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20일 월요일

러시아 여행-상트뻬쩨르부르그(Санкт Петербург)

모스크바에서 비행기로 상트뻬쩨르부르그 풀코바공항으로 이동한후 버스를 타고 마스꼽스카야 역까지 간후 지하철(미뜨로)를 타고 호텔이 있는 시내로 갔다. 상트뻬쩨르부르그의 미뜨로도 모스크바와 마찬가지로 문화와 예술의 공간이지만 에스컬레이터는 모스크바보다 훨씬 깊어 보였다. 상트뻬쩨르부르그 미뜨로의 1회 이용 요금은 28루블이며 모스크바와 마찬가지로 환승과 거리에 상관없이 모든 구간에 동일하게 적용된다.

다음날 아침 식사후 미뜨로를 타고 레닌광장으로 갔다. 상트뻬쩨르부르그는 문화와 예술의 도시이자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이 발발한 혁명의 도시이기도 하다. 핀란드역 옆에 있는 레닌광장은 역사적인 장소다. 1917년 4월 핀란드 헬싱키에서 기차를 타고 상트뻬쩨르부르그의 핀란드역에 도착한 레닌은 이곳에서 사회주의혁명을 주장하며 연설을 하였다. 레닌광장에는 레닌의 동상이 있는데 네바강 건너편을 향해 손을 펼친 레닌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다시 미뜨로를 타고 녭스키대로(Невский проспект)로 갔다. 녭스키 대로는 상트뻬쩨르부르그의 중심대로다. 러시아 혁명당시 볼셰비키 군대는 녭스키 대로를 따라서 겨울궁전을 공격함으로써 혁명을 승리로 이끌었다. 녭스키쁘라스뻭트역에서 해군성방향으로 조금 걸어가면 까잔성당(까잔스키 싸보르,Казанский собор)이 나온다. 까잔성당은 가운데 돔을 중심으로 양 옆으로 거대한 기둥들이 늘어서 있는 독특한 양식의 사원이다. 까잔성당 앞에는 1812년 나폴레옹군을 무찌른 꾸투조프장군의 동상이 서 있다. 까잔 성당 맞은편에는 유명한 돔끄니기(Дом книги) 서점이 있다.

까잔성당에서 녭스키 대로를 따라 계속 걸으면 해군성건물이 나온다. 뾰족한 금빛 첨탑이 인상적인 해군성건물 옆에는 제까브리스토프 광장이 있고 광장 중앙에는 뾰트르대제의 기마상이 있다. 상트뻬쩨르부르그는 1703년 뾰트르대제에 의해 건설되었고 볼세비키혁명이전까지 약 2백년동안 러시아의 수도였다. 상트뻬쩨르부르그로 천도함으로써 러시아는 유럽과의 교류를 활발히 할 수 있었고 그로인해 대제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다. 뾰트르대제의 기마상 뒤편으로는 상트뻬쩨르부르그의 또하나의 상징인 이삭성당(이삭끼옙스키 싸보르, Исаакиевскнй собор)이 보인다.

이삭성당을 구경한 후 에르미따쥐(Эрмитаж)가 있는 궁전광장으로 향했다. 에르미따쥐는 예까쩨리나2세에 의해 지어진 궁전으로 보통 겨울궁전이라고 불린다. 겨울궁전 앞에 있는 넓은 광장이 궁전광장(드보르짜야 쁠로샤지)이다. 궁전광장 한복판에는 알렉산드로프스키 기둥이 있다. 겨울궁전을 마주보고 있는 건물이 참모본부 건물이다. 참모본부 건물 중앙에는 대형 개선아치가 있다. 겨울궁전과 궁전광장은 1905년과 1917년 혁명등 역사적인 사건의 주무대가 된 장소이다. 1905년 궁전광장에서는 피의 일요일 사건이 있었고 1917년 10월혁명 당시 적군은 궁전광장을 가로질러 겨울궁전을 점령함으로써 마침내 혁명을 승리로 이끌었다.

