지는 아니지만 적어도 코로나 관련 보도들의 90%는 과장되었다고 생각한다. 언론과 미디어들이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협을 과대포장하고 대중들에게 공포감을 조장하고 있지만 치사율이 낮고 무증상 확진자들이 많아서 과연 판데믹이 맞는지 의문이다. 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가 판데믹인지 아닌지 여부를 떠나서 분명한 것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이득을 보는 세력들이 있다는 것이다. 빌 게이츠, 제프 베조스, 마크 주커버그 등 인터넷 기업 주주들은 코로나 사태로 주가가 급등하여 오히려 큰 돈을 벌었다. 이들 뿐만 아니라 애플 구글등 IT기업과 넷플릭스등 소위 언택트 업체들도 주가가 크게 상승했다. 한국의 경우도 네이버, 카카오등 온라인 업체들은 판데믹 와중데도 주가가 크게 올랐다. 인터넷 미디어들은 연일 코로나의 위협을 과대포장해서 대중들에게 공포감을 조장하고 가능한 외출을 하지 말고 집에 있으라고 말한다. 대중들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을 수록 인터넷기업들은 돈을 더 많이 벌기 때문이다. 집에서 음식을 배달시켜먹고 온라인 쇼핑을 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인터넷 업체들은 더욱 돈을 많이 벌 것이다. 이들은 코로나 이후의 '뉴노멀'이라는 희한한 용어를 만들어서 비대면 온라인이 지배하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듯하다. 이들은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기를 바랄 것이다. 정치권도 이들과 한통속이다. 코로나 판데믹의 위협이 조장될수록 정치권력들은 방역을 명분으로 자신들의 권력을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스크 사용 강제, 집합금지 명령, 락다운 봉쇄조치등으로 대중들에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할 수 있고, 역학조사라는 명분으로 개인의 동선파악 등 사생활 침해가 자행되고 있다. 코로나 방역을 명분으로 국민들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강화하고 반대파에 대한 탄압을 가하고 자신들의 지지율을 올릴 수 있는 기회가 전세계 정치권력들에게 주어졌다. 조지오웰의 1984에 나오는 빅브라더 사회가 이렇게 현실이 될 줄은 몰랐다. 그들에게는 코로나 사태가 위기가 아니라 기회다. 백신을 제조하는 제약업체와 사이비 감염전문가들도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자신들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코로나의 위협이 과장될수록 자신들에게 주어질 이득이 더 많아지기 때문이다. 사실 백신이 코로나 사태를 종식시킬지도 미지수다. 언론과 미디어도 코로나로 이득을 보는 세력들이다. 코로나로 자극적인 기사가 많아질수록 대중들의 관심을 더 많이 받고 광고료 수익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판데믹인지 아니면 그냥 정치권력과 언론이 호들갑을 떠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번 사태로 이득을 보는 세력들이 분명히 존재하며 그들은 이번 사태가 장기화되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이다. 승승장구하는 인터넷 온라인 업체들이 있는 반면 항공사와 여행업 그리고 식당등 서비스업은 생사의 기로에 처해 있다. 락다운과 규제조치들이 장기화하면서 견디지 못한 소규모 자영업자들은 폐업으로 내몰리고 있다. 또한 식당과 카페들에서 아르바이트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청년과 여성실업자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인터넷 온라인 업체들은 승승장구하는 반면 한편으로는 실업과 폐업이 계속되고 있다. 인터넷 온라인등 소위 언택트 산업과 음흉한 정치권력들, 언론과 미디어, 제약업체와 사이비 감염병 전문가들이 날뛸수록 세계경제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코로나 이후의 '뉴노멀'은 소수의 언택트 기업, 정치권력, 미디어, 제약업체들에게는 엘도라도가 되겠지만 대다수 시민들에게는 자신들의 일자리를 잃고 심지어 빅브라더의 감시마저 받는 끔찍한 디스토피아인 셈이다.

