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9월 25일 토요일

인천 자유 공원과 차이나타운 탐방

추석날 차례를 지내고 인천 자유 공원을 찾았다. 전날 폭우가 내렸으나 오늘은 간간히 가랑비만 내릴 뿐 큰 비는 그쳤다. 자유공원은 지하철 1호선의 종점인 인천역 바로 옆에 있다. 맘만 먹으면 언제든지 쉽게 찾아갈 수 있는 곳이다.

자유공원과 차이나타운은 붙어 있다. 인천시는 이곳을 관광명소로 꾸미려고 노력중이지만 관광객들이 그리 늘지는 않는 것 같다. 자유공원으로 올라가려면 차이나타운을 거쳐야 하는데, 중국풍의 벽화와 건물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이곳 차이나타운은 짜장면이 탄생한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중국집들이 많이 있고 짜장면 맛보라고 호객행위를 많이 한다. 이곳 짜장면을 먹어 본 적은 없지만 기회가 된다면 원조 짜장면을 한번 먹어보고 싶다.


인천 자유공원으로 올라가면 큰 조형물이 눈에 띈다. 바로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탑으로, 1982년 한미수교 100주년을 기념하여 조성된 것이다. 조각상이 자유공원에 세워진 이유는 해외문물을 처음으로 개방한 곳으로서 인천의 상징성 때문인 것 같다. 그런데, 주변 조경과 다소 언밸런스한 느낌이다. 왠지 탁 트인 넒은 평지와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작품이다.
 인천앞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자유광장. 휴일을 맞아 산책 나온 시민들이 훌라우프를 돌리기도  하고 인천앞 바다도 구경하면서 한가로운 휴일 오후를 보내고 있다. 이곳 광장은 관광객을 유치하여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서 주말마다 다양한 공연이 행해지고 있다고 한다.


[월미도]
 자유공원에는 인천앞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석정루라는 정자가 있다. 정자에서는 인천항과 월미도 영종도 강화도를 한눈에 볼 수 있다. 그리고, 저 멀리 인천 대교와 송도 신도시도 볼 수 있다. 위에 보이는 작은 섬이 바로 월미도다. 월미도는 생각만큼 크지 않다.
[송도 신도시]
[인천 대교]
[영종도]
[강화도]
송도 신도시의 고층 빌딩들이 보이고, 영종도와 송도 신도시를 잇는 인천 대교의 교각이 보인다. 그리고 인천 국제공항이 있는 영종도와 멀리 마니산이 있는 강화도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정자의 위치가 높은 편이 아니라, 주변 건물과 항만의 크레인들로 인해 바다의 조망이 썩 좋은 것은 아니다. 유심히 관찰하지 않으면 그저 지루한 경치로 보일 뿐이다.


 자유공원에서 인천역 방향으로 내려오면 삼국지 벽화가 그려진 거리를 볼 수 있다. 유비 관우 장비 3형제의 도원결의에서 삼국통일까지 100년의 역사가 파노라마처럼 벽화로 그려져 있다. 그림이 상당히 솜씨있게 그려졌다.
 

관악산 트레킹


6일간의 추석 연휴중에 첫날은 폭우로 집에서 발이 묶였고, 둘째날과 셋째날은 형님댁에서 차례 지내고 형제들과 함께 식사를 하였다. 4일째는 그냥 집에서 쉬려고 했으나, 맑은 날씨가 나를 유혹했다. 원래 이번 추석은 임파선에 염증도 생기고 감기 증상이 있어서 집에서 푹 쉬려고 했다. 그러나 6일동안 집에만 있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그래서 관악산 산행을 하기로 결심했다. 관악산은 서울근교의 산 중에서 가장 많이 올라간 산이다. 그러나, 이번 관악산행은 지금까지 서울 근교 산행 중에서 가장 힘들었었다. 그 원인은 단순한 착오에 있었다.
 아침 9시에 집을 나와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2호선 서울대 입구까지 지하철을 타고 간 후 지선버스를 타고 서울대 입구에서 내렸다. 오늘 산행을 힘들게 한 착오는 바로 삼성산과 관악산이 하나의 산이라고 생각한 데 있었다. 관악산은 30년 가까이 올라간 산인데, 왜 그 사실을 몰랐을까? 서울대 입구에서 올라가는 코스는 관악산 주봉인 연주대로 가는 코스가 아니라 삼성산으로 올라가는 코스였던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삼성산이 관악산의 여러 봉우리중 하나고 아무곳으로 올라가도 주봉으로 연결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삼성산과 관악산은 계곡을 사이에 두고 먼거리에 봉우리가 솟아 있는 다른 산이다. 서울대에서 시작한 코스에서는 푯말을 아무리 찾아봐도 연주대 정상으로 가는 코스가 없다. 더구나 제1야영장쪽 길이 연주대와 가까울 것으로 알고 그길을 택했는데, 그곳은 연주대와 가장 먼 곳이었다.