에르미따쥐는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에르미따쥐 박물관은 영국박물관, 루브르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박물관으로 불린다. 에르미따쥐의 내부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화려하고 웅장했다. 에르미따쥐에는 현대이전 유럽화가들의 작품들이 주로 전시되어 있다. 작품들을 하나하나 음미하면서 감상한다면 하루가 걸려도 다 보지 못할 정도로 전시된 작품들이 매우 많다. 이밖에도 에르미따쥐에는 고대이집트시대의 유물등 동서양의 역사유물과 러시아의 옛 문화예술품들도 전시하고 있다.

에르미따쥐를 관람한 후 궁전다리를 건너 바실리섬 일대를 구경했다. 바실리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라스트랄 기둥이다. 바실리섬에는 증권거래소 건물과, 쿤스트카메르,국립상트뻬쩨르부르그대학,과학아카데미등이 있다. 또한 네바강 너머로 뻬트로빠블롭스키 요새(Петропавловская крепость)도 보인다.

상트뻬쩨르부르그는 운하의 도시다. 궁전광장에서 녭스키 대로를 따라 걷다보면 마이까 운하, 그리바예도바운하, 판딴까 운하를 볼 수 있다. 이 운하들과 고풍스런 건물들이 조화를 이룬 풍경은 그 자체가 그림이라 할 만하다. 상트뻬쩨르부르그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도시다. 그래서 어느 거리를 걸어도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까잔성당 반대편으로 그리바예도바 운하쪽을 바라보면 피의사원을 볼 수 있다. 상트뻬쩨르부르그의 운하를 감상한 후 알렉산드라녭스키 사원과 블라지미르스카야 사원을 구경한 후 호텔로 돌아왔다.

다음날, 아침 식사후 녭스키 쁘라스뻭트 옆에 있는 아스트로프광장으로 갔다. 아스트로프 광장에는 예까쩨리나 2세의 동상이 있다. 동상을 구경한 후 러시아박물관(루스끼 무제이)이 있는 예술광장(쁠로샤지 이스꾸스트프)으로 향했다. 예술광장에는 뿌시킨의 동상이 있다. 러시아박물관에는 근현대 러시아화가들의 작품들이 주로 전시되어 있다. 특히 일리야 레핀같은 천재화가의 작품들과 현대 러시아 미술의 수작들이 전시되어 있어서 에르미따쥐와 함께 상트뻬쩨르부르그에서는 꼭 보아야 할 박물관이다.

러시아박물관 관람후 궁전다리를 건너 뻬트로빠블롭스키요새를 구경하기 위해 자야치섬으로 향했다. 빼트로빠블롭스키요새는 상트뻬쩨르부르그를 방어하기 위해 지은 요새로 뻬트로빠블롭스키사원의 황금빛 첨탑이 매우 인상적이다. 뻬트로빠블롭스키요새는 내부관람은 무료이나 성벽위로 올라가서 구경하려면 입장료를 내야 한다. 강건너에서 바라본 뻬트로빠블롭스키 요새의 모습은 마치 한폭의 그림 같다.

뻬트로빠블롭스키요새를 관람한 후 뜨로이츠키 다리를 건너 마르소보광장과 여름정원(례뜨니 삿드)을 구경했다. 상트뻬쩨르부르그에는 문화유산뿐만 아니라 산책하기 좋은 공원들도 많다. 상트뻬쩨르부르그에서는 운하주변이나 공원에서 개를 끌고 산책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레뜨니 삿드는 아름다운 분수와 조각상이 있는 시민들의 휴식공간이다.

상트뻬쩨르부르그는 야경도 아주 훌륭하다. 까잔성당의 야경도 수려하며 특히 궁전다리에서 에르미따쥐와 뻬트로빠블롭스키요새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절로 시적감흥이 흘러나온다.