2020년 9월 3일 목요일

코로나 바이러스와 민주주의의 위기

코로나 사태로 민주주의가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 코로나를 명분으로 전국민의 위치와 동선이 추적되고 개인의 자유와 인권이 침해되고 있다. 마스크사용이 강제되고 헌법에 보장된 집회와 결사의 자유는 공공의 이익이라는 이유로 무시되고 있다. 100nm에 불과한 바이러스를 잡겠다고 권력기관들은 무자비한 락다운과 봉쇄조치로 일관하고 있다. 이것은 민주주의가 아니고 전체주의다. 조지오웰의 소설 1984에 나오는 빅브라더 사회가 아마도 이런 모습일 것이다. 핸드폰으로는 위치추적을 하고 상점이나 식당을 방문할 때마다 방명록 작성과 QR코드를 강요하고 있다. 빅브라더의 감시와 통제속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락다운과 봉쇄조치를 하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도 코로나 바이러스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 사태는 이미 의학적 감염학적 문제가 아닌 정치적 문제로 변질되었다. 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를 빌미로 정부와 권력이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다 해도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지는 못할 것이다. 코로나는 자연이며 결코 인위적인 수단으로는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20년 8월 22일 토요일

빈 체제와 다당제

메테르니히가 주창한 빈 체제는 영국, 프랑스,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러시아 등 5개의 강대국들이 세력균형을 통해 유럽의 평화를 이룩한 합리적인 체제였다. 빈 체제로 인해 유럽은 나폴레옹 이후 백년간 대규모 전쟁 없이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다. 여러개의 국가가 세력균형을 통해 평화를 이룩하는 원리는 국내정치에도 통용될 수 있다. 한국의회는 원내교섭단체가 3개이상 있어야 정치가 안정될 수 있다. 1당이 과반을 얻어 독주를 하면 독재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빈 체제처럼 3개 이상의 정당이 세력균형을 이룬 상태에서 서로 견제할 때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복원될 것이다. 지난 총선에서 미래통합당은 압도적 과반을 얻어 문재인 정권을 심판하고 자신들이 권력을 장악할 생각밖에는 없었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박근혜 이명박 정권의 복원과 좌파에 대한 맹목적인 증오밖에는 없었다. 그것은 결국 호남과 진보진영의 결집을 초래했고 결국 미래통합당은 총선에서 참패했다. 이는 마치 나폴레옹과 히틀러가 유럽을 모두 장악하기 위해 러시아를 침략하다 비극적인 최후를 맞은 것과 똑같다. 야권의 헤게모니를 자신들이 다 가지려 했지만 이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허황된 망상에 불과했다. 일당독재를 막을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방법은 다당제다. 3-4개의 원내교섭단체가 서로 견제를 하면 극단적인 진영대결을 막고 다수 국민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이루어질 수 것이다. 양당제는 결국 증오의 정치 대결의 정치로 흘러 결국 독단의 정치로 갈 수밖에 없다. 현재 민주당 독주의 가장 큰 이유는 통합당에 있다. 자신들이 야권의 헤게모니를 모두 장악하려는 욕심 때문에 결국 민주당 1당 독재체제를 만들었다. 국내정치도 적절한 세력균형이 필요하다. 중도정당인 국민의당이 5-60석 정도의 원내교섭단체가 되었더라면 원내정당간 세력균형이 이루어져 정치가 안정되었을 것이다. 모든 책임은 국민들에게 있다. 국민들이 양당제의 모순과 폐해를 깨닫고 다음 총선에서는 다당제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극한의 대립과 소모적 진영정치로 인해 국가의 발전마저 정체될 것이다.