제1야영장에서 일단 삼막사로 가기로 했다. 여기서부터 관악산 능선 트레킹이 시작된다. 제1야영장에서 삼막사로 가려면 고개를 몇개 넘어가야 한다. 삼막사는 산정상에 위치한 절로 등산객들이 많이 찾는 절이다. 주말에는 등산객들에게 점심 공양까지 제공해서 인기가 많은 절이다. 오늘은 평일이라 점심공양이 없었다. 


이 절의 법당 중에서 가장 특이한 곳은 육관음전으로 6개의 관음보살상이 모셔져 있다. 왠만한 절의 관음상은 보통 1개가 모셔져 있는데, 특이하게도 6개의 관음상이 있다. 각각의 관음상의 모양이 다르다. 천수관음도 있고, 물병을 들고 있는 전통적인 관음상도 있고, 악귀의 모습을 한 관음상도 있다. 이는 관음보살이 방편에 따라 여러 모습으로 나투어서 중생들을 교화함을 나타내고 있다. 나는 이 육관음전의 관음상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삼막사를 찾을 때면 육관음전에서 기도를 한다. 오늘은 백팔배를 했다. 절은 일단 산속 깊숙이 있을 수록 기도 효험이 좋다. 힘들게 올라와야 기도의 효과가 크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이미 산을 올라오는 고행의 과정을 통해 자신을 비우는 경험을 이미 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백팔배를 마치고 법당 옆에 있는 약수를 먹었는데 감로수처럼 달았다.

 삼막사는 산신각과 칠성각이 있다. 산신각의 신령은 바위에 암각화로 그려져 있다. 산신각에서 계단길을 따라가면 칠성각이 나온다. 칠성각은 바위에 새겨진 마애존불을 모신 사당이다. 칠성각 옆에는 남근석과 여근석이 있는데, 정말 바위의 모습이 남녀의 성기와 비슷하게 생겼다.
삼막사 참배를 마치고 다시 삼성산 정상으로 올라갔다. 깊은 계곡을 사이에 두고 저 멀리 연주대가 보였다. 하지만 계곡이 워낙 깊은 데다 족히 수십고개는 넘어야 될 것 같았다. 삼막사에 온 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다. 관악산의 주봉은 엄연히 연주대이고 오늘 산행도 연주대를 올라가려고 했던 것이다. 처음부터 연주대로 왔었다면 삼막사는 가지 않았을 것이다. 무너미 고개로 내려가서 다시 연주대로 향했다. 

