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27일 금요일

동유럽 여행-브라티슬라바

아침 식사 후 민박집을 나섰다. 프라하 중앙역에서 9시 40분 출발 브라티슬라바행 열차를 탈 예정이다. 직행열차는 아니고 부다페스트로 가는 열차로 중간에 브라티슬라바를 경유한다. 이번 동유럽 여행지로 브라티슬라바를 넣은 이유는... 글쎄 딱히 이유가 있다기보다는 잘 알려지지 않은 동유럽의 도시를 한번 체험해보고 싶어서였다. 프라하는 워낙 유명한 도시고 볼 것도 많지만 상당히 번잡하다. 반면 브라티슬라바는 동유럽의 도시답게 고풍스러우면서도 상대적으로 덜 복잡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래서 브라티슬라바를 여행지에 포함시켰다. 브라티슬라바는 슬로바키아의 수도다. 원래 슬로바키아는 구소련 시절 체코슬로바키아로 체코와 하나의 나라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유화 이후에 급진적인 개혁을 선택한 체코와 결별하고 독립국가를 만든다. 슬로바키아는 상대적으로 덜 급진적인 개혁을 원했던 것이다. 아뭏든 프라하가 오늘날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변한 모습을 보면 슬로바키아가 오히려 현명한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기차가 브라티슬라바역에 정차했다. 선반위에 올려둔 배낭을 내려 어깨에 짊어지고 플랫폼을 내려와 역을 빠져나왔다. 그런데, 중앙역 치고는 브라티슬라바 역은 너무 초라했다. 마치 우리나라 지방도시의 오래된 기차역을 보는 것 같았다. 점심시간이 지난 시간이라 핫도그를 하나 사먹을까 생각하다가, 우선 내가 묵을 호텔부터 찾기로 했다. 호텔 프런트에서 체크인하고 방을 배정받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방에 짐을 풀었다. 호스텔과 민박에서만 숙박을 하다 처음으로 호텔을 이용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넓은 침대에 깨끗하게 세탁이 되어 있는 시트가 깔려있고, 방안의 인테리어도 깔금하다.

호텔 문을 나섰다. 오후 3시 가까이 되었는데도 아직 점심을 먹지 않았다. 그래서 호텔 주변의 샌드위치 가판대로 가보니 문을 닫았다. 너무 더운데다 거리에 사람들도 별로 없기 때문 인 것 같다. 할 수 없이 시내투어를 하다가 패스트푸드점을 발견하면 거기서 먹기로 했다. 점심이나 저녁은 햄버거나 샌드위치, 케밥으로 떼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양이 많기 때문에 오랜 시간을 버틸 수 있다. 호텔 앞에는 자동차가 다니는 대로가 있고 그 길을 따라 조금 내려가니 큰 성당이 하나 보인다. 바로 성 마틴 성당으로 브라티슬라바를 상징하는 성당이다. 유럽의 다른 성당과는 달리 첨탑이 하나로 정면에서 보면 마치 전투기가 수직으로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브라티슬라바의 거리에서는 그래피티를 아주 많이 볼 수 있다. 지하도라든가, 고가도로의 가장자리 같은 사각지대에서 주로 많이 볼 수 있는데 상당한 수준이다. 이 정도 수준이면  거의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브라티슬라바의 그래피티는 유럽 어느 도시의 것보다 훌륭하다.

대로를 따라 더 내려가면 도나우강이 보이고 대로는 곧바로 다리와 연결된다. 다리는 서울의 올림픽 대교와 비슷하게 다리 중간에 타워가 있는 현수교로 타워 위에는 비행 접시처럼 생긴 전망대가 있다. 그래서 별명이 UFO 다리다. 일단 지하도로 대로를 건너 구시가지 쪽으로 걸어갔다.

추밀(Cumil)이라는 재미있는 동상이 바닥에서 능글 맞게 웃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하수구에서 얼굴과 어깨만 내밀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지켜본다는 컨셉으로 만든 동상으로 어느 새  브라티슬라바의 명물이 되어 버렸다. 바로 옆에 있는 피자전문점에서 피자한조각과 콜라로 간단히 점심을 떼웠다. 다행히 유로화가 통용되고 있었고 음식값도 별로 비싸지 않았다. 길거리는 지나가는 행인들도 별로 보이지 않고 관광객들도 드물어서 한산했다. 하지만 사람이 많은 것보다 오히려 돌아다니며 구경하기에 더 좋다.

구시가지 광장에는 분수대와 동상이 있다. 광장중앙에서는 야외공연이 있을 예정인지 무대와 의자가 놓여 있다. 광장 옆에는 왕궁이 있는데, 폴란드나 체코의 왕궁보다 소박하면서도 앤티크한 멋이 풍겨진다. 구시가지 거리를 둘러본 후 국립박물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내일은 월요일이라 대부분의 박물관이나 갤러리가 휴관이다. 따라서, 박물관이나 갤러리는 오늘 보아야 한다. 박물관으로 가는 도중에 보이는 명소들도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잠시 멈춰 서서 감상했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푸른 교회다. 건물이 푸른색이어서 붙여진 이름인데   하늘색의 마치 동화에 나오는 예쁜 성같이 생긴 교회였다.

