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17일 화요일

파리테러사건과 서방의 반(反)이슬람 정서

11월 13일 파리의 공연장에서 무장괴한의 총격으로 130여명이 사망하고 수백명이 부상당하는 테러사건이 발생했다. 파리 총격테러사건은 현재까지의 정황으로는 IS등 이슬람 무장단체의 소행으로 추정되고 있다. 파리 테러사건은 안타까운 사건이지만 한편으로는 서방의 반(反)이슬람 정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일깨우는 사건이기도 하다. 올 초 무슬림을 비웃고 이슬람교를 조롱한 신문사에 무장괴한이 난입 총기를 난사한 샤를리 엡도 테러사건이 발생했다. 물론 테러는 절대 용납되어서는 안 될 반인류적 범죄행위다. 하지만 무슬림들이 서방에 대하여 왜 저토록 증오에 가까운 반감을 갖게 되었는지 그 배경을 이해해야만 한다. 유럽과 북미등 기독교문화를 배경으로 한 서방국가들은 종교적인 이유로 이슬람에 대해서 뿌리깊은 반감을 갖고 있다. 이슬람교가 창시된 7세기 이후 유럽의 기독교문화와 이슬람문화는 끝없이 대립을 지속해 왔다. 마지막 이슬람제국인 오스만투르크가 멸망한 후에도 이슬람과 기독교문명의 대립은 지속되고 있다. 서방세계에서 이슬람에 대한 반감이 증폭된 계기는 9.11 테러사건이었다. 냉전이 종식된 이후에 서구문명의 가장 큰 적은 이슬람문명이라는 문명충돌론이 제기되었는데 9.11은 서구사회에서 이슬람을 적대감과 기독교적 우월주의가 팽배한 시기에 발생한 사건이다. 9.11 이후에 서구사회에는 무슬림=테러리스트라는 인식마저 생겨날 정도로 이슬람에 대한 정서는 악화되었다. 무슬림들에 대한 서구인들에 대한 반감은 단순히 종교적 차원을 넘어 중동과 북아프리카인들에 대한 인종적 편견과 차별을 동반하고 있다. 현재 유럽에는 터키와 중동에서 건너온 이주노동자들이 많이 살고 있다. 그들은 대부분 백인들이 꺼려하는 저임금 노동을 하며 살고 있다. 그들은 서구의 백인들에게 종교적, 인종적, 경제적 차별대우를 받으며 살고 있다. 현재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의 점령지에서 인티파다를 벌이고 있다.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미국등 서방국가들은 인티파다를 테러로 매도하고 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인들의 인티파다도 서구(백인)와 기독교(유대교)에 대한 무슬림들의 저항이다.

무슬림들의 서구와 기독교에 대한 반감 역시 증폭되고 있다. 9.11테러 이후 미국등 서방국가들은 무슬림들을 테러리스트로 지목하고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였고 대테러 전쟁으로 수많은 이슬람 민간인들이 희생되었다. 뿐만 아니라 서구는 2011년 '아랍의 봄'에 개입하여 리비아의 카다피정권을 붕괴시키고 시리아에서 내전을 일으키는 등 중동지역을 혼란에 빠뜨렸다. 이 모든 혼란의 주범이 서구 기독교세력이란 사실을 중동지역의 무슬림들은 잘 알고 있다. 시리아에서만 전쟁으로 22만명이 희생되었고 리비아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등 서방이 개입한 전쟁으로 인해 죽어간 무슬림들의 숫자는 그보다 훨씬 많다. 파리테러에서 희생된 민간인들의 숫자는 이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만약 서방이 문명적, 종교적, 인종적 우월주의에 입각하여 계속해서 무슬림들을 억압하고 탄압한다면 파리테러사건과 같은 사건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2015년 11월 11일 수요일

대한민국(大韓民國)의 건국원년은 1919년이다.

중화민국(中華民國)은 1911년 무창봉기로 청왕조를 무너뜨리고 손문(孫文)선생의 주도로 1912년 탄생한 아시아 최초의 민주공화국이다. 1910년 대한제국(大韓帝國)이 일본에 합병되자, 1919년 독립운동가들이 주축이 되어 상해에 임시정부(臨時政府)를 수립했다. 민주공화국을 표방한 임시정부는 국호를 중화민국을 본따서 대한민국(大韓民國)이라고 하였다.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기원이다. 대한민국은 대한제국의 뒤를 이은 민주공화국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러나 최근 일부 한국의 극우세력들은 1948년 8월 15일을 대한민국의 건국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것은 분명 대한민국의 역사를 왜곡한 것이다. 그들이 1948년을 대한민국 건국원년으로 주장하는 것은 대한민국이 일제 35년의 뒤를 이어 건국한 나라로 일본의 한반도 통치가 결코 불법적이거나 암흑의 시기가 아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들이 이러한 주장을 하는 이유는 그들이 대부분 일제시대 부를 축적한 재벌과 관료 그리고 군인들 즉 친일파들의 후손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심지어 일제시대를 수탈과 착취의 시대가 아닌 근대화의 시기로 보고 있다. 하지만 진실은 대한민국의 기원은 1919년 상해임시정부라는 것이다. 일제의 한반도 통치시기에도 분명 대한민국 정부는 존재하였고 그들은 빼앗긴 영토를 회복하기 위하여 국외에서 독립운동을 하였다. 1948년을 건국원년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상해임시정부의 정통성과 독립운동의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결코 1948년 이승만이 만든 나라가 아니다. 대한민국은 이미 30년 이전부터 존재한 나라였다.