 연주대로 가기 위해 내려가는 길이 녹록치 않았다. 여기서부터 고행의 시작이었다. 가파른 바위길의 연속인데다 목이 점점 말라왔다. 그리고 무엇보다 배가 고팠고 구불구불한 능선길과 좋지 못한 산길을 계속 걷다보니 점점 힘이 들었다. 고개를 다 내려와서 다시 오르막길로 올라가려고 하니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사람들도 많이 없었고 중간중간에 나오는 갈래길들은 지친 등산객을 혼란스럽게 했다. 걷다 쉬다 하면서 지친 몸을 이끌고 간신히 고개 정상까지 올라왔다. 아직 연주대는 저 멀리 떨어져 있었다. 목도 마르고 지쳐서 도저히 연주대까지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먹을거라고는 냉장고에서 꺼내온 사과 1개가 고작이었다. 나는 그것을 씻지도 않은 채 그대로 먹었다. 바위 능선의 한가운데에서 달리 씻을 곳도 없었다. 그러나, 사과 한개의 힘은 컸다. 갈증이 해소되었을 뿐아니라 약간의 요기도 되는지라 다시 힘을 내어 걸었다. 등산 고수들은 힘든 산행을 할 때 쵸콜릿을 꼭 챙긴다. 쵸콜릿 생각이 간절했다. 쵸컬릿은 이럴 때 먹는 거로구나. 쵸코렛이 있었다면 좀 더 수월하게 능선을 탔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다음부터는 쵸코렛과 함께 소금을 약간 준비해 가야 겠다. 갈증 해소에는 소금이 최고라고 한다.



바위고개를 몇구비 넘어 간신히 송전탐까지 왔다. 저 밑에 연주암이 보였다. 일단 연주암까지만 가면 연주대까지는 그다지 어렵지 않게 갈 수 있다. 연주암에서 연주대까지는 돌계단 길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바위고개를 넘거나 할 필요가 없다. 절벽위에 붙어 있는 연주대의 그림같은 모습을 배경으로 사진을 한장 찍었다. 

드디어 연주대 정상. 고진감래라고 했던가. 과천에서 올라왔을 때와는 사뭇 기분이 달랐다. 삼막사에서 연주대까지 관악산의 주능선을 타고 제대로된 트레킹을 한 느낌이었다. 중간중간에 쉬면서 본 관악산의 비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연주대 정상에서 아이스케잌을 파는 아저씨를 만났다. 천원짜리 아이스케잌을 사먹으며 그 아저씨와 몇마디 나누었다. 삼막사에서 연주대로 넘어오느라고 힘들었다고 말하자 아저씨는 관악산을 제대로 구경하려면 한달 정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산행 코스도 많고 볼 것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무슨무슨 바위며 계곡 암자들을 다 구경하려면 그정도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리고 관악산을 하루에 다 보기 위해서는 9시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오늘 나는 알았다. 관악산은 매우 넓고 큰 산이며 볼 것이 매우 많다는 것을. 지금까지 내가 보아 왔던 것은 관악산의 전부가 아니라 일부분이었다. 물론 주능선을 타고 오기는 했지만 관악산을 다 구경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아저씨의 말씀처럼 곳곳에 숨어있는 기암괴석과 약수터 절과 암자들을 다 보려면 한달은 걸릴 것이다. 
연주대는 볼 때마다 신비롭게 느껴졌다. 예전에는 연주대에서 삼백배도 한 적이 있었는데, 오늘 가보니 암자 밖에 좌복을 치워서 절을 할 수 없었다. 그저 난간에 기대어 관악산의 신비로운 경치를 바라보았다. 연주대 구경을 마치고 연주대 정상에서 파는 막걸리를 한잔 사 먹었다. 갈증때문인지 막걸리가 달고 맛있었다. 연주대에는 기상관측대가 있다. 관악산 정상에 축구공 모양의 건물이 보이는데 그것이 바로 기상관측대다. 최근에 등산객들을 위해서 오후 4시까지 관측대 홍보실을 개방하는데, 잠시 들어가서 구경을 했다. 내려오는 길에 연주암의 관음전을 참배한 후 과천역으로 향하는 하행길로 내려왔다. 추석전날 비가 많이 와서인지 계곡에는 물흐르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관악산은 산과 계곡 기암괴석 그리고 사찰이 조화를 이룬 서울의 명산이다.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바위고개는 마치 동양화에 나오는 산의 모습과 비슷해서 전형적인 한국의 산이라고 할 수 있다. 소나무가 많아서 더욱더 한국적인 산임을 느끼게 해 준다. 삼성산과 관악산이 하나의 산이라는 작은 착각이 바위고개 트레킹을 하게 만들었고, 결국 힘든 산행을 통해 관악산의 진면목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왜 산에 올라가는 것일까? 내가 살고 있는 모습 을 산 위에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힌반 바라보고 싶다면 등산만한 것이 없다. 또한 등산은 그 자체로서 치유의 행위이다. 산에 오를 때 흘리는 땀방울들이 우리의 몸을 정화시켜준다. 등산을 통해 우리는 인간이 자연과 하나임을 알게 된다. 산을 오를 때마다 인간은 자연의 지배자가 아닌 자연의 일부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그것은 논리나 이치로 알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산에 오름으로써 몸으로써 체득하는 지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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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9월 18일 토요일