도나우 강변에 위치한 국립박물관에 도착하니 어느덧 5시가 되었다. 관람시간은 1시간정도 남았지만 충분히 여유있게 둘러 볼 수 있는 시간이다. 티켓을 구입해서 박물관 안으로 들어갔다. 박물관에는 3개의 전시관이 있었는데 1층 전시관에서는 슬로바키아의 옛 모습을 담은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다. 예전 흑백 사진들을 보니 슬로바키아도 예전에는 정말 못 살았던 것 같다. 마치 우리나라의 6,70년대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박물관에 다른 관람객은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다른 전시관으로 가보니 슬로바키아 사진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었다. 사진전을 둘러보고 나서 2층으로 올라가 회화를 구경했다.  전시된 작품들은 주로 20세기의 사실주의 작품들로 주로 슬로바키아의 도시와 농촌 풍경을 그린 것들이었다.

박물관을 나오니 시간이 6시 가까이 되었다. 가볍게 도나우 강변을 산책하는데 물이 떨어졌다. 그래서 강변에 있는 작은 레스토랑에 들어가서 물을 샀다. 날이 더워서 300ml 생수를 하루에 2병 이상은 마시는 것 같다. 그런데, 주의할 점은 유럽의 생수는 탄산이 들어간 것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물을 살 때 반드시 No Gas Water라고 말해야 탄산이 없는 물을 준다. 그냥 Water라고 말하면 탄산이 들어간 Gas Water를 줄 수도 있다. Gas Water는 단맛은 없지만 사이다 처럼 톡 쏘기 때문에 마시기가 무척 거북하다. 물을 산 후 다시 시내로 가기 위해 대로를 건너자 슬로바키아 국립 갤러리가 보였다. 입구에서 사람들이 많이 나오는 것을 보아 꽤 괜챦은 작품전이 열리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 6시가 다 되어 들어갈 수 없었다. 썰렁한 국립박물관 보다 차라리 갤러리를 보았어야 했다는 후회가 들었다. 대로를 따라 걸어 다시 구시가지 광장쪽으로 왔다.

구시가지에는 추밀 외에도 재미있는 동상들이 더 있다. 건물뒤에 숨어 몰래 사진을 찍는 모습의 파파라치 동상도 있고, 나폴레옹모자를 쓰고 벤치에 팔을 괴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모습의 동상도 있다. 그리고, 보초를 서고 있는 초병의 동상도 볼 수 있다. 브라티슬라바는 프라하만큼이나 엉뚱하고 재미있는 곳이다. 구시가지 광장에서 조금 더 가면 좁은 골목이 보이고 골목 끝에 미하엘문이 보인다. 바로크 양식의 탑처럼 생긴 문인데, 프라하의 화약탑처럼 예전에는 망루의 역할과 함께 출입을 통제하던 문이었던 것 같다.

미하엘문을 지나 대로로 나오면 넓은 광장과 함께 교회가 보인다.  일요일이라서 저녁 예배가 진행중이었다. 찬송가를 부르는 사제의 목소리가 하도 낭랑해서 안에 잠깐 들어가 보았다. 교회 안의 사람들은 모두 진지하게 예배를 보고 있었다. 자칫 예배를 방해할 것 같아서 얼마 앉아 있지 못하고 나왔다. 저녁은 케밥과 콜라를 사서 광장 벤치에 앉아서 먹었다. 해가 뉘엿뉘엿 기우는 시간인데 저 멀리 브라티슬라바 성이 보인다. 오늘은 시간이 별로 없으니 성은 내일 보기로 했다.

다시 구시가지 쪽으로 와보니 광장에서는 어느덧 축제같은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무대위에서는 전통복장의 여가수들과 밴드가 노래를 연주하고 있었다. 아랍이나 터키 노래 같기도 하고 슬라브 전통민요같기도 한 약간 동양적인 정서가 베어있는 노래였다. 한 할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나 어깨춤을 추고 있었다. 밴드가 또 다른 노래를 연주하자 이번에는 흰색 셔츠와 청바지 차림의 50대로 보이는 두 아저씨가 무대 앞으로 나오더니 서로 어깨동무를 하며 박자에 맞춰 춤을 추는데, 슬로바키아 전통 무용인 것 같았다. 동작이 절도가 있으면서도 경쾌하고 재미있는 춤이었다. 무대앞에는 여러명이 나와 두 아저씨의 춤을 어설프게 흉내 내고 있었다. 구경하는 사람들은 박자에 맞춰 박수를 치며 흥을 돋 구고 있다.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운 동네 축제의 모습이었다. 도심 한가운데의 광장에서 남녀노소 모두가 한 데 어울려 즐길수 있는 축제가 열린다는 사실이 한편으로는 부러웠다. 슬로바키아 사람들은 소박하면서도 전통을 존중하고 함께 어울려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다.

