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31일 금요일

황산(黃山) 여행

장가계(張家界)를 다녀온 후 2달만에 다시 황산(黃山)을 찾았다. 한국 관광객들에게는 장가계가 더 많이 알려져 있지만 중국인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산은 바로 황산이다. 예전에는 황산에 가려면 상하이나 항저우를 거쳐서 갔지만 현재는 황산의 툰시 공항까지 전세기가 들어가기 때문에 황산만 구경하고자 한다면 굳이 항저우나 상하이를 경유할 필요가 없다. 4박 5일 일정으로 황산과 휘주를 둘러보는 패키지 여행단에 참가하였다. 가격이 저렴한 여행상품인 반면 쇼핑센터를 많이 들르기 때문에 매우 피곤한 것도 사실이다. 모두 13명이 참가한 이번 여행에서 함께한 분들은 대부분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이었다.

툰시 국제공항에 내리자 조선족 가이드가 맞이하였다. 가이드는 일행을 휘주 역사박물관으로 안내했다. 황산이 있는 지역의 옛 명칭은 휘주(徽洲)다. 황산을 관광지로 개발하면서 지역의 명칭을 황산시(黃山市)로 개칭하였다. 휘주는 산이 많은 곳으로 농사지을 땅이 부족한 곳이다. 때문에 예로부터 이 지역의 남자들은 공부를 잘 해서 관직으로 나아가든지 아니면 외지로 장사를 하러 가야만 했다. 그래서 휘주는 유명한 정치인이나 대상인(大商人)들을 많이 배출했다. 장쩌민주석이나 후진타오주석도 모두 휘주 출신이고 현재 중국 국무원 총리인 리커창(李克强)도 안휘성 출신이다. 상인으로는 청나라 말기의 거상인 호설암이 바로 휘주 출신이다. 한편 휘주로 시집온 여자들은 남편이 돈을 벌기 위해 외지로 나가면 홀로 독수공방해야만 했다. 때문에 휘주 여자들에게는 평생 절개를 지키는 것이 매우 중요한 덕목이었다. 반면 남편은 아내에 대한 의리를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었다. 휘주는 예부터 붓과 벼루등 문방사우로 유명한 고장이다. 공부를 잘 해야만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에 진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휘주의 집들은 대부분 까만색 지붕에 벽은 하얀색이다. 그것은 종이와 먹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만큼 물산이 풍부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 곳 사람들은 예로부터 공부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휘주 박물관을 구경하고 나서 '청대 옛거리' 라오지에(老街)로 향했다. 라오지에는 청나라때부터 존재했던 전통 시장거리인데 정부에서 이곳의 관광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최근에 재정비를 하였다고 한다. 라오지에는 베이징의 스차하이(十刹海)거리처럼 옛스런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거리다. 전통 공예품과 각종 기념품 가게들이 늘어서 있어서 휘주를 찾는 단체 관광객들은 반드시 들리는 코스다. 라오지에를 구경한 후 호텔에서 저녁 식사를 하였다. 우리가 묵은 호텔은 황산 시내에서 약간 떨어진 개발 특구에 위치하였다. 황산도 중국의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개발 붐이 일고 있다. 곳곳에 크레인이 올라가 있고 한창 건설중인 아파트와 빌딩들이 많았다. 이 곳도 3년만 지나면 크게 변해 있을 것 같다.

이튿날 아침 일찍 식사한 후 일행은 황산으로 향했다. 호텔에서 황산까지는 버스로 약 1시간 20분 정도 걸린다. 황산은 해발 1864m의 산으로 중국의 10대 명승지로 꼽힌다. 1990년에는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황산은 또한 장가계와 함께 아바타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황산은 70년대 말 덩샤오핑이 이곳을 오른 후에 개발 지침을 내려 관광지로 대대적으로 개발되었다고 한다. 황산은 현재도 등산로와 모노레일 공사가 진행중이다. 일행은 운곡(雲谷)케이블카를 타고 광명정(光明頂)까지 올라갔다. 짙은 안개가 끼여 있어서 케이블카에서 주변 경치를 감상할 수는 없었다. 케이블카에서 내려서 광명정까지 약 200m를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광명정은 황산의 3만 7천 봉우리중 두번째로 높은 봉우리로 해발고도가 1860m다. 광명정에서도 안개 때문에 주변 경치를 감상할 수는 없어서 실망감이 찾아 들었다. 사실 황산은 일년중 개인 날이 약 70여일 정도 밖에 안 될 정도로 항상 비가 오거나 안개가 끼여 있는 산이다. 맑은 날 황산을 오른다는 것은 굉장히 운이 좋은 셈이다. 황산은 수줍음이 많은 산처럼 느껴졌다. 자신의 깊은 곳을 함부로 드러내기 싫어한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신비감이 크게 느껴지는 산이다. 황산의 웅장함을 감상하는 것은 고사하고 계단길을 오르내리느라 피곤함이 느껴졌다.