2020년 8월 7일 금요일

존재감 없는 국민의당과 제3지대

민주당정권이 정책실패와 부패로 몰락해가고 있다. 문재인정권은 집권 3년차에 접어들었지만 이렇다할 성과가 없다. 북핵폐기는 실패했고, 소득주도성장으로 자영업의 붕괴를 초래했고, 부동산가격 폭등과 어설픈 임대차법 통과로 무주택 서민들의 지탄을 받고 있다. 이처럼 민주당 정권의 정책 실패에도 불구하고 미래통합당이 다시 정권을 잡을 가능성은 낮다. 그 이유는 이명박정권의 비인간적인 경쟁과 노동자 착취, 박근혜정권의 파시즘과 남북한의 극한대립으로 인해 미래통합당은 국민들의 선택지에서 이미 지워져 버렸기 때문이다. 만약 문재인 정권이 붕괴한다면 제3의 대안세력만이 한국을 이끌 권리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국민의당등 제3세력들은 양당체제에서 존재감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으며 국민들에게 대안세력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지 못하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국민의당 지지율은 3-5%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민의당이 존재감을 보이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미통당 2중대라는 인식 때문이다. 물론 야당은 정부를 비판해야 하지만 현재 국민의당은 통합당과 별반 다르지 않은 주장과 스탠스를 보이며 차별성 부각에 실패하고 있다. 국민의당은 극우주의와 자유방임주의를 여전히 신봉하는 미래통합당과 확실히 선을 그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국민들의 눈에 비친 국민의당의 모습은 이명박 박근혜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보수세력과 별 차이가 없다. 언론에서조차 국민의당을 보수야당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안철수 대표의 측근들 중에는 여전히 통합당과 통합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이 미통당과의 통합과 연대를 주장하는 것은 국민의당 지지자와 중도파의 이익이 아니라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 때문이다. 국민의당은 중도실용주의를 표방하고 있지만 국민들에게 제3세력과 대안세력이라는 정체성을 인식시키는데 실패했다. 그리고 끊임없이 미래통합당으로의 흡수통합 프레임에 시달리며 지지자들에게 당의 지속가능성에 회의를 갖게 하고 있다. 국민의당은 야당이지만 미래통합당과 노선과 정체성이 다르다는 것을 확실히 해야 한다. 지금처럼 미래통합당 2중대로 보수대통합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국민의당의 반등은 없을 것이다.

2020년 7월 3일 금요일

대한민국의 기원은 상해임시정부

대한민국의 기원은 1919년 수립한 상해임시정부다. 1948년 8월15일은 정부수립일이다. 미래통합당등 보수우파들은 상해임시정부를 부정하고 8월15일을 건국절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친일적인 역사관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뉴라이트들과 보수세력들은 상해임시정부가 국제사회의 승인을 받지못한 단체이기 때문에 정통성이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나치 점령하에서 드골의 프랑스 임시정부도 국제사회 승인이 없기 때문에 정통성이 없는 것인가? 일제가 만주에 건설한 만주국은 일본과 독일의 승인을 받았기 때문에 합법적인 국가인가? 국제사회라는 말 자체가 정치적인 표현이다. 국제관계는 법률적 해석보다 정치적 역사적 평가가 우선한다. 상해임시정부는 일제의 불법적 한일병합에 맞서 독립운동가들이 해외에 설립한 임시정부다. 국제사회의 승인 여하에 관계없이 정치적 역사적으로 임시정부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계승한 단체다. 일제의 대한제국 병합은 국제법적으로 이미 무효가 되었다. 그런데도 일부 극우세력들은 일제강점기를 찬양하고 상해임시정부를 좌파단체라고 매도하고 있다. 한국 보수세력들의 뿌리가 일제시대 친일파들이라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 되었다. 해방 후 그들은 반공주의자로 변신하여 독립운동가들을 오히려 탄압하고 대한민국을 극우반공국가로 만들어 버렸다. 친일반공주의 역사관으로 편향된 뉴라이트와 보수세력들은 한국 현대사를 왜곡하고 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를 미화하고 상해임시정부를 부정하는 미통당과 뉴라이트들의 역사관은 대다수 국민들로부터 외면받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기원은 3.1운동 정신을 계승한 상해임시정부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진실이기 때문이다.

