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4일 토요일

동유럽 여행-부다페스트(1)


부다페스트로 가는 열차를 기다리기 위해 플랫폼의 벤치에 앉아 있는데, 옆에 앉은 젊은 중국인 커플이 보였다. 그런데 여자는 손에 한국어 강좌 책을 펼쳐서 보고 있었다. 중국인이 한국어를 배운다는 사실이 고무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신기했다. 부다페스트로 가는 열차는 가운데 통로가 있고 양쪽에 2개의 좌석이 있는 일반 열차로 에어컨도 설치되어 있어서 컴파트먼트 열차에 비해 훌륭한 편이다.

열차가 종착역인 부다페스트 켈레티역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5시쯤이었다. 일단 환전부터 한 후에 스마트폰에 캡쳐해 둔 민박집 찾아가는 방법을 보았다. 부다페스트에서 이틀간 묵을 숙소는 D민박집이다. 설명서에는 티켓을 구입한 후에 버스를 이용하라고 되어 있다.

고풍스런 유럽의 도시들을 여행할 때마다 19세기로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느낌을 받곤 한다. 그런데, 부다페스트 역 앞 풍경은 그 느낌이 더 강했다. 앤티크하면서도 약간은 거칠고 투박한 느낌이 든다. 버스류장은 생각보다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버스가 특이했다. 버스위에는 마치 전철처럼 전선과 연결된 케이블이 있고 버스는 전선을 따라 운행하는 것이다. 전기로 움직이는 트롤리 버스였다. 정류장 주변에는 티켓 매표소가 없었다. 그래서 버스에 올라타서 기사에게 영어로 요금이 얼마인지 물었다. 그런데 기사는 두 손을 펼쳐 보이며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동유럽 국가들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따로 검표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냥 좌석에 앉았다. 무임승차이긴 하지만 몇 정거장 후에 내리면 된다. 물론 중간에 검표원이 표를 요구하면 꼼짝 없이 벌금을 물어야 하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희박했다. 설명서에 적힌 거리에서 내리자 그다지 어렵지 않게 민박집을 찾을 수 있었다.  민박집이 있는 건물은 연립 주택이었다. 현관에는 번호키가 있었고 입주자별로 번호가 할당되어 있었다. 이 때 한 남자가 오더니 번호키를 누른후 문을 열고 들어 가길래 같이 따라 들어갔다.

이곳의 입주자 인 것 같았다. 연립주택은 사각형의 건물로 가운데 마당이 있는 구조였다. 그런데 이 집 저 집 기웃해 보아도 한인 민박집 처럼 보이는 세대는 없었다. 민박집을 찾으려는 걸 알았는지 터키 사람으로 보이는 사내가 한 집을 가리키더니 그리로 들어가 보라고 한다. 그동안 한국인 여행객들을 많이 보아온  모양이다. 문이 열려 있어서 “계십니까" 라고 말을 하고 안으로 들어가 보았는데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 거실까지 들어가자 안방에서 한국인 할머니가 나오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작고 마른 체격에 얇은 저고리와 몸빼바지 차림으로 거동이 매우 불편해 보였다. 연세는 짐작으로는 여든 정도는 되어 보였다. 이 집 주인의 모친인 모양이었다. 집안을 둘러보니 부엌 거실 그리고 안방과 건넌방이 있는 평범한 가정집으로 게스트들이 묶는 방은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가 말했다. 민박집은 아들과 며느리가 운영하는데 지금 며느리가 손자와 함께 잠깐 외출중인데 곧 돌아올 시간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소파에 앉아 잠시 기다리라고 하였다. 거실 소파에 앉아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할머니는 자기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손주와 함께 살고 있었다. 아들은 피아노를 전공한 음악도로 피아노를 공부하기 위해 헝가리에 왔고 늦게 결혼을 해서 손자가 나이가 어리다고 한다. 그리고 딸은 폴란드 의사와 결혼했는데 지금은 아주 잘 살고 있다고 한다. 벽에는 아들과 며느리의 결혼 사진이 걸려 있었다. 할머니는 부산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했었는데 사업 수완이 좋아서 한국에서는 꽤 잘 살았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만 아들을 따라 헝가리에 온 후로는 병원 가기도 힘들고 모든 것이 불편해서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푸념을 늘어놓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며느리가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집에 돌아왔다. 며느리는 매우 미안한 표정으로 죄송하다며 나를 숙소로 안내했다. 숙소는 주인이 사는 집이 아닌 다른 집이었다. 그리고는 거실의 평상에 앉아 부다페스트 관광 지도를 펼쳐 놓고 관광 명소와 루트를 볼펜으로 표시해가면서 설명해 주었다. 숙소의 남자방에는 이층 침대가 3개 놓여져 있었으나 대학생 1명만 숙박하고 있었다. 그리고 꽤 넓은 거실에도 이층침대가 하나 있는데, 나는 거실 침대를 사용하기로 했다. 대학생은 약 17일 일정으로 동유럽을 여행중인데 지난번 서유럽 여행때 프라하가 인상적이어서 다시 오게 되었다고 한다. 나와 여행 동기가 같았다. 그리고 부다페스트가 매우 인상적이라며 바르샤바보다도 오히려 더 좋다고 말한다.