2015년 11월 8일 일요일

타이완(臺灣) 여행

11월 5일부터 8일까지 3박4일 일정으로 타이완(주로 타이베이)을 여행하였다. 타이완 여행은 세미패키지 프로그램으로 하였는데 교통이 편리한 타이베이 시내는 자유여행, 타이베이 외곽의 관광지는 패키지로 여행을 하였다.

타이완 여행 첫날, 타이베이 송산공항에 도착하여 가이드의 안내로 중정기념당, 롱산쓰(용산사 龍山寺), 화시지에 야시장을 방문하였다.


 
중정기념당(中正記念堂)은 장개석을 추모하기 위해 만든 기념관이다. 장개석은 국공내전에서 패배하여 타이완으로 쫒겨난후 1975년 죽일 때까지 일다독재로 타이완을 통치하였다. 국공내전에서 장개석의 국민당이 모택동의 공산당에게 패한 결정적인 이유는 중국민중들에 대한 국민당정부의 과도한 약탈과 착취 때문이었다. 장개석은 중국에서 약탈한(?) 엄청난 재물과 전세계 화교들의 지원에 힘입어 타이완을 아시아의 네마리 용 가운데 하나로 만드는데 성공하였다. 하지만 타이완(중화민국)의 정치적 위상은 중화인민공화국의 부상과 함께 점점 위축되어 UN상임이사국 지위마저 박탈당하였다. 한편으로 중화민국은 상해임시정부를 최초로 인정한 정부였다. 그리고 장개석은 김구주석과 임시정부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하였고 조선의 독립을 적극 지지하였다. 카이로 회담에서 조선의 독립이 명문화된 것도 장개석의 공이었다. 때문에 장개석은 한국현대사와도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인물이다. 현재 타이완은 UN회원국도 아니고 타이완을 국가로 인정하는 나라는 22개국에 불과하다. 그것도 대부분은 태평양의 섬나라등 소국들이다. 타이완은 중국은 분명 아니지만 외교적으로 독립국가도 아닌 어중간한 위치의 나라다. 


롱산쓰(용산사)는 타이베이 시내에 위치한 불교사원이다. 타이완은 도교의 전통이 강한 나라로 불교사원들에도 도교적 요소가 많이 융합되어 있다. 용산사에도 도교에서 숭앙하는 관우신이 모셔져 있다. 화시지에 야시장(夜市場)은 롱산쓰 바로 옆에 있는 재래시장으로 주로 먹거리가판대들이 즐비한 먹자골목이다. 타이완은 일년 내내 더운 날씨가 지속되기 때문에 대부분의 재래시장들은 오후나 저녁때 붐비는 야시장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타이완 여행 둘째 날. 자유여행으로 고궁박물관, 타이베이101 주변, 시먼딩 거리, 스린(士林) 야시장을 둘러보았다. 
고궁박물관은 아시아 최대의 박물관으로 중국의 역대 유물들이 전시된 곳이다. 이 곳에 전시된 도자기등 유물들은 모두 장개석이 대륙에서 건너오면서 가져온(약탈해온) 것들이다. 고궁 박물관에서는 신석기시대부터 중화민국까지 중국의 중요 문화유산들을 볼 수 있으며 타이완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타이베이101(타이베이 세계금융센터)은 타이베이를 상징하는 초고층 빌딩으로 2003년에 완공되었으며 높이가 무려 508m에 달한다. 타이베이101은 2010년 두바이 부르즈 할리파가 완공되기 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었다. 타이베이101은 저층부와 지하는 쇼핑몰, 중간층은 비지니스 용도, 최상층은 전망대로 사용되고 있다. 타이베이101은 세계 최고층 빌딩 지위는 넘겨주었지만 전망대까지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의 속도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것으로 유명하다. 타이베이101 주변으로는 백화점과 쇼핑몰이 밀집해 있다. 

시먼(西門)딩 거리는 타이베이의 명동거리로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쇼핑거리다. 시먼딩 거리에는 주로 의류, 잡화, 패션, 화장품가게들이 밀집해 있으며 주로 젊은층들을 겨냥한 마케팅을 하는 곳이다. 
스린(士林)야시장은 가게들이 들어선 골목이 끝없이 이어져 있는 타이베이 최대의 야시장이다. 특히 저녁무렵과 밤에는 인산인해로 발디딜 틈조차 없을 정도로 성업을 하고 있는 야시장이다. 스린야시장은 의류,신발,잡화는 물론 온갖 종류의 먹거리가게들이 이어져 있다. 스린야시장은 타이베이 시민들은 물론 외국인 관광객들도 즐겨찾는 관광코스이지 흥겨운 쇼핑거리이다.

타이완 여행 삼일째. 패키지 일행과 함께 예류(野柳)지질공원, 진과스(金瓜石), 지우펀(九份), 스펀(十分)을 방문하였다. 

