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 11일 목요일

서안(Xian 西安) 여행

9월 7~11일까지 4박 5일 일정으로 서안(시안 西安)을 여행하였다. 여행사 패키지로 간 이번 서안단체관광의 총 인원은 나를 포함하여 18명이었다. 서안에 도착하자 많은 비가 내렸다. 이 비는 여행일정이 끝나는 날까지 계속되었다. 사실 서안은 7,8,9월이 장마철이라고 한다. 서안의 셴양국제공항에서 도착하자 이번 서안여행을 인도해 줄 조선족 가이드가 우리일행을 마중나와 있었다.

첫날은 실크로드 시작점, 섬서역사박물관, 대안탑광장, 회민거리를 구경하였다. 서안의 옛 명칭은 장안(長安)으로 진나라 때부터 당나라때까지 약 천년간 중국의 수도였다. 또한 장안은 예로부터 서역과의 교역의 중심지였고 실크로드의 출발점이었다. 그래서 지금은 사라진 당나라 외성 서문이 있던 자리에 서역과의 교역을 상징하는 조형물을 설치하고 이곳을 실크로드의 시작점이라고 기념한 것이다.

섬서역사박물관은 한나라,당나라시대의 유물들을 중심으로 고대중국의 중심지였던 섬서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곳으로 역사의 도시 서안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필수 코스다.

대안탑은 당나라 시대에 지어진 탑이다. 대안탑은 사리를 보관하는 탑이 아니라 불교경전을 보관하는 서고 또는 도서관의 역할을 했던 탑이라고 한다. 때문에 대안탑은 생각했던 것보다 매우 웅장했다. 그러나, 대안탑 내부를 구경하려면 따로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시간 관계상 광장에서 구경할 수 밖에 없었다. 대안탑 주변에는 넓은 분수광장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분수 쇼가 벌어지고 있었다. 흥겨운 음악에 맞춰 마치 춤을 추는 듯한 분수 쇼를 많은 시민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회민거이슬람교를 믿는 회족(回族)들의 전통요리와 기념품들을 파는 일종의 먹자 골목이다. 서안에는 회족들이 많이 살고 있고 이슬람 사원도 많다. 지금은 비록 한족에 많이 동화되기는 하였지만 회족과 그들의 문화가 아직 보존되고 있다는 것은 이곳 장안이 예로부터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도시였음을 의미한다.

이튿날은 서안성벽과 비림(베이린 碑林)을 구경하였다. 서안성벽은 당나라때 만들어진 것이지만 현재 남아있는 성벽은 명나라 때 지은 것이다. 서안성벽은 높이와 폭에서 수원 화성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규모가 큰 성이다.성벽은 정방형으로 총 둘레는 14km다. 성벽 위에는 관람객들에게 자전거를 대여하고 전동차도 운행하고 있다. 서안성벽은 서안을 대표하는 건축물이다.
 


비림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중국의 역대 비석들을 모아 놓은 곳으로, 비석의 글자들을 통해 한자의 역사를 파악할 수 있는 곳이다. 특히 왕희지와 안진경등 역대 명필들의 글씨도 볼 수 있어서 중국 서법의 총집합소라고 불리어도 무방한 곳이다. 흥미로운 것은 비석의 글자들을 탁본을 떠서 관람객들에게 판매하고 있는 것인데 더 이상 탁본을 뜨기 어려운 비석들은 유리를 씌워 보존하고 있었다.

셋째날은 팔로군 기념관, 화청지, 진시황 지하궁전, 진시황 병마용, 진시황릉을 구경하였다. 서안은 1936년 서안사변이 일어났던 곳으로 그 사건을 계기로 국민당과 공산당의 2차 국공합작이 이루어지게 된다. 그 결과 모택동이 이끄는 공산군(홍군)은 장개석의 국민당군 제8로군으로 편입하게 된다. 따라서 팔로군 기념관은 항일전쟁 당시 홍군의 사령부가 있던 곳이다. 팔로군 기념관은 서안사변과 모택동과 홍군의 대장정에 관한 기록들을 주로 전시하고 있다.

화청지는 서안시내에서 버스로 약 40분정도 거리에 있는데 이곳은 당나라 황제와 궁녀, 궁인들의 목욕탕이 남아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양귀비가 목욕했다고 추측되는 목욕탕도 발굴 되었다. 당나라 황실의 목욕탕이 남아 있는 화청지는 현재 당나라 현종과 양귀비의 로맨틱한 사랑을 주재로 한 테마파크로 개발 되었고 이곳에서는 장한가무쇼라는 야외가무극이 공연되고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여행 일정 내내 비가 와서 장한가무쇼는 볼 수 없었다.