다음날, 아침 미뜨로를 타고 센나야 광장으로 갔다. 상트뻬쩨르부르그는 도스또옙스키의 소설 죄와벌의 주무대가 된 도시다. 소설에서는 특히 센나야 광장이 자주 나온다. 하지만 현재의 센나야 광장은 문학과는 거리가 먼 가게들이 즐비한 거리로 변해 있다. 센나야 광장에서 그리바예도바운하를 따라 것다보면 마린스키 극장이 있는 찌아뜨랄나야 광장이 나온다. 마린스키 극장앞에는 러시아의 작곡가 글린카와 림스키코르사코프의 동상이 서 있다.

마린스키극장을 둘러본후 이상석당으로 향했다. 이삭성당은 현재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성당 내부를 구경하기 위해서는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한다. 이삭 성당 내부는 정말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웅장하고 화려하다. 상트뻬쩨르부르그에 왔으면 적어도 이삭성당 내부는 꼭 구경해보기를 권한다. 이삭성당의 돔으로 올라가려면 역시 입장료를 내야 하는데 돔에서는 상트뻬쩨르부르그의 경치가 한눈에 들어온다.


상트뻬쩨르부르그에서 마지막으로 스몰니사원과 회관을 구경하였다. 스몰니사원은 하얀빛의 외관이 매우 인상적인 사원이다. 스몰니 사원옆에 있는 스몰니 회관은 러시아혁명당시 볼셰비키의 사령부가 있던 곳이다. 레닌은 스몰니 회관에 머물면서 혁명을 지휘하였다. 스몰니 회관에는 레닌의 동상이 있고, 회관앞 광장에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동상이 있다. 스몰니회관을 끝으로 5일간의 러시아 여행이 모두 끝났다. 5일동안 모스크바와 상트뻬쩨르부르그를 제대로 보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나름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러시아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인식의 폭을 넓힐 수 있었던 것이 이번 여행의 가장 큰 소득이었다.

러시아 여행-모스크바(Москва)

10월 14일부터 20일까지 5박7일 일정으로 러시아 모스크바와 상트뻬쩨르부르그를 여행하였다. 이번 여행의 항공편은 모두 러시아 아에로플로트(Aерофлот)항공을 이용하였다. 아에로플로트 항공은 좌석도 편하고 기내서비스도 훌륭한 편이다. 모스크바 셰르메치에보 국제공항에 내려 아에로익스프레스(Aероэкспрес)를 타고 벨라루스카야역까지 이동한후 지하철(미뜨로)를 타고 호텔이 있는 빠벨레츠까야 역까지 이동하였다. 모스크바의 미뜨로는 상당히 인상적이다. 개찰구를 지나자마자 바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플랫폼으로 내려가는데 에스컬레이터의 깊이가 족히 150미터는 되어 보였다. 그리고 플랫폼도 수많은 조각과 그림등으로 꾸며저 있어서 모스크바의 미뜨로는 시민들에게 또하나의 문화공간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지하철에서는 책을 읽거나 전자책을 보는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모스크바 미뜨로의 요금은 거리와 환승에 상관없이 40루블이다. 모스크바의 지하철은 이용자가 상당히 많지만 열차가 1~2분 간격으로 운행되어서인지 객차안이 그렇게 붐비지는 않는다.




다음날 아침식사후 발쇼이 극장이 있는 찌아뜨랄나야 광장으로 갔다. 고전주의 양식의 발쇼이 극장은 생각보다 훨씬 더 웅장했다. 볼쇼이극장이 있는 찌아뜨랄나야 광장 옆에는 혁명광장(쁠로샤지 리발류찌)이 있고 광장 중앙에는 마르크스의 석상이 있다. 혁명광장 바로 옆에는 마네쥐나야광장이 있는데 광장 중앙에는 제2차대전(대조국전쟁) 승리의 주역인 주코프장군의 동상이 서 있다.