예류지질공원은 타이베이에서 버스로 약 40분 정도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곳에서는 풍화작용에 의해 갖가지 기이한 모습을 하고 있는 바닷가의 사암들을 감상할 수 있다.  
진과스는 19세기 말부터 일제통치시기에 금광이 있던 광산마을로 현재는 관광지로 탈바꿈된 곳이다. 일본은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1895년부터 1945년 2차대전에서 패망하기까지 타이완을 통치하였는데 식민시절 이곳에서 생산된 금은 대부분 일본으로 보내졌다고 한다.
 지우펀은 영화 '비정성시'로 유명한 마을로 진과스와는 고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비정성시는 2.28사건을 배경으로 한 영화다. 2.28사건이란 1947년 장개석정부가 국민당정부에 저항하는 타이완주민들을 무력으로 제압한 사건으로 타이완 현대사의 오점으로 남아있는 사건이다. 정확한 통계는 없으나 정부군의 무력진압으로 약 3만에서 5만명의 타이완 주민들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아픈 역사의 배경이 된 지우펀은 현재는 수많은 방문객으로 붐비는 관광지가 되었다. 상점들이 들어선 좁은 거리를 끝없이 따라가다보면 좁은 계단길이 나오는데 워낙 관광객들이 많아서 이제는 조용한 시골동네의 정취는 느낄 수가 없다.
 스펀은 철도역이 있던 시골마을인데 현재는 천등을 날리는 관광지가 되었다. 이곳에서는 철길위에서 관광객들이 각자 소원을 적은 천등을 하늘로 날려보내는데 하늘위로 올라가는 천등을 끊임없이 볼 수 있다.

타이베이 시내로 돌아와서 용캉제거리를 둘러본 후 타이베이101 전망대를 올라갔다. 세계 최고층 빌딩의 지위를 잃어버린 타이베이 101은 이제는 세계 최고속 엘리베이터를 보유한 빌딩이라고 홍보한다. 5층에서 384m에 위치한 89층 전망대까지 약 35초면 올라가는데 정말 눈깜짝할 사이에 올라간다. 타이베이 101은 지진과 태풍에도 견딜수 있도록 설계되었는데 그 비밀은 거대한 추에 있다. 타이베이101은 꼭대기에 660톤짜리 추를 매달아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추가 흔들리면서 균형을 잡도록 되어 있다. 때문에 얼마전 초특급 태풍이 타이완을 강타했을 때도 타이베이101은 끄떡없이 버틸 수 있었다고 한다. 타이베이101전망대에서는 타이베이시를 동서남북으로 모두 조망할 수 있는데, 전망대에서 바라본 타이베이의 야경 또한 매우 훌륭하다.
타이베이101 관람을 끝으로 3박4일 타이완 여행을 마쳤다. 타이완은 3만6천제곱킬로미터의 국토면적에 2천3백만명이 살고 있는 인구 초과밀국가다. 그나마 국토의 70%는 산악지대이기 때문에 체감으로 느끼는 인구밀도는 훨씬 높다. 지하철(MRT)을 타보면 타이완의 높은 인구압을 실감할 수 있다. 

타이완은 50년간의 일제통치시기를 겪어서인지 일본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일본과 비슷한 면이 많다고 알려졌다. 여성들의 화장이나 패션스타일도 일본과 유사한 점이 많다. 그리고 타이완에는 일본관광객들도 많이 온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타이완은 일본과 유사한 면 보다는 중국문화가 더 우세하다. 타이완이 일본과 비슷한 면도 있지만 그것은 일부분에 불과하다. 타이완은 그저 타이완이다.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행기간중인 11월 7일 싱가포르에서 시진핑과 마잉주의 역사적인 양안정상회담이 열렸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이후 66년만의 역사적인 회담이다. 국민당 정부는 지금까지 친중국적인 행보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 야당인 민진당은 '타이완의 독립'을 주장하고 있다. 타이완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타이완의 경제를 위해서는 중국과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때문에 당분간 타이완은 독립등 정치적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중국과의 경제협력을 강화하는 실리적 노선을 견지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도 타이완이 독립을 시도하지 않는한 무력을 사용하지는 않을 것이며 현재와 같은 교류협력을 통해 우호적인 양안관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타이완의 독립은 양안관계를 언제든 냉각시킬 수 있는 매우 민감한 문제다.

