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9월 25일 토요일

관악산 트레킹


6일간의 추석 연휴중에 첫날은 폭우로 집에서 발이 묶였고, 둘째날과 셋째날은 형님댁에서 차례 지내고 형제들과 함께 식사를 하였다. 4일째는 그냥 집에서 쉬려고 했으나, 맑은 날씨가 나를 유혹했다. 원래 이번 추석은 임파선에 염증도 생기고 감기 증상이 있어서 집에서 푹 쉬려고 했다. 그러나 6일동안 집에만 있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그래서 관악산 산행을 하기로 결심했다. 관악산은 서울근교의 산 중에서 가장 많이 올라간 산이다. 그러나, 이번 관악산행은 지금까지 서울 근교 산행 중에서 가장 힘들었었다. 그 원인은 단순한 착오에 있었다.
 아침 9시에 집을 나와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2호선 서울대 입구까지 지하철을 타고 간 후 지선버스를 타고 서울대 입구에서 내렸다. 오늘 산행을 힘들게 한 착오는 바로 삼성산과 관악산이 하나의 산이라고 생각한 데 있었다. 관악산은 30년 가까이 올라간 산인데, 왜 그 사실을 몰랐을까? 서울대 입구에서 올라가는 코스는 관악산 주봉인 연주대로 가는 코스가 아니라 삼성산으로 올라가는 코스였던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삼성산이 관악산의 여러 봉우리중 하나고 아무곳으로 올라가도 주봉으로 연결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삼성산과 관악산은 계곡을 사이에 두고 먼거리에 봉우리가 솟아 있는 다른 산이다. 서울대에서 시작한 코스에서는 푯말을 아무리 찾아봐도 연주대 정상으로 가는 코스가 없다. 더구나 제1야영장쪽 길이 연주대와 가까울 것으로 알고 그길을 택했는데, 그곳은 연주대와 가장 먼 곳이었다.


제1야영장에서 일단 삼막사로 가기로 했다. 여기서부터 관악산 능선 트레킹이 시작된다. 제1야영장에서 삼막사로 가려면 고개를 몇개 넘어가야 한다. 삼막사는 산정상에 위치한 절로 등산객들이 많이 찾는 절이다. 주말에는 등산객들에게 점심 공양까지 제공해서 인기가 많은 절이다. 오늘은 평일이라 점심공양이 없었다. 


이 절의 법당 중에서 가장 특이한 곳은 육관음전으로 6개의 관음보살상이 모셔져 있다. 왠만한 절의 관음상은 보통 1개가 모셔져 있는데, 특이하게도 6개의 관음상이 있다. 각각의 관음상의 모양이 다르다. 천수관음도 있고, 물병을 들고 있는 전통적인 관음상도 있고, 악귀의 모습을 한 관음상도 있다. 이는 관음보살이 방편에 따라 여러 모습으로 나투어서 중생들을 교화함을 나타내고 있다. 나는 이 육관음전의 관음상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삼막사를 찾을 때면 육관음전에서 기도를 한다. 오늘은 백팔배를 했다. 절은 일단 산속 깊숙이 있을 수록 기도 효험이 좋다. 힘들게 올라와야 기도의 효과가 크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이미 산을 올라오는 고행의 과정을 통해 자신을 비우는 경험을 이미 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백팔배를 마치고 법당 옆에 있는 약수를 먹었는데 감로수처럼 달았다.

 삼막사는 산신각과 칠성각이 있다. 산신각의 신령은 바위에 암각화로 그려져 있다. 산신각에서 계단길을 따라가면 칠성각이 나온다. 칠성각은 바위에 새겨진 마애존불을 모신 사당이다. 칠성각 옆에는 남근석과 여근석이 있는데, 정말 바위의 모습이 남녀의 성기와 비슷하게 생겼다.
삼막사 참배를 마치고 다시 삼성산 정상으로 올라갔다. 깊은 계곡을 사이에 두고 저 멀리 연주대가 보였다. 하지만 계곡이 워낙 깊은 데다 족히 수십고개는 넘어야 될 것 같았다. 삼막사에 온 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다. 관악산의 주봉은 엄연히 연주대이고 오늘 산행도 연주대를 올라가려고 했던 것이다. 처음부터 연주대로 왔었다면 삼막사는 가지 않았을 것이다. 무너미 고개로 내려가서 다시 연주대로 향했다. 