국립중앙박물관 관람

아침 7시 평소보다 30분 늦게 일어나 세수를 하고 집을 나섰다. 토요일 아침은 늘 그렇듯이 집앞의 편의점에서 삼각김밥과 우유로 해결하였다. 삼각김밥 구입시 추가증정 이벤트가 있어서 덕분에 콜라를 덤으로 마셨다. 잠실에서 2호선을 타고 인천으로 가는 도중 어디 갈 곳이 없을까 하고 고민하던 중 국립중앙박물관을 가보기로 결정했다. 사당에서 4호선으로 갈아 타고 이촌역에서 내려 국립 중앙박물관으로 향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역사박물관으로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는 곳이다. 상설 전시관은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박물관은 9시에 개장하는데, 8시 40분경에 도착해서 입장시간까지 다소 기다려야 했다. 기다리는 도중에 박물관 앞에서 인증 샷. 토요일이라 학생들의 단체관람이 많았다. 그러나, 학생들을 제외하면 박물관을 찾는 일반인들의 수는 많은 편이 아니었다. 

 


오늘은 선사시대관에서 상당히 많은 시간을 보냈다. 과연 인간의 역사는 언제부터인가. 구석기 시대는 지금으로부터 250만년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250만년전에 출현한 오스트랄로피테쿠스라는 남방원인이 인류 역사의 시초라고 한다. 하지만 진정한 인류의 역사는 직립 보행을 한 호모에렉투스가 등장한 100만년전이 아닐까? 두발로 서게 되어 자유로운 손으로 비로소 인간은 도구를 만들게 되었기 때문이다. 구석기 시대의 유물들은 저게 과연 유물일까 싶을 정도로 자연상태의 돌과 크게 구분이 되지 않았다. 자연상태의 돌과 구분해내는 역사 전문가들의 안목이 놀라울 따름이다. 신석기관에 들어서야 비로소 유물다운 유물들을 볼 수 있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우리나라의 유물만 전시된 것은 아니다. 인도와 중국 일본과 동남아시아 국가의 유물들도 전시되어 있다. 간다라 시대 인도의 불상도 볼 수 있다. 박물관은 총 3층으로 되어 있는데 1층은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역사적인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2층은 서화나 기증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고, 3층에는 다른 나라의 유물과 불상 그리고 자기가 전시되어 있다. 

3층으로 된 박물관을 다 구경하려면 족히 하루는 잡아야 할 것 같다. 곳곳에서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데리고 다니며 유물들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해 주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가끔씩 외국인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꼬불꼬불한 전시관을 걸어다니는 것은 상당히 힘든 일이다. 그래서 곳곳에 쉴수 있는 휴게실이 많이 있었다. 

오늘 관람한 유물중에서 내가 선정한 최고의 유물은 바로 조선 백자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은은한 아름다움이 매력이다. 조선 전기의 작품이라는 저 백자는 궁중에서 의례용으로 사용한 것으로 최고의 도공들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한다. 고결한 선비의 정신과 무심한 선(禪)의 미가 융합된듯한 저 은은한 예술미는 어느 유물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평범함의 미학이라고 할까? 저것이 바로 진정한 한국의 미가 아닐까? 백자 항아리 옆에 최순우 시인의 시가 있어서 그대로 옮겨 본다.