2015년 10월 16일 금요일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는 영구집권 음모다

박근혜정권이 중고교 역사교과서에 대해 단일 국정교과서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지금까지는 여러개의 출판사에서 각기 다른 역사책들로 역사수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는 정부가 자신들이 기술한 역사를 학생들에게 가르치겠다는 것이다. 국정교과서제도는 1974년 유신시대에 채택되었다가 1996년 문민정부때 폐지되었다. 역사교과서를 단일 국정교과서로 바꾸려는 것은 결국 영구집권 야욕을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며 역사를 지배하는 세력이 결국 권력을 지배한다. 백퍼센트 객관적인 역사기술은 사실상 존재할 수 없으며 역사가의 주관적인 관점이 개입될 수 밖에 없다. 앵글로 색슨계 백인들은 미국의 역사를 도전과 개척의 역사로 기술한다. 하지만 아메리칸 인디언들에게 미국의 역사는  자신들의 패망의 역사인 것이다. 대부분의 동유럽 민중들은 히틀러와 나찌를 침략자로 인식하지만 일부 네오나찌들은 히틀러를 해방자로 생각한다. 이렇게 역사는 보는 관점에 따라서 180도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그렇다면 저들이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통해서 얻으려는 결과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한국의 현 지배세력인 친일파와 군사독재세력들이 자신들의 과거를 미화하려는 데 있다. 일제 시대때 일본의 대륙침략에 협조하고 독립군을 탄압한 친일파들이 현재 한국의 부를 장악하고 있는 재벌들의 시조다. 또한 이들과 결탁하여 소위 산업화를 이룩한 세력들은 박정희,전두환등 군사독재 세력들이다. 이들이 국정교과서를 채택함으로써 자신들의 친일전력과 군사정권시절 민주화운동과 인권탄압의 흑역사(黑歷史)를 세탁하려 하는 것이다. 역사교과서의 국정화추진세력들은 일제시대를 근대화시기로 묘사하고 친일파들을 근대화의 주역으로 기술할 뿐만 아니라 군사독재세력들을 산업화세력으로 둔갑시키려 하고 있다. 저들은 또한 1948년을 건국원년으로 주장하는데 이는 친일파들이 건국의 주역임을 주장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1948년 건국원년 주장은 1919년에 수립된 상해임시정부를 부정하는 것이다. 요약하면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는 친일파와 군사독재세력을 미화하기 위한 것이다. 박근혜의 부친(父親) 박정희는 일제시대에는 관동군 장교였고 해방후에는 5.16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고 18년동안 한국을 철권통치한 독재자(獨裁者)였다. 때문에 박정희는 친일파와 군사독재의 성격이 묘하게 오버랩되는 인물이다. 저들은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통해 자신들의 과거역사를 미화하고 궁극적으로는 한국사회에 대한 자신들의 지배를 공고히 하려 하고 있다.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는 결국 역사왜곡으로 귀결될 것이며 이는 한국사회의 분열을 더욱 가속화할 것이다. 현재 극심한 경기침체를 겪고 있는 한국사회는 역사교과서의 국정화 논란으로 인해 앞으로 상당기간 혼란과 갈등의 수렁에 빠지게 될 것이다.

2015년 10월 8일 목요일

중국 경제의 둔화와 전망

중국 경제의 호황이 끝나가고 있다. 중국은 1980년대 개혁개방정책을 실시한 이후 약 30년간 연간 10%가 넘는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중국과 같은 대국이 이렇게 장기간 동안 높은 경제성장을 이룩한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중국경제는 2010년 이후 8%대의 성장률을 보이다가 최근에는 7%대로 성장률이 하락했다. 올해에는 7%성장조차 유지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며 내년 이후에는 성장률이 7% 이하로 떨어질 것이 확실해 보인다. 중국의 GDP는 PPP기준으로 이미 미국을 추월했고, 일인당 GDP는 약 12,000달러 수준이다(PPP기준). 중국은 지금까지 저임금 노동력을 기반으로 한 수출산업으로 경제성장을 이끌어 왔다. 하지만 중국의 주요 수출 대상국인 미국과 유럽 일본등 선진국의 경제가 침체를 보이면서 중국의 수출산업이 둔화세를 보이고 있다. 수출주도 경제성장이 한계에 봉착하자 중국정부는 경제의 중심축을 수출에서 내수로 전환하고 있다. 특히 부동산 건설은 현재 중국경제의 성장을 이끌어가고 있는 중심산업이다. 하지만 중국의 주택은 이미 심각한 공급과잉 상태에 있다. 설상가상으로 생산설비의 과잉투자와 수출부진으로 인해 제조업체들의 이윤율은 계속해서 하락하고 있다. 또한 인건비 상승으로 인하여 저임금 메리트가 사라지자 해외제조업체들이 생산기지를 중국에서 동남아시아나 인도로 이전하고 있는 추세다.

중국은 이제 노동집약적 산업에서 고부가 가치와 하이테크 산업으로 경제의 체질을 바꿔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중국의 기술혁신 속도는 경제성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물론 초고속열차등 중국이 경쟁력을 보유한 분야도 있지만 IT와 자동차등 하이테크 산업의 경쟁력은 미국과 유럽에 뒤처져 있다. 공산당이 경제를 주도하는 획일적인 경제시스템 또한 또한 기술 혁신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고 있다. 무엇보다 그동안 중국 경제 성장을 견인한 풍부한 노동력이 중국경제의 가장 큰 짐이 될 것이다. 중국의 인구는 현재 14억에 육박하는데 이는 중국의 넓은 영토를 감안하더라도 매우 부담스런 숫자다. 중국의 적정 인구는 6억 정도로 추정된다. 중국의 높은 인구밀도는 향후 중국경제의 성장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 될 것이다. 중국경제가 둔화될 경우 저임금 노동력들이 일자리를 잃고 실업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데, 이들은 향후 중국정부의 골칫거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또한 급격한 산업화로 인해 심각한 환경오염을 겪고 있다. 과도한 인구, 환경오염에 따른 비용 증가, 더딘 기술 혁신은 향후 중국의 경제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들이 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최근 '실크로드'나 '해상실크로드'를 주창하는 이유는 유라시아 대륙으로 새로운 수출 판로를 개척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중국은 러시아나 중앙아시아 인도등 유라시아권과 아직까지 경제적으로는 그리 밀접한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있으며 향후 전망도 그리 밝지 않다. 러시아와 중앙아시아는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시장규모가 작을 뿐만 아니라 중국이 러시아에 대한 수출 우위 품목은 고작 고속철도에 불과하다. 또한 중국과 러시아의 문화적 차이도 양국의 경제협력을 가로막는 또하나의 장애물이다. 인도는 시장규모는 크지만 중국과는 정치적으로 껄끄러운 관계이기 때문에 경제협력의 급진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중국 경제의 둔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2020년 이후 중국은 4%대의 경제성장을 하는 저성장 경제구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그동안 중국경제의 호황 덕을 톡톡히 보았다. 특히 중국에 공장을 둔 수출 대기업들은 중국의 덕을 가장 많이 보았다. 하지만 이제 중국의 혜택을 볼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3,4년이다. 향후 중국보다는 인도를 주목해야 한다. 특히 인도는 젊은 생산인구가 중국보다 많은 나라로 앞으로 중국이 담당했던 세계의 공장 역할은 인도가 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