2020년 5월 12일 화요일

문재인정권과 이미지 조작

문재인 정권 3년차 국정지지율이 70%로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경제가 악화된 상황에서 집권 3년차 국정지지율로는 매우 이례적이다. 문재인정권의 높은 지지율은 코로나 대응과는 무관하며 대중매체를 통한 이미지조작일 가능성이 크다. 지난 2017년 대선에서 문재인과 안철수의 지지율은 3%까지 좁혀졌다. 하지만 드루킹일당의 여론조작으로 인해 안철수의 지지율은 떨어지고 결국 문재인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러한 상황이 전개될 수 있었던 이유는 대중들이 미디어와 언론의 조작에 취약한 때문도 있겠지만, 민주당이 대중선동과 이미지조작에 능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합계 출산율 0.98로 세계 꼴찌다. 청년들이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이유는 자신들의 현재와 미래를 비관하기 때문이며, 자식들에게까지 비관적인 현실을 물려주지 않으려는 선택이다. 청년들이 이렇듯 자신의 현실을 비관하는데 정부는 언론과 미디어를 통해 정권홍보와 포장에만 하고 있다. 이러한 이미지조작과 포장질이 지난 총선에서 또한번 성과를 내었다. 물론 제1야당인 미통당이 무능한 때문도 있지만 문재인정권과 민주당은 여론조작과 이미지포장에 능하다. 권력과 재벌 그리고 언론이 결탁하여 이미지조작을 하면 대중들은 결국 그에 따라가게 된다. 현대정치에서 민심은 천심이 아니며, 민심은 결국 언론과 미디어에 의해 조작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얘기는 아닐 것이다.
문재인 정권이 코로나 대응을 잘했다고 언론과 미디어에서는 연일 홍보하고 있다. 실제 대응을 잘했는지 못했는지는 미지수지만 잘했다는 이미지는 대중들에게 확실히 각인시켰다. 그리고 재난지원금을 풀면서 대중들의 환심을 사고 있다. 하지만 재난지원금도 결국 조삼모사식의 발상으로 나중에는 세금으로 다시 환수해갈 돈이다. 이미지조작과 포퓰리즘으로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는 문재인정권이지만 낮은 출산율에서 볼 수 있듯이 진짜 민심은 문정권의 이미지조작과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 대중선동과 이미지조작이 얼마나 더 통할지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이러한 조작의 정치는 노자의 가르침대로 반드시 그 후과가 있을 것이다.

2020년 5월 6일 수요일

감시와 통제의 판데믹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감시와 통제의 판데믹이 대유행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코로나 독재가 만연하고 있다. 코로나는 사실 판데믹이 아니다. 기득권 정치세력들이 코로나를 독재의 수단으로 삼고 있다. 조지 오웰의 소설에 나오는 빅 브라더가 이제 현실화 되었다. 독재권력들은 코로나로 시민들을 억압하고 우울, 불안을 조성하며 자신들의 권력을 강화하고 있다.
마스크는 이미 권력에 대한 복종을 상징하는 물건이 되었으며, 곳곳에 놓인 손세정제는 살균을 위한 것이 아니라 권위와 감시의 상징으로 전락했다. 권력자들은 매일 코로나 확진자와 사망자 통계 숫자를 보여주면서 공포감을 조성하고, 시민들에게 복종을 강요하고 있다. 코로나 극복이라는 명분으로 시민들은 자유를 박탈당하고 무기력한 존재로 전락했다. 반면 독재권력은 코로나 바이러스 대응으로 연일 개가를 부르고 있다. 이는 사실상 코로나를 빙자한 공포정치다.
코로나는 그저 바이러스에 불과하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독재권력이 시민들을 감시하는 수단이다. 마스크사용 강요, 쓰레기처럼 널려있는 손세정제, 시끄러운 코로나 안내방송, 스포츠 중단, 학교와 공공시설 폐쇄 등 이 모든것들이 기득권 독재권력이 시민들을 억압하고 복종시키기 위한 공포와 감시의 판데믹인 것이다.