내려올 때는 케이블카를 타지 않고 도보로 6.5km를 걸어서 내려 왔다. 황산의 등산로는 모두 돌계단으로 만들어져 있다. 하지만 계단의 폭이 좁아 발을 디디기가 무척 힘들었다. 계단길을 내려가면서 막대기 양쪽에 무거운 짐을 어깨에 짊어지고 힘겹게 산을 오르는 인부들을 볼 수 있었다. 한 두 사람도 아니고 족히 이백명은 될 것 같은 인부들이 끊임없이 짐을 지고 계단길을 오르고 있었다. 모두 황산 중턱에 있는 호텔에 물건을 실어나르기 위한 것이었다. 야채와 고기등 먹을거리에서 가스통까지 짊어지고 올라가는 모습을 보면서 다소 측은한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저들에게는 그것이 소중한 일자리인 셈이다. 중국은 사람이 많은 나라다. 때문에 인건비가 매우 싸다. 오늘날 중국이 제조업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노동력이 풍부해서 인건비가 싸기 때문이었다. 물론 기구를 이용하여 물건을 올릴 수 도 있으나 그렇게 된다면 일자리가 줄어들게 된다. 때문에 정부에서는 저들의 일자리를 위해서 산에 운송장비를 설치하지 않고 인력으로 짐을 나르게 한다고 한다. 무거운 짐을 지고 산을 오르는 인부들도 어찌 보면 황산의 중요한 경치중의 하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하산길에 안개가 많이 걷혀서 여러 산봉우리들을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황산의 봉우리들은 장가계와는 또 다른 맛이 느껴졌다. 장가계의 봉우리들이 웅장하면서도 기묘하다는 느낌이 들었다면 황산의 봉우리들은 마치 한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오히려 구름과 안개가 낀 모습이 더욱 신비롭게 느껴졌다.


산을 내려와서 식사를 한 후에 시내로 돌아와서 마사지를 받았다. 한국에서 마사지는 상당히 퇴폐적인 이미지가 강하지만 중국에서 마사지 센터는 오픈되어 있는 곳에서 여러명이 함께 마사지를 받는 건전한 공간이다. 중국의 마사지는 매우 유명할 뿐만 아니라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중국에서 마사지는 마땅한 생계 수단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자리라고 할 수 있다.


마사지를 마친 후에 쇼핑센터를 한 곳 들렀다. 쇼핑센터 관광은 중국여행의 필수코스라고 할 수 있다. 주로 찻집,라텍스,진주,한약방등을 들리는데 쇼핑센터 들르는 것이 이제는 그다지 낮설지 않다. 이들 쇼핑센터는 대부분 대부분 조선족들이 운영을 하며 점원들도 대부분 조선족들이다. 어떤 이들은 조선족들이 판매하는 물건이 가짜거나 사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으나 사실 그렇지는 않다. 물론 관광객들을 속이는 경우도 없지는 않겠지만 극히 일부분의 얘기다. 이들도 한족들에게서 물건을 사 와서 한국 관광객들에게 물건을 판매하는 소매상들일 뿐이다. 물건은 대부분 흥정이 가능하지만 지나치게 값을 깍으려는 관광객들을 보면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다. 흥정은 적당한 선에서 끝내는 것이 좋다. 어느 물건이든 품질은 가격에 비례한다. 중국 관광에서 쇼핑센터를 제대로 활용하는 방법은 라텍스든 차든 자신이 꼭 필요한 물건을 적당한 흥정을 통해 구입하는 것이다. 지나친 흥정으로 서로 인상을 쓰는 것은 즐거운 여행 분위기를 해치기 때문에 별로 좋지 않다.