2015년 10월 7일 수요일

러시아(Россия)의 대 IS 군사행동의 의미와 전망

러시아가 9월 30일 시리아의 IS(Islamic State) 근거지에 대해 공습을 시작했다. IS를 공습하는 러시아의 전투기들은 시리아 라타키아에 있는 공군기지에서 출격하고 있다. 지난 7일간의 공습을 통해 러시아 공군(ВКС)은 112개의 IS 목표물을 성공적으로 공습했다. 러시아 공군은 현재 23대의 전투기로 IS에 대한 공습을 지속하고 있다. 러시아는 카스피해에 있는 4대의 전함에서 26발의 크루즈 미사일을 시리아의 IS근거지를 향해 발사했으며 모두 목표물에 명중시켰다. 또한 러시아 해군은 지중해에 있는 전함의 수를 15대로 늘렸다. 러시아는 언제든지 지중해에서 시리아의 IS 타겟에 대한 미사일 공격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러시아는 3-6개월 정도 공습을 지속하면 시리아에 있는 IS 및 테러리스트들을 모두 소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의 공군 지원을 받고 있는 시리아군은 지상에서 본격적인 IS와 테러리스트 소탕작전에 돌입했다.
미국과 서방은 지난해부터 시리아의 IS근거지를 향해 공습을 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공습하는 시늉만 했지 실제 IS 근거지를 공습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미국은 IS를 이용해 아사드를 축출하려 하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입장은 명백하다. 러시아는 아사드정권의 붕괴를 원치 않는다. 러시아는 시리아 내전의 해결을 위해 그동안 시리아 정부와 야당간에 중재활동을 해 왔다. 그러나 미국과 서방은 알 누스라등 극단주의 반군을 지원해 왔을 뿐만 아니라 IS의 활동마저 암암리에 묵과하여 시리아에 평화를 구축하려는 러시아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어 왔다. 러시아는 결국 외교적 평화적 방법으로는 시리아 내전이 해결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군사행동을 감행한 것이다. 
2011년 '아랍의 봄' 사태 이후 시리아는 4년째 내전에 휩싸여 있다. 리비아의 카다피는 서방의 개입에 의해 축출되었다. 하지만 리비아는 여전히 내전과 테러로 극심한 혼란에 휩싸여 있다. 만약 시리아의 아사드 정부가 붕괴된다면 시리아는 리비아보다 더 큰 혼란에 빠질 것이다. 러시아의 군사개입은 시리아에 닥쳐올 참사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러시아의 대 시리아 군사개입은 장기적으로는 중동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할 것이다. 이란 이라크 시리아를 축으로 하는 시아파 국가와 사우디등 걸프지역의 순니파 국가간의 힘의균형이 구축될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또한 시리아에 대한 러시아의 군사개입은 이제 더이상 미국중심의 일극적 세계질서(unipolar world order)가 작동하지 않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세계는 이미 다극화 세계질서(multipolar world order)의 시대에 진입했다.

