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12일 수요일

답사-서대문 형무소


8월 24일 토요일 오전 서대문 형무소에 갔다. 서대문 형무소는 일제 시대와 군사독재 정권 시절 독립운동가들과 정치범들을 수감했던 교도소로 1987년 형무소가 의왕시로 이전한 이후로는 역사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서대문 형무소는 1907년 을사늑약을 강제로 체결한 이후 일제가 만든 형무소다.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하던 많은 분들이 이곳에 수감되었으며 또한 많은 분들이 이곳에서 죽어갔다.

역사관에는 일제강점기 때 이곳에 수감되었던 많은 독립운동 지사들의 사진들이 벽에 빼곡히 붙여져 있었다. 3.1운동 당시 체포되어 수감되었던 한용운 선생의 사진도 볼 수 있는데 정면을 향해 노려보는 눈빛이 아주 매섭고 인상적이었다. 또한 유관순 열사의 사진도 볼 수 있었다. 유관순 열사는 감옥에서 모진 고문을 당하다 옥사 하였다. 일본놈들은 심지어 유관순 열사의 시신을 아주 잔혹하게 훼손하였다고 한다.

일제는 이곳 형무소에서 독립운동가들에게 비인간적이고 잔인한 고문을 자행하였다. 역사관에는 당시 고문의 모습과 고문에 사용했던 기구들을 전시해 놓고 있었다. 한 나라의 주권을 침탈하고 그 국민들을 복종시키기 위해서 그들은 이런 끔찍한 만행을 저질렀다.
 

이곳에는 일제시대 때 이육사와 함께 수감생활을 했던 이병희 지사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고문 두려워 하면 독립 운동 할 수 없다.” 그들은 잔인한 고문과 비인간적인 수감생활을 할 각오를 하면서 독립운동을 한 것이다.
자신을 희생하면서 독립을 위해 싸운 분들이 있었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일신의 영달을 위해서 나라와 민족을 팔아먹은 친일파들도 있었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일제에 의해 착취를 당했지만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들은 작위를 받고 호화로운 생활을 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들이 해방후에도 우리 사회의 주류가 되었다는 점이다. 해방 후 친일 잔재를 청산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친일파들은 아직도 우리 사회 곳곳에 건재해 있다.

넓은 서대문 형무소 한 곳에는 사형 집행장이 있다. 이곳에서 사형수들을 교수형에 처하였다. 사형대에서 죽은 시신은 가족들에게 인계 되었지만 연고자가 없는 경우는 화장터로 보내졌다. 그러나 고문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서 시신을 강제로 화장 해버리는 경우도 많았다.

서대문 형무소는 일제시대 뿐만 아니라 유신 시대에도 정치범들을 수용했던 곳이다. 형무소 곳곳에서 당시의 비인간적인 수감 생활을 확인 할 수 있다. 일본 제국주의자들과 군사독재 정권이 서로 바톤 터치를 했을 뿐 이 곳 형무소에서 잔인한 고문과 인권 탄압은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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