마네쥐나야광장과 붉은광장 사이에는 붉은색의 화려한 건물이 보이는데 이것은 러시아 역사박물관이다. 러시아 박물관을 지나자 붉은광장(끄라스나야 쁠로샤지 Красная площадь)과 끄레믈(Кремль)이 나타났다. 붉은광장의 한복판에는 레닌의 묘가 있는데 레닌의 사후에 그의 시신은 방부처리되어 이곳에 안치되어 있다. 해마다 승전기념일인 5월 9일에 대규모 군사퍼레이드가 펼쳐지는 붉은광장에 직접 와보니 감회가 새롭다. 붉은광장을 사이에 두고 역사박물관과 마주보고 있는 건물이 바로 화려한 꾸뽈로 유명한 바실리 성당이다. 바실리 성당 앞에는 폴란드와의 전쟁에서 모스크바를 지켜낸 전쟁영웅 미닌과 빠좌르스키의 동상이 있다.

 

과거 소비에트 시절뿐만 아니라 현재도 끄레믈은 러시아 정치권력의 중심부다. 그래서인지 붉은 광장과 끄레믈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차가운 권위와 위압감이 느껴진다. 끄레믈 성벽을 마주보고 있는 건물이 국영백화점 굼(ГУМ)이다. 화려한 쇼핑센터와 카페 레스토랑이 있는 굼은 모스크바 시민들의 쇼핑공간이지 휴식처다. 마네쥐나야 광장 옆에는 알렉산드로프스키 공원이 있다. 공원 안에는 2차대전 당시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무명용사의 묘지가 있다. 모스크바의 10월 중순 날씨는 한국의 11월 중순 정도에 해당하는 차가운 한기가 느껴진다.

알렉산드로프스키 공원에서 차도를 건너면 러시아 국립도서관(레닌 도서관)이 있다. 러시아 국립도서관은 건물규모도 클 뿐만 아니라 엄청난 양의 장서를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도서관 광장에는 도스또옙스키의 동상이 있다. 국립도서관 옆에는 구 모스크바 대학건물이 보인다.계속해서 발혼카 거리로 가다보면 황금색 꾸뽈이 인상적인 구세주 그리스도 성당이 보인다. 성당 광장에는 알렉산드르2세의 동상이 있는데, 알렉산드르 2세는 바로 농노해방을 선언한 제정 러시아의 황다. 성당과 차도를 마주보고 뿌시킨 박물관이 있다.


끄레믈 주변을 관람 후 아르바뜨(Aрбат) 거리로 갔다. 아르바뜨 거리는 젊음과 문화의 거리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비가 오고 날씨가 추워서인지 거리는 한산했다. 아르바뜨 거리는 서울의 인사동 거리와 비슷한 분위기의 거리다. 아르바뜨 거리를 나오면 러시아 외무성 건물이 보인다. 스탈린 양식의 이 거대한 건축물은 마치 모스크바를 상징하는 듯 엄청난 위압감과 함께 초강대국인 러시아의 국가적 위상이 느낄 수 있다.

아르바뜨 거리를 구경한 후 참새언덕(바랴뵤비 고리)으로 향했다. 산이라기 보다는 얕은 언덕인 바라뵤비 고리는 현재 모스크바 시민들의 휴식과 산책공간이다. 바라뵤비 고리에는 유명한 모스크바 국립대학교(엠게우,МГУ)가 있다. 엠게우도 외무성건물과 마찬가지로 스탈린 양식으로 지은 웅장한 건물이 일품인데 마치 전투기를 거꾸로 세워놓은 것 같은 재미있는 건물이다.

바라뵤비 고리 투어를 마치고 끄레믈 내부를 관람했다. 끄레믈 내부는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한다. 끄레믈에는 대통령집무실이 있기 때문에 대통령궁방향으로는 경찰이 관람객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관람객들에게 개방된 곳은 끄레믈 내부의 사원군들인데 이중에는 우스펜스키 사원, 아르한겔스크 사원, 이반뇌제의 종루등이 있다. 모두 러시아 전통양식의 아름다운 사원들이다.


이번에는 뜨베르스카야 거리를 걸었다. 고전적 건물들이 늘어서 있는 뜨베르스카야 거리는 백화점과 은행이 밀집한 쇼핑과 상업의 거리다. 아호뜨니 랏드에서 시작해서 뜨베르스카야 거리를 걷다보면 뿌시킨스카야 광장이 나오는데 광장에는 러시아들이 가장 사랑한다는 시인 뿌시킨의 동상이 있다. 뜨베르스카야 거리를 구경한 후 미뜨로를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이번 여행에서 숙박은 3성급 호텔을 이용하였는데 방의 시설도 양호했고 아침식사등 서비스도 훌륭한 편이었다.