2015년 10월 1일 목요일

싱가포르(Singapore) 여행

9월25일부터 30일까지 추석연휴기간동안 싱가포르 4박5일 자유여행을 다녀왔다. 야간비행기로 싱가포르 창이국제공항에 내려 MRT를 타고 클라크 키에 있는 호텔까지 이동한 후 호텔에서 체크인과 함께 배낭을 맡기고 싱가포르 여행 첫째날 투어를 시작했다. 첫날은 마리나베이-멀라이언파크-아시아문명박물관-전쟁추모공원-국립박물관-싱가포르 플라이어 순으로 투어를 하였다.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마리나 베이(Marina Bay)였다. 마리나 베이는 싱가포르의 금융과 비지니스 중심지이다. 마리나 베이에는 고층빌딩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2011년에 완공된 마리나 베이 샌즈(Marina Bay Sands)다. 마리나 베이 샌즈는 호텔, 카지노, 쇼핑몰이 있는 초현대식 건물로 마치 새개의 빌딩이 보트를 떠받치고 있는 듯한 기상천외한 외관으로 유명하다. 마리나 베이에는 싱가포르의 상징인 멀라이언상이 있는 멀라이언 파크(Merlion Park)가 있다. 싱가포르의 어원은 과거 인도의 왕자가 이 섬을 탐험할 때 사자를 발견한데서 기원하였다고 한다. 즉, 사자의 마을이라는 의미로 이 섬을 '싱가푸라'라고 지은 것이 오늘날 싱가포르의 기원이 된 것이다. 해상국가인 싱가포르는 용맹의 상징인 사자가 바다를 누비고 다닌다는 의미로 머리는 사자이고 몸통과 꼬리는 물고기인 '멀라이언(Merlion)'을 국가의 상징으로 정하였다. 멀라이언상에는 해상무역을 통해 바다를 지배하는 위대한 해상 국가가 되려는 싱가포르의 국가 비젼이 담겨있다.
마리나 베이에는 싱가포르 아시아 문명박물관(Asia Civilization Museum)이 있다. 이 박물관은 동남아시아 문명의 양대축인 힌두교와 불교를 중심으로 이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고 있다. 동남아시아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꼭 방문해야 하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마리나 베이 옆에는 싱가포르 의회 건물이 있다. 싱가포르의 국회의원수는 89석으로 이중 83석이 리콴유 전수상이 만든 인민행동당(PAP)이 차지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사실상 전체주의 일당독재국가이다. 의회건물 맞은편에는 싱가포르 대법원 건물이 있다. UFO같은 기묘한 모습 때문에 처음에는 쇼핑 몰인 줄 알았다. 그런데 밖에서 안을 슬쩍 들여다보니 내부마저 쇼핑몰처럼 꾸며져 있었다. 역시 싱가포르스런 대법원 건물이다.
 싱가포르는 2차대전 때 일본의 침략을 받았다. 1942년 2월 15일 싱가포르는 일본군에 의해 함락되었고 1945년 9월 3일까지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 싱가포르는 중국 화교가 전체인구의 75%를 차지하고 있다. 일본은 중국인들이 반일 활동을 한다는 이유로 18세에서 50세에 이르는 중국인들을 탄압하였고 이들 중 약 5만명이 일본군에 의해 학살되었다. 마리나 베이에는 2차대전 때 일본군에 의해 희생된 전쟁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추모기념공원과 추모탑이 있다. 추모탑은 4개의 기둥으로 되어 있다. 그것은 싱가포르가 중국인,말레이시아인,인도인,유럽인등 4개의 민족이 화합하여 이룩한 도시라는 뜻을 담고 있다.

 마리나 베이에서 브라스 바사역으로 MRT를 타고 이동하였다. 싱가포르의 MRT는 국민소득에 비해 그리 비싼 편이 아니며 서민들의 주된 교통수단이다. 브라스 바사역 옆에는 싱가포르들의 인재양성소인 SMU(싱가포르 경영대학 Singapore Management University)가 있다. SMU는 최신 현대식 건물로 깔끔하게 지어졌다.

싱가포르 국립박물관은 고전양식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싱가포르는 1819년 영국의 래플스(Raffles)경이 인도와 중국을 잇는 중계무역항을 건설하기 위해 이곳에 상륙한 이후에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그 이전에 싱가포르는 작은 어촌에 불과했다. 싱가포르는 이후 20세기 중반까지 영국의 식민지였다. 1957년 말레이시아 연방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자 싱가포르도 말레이시아 연방의 일원이 되었고 자치권을 획득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1965년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탈퇴함으로써 자주국가가 되었다. 싱가포르의 역사는 길어야 200년이고 자주국가로서의 역사는 50년에 불과하다. 싱가포르 국립박물관은 영국 식민지시절부터 2차대전 그리고 독립국가 수립 이후 현재까지 싱가포르 발전의 역사를 잘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싱가포르 독립과 경제발전을 이끈 지도자 리콴유(Lee Kwan Yew)에 대한 선전과 찬양 일색인 점은 약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싱가포르가 국민소득 천달러의 개발도상국에서 국민소득 7만불에 이르는 경제강국이 된 것은 자명한 사실이지만 그것이 권위주의 개발독재자 리콴유의 전유물은 아닐 것이다.
싱가포르 플라이어(Singapore Flyer)는 2008년 완공된 대형관람차로 런던의 런던아이(London Eye)를 모델로 지은 것이다. 현재까지 세계 최대 높이를 자랑하는 관람차다. 싱가포르 플라이어에서는 마리나 베이의 스카이라인과 가든스 바이더샌즈등 주변경치가 한눈에 들어 온다. 싱가포르 플라이어는 싱가포르 여행에서 한번은 꼭 타 보아야 할 아이템이다.

둘째날은 리틀인디아-시티투어버스-아랍스트리트-차이나타운-마리나베이야경 순으로 투어를 하였다.


 리틀인디아(Little India)는 이름 그대로 인도인들이 거주하는 동네다. 끊임없이 건설공사가 이루어지는 싱가포르에서 대부분의 건설 노동자와 유지보수 노동자등 저임금 노동자들은 대부분 인도인들이다. 인구의 3/4은 중국인들이지만 건설현장에서 중국인들은 찾아볼 수 없다. 리틀인디아에는 스리 비라마칼리암만사원등 힌두교사원과 함께 세랑군 플라자, 무스타파 센터등 대형쇼핑센터가 있다. 오늘날 싱가포르 경제를 떠받치는 사람들은 바로 인도인들이고 리틀 인디아는 싱가포르에서 가장 핫한 지역이다.

 싱가포르는 9월 말에도 한낮의 기온이 33도까지 올라가며 습도도 매우 높다. 따라서 한낮에 거리투어를 하는 것은 대단한 체력소모가 발생한다. 체력소모와 시간의 낭비를 줄이고자 한다면 시티투어버스를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시티투어 버스는 합온 합오프(Hop-on, Hop-off)시스템으로 1일티켓으로 24시간내에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또한 시티투어버스를 타면 싱가포르 시내를 1시간 이내에 둘러볼 수 있다. 시티투어 버스는 여러개의 노선이 있는데 대부분 시내 주요 관광지와 호텔을 경유한다.

