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24일 화요일

동유럽 여행-프라하(1)

아침 8시 프라하 중앙역에 도착하자마자 환전소에서 환전을 했다. 라커를 이용하든 일일교통권을 구매하든 체코 크로네화가 필요했기 때문에 80유로 정도를 환전했다. 배가 고파서 버거킹에서 햄버거 세트로 일단 아침을 해결한 후, 1층 라커룸에 배낭을 보관했다. 민박이든 호스텔이든 체크인 시간은 보통 오후 2시 이후이므로 배낭을 라커에 보관하고 시내투어를 한 후 숙소로 갈 계획이었다. 교통권은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1일권으로 1매  구입했다. 단기간 투어인 경우 하루에 여러곳을 돌아 보게 되므로 일회권보다는 1일권을 끊는 것이 돈이나 시간을 절약하는 길이다. 어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피곤한 상태이므로 수퍼마켓에서 레드불을 하나 사서 마셨다. 레드불은 여행중에 갑자기 피로해지거나 몸살기운이 났을 때  마시면 효과적이다. 지난 서유럽 여행때 로마시내 투어를 하다가 갑자기 기운이 떨어지면서 감기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점심으로 피자와 레드불을 먹었는데, 다시 힘이 솟기 시작했다. 그 때 나는 레드불의 효과를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 이후로 나는 여행시 체력이 저하될 때를 대비해 항상 레드불을 지니고 다녔다. 지난 서유럽 여행때처럼 크게 무리하지 않기로 했으므로 레드불을 가방에 넣어서 다니지는 않겠지만, 야간열차를 이용한 후이므로 과감히 한 캔 들이켰다.

지하철을 타고 바츨라프 광장이 있는 무제움 역으로 갔다. 사실 중앙역과 바츨라프 광장은 한 정거장 거리기 때문에 그냥 걸어가도 된다. 폴란드와 달리 프라하는 아침부터 날씨가 더웠다. 바츨라프 광장으로 나오니 드디어 프라하에 온 기분이 난다. 광장을 따라 내려와 우측길로 접어들었다. 처음으로 찾아간 곳은 화약탑과 시민회관. 두 곳은 프라하의 명소임에도 지난 여행 때 보지 못했다. 화약탑은 카를교의 교탑과 비슷하다. 탑 하단부에는 큰 문이 있어서 망루 역할과 동시에 출입을 통제하던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프라하의 중세 건축물들은 언제 보아도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폴란드에서는 발견하기 힘든 독창성이 프라하 구시가지 곳곳에 넘쳐 흐른다. 화약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시민회관이 있다. 중세 건물들이 즐비한 프라하에서 그냥 무심히 지나칠 수도 있는 건물이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다른 건물들과는 디자인이 다르다. 이 건물은 20세기 초 아르누보 예술가인 무하가 디자인한 것으로  아르누보 건축의 걸작으로 꼽힌다. 지붕은 둥근 아치형이고 창문도 큼직하다. 그리고, 베이지색의 색상이 매우 산뜻해 보인다. 중세도시 프라하는 고딕이나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구시가지에서는 로마네스크 양식부터 아르누보까지 약 1000년에 걸친 건축의 역사를 모두 볼 수 있다. 프라하는 전통을 존중하고 잘 보존하지만 또한 전통에만 집착하지도 않는다. 물 흐르듯이새롭고 다양한 것들을 포용하는 열린 마음이 프라하가 갖고 있는 또하나의 매력이다. 프라하에는 독창성과 자유분방함 그리고 열린마음이 느껴진다.

구시가지 광장과 카를교를 보기위해 화약탑 문을 지나서 계속 걸어갔다. 프라하의 모습을 가장 함축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곳이 바로 구시가지 광장이다. 우선 가이드북에 적혀있는 건물들을 꼼꼼히 찾아 보기로 했다. 그런데, 이곳도 유로2012 팬존이 설치되어 있는데, 후원사가 바로 현대자동차였다. 큼지막한 현대로고와 함께 얀후스 동상 바로 앞부터 틴성당 입구까지 팬존이 설치되어 있어서 구시가지 광장의 탁트인 전경을 볼 수 없었다. 실망감이 밀려왔다. 축구도 좋지만 이런 역사적인 장소까지 상업적으로 이용한다는 사실에 약간 화가 치밀기도 했다. 프라하도 이제 더이상 중세의 신비만을 간직하고 있는 있는 도시는 아니다. 거리 곳곳에는 외국기업들의 광고가 어지럽게 보이고, 가뜩이나 관광객들도 많은데 보행공간까지 노천카페가 점령해버려 인파에 밀려 걷는 것이 짜증날 정도로 상업주의가 판을 치고 있다. 상업주의로 변질된 구시가지 광장의 모습을 보면서 프라하를 다시 찾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