폭 넓은 흰 빛의 세계와
형언하기 힘든 부정형의
원이 그려 주는 무심한 아름다움을
모르고서 한국미의 본바탕을
체득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백자 항아리들에 표현된 원의 어진 맛은
그 흰 바탕색과 아울러 너무나 욕심이 없고
너무나 순정적이어서 마치 인간이 지닌
가식 없는 어진 마음의 본바탕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최순우 '백자 달항아리'중에서


3시간동안 박물관을 둘러 보았다. 하지만 많은 전시관을 주마간산식으로 둘러 보아서 제대로 다 구경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짧은 시간의 박물관 관람을 통해서 얻을 수 있었던 소득은 과거와의 무언의 소통이 아니었을까? 과거에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사람들간에 권력다툼과 전쟁이 있었다. 반면에 높은 이상을 가지고 고결하게 살아간 사람들도 있었다. 전쟁과 평화 탐욕과 고결한 이상 그 모든 흔적들을 박물관의 유물들은 말없이 들려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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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9월 12일 일요일

이태원 이슬람 사원 탐방

주중에는 잠실에서 출퇴근을 하고 주말은 인천에서 보내는 관계로 일요일 오후에는 인천에서 서울로 이동 한다. 그런데, 약 2시간의 이동 시간을 지하철이나 버스안에서 보내기는 왠지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서울의 가볼 만한 곳을 들르기로 했다. 오늘은 이태원의 이슬람 사원을 찾아갔다. 이태원역에서 내려서 약 300m 걸어가면 이슬람 사원을 볼 수 있다.  인천에서 갈 때는 이태원역이 6호선이라 신길역에서 5호선으로 갈아탄 뒤에 다시 공덕역에서 6호선으로 두번 갈아 타야 한다. 이태원을 자주 가보지 않았는데, 역시 길거리에 외국인들이 많이 있었다. 





이태원역 출구에서 나와서 오른쪽 길로 들어와서 다시 왼쪽길로 들어가면 이슬람 사원의 첨탑이 보인다. 거리는 서울 중심가치고는 상당히 낙후되어 있다.





이슬람 사원은 아주 조용하고 경건했다. 예배당 안을 구경하고 싶어서 계단을 올라갔다. 신발을 벗고 사원안으로 들어가 보았는데, 사람들은 많지 않았고, 기도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휴식을 취하고 있는 듯 했다. 이슬람 사원이라 엄격하고 근엄할 것 같은 선입관이 있는데 사원 내부를 본 순간 절의 법당처럼 부담없이 출입할 수 있는 공간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모르고 양말을 신고 들어갔는데, 다 양말을 벗고 있는 모습이었다. 인도 여행을 갔을 때 자이나교 사원 안에서 양말을 벗었던 기억이 나는데, 이슬람교도 양말을 벗어야만 하는구나. 예배당은 남자와 여자가 분리되어 있다.
사원에서 바라본 한남동의 모습. 아침까지 비가 내렸는데, 아침 8시경에 비가 그쳤고 푸른 하늘에 하얀 뭉게구름이 아름답게 드리워져 있다. 이제 날씨가 제법 선선해져서 한낮에 거리를 돌아다녀도 큰 부담이 없다. 



한 무리의 학생들이 견학을 온건지 사원 앞에서 사진들을 찍고 난리다. 그런데, 여학생들이 짧은 바지 차림으로 사원에 들어왔는데, 이슬람사원에서는 여자가 다리를 드러내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그래서 관리실에서는 짧은 치마나 바지를 입고 온 여성들에게 겉치마를 빌려주고 있다. 




무슬림 거리답게 이슬람식 간판들이 많았다. 이슬람식 간판을 내건 가게에서는 대부분 무슬림들이 장사를 하고 있었다. 'salam'은 평화라는 뜻으로 무슬림들의 인사말인데, 'salam'이라는 간판을 건 가게들이 많았다. 일요일이라서 그런지 이슬람 사원 거리는 한적했고 가게나 식당들도 닫혀 있는 경우가 많았다.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무슬림들도 평화롭고 여유있어 보였다. 



내려오는 길에 터키 젊은이가 운영하는 점포에서 케밥을 하나 사 먹었다. 케밥은 닭고기에 토마토와 양파를 얹고 밀가루로 만든 슬라이스를 둘둘 말아서 먹는데, 닭고기의 양념이 자극적이어서 그런지 먹고 나서 속이 약간 더부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