리틀 인디아 바로 옆에 있는 아랍스트리트는 리틀인디아에 비해 꽤 한적한 편이다. 이곳에는 아랍풍의 건물과 까페 그리고 술탄모스크가 있다. 싱가포르의 이슬람인구는 대부분 말레이시아계열로 싱가포르 전체 인구의 10%이상을 차지하고 있지만 이들은 중국인과 인도인에 비해 싱가포르에서 큰 위상을 누리고 있지는 않는 듯하다. 싱가포르 경제가 자본과 서비스는 중국인, 저임금 노동은 인도인으로 뚜렷이 구분되어 있다보니 말레이시아인들은 이들에 비해 비교적 소외되어 있다. 아랍스트리트는 일요일임에도 관광객 이외에는 유동인구가 거의 없고 한산한 편이었다.

 싱가포르의 차이나타운(Chinatown)은 시끌벅적한 중국인 거리로 중국인들은 이 거리를 뉴처슈이(牛車水)라고 부른다. 차이나타운에는 피플즈 파크 컴플렉스(People's Park Complex, 珍珠坊)라는 유명한 건물이 있고 그 옆에는 인산인해인 피플즈 파크 푸드센터가 있다. 차이나타운은 각종 중국음식을 맛볼 수 있고 중국계 싱가포르인들의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싱가포르는 호커센터라는 대형 푸드코트가 성업하고 있다. 그 중 차이나타운에 있는 맥스웰 푸드센터(Maxwell Food Centre)는 1930년대에 만들어진 가장 오래된 푸드코트로 현재에도 이곳은 싱가포르 서민들이 가장 많이 즐겨 찾는 푸드코트다. 이곳은 중국과 동남아시아의 음식을 싼 가격에 맛 볼 수 있는 곳으로 싱가포르 여행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장소이다. 이곳에서 싱가포르의 서민문화를 체험하는 것도 싱가포르 여행의 백미가 될 것이다.
밤에는 선텍시티몰을 둘러보았고 마리나 베이 샌즈에서 싱가포르의 야경을 감상했다. 선텍시티몰은 하루종일 둘러보아도 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큰 쇼핑몰이다. 선텍시티몰에는 부의 분수(Fountain of wealth)가 있다. 싱가포르인들의 가장 큰 소망은 부자가 되는 것으로 부의 분수는 부에 대한 싱가포르인들의 소망이 담겨 있다. 마리나 베이에서 바라본 싱가포르의 야경은 바다와 고층빌딩들이 접해 있어서 매우 이색적이 풍취를 자아내고 있다.

셋째날은 보태닉가든-오처드 로드-포트캐닝파크-클라크 키-리버크루즈투어-부기스스트리트 순으로 투어를 하였다.
 싱가포르 보태닉가든(Botanic Garden)은 열대지방의 나무와 난초를 관람할 수 있도록 만든 인공정원이다. 열대식물들을 감상하며 산책하는 것도 싱가포르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아이템이다. 보태닉 가든 안에 있는 난초정원(Orchid Garden)은 따로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한다.

 오처드 로드(Orchard Road)는 원래 과수원이 있던 곳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싱가포르 최대의 쇼핑거리다. 이곳에는 루이비통,구찌등 명품 매장과 대형백화점들이 몰려있다. 싱가포르 시내에는 어디를 가도 대형 쇼핑몰이 있다. 길을 걷다 더위에 지칠 경우에는 시워하게 에어컨이 가동되는 쇼핑몰에 들어가면 된다. 또한 쇼핑몰에는 많은 음식매장과 카페들이 있기 때문에 식사나 커피를 마시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휴식공간이기도 하다.
 포트캐닝 파크(Fort Canning Park)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원래 영국군의 요새가 있던 곳이다. 산이 없는 싱가포르에서 이 곳은 그나마 높은 언덕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성벽과 참호 그리고 대포가 배치된 군사시설이었다. 2차대전때는 일본군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한 기지 역할을 하기도 했다. 포트 캐닝파크의 중심부에는 현재도 군사시설이 있지만 그 둘레로는 공원과 산책로가 있어서 나무숲속에서 휴식을 취하기는 안성마춤이다. 싱가포르의 현대식 공원을 경험하고자 한다면 포트캐닝파크는 꼭 둘러보아야 할 곳이다.

 포토캐닝파크옆에는 클라크 키(Clarke Qauy)가 있다. 클라크 키는 원래 보트들이 정박하던 곳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현재는 카페와 바가 밀집된 유흥가다. 클라크 키에서는 보트를 타고 마리나 베이까지 왕복하는 리버 크루즈 투어를 할 수 있다. 크루즈 투어는 강을 따라 싱가포르 중심부와 마리나 베이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싱가포르 여행에서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아이템이다. 특히 저녁 7시 이후에는 싱가포르의 야경을 감상하기 위해 모여든 수많은 관광객들로 인해 크루즈는 항상 만원이다.