2개의 첨탑이 우뚝 솟은 전형적인 고딕양식의 틴성당도 건물 옆까지 다가가서 자세히 보았다. 틴성당은 붉은 벽돌로 지은 폴란드의 성당과는 달리 사암 벽돌로 지은 성당이다. 멀리서 보았을때는 몰랐는데, 가까이서 보니 크기와 높이에 압도되고 만다. 구시가지 광장 한 쪽에는 바로크 양식의 성미쿨라세 성당이 있는데 내부에까지 들어가 보았다. 서양의 성당은 내부가 화려하기 때문에 겉모습만 보는 것은 좀 아쉽다. 내부에는 벽화와 성화, 성상들이 화려하게 자리잡고 있고 고딕양식의 성당에는 스테인드 글래스까지 볼 수 있다. 그밖에 광장 주변에 아인슈타인이 찾아왔다는 카페에는 벽에 그의 얼굴상이 새겨져 있다. 건물모서리에 종모양의 조각이 보이는 익살스런 건물도 보이고 화려한 로코코 양식의 건물도 보인다. 구시가지 광장과 그 주변 거리는 매우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다. 좁은 골목마다 작은 광장마다 저마다 나름의 이야기가 있다. 그러고 보면 프라하는 스토리의 도시다. 천년의 역사가 있는 만큼 셀수 없이 많은 사연과 이야기가 거리마다 숨어 있다. 또한 거리에는 익살과 유머를 끊임없이 발견할 수 있는데, 이로 인해 거리를 걷는 것이 즐겁다. 프라하를 한마디로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여행자의 입장에서 굳이 평한다면 신비로우면서 즐거운 도시라고 말하고 싶다.

광장 한쪽에는 시계탑이 보인다. 시계탑은 구시가지 광장에서 가장 인기있는 볼거리다. 매시 정각마다 시계탑 아래에는 관광객들이 몰려드는데, 그 이유는 정각마다 시계에서 인형들의 퍼포먼스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한번도 퍼포먼스를 본 적이 없다. 오늘은 시계탑에 올라가서 구시가지를 조망해볼 생각이다. 시계탑은 엘리베이터와 계단 모두 이용이 가능하다. 티켓을 구입한 후 일단 나선형 계단으로 걸어서 올라갔는데 높이가 꽤 되었다. 시계탑 전망대에서 바라본 구시가지의 풍경은 생각보다 훨씬 멋지다. 위에서 내려다 본 틴성당의 모습은 올려다 보았을 때와는 또 다른 매력이 느껴지고, 붉은색의 지붕들이 모여있는 구시가지의 아기자기한 풍경도 아름답다. 지난 여행 때 페트르진 전망대에서 시가지를 내려다 보았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시계탑은 입장료가 아깝지 않은 꼭 한번 올라가볼 필요가 있는 곳이다.

구시가지 광장에서 블타바강을 바라보고 오른쪽으로 가면 유대인지구가 나온다. 지난번 여행때 가보지 않은 곳이라 한번 돌아 보고 싶었다. 크라쿠프의 카지미에슈만큼 낡지는 않았지만 프라하의 유대인 지구 요제포프 또한 프라하의 다른 거리에 비해 아주 검소하고 소박하다. 다양한 양식의 시나고그들이 있고 관광객들도 아주 많다. 하지만 카지미에슈에 비하면 그다지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유대인지구에서 블타바 강쪽으로 나와 왼편으로 걷다보면 체코필하모니의 근거지인 루돌피눔이 보이고 그곳에서 구시가지쪽으로 거리 하나를 마주보고 공예박물관이 있다. 더위도 피할겸 공예박물관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박물관에는 체코의 유리공예품들을 전시하는 기획전이 열리고 있었다. 이곳에서 체코인들의 손기술과 장인정신, 보헤미안의 예술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정교하고 화려한 그리고 예술적인 크리스탈 가공기술은 정말 대단해 보였다. 체코는 수공예산업과 정밀공업이 예로부터 발달했다고 한다. 그래서 구소련 시절 공산권에서 사용하는 권총 같은 정밀 제품들은 대부분 체코에서 생산했다고 한다. 그만큼 손기술이 뛰어난 민족인 것이다.

공예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오른쪽으로 좀더 걸어 카를교로 갔다. 카를교의 교탑이 우뚝 서있는 모습이 보이고 그 오른편으로는 카를 대제의 동상도 보인다. 정오가 가까이되자 날은 점점 더 더워지고 햇살은 뜨겁다. 그 때문인지 카를교 위의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카를교에서는 블타바강 건너편의 프라하성이 보인다. 오늘은 구시가지만 보고 프라하성은 내일 구경할 예정이다. 카를교위를 천천히 산책하면서 성상들을 구경하고 사진도 찍고 블타바 강변의 경치도 감상하였다. 카를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라고 하는데 역시 명불허전이다. 그런데 너무 덥다. 다리위에는 흥겹게 공연하는 악사들이 보이고 기념품과 그림을 파는 사람들은 파라솔을 하나씩 세워놓고 햇볕을 피하고 있었다. 다리를 건너자 좌측계단으로 내려가 캄파섬으로 갔다. 캄파섬은 작은 운하를 끼고 강변에 붙어있는 곳으로 섬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 곳이다. 캄파섬은 잔디와 나무가 많은 공원지역이다. 그곳에서는  잔디에 누워 망중한을 즐기는 사람들과 가족끼리 또는 연인들끼리 피크닉을 나온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캄파섬의 건물벽에는 그래피티도 많이 볼 수 있는데, 그다지 수준작들로는 보이지 않는다. 나무 그늘에 벤치가 있어 그곳에 앉아 햇살을 피하며 블타바 강의 경치를 바라보았다. 이곳은 구시가지와 같은 번잡함이 없어서 휴식을 취하기에는 괜챦은 곳이다. 캄파섬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카를교 쪽으로 갔다. 이번에는 반대로 구시가지 방향으로 걸었다.