저녁은 한국 식당에서 삼겹살로 먹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연변 조선족이 운영하는 식당이다. 연변 조선족이 운영하는 식당의 한식은 맵고 짠 한식과 기름기가 많은 중식이 섞인 일종의 퓨전음식 같다. 식당 종업원들이나 마사지사들은 대부분 마땅한 생계 수단이 없는 한족들이다. 이들은 서투른 한국말 몇 마디만 배워서 식당이나 마사지샵에서 일을 한다. 한국 관광객들 특히 나이든 사람들 중에는 이들을 함부로 대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서비스가 불만이라며 심하게 불평을 한다든지 욕을 하는 경우도 있고 조롱섞인 농담을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저열한 모습들을 보여준다면 그것은 한국관광객들의 품위만 떨어뜨릴 뿐이다. 최근 중국에서는 혐한류(嫌韓流)의 역풍이 심심치 않게 불고 있다고 한다. 중국의 부상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한국 관광객들의 천박한 행태도 큰 몫을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다음날은 정감촌(呈坎村)과 잠구민택(潛口民宅)을 방문하였다. 정감촌은 18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휘주에서 가장 오래된 고촌이라고 한다. 하지만 현재 남아있는 건물들은 모두 명,청대의 것들이다. 정감촌은 현재도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로 아름다운 연못과 휘주의 옛 건축양식들을 볼 수 있는 곳이다. 특이한 점은 이 곳의 집들은 아래층에는 창문이 없고 2층과 3층에  조그만 창이 나 있다는 것이다. 옛 휘주의 여성들은 절개를 소중히 여겼으며 외관 남자들을 함부로 집에 들이지 않았다. 바깥에서 사람이 문을 두드리면 조그만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고 아는 사람인지 확인한 후에 문을 열어 주었다고 한다. 이곳의 집들은 모두 1층에는 방이 없고 손님을 맞이하는 거실이 있는데 거실에는 탁자를 사이에 두고 의자가 두개 놓여져 있다. 현재 중국의 지도자들이 외국의 사절들을 맞이할 때 탁자를 사이에 두고 의자에 나란히 앉아 좌담을 나누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손님을 맞이하는 중국의 전통적인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특이한 점은 이미 명청대에 2,3층의 목조 가옥을 지었다는 것이다. 한옥과는 달리 온돌난방을 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당시 중국은 건축기술이 상당히 발달했던 것으로 보인다. 잠구민택도 정감촌과 마찬가지로 옛 휘주의 농민들이 거주하던 가옥들이 있는 곳이지만 현재는 사람이 살고 있지 않다.



점심식사를 마친 후에 원래는 온천욕을 하기로 했으나 어르신들의 반대로 그냥 호텔에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황산은 온천이 좋기로도 유명한 곳이다. 아마도 어르신들은 이곳 온천이 우리나라의 사우나같은 곳인줄 알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곳 온천은 노천 개방온천으로 수영복을 입고 들어가는 곳이다. 하릴 없이 호텔에서 어제 식당앞에서 산 망고를 까 먹으며 TV를 보면서 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었다. 어제와는 달리 해가 강하게 내리쬐는 날씨라 돌아다니기도 힘들고 호텔 주변은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라 달리 구경할 만한 곳도 없었다.

시내로 나와 저녁을 먹은 후에 '휘운가무쇼'를 보았다. 중국 여행의 백미는 뭐니뭐니해도 가무쇼가 아닐까 싶다. 중국의 가무쇼는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배경으로 화려한 춤과 음악이 어우러진 중국특색의 뮤지컬이다. 휘운가무쇼는 상하이 기업이 투자한 가무쇼로 유명한 장이모 감독이 연출 지도를 일부 했다고 한다. 역시 예상대로 화려하고 볼 만한 쇼였다. 특히 선녀가 하늘에서 꽃을 뿌리는 장면은 다른 지역의 가무쇼에서는 볼 수 없는 매우 독창적인 연출이라고 생각한다. 휘운가무쇼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휘주의 역사와 문화다. 극중에는 어머니가 아직 어린 아들을 매몰차게 외지로 내보내는 장면이 나온다. 아들이 외지에서 장사를 하여 성공하여 집에 돌아와 보니 어머니는 이미 늙었고 미처 효도를 해드리지도 못하고 돌아가는 모습만 지켜보는 애닲은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이처럼 외지로 나간 휘주의 상인들은 중국의 상권을 장악하면서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또한 경극의 기원도 바로 휘주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경극은 휘주의 상인들이 개발한 연극인데 경성(京城)의 황제에게까지 소문이 퍼져서 이들은 황제앞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다. 황제는 이들의 공연을 매우 즐겁게 감상하였고 이들을 경성에 상주하게 하면서 공연을 하게 하였다. 때문에 경극(京劇)이라는 말이 이 때부터 탄생하게 되었으나 사실 경극의 기원은 휘주인 셈이다.