2020년 4월 24일 금요일

스탈린과 박정희

박정희는 절대악까지는 아니더라도 부정적 평가를 받는 역사적 인물이 되었다. 이제 절반이 넘는 한국인들이 박정희를 공보다 과가 큰 인물로 인식하고 있다. 박정희를 산업화의 영웅으로 추앙하는 사람들보다 민주화를 탄압한 독재자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아진 것이다. 박정희의 산업화 공도 사실 허상에 불과하다. 산업화의 공은 묵묵히 땀흘려 일한 노동자와 산업역군들의 몫이다. 박정희는 서민과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재벌들의 이익만 극대화시켰을 뿐이다.
소련의 스탈린도 박정희와 비슷한 평가를 받고 있다. 스탈린은 과거에는 2차대전 승리의 영웅으로 추앙받았지만 소련붕괴 이후에는 민주화와 소수민족들을 탄압한 독재자로 인식되고 있다. 나치를 무찌르고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끈 것은 스탈린이 아니라 수많은 무명용사들과 소련인민들이었다. 스탈린도 현재는 절대악은 아니더라도 민주주의를 탄압한 독재자로 인식되고 있다. 소수의 공산당 지지자들만이 스탈린을 추앙할 뿐이다. 스탈린이 히틀러같은 절대악이 될 수 없듯이, 박정희도 절대악은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의 준엄한 평가는 피해갈 수 없다.

2020년 4월 21일 화요일

4.15 총선 평가-보수의 시대는 끝났다

이번 총선에서 미래통합당은 103석을 얻는 참패를 했다. 반면 민주당은 180석을 얻으며 과반을 훨씬 뛰어넘는 압승을 거두었다. 미통당은 탄핵정국 이후 분당한 유승민계와 통합하고 구 안철수계까지 영입하면서 중도보수 대통합을 기치로 문재인정권 심판을 외쳤지만 결과는 대참패였다. 이것은 미통당의 한계라고밖에 볼 수 없다. 미통당의 몸통이 영남인 이상 미통당이 아무리 혁신을 하고 통합을 해도 미통당은 영남에 뿌리를 둔 수구보수 정당이다. 영남보수세력들에게 반감을 갖고 있는 수도권과 충청권 유권자들에게 미통당이 다가갈 수 없는 근본적인 이유다. 만약 영남대 비영남의 구도가 고착화된다면 미통당은 영원히 비주류 정당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번 선거가 말해주는 가장 큰 결론은 보수의 시대는 끝났다는 것이다. 탈냉전 시대에 반공을 외치고 21세기와는 맞지도 않는 박정희 산업화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우파보수는 그저 상대하기 싫은 늙은 꼰대들에 불과하다. 미통당이 이번 선거에서 103석을 얻은 것은 오히려 그들 입장에서는 다행일 수도 있다. 어쩌면 이번 선거는 수구보수 미통당이 백석 이상을 얻는 마지막 선거가 될 수도 있다. 보수는 2016년 총선에서 120석대로 패배했고 이번에는 백석을 간신히 넘었다. 다음 2024년에는 80석, 2028년에는 60석, 이런식으로 축소의 길을 갈 수도 있다. 우파보수의 축소와 쇠퇴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역사적 추세로 보인다.

2020년 4월 17일 금요일

4.15 총선 이후 국민의당이 나아갈 길

국민의당이 창당 두달만에 정당득표 6.8%로 원내정당이 된 것은 평가할만하지만 그래도 패배는 패배다. 앞으로 국민의당이 나아갈 노선은 중도밖에는 없다. 현재 지지율 4%인 국민의당이 살아남는 방법은 양극단의 오만과 갑질을 싫어하는 중도 무당층을 자기편으로 만드는 것 외에는 없다. 어느 한쪽편에서 뭔가를 모색한다면 소멸은 순간이 될 것이다. 고작 190만표를 얻은 소수정당이 940만표의 거대정당을 먹는 것은 불가능하다. 안철수는 칭기스칸이나 누르하치가 아니다. 소수민족이 거대민족을 이기는 경우는 몽골족이나 여진족같은 용맹한 민족이나 가능하다. 현재 국민의당은 오합지졸이다. 게다가 안철수 1인정당이나 마찬가지며 조직도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다. 지금은 몽골과 만주의 변방에서 추위와 싸우며 인내와 자강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일단 제3지대의 넓은 초원에서 힘을 길러야 한다. 만주와 몽골(제3지대)의 부족들을 통합하고 세력을 키워야 한다. 비옥한 중원을 노리는 것은 그 이후가 될 것이다. 국민의당은 일단 중도 무당층을 규합하고 제3지대 통합부터 나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