아직 6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라 시내를 둘러볼 시간은 있었다. 그래서 민박집을 나와 서역쪽으로 갔다. 숙소를 찾고 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일단 서역에 있는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로 저녁을 떼운 후에  국회의사당쪽으로 향했다. 부다페스트의 거리는 프라하나 비인과는 또 다른 헝가리만의 유니크한 감성이 느껴졌다. 하지만 건물들은 다소 낡았고 다른 동유럽 국가에 비해서 낙후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윽고 네오고딕양식의 국회의사당을 보고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자주빛 톤의 첨탑과 돔의 지붕들 그리고 화려한 디자인의 웅장한 자태는 마치 판타지 영화에 나오는 거대한 성을 보는 듯했다. 국회의사당은 부다페스트의 하이라이트로 부다페스트에서 이보다 더 아름답고 화려한 건물은 찾을 수 없다. 국회의사당 뒤편으로는 다뉴브강이 펼쳐져 있다. 탁트인 전망과 함께 강변에서 바라보는 부다지구의 풍경도 아주 볼만하다. 강변에는 한강 공원처럼 제방과 산책로가 있다. 그리고 부다페스트의 또하나의 상징 세체니 다리가 보였다.

산책로를 따라서 세체니 다리쪽으로 걸어가 보았다. 세체니 다리는 부다페스트에서 최초로 건설된 유서깊은 다리로 2개의 주탑이 있는 현수교다. 주탑은 마치 개선문처럼 웅장하게 생겼고 입구에 있는 사자상은 세체니 다리의 상징으로 기념사진을 많이 찍는 곳이다. 다리를 건너다 보니 키스나 포옹을 하는 커플들을 많이 보게 된다. 프라하의 카를교처럼 세체니다리도 연인들에게는 낭만의 다리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다리를 건너면서 보게되는  아름다운 다뉴브강과 부다페스트의 풍경은 낭만적인 상상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강변에서 좀더 야경을 보려고 하는데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왕궁 언덕에는 번개가 치는 모습이 보였는데 번개가 몇 초 간격으로 내려 치자 그 광경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관광객도 있었다.

서둘러 민박집으로 돌아오니 시간은 9시 30분쯤 되었다. 숙소의 부엌 테이블에서는 한 남자가 노트북을 열심히 보고 있었다. 가볍게 인사를 하자 남자는 별 관심이 없는 듯 무뚝뚝하게 인사를 한 뒤 계속해서 노트북을 보는 것이다. 샤워하고 옷을 갈아 입으려고 배낭을 열어보니 반바지와 티셔츠가 없었다. 혹시 주인집에 두고 왔나 해서 초인종을 눌러서 물어보니 여주인은 보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잘츠부르크의 호스텔에 두고 온 것이 틀림없다. 바우처와 약도, 가이드북에 이어 이제 옷까지 잃어 버렸다. 값나가는 옷들은 아니지만 숙소에서 편하게 입기 위해서 가져 온 옷들이다. 거실에서 팬티와 러닝 차림으로 있을 수가 없어서 면바지를 입었는데 숙소에서까지 입고 있으려니 좀 불편했다. 노트북을 보는 사내는 일본어를 공부하는지 부엌에서는 일본어 강좌 소리가 들렸다. 대학생에게 물어 보았더니 싱글룸에 숙박하고 있는 사람으로 현지 회사에 다니는 것 같다고 한다. 일본어 강좌 소리가 크게 들려서 거실 문을 걸어 잠근 후 바지를 벗고 팬티와 런닝 차림으로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밖에서는 계속해서 천둥과 번개가 치고 비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날이 더워 어쩔 수 없이 창문을 열어 놓았는데, 비바람에 창문이 계속해서 열렸다 닫혔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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