카를교를 구경한 후 춤추는 건물을 보기 위해 구시가지 광장을 지나 무스텍역으로 내려갔다. 춤추는 건물은 가이드북에서 본 재미있는 건물로, 마치 한쌍의 남녀가 왈츠를 추는 것 같은 모습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프라하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일일이 표를 검사하지 않는다. 일일권의 경우 검표기에 개시 시간을 찍으면 24시간 이내에 트램, 버스,지하철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검표를 하지 않는다고해서 무임승차를 해 본 적은 없다. 검표는 하지 않지만 사복 경찰이 수시로 표검사를 하기 때문에 한 번 걸리면 운임의 수십배를 물어야 한다. 블타바 강변에 있는 춤추는 건물은 프라하의 전반적인 정서인 유머에 아주 잘 부합한다. 현대적인 감각에 엉뚱한 발상, 이런 건물은 프라하가 아니면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강쪽을 바라보니  한강 공원처럼 강 양옆에 제방이 있고 공터가 있었다. 그래서 계단을 통해 내려가서 다리 밑의 그늘로 햇빛을 피해 들어갔다. 강에서는 한무리의 백조떼가 이쪽을 향해 오고 있었다. 그런데 백조들은 사람을 겁내지 않는지, 내 쪽으로 점점 더 다가온다. 우아한 자태의 백조는 프라하에 잘 어울리는 새라는 생각이 든다. 백조 한마리가 내 앞에서 한참 머물다가 먹을 것을 주지 않아서인지 다시 저 멀리로 사라진다.

다시 구시가지 쪽으로 와서 이번에는 프라하 큐비즘 박물관을 찾았다. 큐비즘은 20세기 초 태동한 미술사조로 프라하에서 꽃을 피웠다고 한다. 큐비즘 박물관은 20세기 체코 큐비즘 예술가들의 작품을 한 곳에 모아 전시한 곳이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 3층에 걸친 전시실을 모두 둘러보았다. 큐비즘은 그림뿐만 아니라 조각이나 건축에까지 영향을 미쳤는데, 그러고 보니 프라하 거리의 건물들은 큐비즘의 영향을 받은 것들이 많다. 그러나, 박물관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사실 프라하는 도시 자체가 박물관이다. 건물 하나하나 제대로 음미한다면 사실 박물관을 구경하는 것보다 다 낳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대미술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한 번 들어가 볼 만한 곳이다.

첫째날 프라하 투어를 모두 마쳤다. 욕심을 내서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곳까지 구석구석 둘러보았다. 더운 날씨에 고생은 되었지만 그만큼 성취감도 컸다. 프라하에 대해서 더 많이 알게 되었고, 더 가깝게 다가간 느낌이었다. 중앙역으로 가서 라커에서 배낭을 찾은 후 약도를 보면서 프라하의 묵을 숙소를 찾아갔다. 프라하에서 묵을 숙소는 한인 민박집으로 바츨라프 광장에서 500m쯤 걸어가면 있다. 민박집의 침대는 호스텔과 달리 1층침대였고, 함께 묵을 룸메이트는 한명밖에는 없었다. 그곳의 사장님은 40대 중반의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를 쓰는 분으로 성격이 매우 쾌활해 보였다. 같은 방에 투숙하는 룸메이트 J군은 대학교 4학년생으로 취업을 앞두고 유럽여행중이라고 한다. 동유럽을 여행중인데, 여행코스가 나와  비슷했다. 샤워를 하고 일찍 잠을 청하려고 하는데, 9시가 넘었는데도 매우 더워 잠을 자기 어려울 것 같았다. 더욱이 창문을 열어놓아 도로에서 들리는 차소리가 아주 시끄러웠다. 그래서 호프집에서 맥주한잔 어떻겠냐고 룸메이트에게 제안했더니 오케이란다. J군과 호프집에서 맥주를 마신 후 자정이 가까운 시각에 민박집에 돌아왔다. 날씨는 약간 서늘해져서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룸에는 어느새 또 한명이 젊은이가 들어와 짐을 풀고 있었다. 이 친구는 K군으로 J군과 동갑인 취업 준비생이었다. 한국에서 일도 취직도 제대로 풀리지 않아 기분전환도 할 겸 유럽 여행을 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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