진시황 지하궁전은 실제 유적이 아니고 아직 발국되지 않는 진시황릉의 내부구조를 상상하여 만들어 놓은 것이다. 황릉의 내부구조를 가상하여 실제 왕릉처럼 지하에 만들어 놓은 모조 전시장이다. 진시황 병마용은 현재도 발굴작업이 진행중인 서안을 대표하는 유적지다. 2300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어 당시 사람과 똑같이 만든 흙인형들을 대면하고 있노라면 신비감과 벅찬 감동이 몰려온다. 병마용 인형에 관해 새롭게 안 사실은 인형들은 원래 색을 입힌 상태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천년동안 땅속에 있었기 때문에 발굴과 함께 급속히 색이 산화되어 색칠을 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형의 색을 보존하는 법을 개발할 때까지 발굴되지 않은 인형들은 아직 땅속에 보존하고 있다. 대부분의 병마용 인형들은 깨어진 상태로 발굴되었는데, 떨어진 부분들을 짜맞추어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그리고 깨지거나 부서진 인형들은 현재도 조각들을 짜맞추는 작업이 진행중에 있다. 총 3호갱까지 있는 병마용은 미완으로 남고 말았는데 그 이유는 진나라 말기 학정을 견디지 못한 농민들이 봉기하면서 병마용 공사가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병마용은 분명 고대인들의 놀라운 토기기술의 산물이지만 한편으로는 민중들에 대한 과도한 착취가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진시황릉은 야트막한 야산 모양을 하고 있는데 항공 적외선 촬영 결과 황릉내부에 거대한 석실이 있음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아직 거대한 황릉을 발굴할 기술이 개발되지 않아서 발굴작업은 보류되고 있다. 그러나, 언젠가는 황릉이 발굴되어 그 신비로운 내부구조와 내용물이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일정을 마치고 밤에 서안 시내 도보 투어에 나섰다. 서안시내 중심가에 있는 종루는 밤이 되자 화려한 조명을 자랑하며 관광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예쁘게 조명을 한 서안성벽과 문루도 밤에 보니 더욱 새롭게 보였다. 해자가 있는 성벽 주변에는 산책로가 있는 공원이 형성되어 있는데 시민들이 조깅이나 산보 또는 휴식을 취하기에는 매우 안성마춤이다.


셋째날은 화산(华山)을 구경하였다. 화산은 서안 시내에서 버스로 약 2시간 30분 거리에 있다. 화산은 태산,숭산,항산,형산과 함께 중국의 오악(五岳)으로 불린다. 일행은 케이블카를 타고 북몽아래까지 올라간후 약 1시간동안 북봉과 그 주변 경치를 구경했다. 비가 와서 제대로 산을 감상하지 못하지 않을까 걱정도 했지만 다행히 산 정상은 안개가 많이 걷혀서 화산의 진면목을 볼 수 있었다. 화산의 바위산으로 등산로는 모두 바위를 계단모양으로 깍아서 만든 것이다 화산은 도교의 명산으로 산 정상에는 도교 사원이 있다. 화산의 웅장함과 신비로움도 인상적이지만 바위를 깍아 돌계단을 만든 사람들의 수고와 정성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만약 돌계단을 깍아 만들지 않았다면 화산의 신비로움은 감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마지막날은 아침 조식 후 1시간동안 서안역과 성정부 청사를 중심으로 출근 시간의 서안 시내 거리를 구경하였다. 서안역은 섬서성 철도교통의 중심지 답게 규모가 크고 많은 사람으로 붐볐다. 서안은 현재 도시개발이 한창 진행중이다. 도심 대로에는 지하철 공사가 진행중이고 도심주변부로는 아파트와 빌딩들에 계속해서 지어지고 있다. 5년후 서안은 지금과는 또 달라져 있을 것이다. 공항으로 가는 도중 일행은 한경제의 황릉인 한양릉(汉阳陵)을 구경하였다. 한양릉은 최근에 발굴하여 공개한 것이다. 한양릉의 구조는 병마용과 흡사하지만 춡토된 유물들은 병마용과는 매우 다르다. 실물크기인 병마용 인형과는 달리 한량릉의 사람과 동물인형들은 크기가 매우 작다. 또한 각종 토기와 동물뼈도 함께 출토되어서 한대의 황묘문화가 진대와는 크게 다름을 알 수 있다.


이로써 4박5일간의 서안여행이 모두 끝났다. 짧은 5일동안 역사 고도(古都)인 서안의 모두를 볼 수는 없었지만 일부를 본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서안은 가보지 않을 수 없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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