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2일 일요일

치욕의 역사를 간직한 창덕궁


창덕궁은 종묘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궁궐로 가장 한국적인 궁전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임진왜란으로 경복궁이 파괴된 후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기 전까지 창덕궁은 창경궁과 함께 정궁의 역할을 하였다. 정조대왕을 비롯하여 조선 후기의 임금들이 주로 거처 하던 곳이 바로 이 창덕궁이다. 또한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이 거처하던 궁궐이 바로 창덕궁이다. 현재의 창덕궁은 순종 당시의 모습이라고 보면 된다.


창덕궁의 정문은 돈화문이다. 왕궁의 정문은 덕수궁을 제외하고 다 화(化)자 돌림이다. 경복궁은 광화문, 창경궁은 홍화문이다. 입장료는 궁궐 일반 관람이 3000원, 후원까지 관람할 경우 8000원인데, 가격이 꽤 많이 올랐다. 창덕궁 후원은 두 번 구경하였는데 반드시 가이드의 인솔을 받아야 한다. 오늘은 궁궐 관람만 하기로 했다.

돈화문을 지나자 안내방송이 들렸다. 곧 한국어 가이드의 설명을 들을 수 있는 투어가 시작된다고 한다. 가이드를 따라서 정조 때 만들었다는 규장각도 보고 궐내각사를 두루 돌아보았다. 가이드는 안내 책자에 나오지 않는 세밀하고 중요한 내용들 까지도 꼭 집어서 말해 주었다.


창덕국에는 경복궁에 비해 유독 일본인 관광객들이 많다.  왜 유독 창덕궁에 일본인들이 많이 올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그것은 창덕궁이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 순종이 거처하던 곳이라는 사실에서 실마리를 찾아야 할 것 같다. 순종은 일제에게 나라를 건네준 인물이다. 그는 아버지 고종에 비해 나라를 지키려는 의지도 없었고 카리스마도 없는 인물이었다. 고종은 을사조약이후 헤이그에 밀사를 파견하는등 마지막까지 나라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노력을 했다. 그로 인해 그는 일제에의해 강제로 퇴위를 당했다.

하지만 고종을 이은 순종은 그야말로 이름뿐인 황제였다. 순종은 병약하여 후사도 없었으며 일본이 내려준 이왕이라는 작위로 창덕궁에서 살다가 생을 마감했다. 따라서 창덕궁은 일왕이 임명한 왕인 순종이 거처하던 곳으로 일제의 조선 식민지 지배를 상징하는 곳이다. 그리고 창덕궁은 한일 합방 조약이 체결된 곳이다. 창덕궁 대조전이 바로 한일합방 조약이 체결된 곳이다. 이렇듯 창덕궁은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치욕의 장소이지만 일본놈들에게는 조선 식민지 지배와 과거의 영화에 대한 향수가 남아있는 곳이다. 일제 강점기에 창덕궁을 보수할 때 일제는 경복궁의 전각을 허물어 자재를 충당했다. 새로운 자재를 사용하지 않고 궂이 경복궁의 전각을 헐어버린 이유는 경복궁이 조선 왕조의 법궁으로 조선의 정신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이 창덕궁을 많이 찾는 이유를 이제 알 수 있을 것이다.

가이드를 따라서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과 대조전을 구경하였다. 인정전 안에는 샹들리에가 매달려 있는 것이 특이한데 순종은 이곳에서 주로 연회를 열었다고 한다. 대조전은 왕비가 거처하던 곳으로 다른 궁궐들과는 달리 문이 창호가 아닌 유리로 되어 있는 점이 특이하다. 대조전에는 순종황제와 왕비가 사용하였던 가구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순종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자동차를 타고 다녔던 왕인데 차를 타고 내리기 편하도록 전각을 고친 모습도 볼 수 있다.

가이드를 따라 마지막으로 낙선재를 구경하였다. 낙선재는 영친왕의 비 이방자와 고종황제의 마지막 딸인 덕혜옹주가 생을 마감한 곳이다. 원래 낙선재는 헌종 임금이 자신이 총애하던 후궁을 위해 지어준 전각이라고 한다.


댓글 1개:

  1. http://www.youtube.com/watch?v=WMq5Q3_wzxs

    덕혜옹주의 노래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