다음날 아침 식사후 고리끼 공원으로 향했다. 고리끼 공원은 모스크바 중심가에 있는 시민들의 휴식과 산책 공간이다. 고리끼 공원옆에는 현대적인 양식의 뜨레챠꼬프 미술관이 있다. 고리끼 공원에서 모스크바 강을 따라 걷다보면 끄레믈이 보인다. 붉은광장에서 바라보았을 때에 비해 강건너에서 바라본 끄레믈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강을 배경으로 해서인지 끄레믈의 모습은 훨씬 평화롭고 온화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끄레믈 구경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와 짐을 챙긴후 상트뻬쩨르부르그로 향했다.


2014년 10월 2일 목요일

미국은 왜 아이시스(ISIS)를 공격하는가

미국이 이라크와 시리아의 상당부분을 장악하고 있는 이슬람무장세력 아이시스(ISIS)에 대해 공습을 시작하였다. 미국이 아이시스(ISIS)에 대한 공격명분으로 내세우는 것은 이들이 테러집단으로 중동지역의 평화를 위협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시스는 국제법상 국가도 아니고 단순한 무장단체에 불과하다. 이들이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세력을 확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라크 전쟁 이후 발생한 혼돈과 분열 때문이다. ISIS는 미국의 잘못된 이라크 침략의 결과물이다. 미국의 침략 이후 이라크는 폭력과 테러의 아수라장이 되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결국 이슬람 무장세력들과 테러리스트들이 봉기하는 명분을 제공했다. 그러나, 이번에 미국이 아이시스를 공습하는 목적은 테러리스트들의 격퇴가 아니다. 진정한 목적은 중동지역에서 자신들의 패권을 강화하고 시리아의 아사드정권을 붕괴시키는 것이다. 미국은 작년에 화학무기 사용을 명분으로 시리아에 대한 공습을 감행하려 하였으나 러시아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그러나, 미국은 여전히 아사드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리아 반군을 지원을 하고 있다. 미국은 어떻게든 아사드를 공격할 명분을 찾고 있다. 미국은 아이시스와 아사드를 억지로 엮어서 시리아 공격의 명분으로 삼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만약 시리아마저 무너진다면 그 다음 타겟은 이란이 될 것이다. 미국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을 무력으로 점령한 이후 중동지역에 남은 반미국가는 시리아와 이란이다. 미국은 테러리스트 격퇴라는 명분으로 아이시스를 공격하고 있으나 촛점은 시리아와 이란이다.

2014년 9월 11일 목요일

서안(西安) 여행

9월 7~11일까지 4박 5일 일정으로 서안(시안 西安)을 여행하였다. 여행사 패키지로 간 이번 서안단체관광의 총 인원은 나를 포함하여 18명이었다. 서안에 도착하자 많은 비가 내렸다. 이 비는 여행일정이 끝나는 날까지 계속되었다. 사실 서안은 7,8,9월이 장마철이라고 한다. 서안의 셴양국제공항에서 도착하자 이번 서안여행을 인도해 줄 조선족 가이드가 우리일행을 마중나와 있었다.

첫날은 실크로드 시작점, 섬서역사박물관, 대안탑광장, 회민거리를 구경하였다. 서안의 옛 명칭은 장안(長安)으로 진나라 때부터 당나라때까지 약 천년간 중국의 수도였다. 또한 장안은 예로부터 서역과의 교역의 중심지였고 실크로드의 출발점이었다. 그래서 지금은 사라진 당나라 외성 서문이 있던 자리에 서역과의 교역을 상징하는 조형물을 설치하고 이곳을 실크로드의 시작점이라고 기념한 것이다.