 연주대로 가기 위해 내려가는 길이 녹록치 않았다. 여기서부터 고행의 시작이었다. 가파른 바위길의 연속인데다 목이 점점 말라왔다. 그리고 무엇보다 배가 고팠고 구불구불한 능선길과 좋지 못한 산길을 계속 걷다보니 점점 힘이 들었다. 고개를 다 내려와서 다시 오르막길로 올라가려고 하니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사람들도 많이 없었고 중간중간에 나오는 갈래길들은 지친 등산객을 혼란스럽게 했다. 걷다 쉬다 하면서 지친 몸을 이끌고 간신히 고개 정상까지 올라왔다. 아직 연주대는 저 멀리 떨어져 있었다. 목도 마르고 지쳐서 도저히 연주대까지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먹을거라고는 냉장고에서 꺼내온 사과 1개가 고작이었다. 나는 그것을 씻지도 않은 채 그대로 먹었다. 바위 능선의 한가운데에서 달리 씻을 곳도 없었다. 그러나, 사과 한개의 힘은 컸다. 갈증이 해소되었을 뿐아니라 약간의 요기도 되는지라 다시 힘을 내어 걸었다. 등산 고수들은 힘든 산행을 할 때 쵸콜릿을 꼭 챙긴다. 쵸콜릿 생각이 간절했다. 쵸컬릿은 이럴 때 먹는 거로구나. 쵸코렛이 있었다면 좀 더 수월하게 능선을 탔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다음부터는 쵸코렛과 함께 소금을 약간 준비해 가야 겠다. 갈증 해소에는 소금이 최고라고 한다.



바위고개를 몇구비 넘어 간신히 송전탐까지 왔다. 저 밑에 연주암이 보였다. 일단 연주암까지만 가면 연주대까지는 그다지 어렵지 않게 갈 수 있다. 연주암에서 연주대까지는 돌계단 길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바위고개를 넘거나 할 필요가 없다. 절벽위에 붙어 있는 연주대의 그림같은 모습을 배경으로 사진을 한장 찍었다. 

드디어 연주대 정상. 고진감래라고 했던가. 과천에서 올라왔을 때와는 사뭇 기분이 달랐다. 삼막사에서 연주대까지 관악산의 주능선을 타고 제대로된 트레킹을 한 느낌이었다. 중간중간에 쉬면서 본 관악산의 비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연주대 정상에서 아이스케잌을 파는 아저씨를 만났다. 천원짜리 아이스케잌을 사먹으며 그 아저씨와 몇마디 나누었다. 삼막사에서 연주대로 넘어오느라고 힘들었다고 말하자 아저씨는 관악산을 제대로 구경하려면 한달 정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산행 코스도 많고 볼 것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무슨무슨 바위며 계곡 암자들을 다 구경하려면 그정도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리고 관악산을 하루에 다 보기 위해서는 9시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오늘 나는 알았다. 관악산은 매우 넓고 큰 산이며 볼 것이 매우 많다는 것을. 지금까지 내가 보아 왔던 것은 관악산의 전부가 아니라 일부분이었다. 물론 주능선을 타고 오기는 했지만 관악산을 다 구경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아저씨의 말씀처럼 곳곳에 숨어있는 기암괴석과 약수터 절과 암자들을 다 보려면 한달은 걸릴 것이다. 
연주대는 볼 때마다 신비롭게 느껴졌다. 예전에는 연주대에서 삼백배도 한 적이 있었는데, 오늘 가보니 암자 밖에 좌복을 치워서 절을 할 수 없었다. 그저 난간에 기대어 관악산의 신비로운 경치를 바라보았다. 연주대 구경을 마치고 연주대 정상에서 파는 막걸리를 한잔 사 먹었다. 갈증때문인지 막걸리가 달고 맛있었다. 연주대에는 기상관측대가 있다. 관악산 정상에 축구공 모양의 건물이 보이는데 그것이 바로 기상관측대다. 최근에 등산객들을 위해서 오후 4시까지 관측대 홍보실을 개방하는데, 잠시 들어가서 구경을 했다. 내려오는 길에 연주암의 관음전을 참배한 후 과천역으로 향하는 하행길로 내려왔다. 추석전날 비가 많이 와서인지 계곡에는 물흐르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관악산은 산과 계곡 기암괴석 그리고 사찰이 조화를 이룬 서울의 명산이다.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바위고개는 마치 동양화에 나오는 산의 모습과 비슷해서 전형적인 한국의 산이라고 할 수 있다. 소나무가 많아서 더욱더 한국적인 산임을 느끼게 해 준다. 삼성산과 관악산이 하나의 산이라는 작은 착각이 바위고개 트레킹을 하게 만들었고, 결국 힘든 산행을 통해 관악산의 진면목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왜 산에 올라가는 것일까? 내가 살고 있는 모습 을 산 위에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힌반 바라보고 싶다면 등산만한 것이 없다. 또한 등산은 그 자체로서 치유의 행위이다. 산에 오를 때 흘리는 땀방울들이 우리의 몸을 정화시켜준다. 등산을 통해 우리는 인간이 자연과 하나임을 알게 된다. 산을 오를 때마다 인간은 자연의 지배자가 아닌 자연의 일부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그것은 논리나 이치로 알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산에 오름으로써 몸으로써 체득하는 지혜일 것이다.


피카사 웹앨범에서 전체 사진 감상하기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