다음날 아침 6시쯤 전화벨이 울렸다. 가이드의 목소리가 들렸다. 날씨가 괜챦으니 다른 팀에 합류하여 황산을 다시 구경할 의향이 있는지 물어보는 것이었다. 나는 흔쾌히 가겠다고 답했고 부랴부랴 아침식사를 한 후에 호텔 로비로 나왔다. 가이드에게 케이블카와 차량비등을 지불하고 어제 온 여행객들과 함께 다시 황산을 오르기로 했다. 천하의 명산인 황산을 언제 다시 올지도 알 수 없고 첫 날 황산을 제대로 본 것도 아니기 때문에 크게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더욱이 날씨도 매우 맑고 좋았다. 다른 팀의 가이드는 태평케이블카를 타고 반대편으로 올라가는 코스를 택했다. 태평케이블카는 100명이 탈 수 있는 큰 케이블카로 다행히 날씨가 좋아서 주변으로 황산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상쪽으로 다가가자 다시 안개가 끼기 시작하였다. 케이블카에서 내리자 안개는 더욱 짙어졌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맑고 쾌청한 날씨가 짙은 구름과 안개가 끼면서 흐려졌다. 황산의 날씨는 참으로 종잡을 수가 없다. 가이드는 구름이 더 끼기 전에 빨리 보아야 한다며 서둘렀고 일행은 가이드를 따라서 서해 대협곡을 구경하였다.




다행히 구름 사이사이로 황산의 비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확실히 장가계와는 다른 경치였다. 마치 신선이 살 것 같은 깊이있고 그윽한 경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장가계를 다시 찾는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지만 황산을 다시 찾는 사람들은 많다고 한다. 항상 구름과 안개로 덮여 있기 때문에 제대로 감상하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황산만의 독특한 매력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실 이런 깊이있는 경치는 어느 곳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황산의 또다른 매력은 바로 등산로가 아닐까 생각 한다. 자연의 경치야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수 있게 한 것은 바로 인간이다. 사람이 다니기 힘든 협곡에 등산로를 설치한 인간의 힘도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7.5km의 장가계 케이블카도 대단했지만 황산의 등산로도 인간이 만든 위대한 예술작품이 아닐까 생각한다.


서해대협곡을 본 후에 일행과 함께 가이드의 권유로 경치가 빼어나다는 동해 대협곡 코스로 걸었다. 하지만 보슬비가 어느새 굵어지면서 폭우가 내리기 시작했다. 산 정상의 휴게소에서  산 우비를 입었지만 비가 너무 많이 쏟아져서 신발이 다 젖었다. 시신봉(始信峰)에 올라가기는 했지만 주변 경치는 볼 수 없었다. 비를 맞으며 동해 대협곡 길을 걸어 운곡삭도 입구로 와서 케이블카를 타고 하산하였다.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없다고 하지만 황산의 날씨는 더욱 알 수 없다. 하지만 천변만화하는 황산의 날씨도 황산의 비경중의 일부가 아닐까 생각한다. 산을 내려와서 식사를 한 후 쇼핑센터를 들른 후에 삽겹살로 마지막 저녁 식사를 하였다. 궂은 날씨 때문에 약간 섭섭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황산에 올라가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 올라가는 것보다 두번 올라가는 것이 그래도 기억에 오래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날은 산월풍정촌(山越風情村)을 들렸다. 산월족은 중국의 55개 소수민족중의 하나로 현재 미얀마 사람들과 같은 종족이라고 한다. 원래는 평지에 살던 사람들이었으나 한족에 밀려 산속에 들어가서 살았다고 한다. 이들은 산속에서 나무로 된 집에서 살면서 원초적인 생활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곳은 더 이상 사람은 살지 않으며 관광지로 조성해 놓고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산월족들의 생활모습을 보여주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산월족들의 토속적인 공연과 묘기도 보여주며 북소리와 노래에 맞춰 관광객들의 손을 잡고 춤을 추기도 한다.

4박5일간의 황산 여행이 모두 끝났다. 패키지 여행 관광치고는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황산 뿐만 아니라 중국의 유명한 정치가와 상인들을 배출한 휘주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할 수 있어서 의미있는 여행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왠지 섭섭한 느낌도 든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명산중의 명산 황산을 중점적으로 보려 했지만 천변만화하는 날씨 때문에 제대로 황산을 감상하지 못했던 때문도 있고 아무것도 안하고 보낸 시간이 꽤 많아서 그다지 알 찬 여행이었다고는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고 호텔에서 TV로 중국방송을 보면서 중국문화를 간접적으로 체험한 것도 좋은 경험이었다.

황산여행 사진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