섬서역사박물관은 한나라,당나라시대의 유물들을 중심으로 고대중국의 중심지였던 섬서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곳으로 역사의 도시 서안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필수 코스다.

대안탑은 당나라 시대에 지어진 탑이다. 대안탑은 사리를 보관하는 탑이 아니라 불교경전을 보관하는 서고 또는 도서관의 역할을 했던 탑이라고 한다. 때문에 대안탑은 생각했던 것보다 매우 웅장했다. 그러나, 대안탑 내부를 구경하려면 따로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시간 관계상 광장에서 구경할 수 밖에 없었다. 대안탑 주변에는 넓은 분수광장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분수 쇼가 벌어지고 있었다. 흥겨운 음악에 맞춰 마치 춤을 추는 듯한 분수 쇼를 많은 시민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회민거리는 이슬람교를 믿는 회족(回族)들의 전통요리와 기념품들을 파는 일종의 먹자 골목이다. 서안에는 회족들이 많이 살고 있고 이슬람 사원도 많다. 지금은 비록 한족에 많이 동화되기는 하였지만 회족과 그들의 문화가 아직 보존되고 있다는 것은 이곳 장안이 예로부터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도시였음을 의미한다.

이튿날은 서안성벽과 비림(베이린 碑林)을 구경하였다. 서안성벽은 당나라때 만들어진 것이지만 현재 남아있는 성벽은 명나라 때 지은 것이다. 서안성벽은 높이와 폭에서 수원 화성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규모가 큰 성이다.성벽은 정방형으로 총 둘레는 14km다. 성벽 위에는 관람객들에게 자전거를 대여하고 전동차도 운행하고 있다. 서안성벽은 서안을 대표하는 건축물이다.
 


비림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중국의 역대 비석들을 모아 놓은 곳으로, 비석의 글자들을 통해 한자의 역사를 파악할 수 있는 곳이다. 특히 왕희지와 안진경등 역대 명필들의 글씨도 볼 수 있어서 중국 서법의 총집합소라고 불리어도 무방한 곳이다. 흥미로운 것은 비석의 글자들을 탁본을 떠서 관람객들에게 판매하고 있는 것인데 더 이상 탁본을 뜨기 어려운 비석들은 유리를 씌워 보존하고 있었다.

둘째날은 팔로군 기념관, 화청지, 진시황 지하궁전, 진시황 병마용, 진시황릉을 구경하였다. 서안은 1936년 서안사변이 일어났던 곳으로 그 사건을 계기로 국민당과 공산당의 2차 국공합작이 이루어지게 된다. 그 결과 모택동이 이끄는 공산군(홍군)은 장개석의 국민당군 제8로군으로 편입하게 된다. 따라서 팔로군 기념관은 항일전쟁 당시 홍군의 사령부가 있던 곳이다. 팔로군 기념관은 서안사변과 모택동과 홍군의 대장정에 관한 기록들을 주로 전시하고 있다.

화청지는 서안시내에서 버스로 약 40분정도 거리에 있는데 이곳은 당나라 황제와 궁녀, 궁인들의 목욕탕이 남아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양귀비가 목욕했다고 추측되는 목욕탕도 발굴 되었다. 당나라 황실의 목욕탕이 남아 있는 화청지는 현재 당나라 현종과 양귀비의 로맨틱한 사랑을 주재로 한 테마파크로 개발 되었고 이곳에서는 장한가무쇼라는 야외가무극이 공연되고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여행 일정 내내 비가 와서 장한가무쇼는 볼 수 없었다.