크루즈 투어를 마치고 부기스 스트리트(Bugis Street)를 둘러 보았다. 부기스 스트리트는 한국의 남대문 시장처럼 전통시장중심의 쇼핑거리다. 부기스스트리트는 주로 중국계인들이 가판대를 중심으로 저가 의류와 상품들을 판매 곳이다. 오처드 로드가 명품 위주의 쇼핑거리라면 서민중심의 쇼핑거리는 바로 부기스 스트리트다.
저녁에는 차이나 타운에 있는 피플즈 파크 푸드센터에서 저녁식사를 한후 맥주를 한잔 하였다. 푸드센터에서는 항상 맥주를 마시는 싱가포르인들을 볼 수 있다. 특히 식사할 때 반주로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이 많다. 싱가포르는 일년 내내 습한 아열대 기후이기 때문에 맥주는 싱가포르인들에게 필수 아이템인 듯 하다.

넷째날은 센토사-비보시티-가든스 바이더샌즈-클라크 키 야경 순서로 투어를 하였다.

센토사(Sentosa)는 싱가포르 최대의 리조트 단지로 센토사 섬 자체가 거대한 놀이공원이다. 센토사에는 카지노와 호텔등이 들어서있고 곳곳에 각종 위락시설들이 있어서 관광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센토사의 주요 볼거리에는 유니버셜 스튜디오, 대형 아쿠아리움 그리고 센토사 멀라이언상등이 있다. 나는 아쿠아리움과 센토사 멀라이언을 관람했다. 센토사 아쿠아리움은 전세계 어류와 바다생물들을 세계 각지역별로 전시한 것이 특징이다. 센토사 멀라이언은 싱가포르에서 가장 큰 멀라이언상으로 안에는 소형전시관과 극장 그리고 전망대가 있다.

 센토사로 가기 위한 입구인 하버프런트에는 비보시티(Vivo City)가 있다. 비보시티는 싱가포르 최대의 쇼핑몰이다. 싱가포르의 대형 쇼핑몰들은 쇼핑과 식사 휴식 그리고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종합문화공간이다. 비보시티나 선텍시티에서 적어도 한나절동안 쇼핑과 식사를 하며 하루 또는 반나절을 보낼 수 있다. 비보시티에 있는 대형푸드센터인 푸드리퍼블릭(Food Republic)은 중국뿐만 아니라 인도 동남아시아 일본 한국등 아시아 각지의 요리를 즐길 수 있는 코너들이 많이 있다. 나는 인도네시아 자바전통요리로 점심을 해결했다.

 가든스 바이더샌즈(Gardens by the Sands)는 마리나 베이 샌즈옆에 있는 대형 인공정원이다. 커다란 유리돔안에 있는 플라워 돔과 클라우드 포레스트는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한다. 플라워 돔은 세계 각지의 꽃, 선인장, 난초, 나무등 식물들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고 클라우드 포레스트는 인공산을 데크를 따라 내려오면서 감상하게 만든 일종의 어드벤쳐 가든이다. 가든스 바이더샌즈에는 공상과학영화에나 나올 법한 수퍼트리 그루브라는 대형 인공 조형물이 있다. 그루브 기둥에는 전망데크가 있는데 이곳에 올라가려면 역시 입장료를 내야 한다.

저녁에는 클라크 키 바에서 맥주를 한잔하면서 야경을 감상했다. 마리나 베이 샌즈에서는 매일 저녁 8시에 레이저 쇼를 펼치는데 클라크 키에서도 감상할 수 있다.

싱가포르 여행 마지막날,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체크아웃을 한 후 MRT를 타고 창이공항(Changi Airport)으로 향했다. 창이공항은 세계 공항 서비스 평가에서 항상 1위를 하는 공항이다. 창이공항의 특징은 검색대가 게이트 바로 앞에 있다는 것과 게이트 대기실과 면세점이 분리되어 있다는 것이다. 게이트 대기실은 비행기 출발 1시간 전에 오픈된다. 이로써 4박5일간의 싱가포르 여행이 끝났다.

오늘날 싱가포르는 세계에서 가장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꼽힌다. 또한 국가경쟁력 2위이자 세계 5대 금융도시 중 하나다. 수많은 다국적 기업들이 싱가포르에 본사와 지점을 두고 있으며 중계무역항으로서도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싱가포르는 1965년 독립 당시 국민소득 천불의 개발도상국이었으나 현재 국민소득 8만불(PPP기준)의 고소득 국가가 되었다. 6,70년대에는 해외 공장들을 유치하여 경제를 부흥시켰고 현재는 해외 각지에 투자를 하는 금융대국이 되었다. 싱가포르의 부흥은 전수상 리콴유의 강력한 리더십과 권위주의적 개발독재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오늘날 싱가포르는 빈부격차가 심하고 민중들의 삶의 수준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았다. 싱가포르는 리콴유를 비롯한 소수 화교 기득권세력들이 부를 독점하는 전체주의 개발독재국가다. 싱가포르는 흥미로운 곳이지만 도시 자체가 너무 인공적이라는 것이 흠이다. 또한 지나친 배금주의와 개발지상주의도 싱가포르에 대해 부정적 이미지를 갖게 하는 요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것은 작은 도시국가인 싱가포르가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방법일 수도 있다. 싱가포르는 인도, 중국, 동남아시아, 유럽등 4대문화가 공존하고 있는 매우 독특한 국가다. 문화적 다양성과 포용성이야말로 싱가포르가 갖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이자 매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