훈훈한 마을 축제를 뒤로하고 UFO 다리가 있는 강변쪽으로 왔다. UFO다리는 차도 아래로 인도가 있는데 다리를 건너 가 보기로 했다. 다리를 걸을 때 차가 지날 때마다 덜컹하는 진동이 느껴졌다. 다리를 건너 강건너편의 강변으로 내려오니 노천 카페가 보이고 그 아래로 작은 산책로가 강을 따라 이어져 있었다. 산책로에서 강 건너편으로 브라티슬라바성이 보였다. 나는 태어나서 저렇게 예쁜 성을 본 적이 없다. 강 건너에서 바라본 브라티슬라바 성과 그 주의위 풍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마침 접이식 의자가 놓여 있길때 거기에 앉아서 브라티슬라바성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웨이트리스가 오더니 맥주를 주문하겠냐고 묻는다. 접이식 의자는 노천 카페의 의자였던 것이다. 그래서 카페로 가서 하이네켄 맥주 500ml 1컵을 사서 접이식 의자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경치를 감상하였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성에 불이 들어오자 점점 더 멋진 풍경이 되었다. 하루의 더위를 날려주는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브라티슬라바성의 멋진 야경을 감상하니 더 이상 부러울 게 없었다. 맥주를 한잔 더 시켜 마시고 흠뻑 취할 정도로 야경을 감상한 후 밤 9시 30분이 되어서야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다리를 건너 호텔로 돌아갔다. 호텔로 가는 도중 본 성마틴 성당도 야경으로 보니 색다른 매력이 있었다.

아침 7시 30분쯤 식사를 하기 위해 호텔 레스토랑으로 내려갔다. 호텔의 아침 식사는 부페식이지만 호스텔보다 훨씬 푸짐하고, 요리도 다양하다. 나는 주로 빵, 버터,치즈, 고기 슬라이스, 햄과 계란 후라이를 한 접시에 담아와 우유와 함께 먹은 후 후식으로 과일과 요구르트 그리고 커피를 마신다. 수박과 멜론이 먹음직스러워 두,세쪽씩 접시에 담아서 먹었다. 유럽은 농산물이 무척 풍부해서 과일이나 식료품 가격이 우리나라에 비해 싼 편이다.

아침을 먹고 8시쯤 호텔을 나섰다. 호텔의 체크아웃 시간은 12시다. 오전에 브라타슬라바성을  구경하고 11시쯤 체크 아웃해서 빈행 열차를 탈 예정이다. 성은 호텔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아침 산책하는 기분으로 언덕을 걸어 올라갔다. 브라티슬라바성은 프라하성처럼 웅장하지는 않지만 기품이 있고 수려하다. 그리고 네개의 첨탑이 있는 흰색의 탑은 아주 독특하다. 베토벤은 브라티슬라바에서 월광 소나타를 작곡했다고 한다. 월광이라는 이름은 후대의 평론가가 호수에 비친 달빛을 연상시킨다하여 붙인 이름이다. 사실 주변에는 달빛을 감상할 만한 고요한 호수도 없다. 나는 베토벤이 브라티슬라바성을 보고 월광소나타를 작곡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고요하면서도 아름답고 그러면서도 힘차고 당당한 모습이 마치 월광소나타의 1,2,3악장을 그대로 닮은 것 같다.

성안으로 들어가보니 정원은 공사 중이었다. 흰색탑은 가운데에 광장이 있는 사각형의 건물이다. 그리고 탑 앞의 광장에는 기마상이 우뚝 서 있다. 성의 전망대에서는 도나우강과 UFO다리가 보이고 강건너 시가지의 모습도 보인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브라티슬라바는 녹지와 숲이 풍부하다. 강건너에 있는 신시가지는 구시가지와는 또 다른 모습으로, 현대식 건물들과 고층빌딩, 그리고 아파트들도 보인다. 브라티슬라바는 전통만을 고집하는 도시는 아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함께 공존하는 도시다. 과거의 구시가지, 현재의 신시가지 그리고 그 둘을 하나로 연결시켜주는 독특한 모양의  UFO다리가 브라티슬라바의 미래를 상징하는 것 같다. 브라티슬라바는 보면 볼수록 멋진 도시다.

성안에는 중국인 단체관광객들이 아침일찍 구경을 왔고 서양인 관광객들도 드문드문 보일 뿐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성벽 둘레는 산책하기에 아주 좋다. 나무와 잔디 조각상과 벤치가 있어서 한가하게 산책을 즐길 수 있는 공원 같은 분위기였다. 또한 산책로에서는 고풍스러우면서도 소박한 구시가지를 내려다 볼 수 있다. 천천히 걸으면서 주변 경치도 감상하고 벤치에 앉아서 오래간만에 느긋한 휴식의 시간을 가졌다. 산책로에는 개를 끌로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과 벤치에 앉아서 쉬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브라티슬라바는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분명 매력적인 곳이다. 프라하처럼 지나친 상업주의를 추구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인간미가 넘치는 곳이다. 이곳은 돈보다 더 가치 있는 인간미와 여유가 흐르고 있다.

▶브라티슬라바 여행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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