진시황 지하궁전은 실제 유적이 아니고 아직 발국되지 않는 진시황릉의 내부구조를 상상하여 만들어 놓은 것이다. 황릉의 내부구조를 가상하여 실제 왕릉처럼 지하에 만들어 놓은 모조 전시장이다. 진시황 병마용은 현재도 발굴작업이 진행중인 서안을 대표하는 유적지다. 2300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어 당시 사람과 똑같이 만든 흙인형들을 대면하고 있노라면 신비감과 벅찬 감동이 몰려온다. 병마용 인형에 관해 새롭게 안 사실은 인형들은 원래 색을 입힌 상태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천년동안 땅속에 있었기 때문에 발굴과 함께 급속히 색이 산화되어 색칠을 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형의 색을 보존하는 법을 개발할 때까지 발굴되지 않은 인형들은 아직 땅속에 보존하고 있다. 대부분의 병마용 인형들은 깨어진 상태로 발굴되었는데, 떨어진 부분들을 짜맞추어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그리고 깨지거나 부서진 인형들은 현재도 조각들을 짜맞추는 작업이 진행중에 있다. 총 3호갱까지 있는 병마용은 미완으로 남고 말았는데 그 이유는 진나라 말기 학정을 견디지 못한 농민들이 봉기하면서 병마용 공사가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병마용은 분명 고대인들의 놀라운 토기기술의 산물이지만 한편으로는 민중들에 대한 과도한 착취가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진시황릉은 야트막한 야산 모양을 하고 있는데 항공 적외선 촬영 결과 황릉내부에 거대한 석실이 있음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아직 거대한 황릉을 발굴할 기술이 개발되지 않아서 발굴작업은 보류되고 있다. 그러나, 언젠가는 황릉이 발굴되어 그 신비로운 내부구조와 내용물이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일정을 마치고 밤에 서안 시내 도보 투어에 나섰다. 서안시내 중심가에 있는 종루는 밤이 되자 화려한 조명을 자랑하며 관광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예쁘게 조명을 한 서안성벽과 문루도 밤에 보니 더욱 새롭게 보였다. 해자가 있는 성벽 주변에는 산책로가 있는 공원이 형성되어 있는데 시민들이 조깅이나 산보 또는 휴식을 취하기에는 매우 안성마춤이다.


셋째날은 화산(华山)을 구경하였다. 화산은 서안 시내에서 버스로 약 2시간 30분 거리에 있다. 화산은 태산,숭산,항산,형산과 함께 중국의 오악(五岳)으로 불린다. 일행은 케이블카를 타고 북몽아래까지 올라간후 약 1시간동안 북봉과 그 주변 경치를 구경했다. 비가 와서 제대로 산을 감상하지 못하지 않을까 걱정도 했지만 다행히 산 정상은 안개가 많이 걷혀서 화산의 진면목을 볼 수 있었다. 화산의 바위산으로 등산로는 모두 바위를 계단모양으로 깍아서 만든 것이다 화산은 도교의 명산으로 산 정상에는 도교 사원이 있다. 화산의 웅장함과 신비로움도 인상적이지만 바위를 깍아 돌계단을 만든 사람들의 수고와 정성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만약 돌계단을 깍아 만들지 않았다면 화산의 신비로움은 감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마지막날은 아침 조식 후 1시간동안 서안역과 성정부 청사를 중심으로 출근 시간의 서안 시내 거리를 구경하였다. 서안역은 섬서성 철도교통의 중심지 답게 규모가 크고 많은 사람으로 붐볐다. 서안은 현재 도시개발이 한창 진행중이다. 도심 대로에는 지하철 공사가 진행중이고 도심주변부로는 아파트와 빌딩들에 계속해서 지어지고 있다. 5년후 서안은 지금과는 또 달라져 있을 것이다. 공항으로 가는 도중 일행은 한경제의 황릉인 한양릉(汉阳陵)을 구경하였다. 한양릉은 최근에 발굴하여 공개한 것이다. 한양릉의 구조는 병마용과 흡사하지만 춡토된 유물들은 병마용과는 매우 다르다. 실물크기인 병마용 인형과는 달리 한량릉의 사람과 동물인형들은 크기가 매우 작다. 또한 각종 토기와 동물뼈도 함께 출토되어서 한대의 황묘문화가 진대와는 크게 다름을 알 수 있다.


이로써 4박5일간의 서안여행이 모두 끝났다. 짧은 5일동안 역사 고도(古都)인 서안의 모두를 볼 수는 없었지만 일부를 본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서안은 가보지 않을 수 없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